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화 〉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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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별다른 일은 없었다.
형님이 의뢰라는 이름으로 요구한 건 어디까지나 돌하르방 모양 골렘들의 처리 뿐이었기 때문이다.
뭐, 이 정도면 싸게 먹힌 편이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장인 거리에서 주로 다루는 건 몬스터 소재다.
덕분에 따로 챙겼던 방독면이 도움이 되었다.
단순한 대금은 지희의 저금으로도 해결할 수 있었고.
헌터의 장비가 만만한 가격은 아니고, B랭크 헌터에겐 과분한 수준의 기술을 가진 형님 쪽이라면 더더욱 그렇기 마련.
그렇지만, 지희도 여유가 없지는 않았다.
애시당초 줄창 던전을 돌기도 했고.
적어도 제 장비 하나 마련하긴 충분한 여유가 있었던 셈이다.
어쩌면 그렇게 멀지 않은 미래, 아카데미 출신 헌터들이 가장 각광받는 건 다름 아닌 이 부분이 아닐까.
학창 시절, 간단한 소형 몬스터를 퇴치하는 건 교복만 있어도 충분하다.
무기 쪽도 지급품이 있고.
다시 말해, 거의 3년 가까이 아카데미 출신 헌터들은 따로 장비에 돈을 할애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렇게 저축한 돈으로 졸업 당시 자신의 실력에 맞추어 장비를 제대로 구매할 수 있다는 것.
그 정도만 해도 엄청난 특례니까.
여타 헌터들이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전선에 발을 들이거나 빚을 낸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충분한 강점이다.
물론 지희 쪽에서는 다소 어리둥절할 수도 있겠다.
몬스터까지 사냥한 판국에 돈을 더 내라니.
돈이 부족한 건 아니지만, 정말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애시당초 몬스터 소재를 사용한 장비라고 해 봐야, 단순한 땜장이 일 아닌가?
도대체 어디에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걸까.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니, 어째 돌아온 직후부터 지금까지 줄곧 시선을 피하고 있는지라 나로서도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뭐지?'
냄새라도 나나?
슬쩍 옷소매 근처에 대고 코를 울렸지만, 딱히 별다른 냄새는 나지 않았다.
애초에 준비 운동 수준도 아니었고.
실제로 입은 부상도 마지막에 충격을 흘리다 팔이 조금 뻐근한 걸 제외하면 별 거 없었으니까.
골렘 부류는 피나 내장도 안 흘리고.
젠장, 오히려 몬스터 냄새는 네 쪽에서 난다고 해 주고 싶다.
물론 정말로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지만.
"허어."
다행인지 불행인지, 흰소리를 흘릴 필요는 없었다.
마치 사극 속 고명대신처럼 탄식을 터트리는 지희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사냥한 골렘들의 소재를 저장하고, 본디 정리되어 있던 소재를 꺼내 가게 안으로 들어온 형님.
곧 형님은 가게 지하에 있는 대장간으로 우리들을 초대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언제나 그랬지만 겉으로 보이는 가게보다 지하의 대장간 쪽이 훨씬 더 거대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저런 구멍가게 크기의 실내에서 몬스터 소재를 가공할 만한 설비를 갖출 수는 없는 법이니까.
덕분에 장인 거리의 공방 대다수는 이런 구성을 취하고 있었다.
듣기로는 약소 대장장이 또한 다른 가게에 세들어 살면서 대장간을 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조치라던데…….
그거야 어쨌든.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단단한 석재였던 물건이 점차 풀어지며 느슨하게 변하는 모습이 보였다.
단단하기 짝이 없던 석재가 흐물거리는 모습은 마치 어설픈 합성 사진처럼 기괴하기 짝이 없는 형상이었다.
그렇지만 설령 그렇다 한들 지금 눈 앞에서 일어난 일에 비하면 그 또한 가벼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렇게 펄럭이던 석재가 어느 순간 가죽과 같은 광택을 띄기 시작했던 탓이다.
만약 석재를 풀어 만든 실로 옷을 자았다면 차라리 이만큼 놀라진 않았을 테지.
허나 지금 눈 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광경은 달랐다.
석재를 가죽 사이즈로 쪼개고 특수한 용액에 담가 약물을 첨가하고 버무린다.
그 외에도 우리들로서는 알 수 없는 처리를 반복하자, 점차 석재가 가죽과 같은 성질을 띄게 된 것이다.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석면 등이 있겠지.
고대 일본에서는 불이 붙지 않는다는 이유로 불쥐의 가죽이라고, 서양에서는 불멸의 상징이라고.
하다못해 중동에서는 신마의 가죽이라 칭송받았던 물건이다.
물론 현대에 이르러서는 발암물질에 지나지 않지만.
게이트가 열린 이후에는 달랐다.
말 그대로 석면을 불쥐의 가죽으로 승화시키는 기술 등이 개발된 덕택이다.
이를 이용해 석재를 가죽처럼 가공하는 기술이 바로 눈 앞의 물건이었다.
이러니 대장장이와 헌터를 겸임하는 헌터가 없거나, 있어도 고랭크까진 올라올 수 없는 거겠지.
당연한 이야기다.
대장장이가 익혀야 할 기술만 해도 몇 개인데.
저런 기술까지 익히면서 헌터로서의 실력을 기르는 건 힘들다.
당장 나만 해도 그렇고.
따로 검술 따위를 배울 시간이 없어 결국 해체 기술 등을 응용하는 형편이지 않은가.
여타 헌터들보다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내 입장에서도 그 정도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물며 여태까지 헌터 내지는 헌터 노릇하는 혼혈로서 생애를 보낸 지희라면 놀랄 수밖에 없겠지 싶었다.
나만 봐도 놀라울 지경인데 오죽하겠나.
어딜 어떻게 봐도 마법으로밖에 안 보인다.
오히려 이 쪽의 즉석 연금술 따위보다 더 마법같지 않나?
저런 걸 보고도 기술이라 주장하는 쪽이 도리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자."
"엉?"
"들어 봐."
그러고 있으니, 갑자기 형님께서 내게 가죽 비스므리한 형태가 된 석재를 떠넘겼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갑옷도 무장도 하루 아침에 만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뜬금없이 나보고 남으라 할 때부터 무언가 이상하다 싶었더니만…….
말마따나 한 번 받아들긴 했다.
그런데 이걸 나보고 어쩌라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해체 정도.
소재의 효과나 성능을 보고 평가할 수는 있어도, 이런 원재료 하나만 보고 뭘 할 수 있는 수준도 아닌데.
"음."
도대체 뭘 어쩌라는 거지?
그런 생각으로 들고 있자니, 형님은 그대로 내 손에서 소재를 빼앗아 다시금 약품 속에 담궜다.
아니, 뭔데?
이제는 지희를 향해 시선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까지 보고 있자니 뭔가 왕따라도 된 듯한 기분이었다.
혹시 방금 전 저 소재에 뭔가 문제라도 있었던 건가?
하긴,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구태여 비 몬스터 소재를 쓰기도 했던가.
나로서는 좋을 뿐이라 잠자코 넘기긴 했지만, 어쩌면 둘이 무슨 상의를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왜 나한테 지희 장비 소재를 들어보라 했던 건진 잘 모르겠지만…….
"뭐 하냐? 안 가고."
"엉?"
"오늘 안에 장비 완성 안 되니까 슬슬 가라. 나중에 되면 연락 줄 테니."
이제는 그렇게 말하고 자빠졌다.
결국 우리들은 거의 축객령 가까운 태도로 쫓겨나고 말았다.
그야 시간만 보면 돌아가야 할 때였긴 했지만.
처음 우리가 여기에 왔을 때가 막 점심 부근.
거기에 추가적인 상담이나 조정까지 끝마치고 게이트를 청소한 지금은 어느덧 밤이 다 되어 있었다.
"미안하다, 지희야."
"네?"
"저 형님이 원래 조금 괴팍해. 나도 평소에 어울리면서 고생이 많거든."
"진심이세요?"
"응?"
"아, 아뇨. 뭐, 그래도 괜찮아요! 재미있는 이야기도 여럿 들었거든요."
재미있는 얘기?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저 형님이 그럴 만한 사람은 못 된다고 생각하는데.
지희의 눈물겨운 방패에 나 또한 눈물이 다 날 지경이었다.
선생님이 원래 그렇게 눈물이 많은 성격이 아닌데 나도 모르게 다 눈물이 나네…….
"그래도 어떻게 장비까진 받아냈구나."
"네. 생각보다 시원스러우시던데요?"
"원래 그런 성격은 아닌데. 아무래도 계집애가 상대라 목에 힘 좀 줬나보다."
"당사자가 들었으면 속 터질 소리만 하시네……."
가벼운 태도로 고개를 젓는 지희.
나름 재미있었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닌 모양이었다.
거 참, 신기하기도 하지.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대장간 내지 게이트.
어느 쪽이든 이 나잇대 계집애들이 좋아할 장소는 아니라 생각했는데 말이지.
"데이트라 생각하면 조금 그렇긴 하죠."
"데이트는 무슨. 아서라, 선생님 간 떨어진다."
"왜요? 얼추 비슷하긴 하잖아요."
"도대체 어디가?"
"남녀 둘이 만나서 옷도 사고 재미있는 일도 하면 데이트지 뭐."
하긴, 그렇게 치면 틀린 말도 아니긴 했다.
선생과 학생이 만나 장비도 맞추고 즐겁게 몬스터도 도륙했으니.
내 입장에서 보면 데이트라 하지 못할 일도 없겠지 싶다.
뭐, 말장난이지만.
"아니면……."
"응?"
"선생님은 싫어요? 저랑 데이트 하는 거."
아니, 왜 이야기가 그렇게 되니?
……그리 반문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슬쩍 걸음을 멈추는 지희의 발걸음을 따라 나 또한 무심코 몸을 돌린 직후.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지희의 얼굴을 직면했기 때문이다.
데이트 운운하는 소리는 단순한 화두.
지금 이 말을 건네기 위한 명분이었을 뿐이라고 순식간에 깨달을 수밖에 없는 모습이었다.
입을 열 듯 말듯, 초조하게 몇 번이나 반복해서 뻐끔거리기를 반복하는 입술.
의문 혹은 반문을 담아 깜빡이는 붉은 눈동자가 낯선 감정으로 젖어있는 게 당장 나로서도 눈에 밟힐 정도였다.
'이런.'
내가 아무리 눈치가 없어도 이 즈음 되면 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말마따나, 형님과 도대체 무슨 대화를 나누었던 건지.
형님이 그 등을 떠민 걸까?
그렇지 않으면 무슨 헛바람을 불어넣기라도 한 걸까.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고 말았다.
그토록 강력한 무언가가 있었다.
자신의 의문이라는 이름으로 속내를 토로하고자 하는 여자애들의 감정에는.
설령 이미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대답을 정한 나조차 섣불리 말을 가로챌 수 없을 정도로.
언제나 그랬다.
내심 나중에 따로 형님을 추궁해야 할까 하는 마음에 숨을 들이키기도 잠시.
누구 하나 무어라 입을 열기 힘든 침묵이 우리 둘 사이로 천천히 감돌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어쩌면 내게는 다행스럽게도.
그 침묵을 깨트린 건 나도 지희도 아니었다.
"어라? 지희야?"
그렇게 말하며 밤그림자 아래로 다가오는 사람 그림자.
그 쪽을 향해 다소의 짜증을 담아 고개를 돌렸던 지희의 얼굴이, 다음 순간 와락 하고 한층 더 구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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