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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03화 (203/371)

〈 203화 〉 핏줄

* * *

결론만 말하자면, 우리 앞에 나타난 사내는 내가 아닌 지희 쪽의 지인이었다.

아니, 지인이라는 표현이 정확할진 모르겠다.

단순한 관계만 따지자면 지인보단 가깝고, 아무래도 본인의 기분에 따르자면 그보다 먼 관계인 듯하니.

"류인형이라고 합니다."

우리 앞에 나타난 사내는 스스로의 이름을 그렇게 소개했다.

썩 말끔한 인상이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옷가지.

거기에 더해, 깔끔한 어조까지.

눈 앞의 나보다 어릴 듯한 청년이 이런 시대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괜찮은 교육을 받았으리라 확신하는 데에는 그 정도면 충분했다.

문제는 거기가 아니었다.

나보다 어린 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코 흔하지 않은 성씨.

추가로 같은 성씨인 지희의 반응까지.

아무리 나라고 해도 이만한 조건이 갖추어지면 어느 정도 짐작이 갈 수밖에 없다.

"삼촌이에요."

지희의 말은 그런 내 짐작에 한층 더 박차를 가했다.

역시, 눈 앞의 사내는 지희의 친인척이었던 모양이다.

다만.

"할아버지가 꽤 정정하셨구나."

"알 바 아니에요, 그딴 인간."

나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어디 보자, 지희가 이제 열 여덟 살.

그런데 눈 앞에 있는 청년은 잘 해도 나랑 동년배거나 그 이하.

눈대중으로 어림할 시 이십대 중반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즉, 18년 전 지희가 탄생할 당시 잘 해야 10살 부근이었다는 건데…….

'개쩌는구만.'

솔직한 감상이었다.

다만, 그 이상 캐묻기는 조금 뭐했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지희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진 게 눈에 밟혔기 때문이다.

단순히 방금 전 분위기를 망가뜨린 삼촌에 대한 짜증 따위의 치기 어린 감정이 아니었다.

좀 더 본질적인, 단순한 분노.

까놓고 말해, 눈 앞의 삼촌이란 개인에 대한 감정이었다.

솔직히 조금 쫄았다.

저래서야 몽마가 아니라 악마, 나찰이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으음, 지희야? 그래서, 이 분이 누군지도 슬슬 소개해주지 않을래?"

"알아서 뭐 하시게요."

실제로도 그랬다.

날카롭기 짝이 없는 반응.

도저히 웃어른을 상대로 할 만한 반응은 아니었다.

허나, 이번엔 평소와 달리 나 또한 쉬이 움직일 수 없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해야 할까.

당연한 이야기.

사실 내가 지희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정말로 얼마 되지 않는다.

물론 생활부에 적힌 정도는 알고 있지만, 알고 있다시피 지희의 생활부 기록은 대부분 가짜.

실제로는 혼인회 출신 혼혈로서 대다수 시간을 그들과 함께 보냈다는 사실 정도일까.

그 부모는 저번에 보았듯 신세계 질서와 연이 닿아 있던 몽마의 여왕과 그 희생자 중 한 명.

당시 남상원이 이끌고 있던 캠프를 붕괴시킨 몽마의 여왕이 남기고 간 아이가 바로 지희다.

내가 알고 있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때문에.

눈 앞의 남자에 대해 내가 짐작할 수 없는 것 또한 당연했다.

지희와 같은 성을 쓰고, 삼촌이라는 표현을 보면 지희의 부친 관계자겠지.

하지만.

애초에 나는 지희의 부친이 누군지도 모른다.

몽마에게 희생당한 희생자들 따위,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당시에는 정말 양 손으로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았을 테니까.

이제 와서 갑자기 지희 쪽 부친 관계자가 나와도 곤란할 따름이다.

것보다, 지희가 부친 쪽과 알고 있었다는 사실도 놀라울 지경인데.

이렇게 놓고 보니 확실히 내가 다른 애들에게 무심한 편이긴 하구나.

방금 전, 형님이 했던 말이 떠올라 무심코 주눅이 들고 말았다.

이래서야 원, 나도 뭐라고 할 처지가 아니구만.

때문에.

잠깐 한 걸음 앞으로.

어어, 하는 소리를 내는 지희를 가리듯 슬쩍 그 시선을 가로막는다.

그 모습에 사내의 시선이 살짝 휘었다.

그야 의심스럽겠지.

저 쪽 입장에서 보자면 조카인 지희가 난생 처음 보는 양반이랑 이 시간까지 얼쩡대고 있었던 셈인데.

내 액면가나 지희의 종족을 생각하면 험한 말이 안 나온 것만 해도 어딜까 싶은 수준이다.

그렇지만, 다행스럽게도 지금 내겐 이런 상황에서 쓸 수 있을 만한 수단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지희네 담임인 박우찬이라고 합니다."

"……응?"

담임이라는 말에 사내의 얼굴이 살짝 당황으로 젖는다.

동시에, 아하 하는 소리와 함께 탄복하는 목소리.

"아, 혹시?"

"네. 부족하지만, 아카데미에서 지희의 담임 교사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아하. 그럼 지금은?"

"헌터 쪽 교육 관련으로 지희랑 잠시 이야기를 하고 있었군요."

틀린 말은 아니다.

전용 장비를 맞추러 간 거니까.

그 말에 남자는 곧 납득했다는 양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밀었다.

"반갑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지희네 삼촌인 류인형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말이야 그렇게 했지만, 잘 부탁할 일이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마주 악수.

짧게 손을 털며, 사내는 곧 유쾌한 듯 웃어보였다.

"이야, 설마 교사 분들과 같이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그렇습니까?"

"예. 그것 참, 섭섭하게 됐네요. 그런 일이 있으면 연락을 넣어주시지."

아니, 그렇게 말해도 나는 댁들 전화번호도 모릅니다만.

그야 지희 쪽 사정을 알게 된 이후라면 따로 전화번호를 물어보는 게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싶은 생각은 들었지만.

그조차 사실은 방금 전 이 사내를 만난 덕택에 떠올린 생각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현재 지희의 보호자 자리에는 남상원의 이름이 떡 하니 자리잡고 있었으니까.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대한민국 국민 중 3할이 부모를 잃었다 일컬어지는 시대다.

혼인회와 함께 살며 혼인회를 가족이라 부르고 혼인회 거처에서 머무르는 지희.

그런 지희의 생활상을 보고 얘가 가출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을 리도 없다.

것보다, 남상원 쪽에게도 이런 말은 듣지 못했고.

"하긴, 어쩔 수 없겠군요. 여하간, 저희는 지희가 아카데미에 입학했다는 소식도 신문을 통해 들었어야 할 정도니까요."

"하하."

일단 적당히 넘기긴 했는데, 거 참 묘한 말투였다.

이 쪽을 긁는 건지, 아니면 은근슬쩍 지희의 사정을 고자질하려는 건지.

별다른 대답이 없자 점차 얼굴에서 웃음기가 빠져나가는 게, 후자가 아닐까 싶긴 했지만.

"그렇지만, 저희 지희가 선생님을 잘 따르는 모양이로군요."

"예?"

"하하, 제가 지희를 가르쳤을 때만 해도 꽤 고생했었거든요. 개인 교습이라니, 상당히 친밀하신 모양입니다."

"뭐, 일단은……."

가르쳐?

무슨 소리야, 그건.

적당히 알쏭달쏭한 척 넘기는 것도 슬슬 한계다.

혹시나 싶어 지희를 돌아봤지만, 방금 전보다 더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어 결국 양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어디 보자.

그럼 여태까지 알 수 있었던 사실을 정리하자.

눈 앞의 사내, 류인형은 지희네 부친 쪽 관계자다.

혈연적으로는 삼촌.

단, 나이는 오히려 지희와 가까운 수준.

오히려 조금 터울이 있는 남매라는 편이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희는 딱히 눈 앞의 사내를 좋아하는 것 같진 않다.

일찍이 지희를 가르쳤다 운운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단순히 낯설어서 그런 건 아닌 것 같은데.

아니, 그보다 부친 쪽 관계 대다수를 꺼려한다는 표현이 정확할까.

방금 전, 조부를 언급했을 때의 반응을 상기한다.

그리고 연락 운운하는 소리까지.

이로부터 미루어 볼 때, 지희는 부친 쪽 관계자들과 거의 연락을 끊고 지냈다는 뜻이겠지.

또한, 거의 어림짐작이지만 그 이유 또한 짐작할 수 있었다.

대침공 당시 몇 번이나 붕괴를 거듭한 캠프 속에서 자라난 지희.

그런데도 눈 앞의 사내는 꽤나 깔끔한 의복에 번듯한 어투를 자랑하고 있다.

다시 말해, 사실 지희 쪽 부친은 나름 괜찮은 집안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거기에 내가 알고 있던 지희네 부친의 최후 및 지희의 이 반응을 대입해 보면, 얼추 답도 나온다.

"그래서 그런데, 지희야. 너희 집에서 조금 이야기라도 나눌 수 있을까?"

"싫은데요."

"에이, 오랜만에 보는 삼촌한테 너무해라. 그렇지 않습니까, 선생님?"

"하하하."

"혹시 아직도 질 나쁜 친구들이랑 어울리고 있는 건 아니겠지? 삼촌은 걱정이다."

확실하군.

이 남자.

그보다, 아마도 지희네 부친 쪽 관계자 대부분.

혼인회 쪽과 접촉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혼인회 측, 나아가서는 혼인회 측을 가족처럼 아끼는 지희와 결딴난 이유가 있겠지.

그 정도는 얼마든지 쉽게 상상할 수 있었다.

몽마의 꼬드김에 넘어가 집안을 등진 장남에 대한 컴플렉스.

나아가서는, 그런 컴플렉스로 인해…….

'지희를 사람으로 키우려 했다.'

보통 이런 상황에서 상대가 보일 만한 반응은 둘 중 하나다.

애초부터 아들이 악마의 꼬드김에 넘어가 탄생한 지희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거나.

혹은, 지희는 아끼되 여전히 컴플렉스는 남아 있거나.

지희를 사람 취급했다, 라고 말하면 듣기야 좋겠지.

그렇지만 그 실체는 아마도 혼혈이라는 개념에 대한 부정이나 다름없었으리라.

류 씨 집안 누군가와 몽마의 딸, 이라는 사실을 부정하기 위해 류 씨 집안의 손녀라는 이름만을 강조한 결과다.

애시당초 어머니 쪽을 언급하지 않으려 외면한 결과, 혼혈이라는 개념에 대한 천시 따위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런 가치관이 혼인회 내지 혼인회를 가족처럼 여기던 지희와 결렬한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을 테고.

허면, 방금 전부터 눈 앞의 사내가 보이고 있는 반응 또한 이해할 수 있었다.

아마도 저 쪽에서는 정말로 지희와 무엇 하나 연락 방법이 남아있지 않은 거겠지.

그러던 게 최근 어찌저찌 지희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가장 먼저 염두에 둘 수 있는 건 역시 아카데미에 몬스터 혼혈 학생이 입학했다는 그 프로파간다일 테고.

덕분에 학기가 끝나 시간을 내어 지희와 접촉한 게 지금, 인가.

그렇다면 방금 전부터 이 쪽을 살살 긁는 어투인 것도 짐작할 수 있다.

여하간, 저 쪽이 보자면 나는 지희의 담임일 뿐이다.

지희의 가정 환경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암시를 들으면 일반적인 경우 당황해 지희를 추궁할 수밖에 없겠지.

말하자면, 눈 앞의 사내 내지 이 쪽을 위시로 한 저 쪽 집안 사람들은 내 이름을 이용해 지희의 현황을 알아내려 한 셈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담임이라는 타이틀을 이용해.

그렇게 말하는 편이 정확할까.

물론 나로서는 그런 행동에 쉬이 동참해줄 수 없었다.

아니, 지희가 상관 없다면 나도 상관 없지만.

어딜 어떻게 봐도 무슨 사정 단단히 얽힌 기분인걸.

하물며, 나를 통해 알아내려 한 사실들이 하나같이 범상치 않다.

지희의 현 주소. 거기에 지희의 전화번호까지.

어느 쪽이든, 정상적인 교류가 있었다면 모를래야 모를 수 없는 물건들 뿐이니까.

즉, 나로서는 지희와 정상적인 교류 하나 없을 눈 앞의 사내에게 그런 정보를 휙휙 하고 넘겨줄 수도 없었다.

'이거면 되겠지?'

슬쩍 지희의 반응을 확인하니, 적어도 나쁘진 않았다.

덕분에 나 또한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흠."

그런 내 모습에, 사내는 살짝 침음성을 흘렸다.

단순히 당황한 건지, 아니면 뭔지.

어느 쪽이든, 사내로서는 예상 외의 상황일 테지.

여하간, 아무리 그래도 고작해야 일개 담임에 지나지 않는 내가 사실 프로파간다 이전부터 지희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보다 그런 프로파간다가 나돌게 된 이유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는 생각하기 어려울 테니까.

썩어도 담임이라는 양반이 왜 반응하질 않는 거지?

눈치가 없는 건가?

그런 생각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뭐, 어느 쪽이든. 앞으로는 만날 기회도 몇 번 있겠죠."

"음?"

"하하. 다름이 아니라, 저도 내년부터 교사로 아카데미에 정식 임용되게 되었거든요."

그리 말하며 자랑스레 목덜미를 더듬는 류인형.

눈 앞의 사내가 그 말로 암시하는 미래에, 문득 확인한 지희의 얼굴이 마치 백짓장처럼 질린 모습이 눈에 밟혔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선배님!!"

그러나.

마치 그런 모습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우연히 거리에서 만난 직장 선배를 향해 인사하듯 큼지막한 소리로 그리 외치는 사내의 모습은, 확실히 퍽 얄미운 면이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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