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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10화 (210/371)

〈 210화 〉 가정 방문

* * *

그 시각.

류인형은 자신도 모르게 연거푸 세수를 반복하고 있었다.

차가운 물이 얼굴에 닿을 때마다 지나칠 정도로 오싹한 느낌이 온 몸에 퍼졌다.

누군가 척추에 액체질소를 따라붓는 듯한 감각.

작금의 상황이 되어서야, 류인형은 스스로의 상황에 의문을 품었다.

온 몸의 피부가 근질거린다.

마치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기분.

이상할 정도로 낯선 감촉에 턱 하고 숨이 막힌다.

짜증. 불쾌함. 미움.

동시에, 살의.

……그래.

류인형은 방금 전 자신과 대화를 나누었던 박우찬을 죽여버리고 싶은 마음에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격렬한 감정이 휘몰아친다.

도대체 어째서일까.

그야 박우찬의 태도가 당황스러웠던 건 사실이다.

아무리 그래도 지나치게 무례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하지만.

박우찬이 제기했던 의혹 또한 부정하긴 힘든 바.

오히려 지희를 맡고 있는 입장에서 보자면 자연스러운 반응이었을지도 모른다.

실제로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 보면 자신 또한 그렇게 판단했을지도 모르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인형의 머릿속은 이상할 정도로 부풀어오른불만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어떻게든 핑계를 대고 자리를 비우긴 했지만, 솔직히 말해 곤란할 정도로.

납득할 만한 이유를 생각하긴 어렵다.

당장 머리를 들쑤시는 감정의 홍수에 이성을 유지하기도 힘들었기 때문이다.

"별꼴이네, 진짜."

그러므로.

다음 순간, 자신의 뒤에서 나타난 조카의 모습에 류인형은 숨이 멎는 듯한 갑갑함을 느꼈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팔짱을 낀 채 거울 너머로 그를 바라보는 선홍색 시선.

사람의 감정을 쥐고 흔든다 하는 몽마의 눈초리에, 류인형은 여태까지 단 한 번도 느낀 적 없는 적대감을 느꼈다.

내심 바보같다 생각하고 있던 남매들의 혼혈에 대한 반감이 이해가 갈 정도였다.

공교롭게도, 류지희는 그런 류인형의 기분을 눈치채지 못했다.

다름이 아니라 눈 앞에 펼쳐진 모습 때문이었다.

소매를 겉어붙인 팔은 물론이요, 연거푸 세수를 반복한 탓에 완전히 젖어버린 와이셔츠.

평소 유난스러울 정도로 깔끔을 떨던 류인형의 모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몽마의 능력으로 감정을 엿보고 말고 하기 이전 문제.

지금 류인형의 상황은 누가 보아도 이상했다.

결국 류지희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류지희는 류 씨 일가를 싫어하는 편이긴 했어도, 류인형 개인에게 그렇게 큰 악감정은 없다.

마음에 들진 않아도, 명백히 이상한 상황을 눈 앞에 두고도 개의치 않을 정도까진 아니다.

그러니.

"스스로도 알고 있지? 지금 네 상태, 무언가 이상하다는 거."

"뭐?"

"가만히 있어. 조금 살필 테니까."

그렇게 말하며 류지희는 자신의 눈가에 마력을 불어넣었다.

몽마의 마안.

사람의 영혼을 직접 바라볼 수 있다는 그 눈동자가 형형하게 빛을 발했다.

그 모습을 보며, 류인형의 머리가 조금 뒤늦게 회전했다.

살펴?

뭘?

나를?

왜?

지금 내 상태가 이상하니까?

……틀린 말은 아니다.

류인형은 그걸 알 수 있었다.

여하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스스로가 생각하던 내용이 아닌가.

그러나.

"짜증나지 않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건방을 떠는 조카가."

자신의 머릿속을 직접 살펴보겠다고 말하는 류지희의 발언.

혹은, 저토록 방자하기 짝이 없는 태도.

과연 류인형의 마음에 걸렸던 건 어느 쪽인가.

스스로도 알 수 없는 사이, 류인형은 자신도 모르게 눈 앞의 조카를 향해 쇄도했다.

*

콰아앙!!

화장실 안에 폭음이 메아리쳤다.

만에 하나 류인형이 타이밍에 맞추어 자택 내의 결계를 작동시키지 않았을 경우.

단순한 소음은 물론이요, 이 건물 자체가 날아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일격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인형은 아직 긴장을 풀지 않았다.

방금 전, 손맛이 그렇게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야, 너 미쳤어?!"

실제로도 그러했다.

폭연 사이로 날개를 펄럭이는 지희.

방금 전, 자신을 향한 류인형의 주먹을 날개로 받아낸 탓일까?

평소에 비하면 한층 느릿한 날갯짓이 눈에 띄었다.

……아니, 설령 부상이 없었다 해도 마찬가지였겠지만.

그 정도로 방금 류인형이 내비친 살의는 상궤를 벗어날 정도로 이상했다.

그야 류지희 또한 알고 있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독심 능력자 따위에게 자신의 마음을 공개하기 싫어한다.

하물며 그 정신 간섭 능력이 몽마로부터 유래한 물건이라면 더더욱.

허나아무리 그래도 단번에 상대를 죽이려 달려들다니?

지나칠 정도로 완강한 저항이다.

심지어 본인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점 정도는 짐작했을 터.

그런데도 저토록격렬한 반응이라면…….

'역시.'

방금 전, 류인형의 모습을 보았을 때부터 짐작했었던 사실.

지금 류인형의 정신은 다른 누군가의 능력에 의해 간섭당하고 있다.

구태여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저 정도면 거의 확실하니까.

말하자면, 지금의 저 반응은 일종의 방어 기제인 셈이다.

정신 간섭 능력 보유자가 제일 기피하는 상황은, 스스로가 타인의 정신을 만지작거렸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일이다.

누구나 불쾌하게 여길 만한 상황이니까.

때문에, 누군가 자신에게 정신 간섭을 시도할 만한 상황이면 저렇게 과민 반응하도록 트리거를 심었다……?

류지희는 그렇게 추측했다.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문제는, 정작 박우찬이 그런 사실을 읽을 수 없었다는 점.

애시당초 박우찬의 능력은 몬스터가 상대가 아니라면 그렇게 대단한 수준은 아니지만, 류지희는 그런 사실을 몰랐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은, 덕분에 류지희의 경계심이 한 단계 더 올라갔다는 거겠지.

조용히 날개를 펄럭이며 류지희는 현 상황을 점검했다.

박우찬의 평가에 의하면, 지금 류지희의 전력은 대략 B랭크.

여왕의 마력 중 일부를 소화하고 경험을 쌓은 덕분이다.

그에 비해, 류인형의 실력은 B+랭크.

일반적으로 B랭크에 준하지만, 대책이나 수단을 궁리할 경우 자신보다 격상인 몬스터도 사냥할 수 있다.

그런 평가였던가.

그야 그렇겠지.

지희 또한 류인형의 능력은 알고 있었다.

통칭 상태창.

자신을 포함한 사람들의 능력을 수치화해 파악할 수 있는 기능이다.

박우찬이 무심코 혀를 찼을 정도로 훌륭한 능력.

덕분에 류인형은 박우찬과 달리 사전에 온갖 소도구를 바리바리 준비하지 않고도 손쉽게 상위 몬스터를 사냥할 수 있었다.

허면, 문제인 점은 단 하나.

류인형은 몽마를 상대하기 위한 수단을 준비해두었을 것인가?

거기까지는 역시 알 수 없었다.

슬쩍 주먹을 쥐었다가 편다.

그에 비해, 이 쪽은 각오를 다졌다.

여하간, 류인형의 목적을 읽을 수 없었던 건 마찬가지니까.

때문에, 류지희는 이번 가정 방문을 통해 자신의 힘으로 류인형의 마음을 읽을 생각이었다.

당연히 그런 만큼 류인형과 맞부딪힐 상황 또한 어느 정도는 상정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기 집을 거의 요새 가깝게 개량했을 줄은 몰랐다.

아니, 일부러 연을 끊었으니까 그야 알 수 있을 리도 없지만.

상성은 나쁘지 않다.

순수한 실력은 밀린다.

만약 저 쪽이 자신에 대한 대책을 구비하지 않았다고 할 때, 길항까지 가져갈 수 있다.

그렇지만 각종 함정 등을 고려할 경우 역시 열세.

정리할 수 있는 건 이 정도인가.

"후우."

짧게 호흡을 내뱉어 정돈한다.

결국 해야 할 일은 변함 없다.

얼마 전 발주했던 무기가 완성되지 않은 게 조금 뼈아프지만.

다행스럽게도, 류인형의 능력은 만능.

자신의 공격력을 능가하는 방어력 등, 대처하기 곤란한 타입은 아니다.

거기까지 생각한 뒤, 두 명의 시선이 맞부딪혔다.

방금 전, 기습과 동시에 전개한 결계.

자세한 성능은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하는 기능 정도는 있으리라.

비록 지금 류인형의 상태가 정상이 아닌 건 틀림없어도, 당장 박우찬까지 2대 1로 상대하고 싶을 리는 없을 테니까.

그 외에는 충격을 분산시키는 용도 또한 있을 테고.

시선을 돌릴 필요조차 없다.

거울에 비치는 화장실의 모습이 이상할 정도로 널찍하게 비친다.

공간을 잡아늘린 듯 부자연스러운 넓이.

사람 셋만 들어차도 좁을 화장실이 마치 광활한 평야처럼 주욱 부자연스럽게 잡아늘려진 모습이 보였다.

만에 하나, 실내에서 전투를 벌일 때를 대비해 준비한 물건일까.

어느 쪽이든, 류지희로서는 반길 일이었다.

날개의 기동력을 살릴 수 있을 테니까.

류인형에게는 어떨까.

지금도 그녀를 바라보고 있는 시선에 총기가 깃든다.

모르긴 몰라도, 그의 능력을 사용하고 있는 도중이겠지.

날개에 데미지가 남은 지금.

류인형이 치고 들어오기 가장 좋은 타이밍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는 만큼, 물어볼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뻔한 사실이다.

덕분에.

둘 사이의 싸움이 시작된 건 거의 동시였다.

류지희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날개가 데미지를 어느 정도 회복한 순간.

류인형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능력으로 현재 류지희의 실력을 분석한 직후.

거의 동시에, 두 명의 신형이 움직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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