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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201화 (201/371)

〈 201화 〉 의혹

* * *

비록 콩콩 뛰어다니는 게 고작인 돌무더기 따위라고 비난하긴 했지만, 우두머리 즈음 되면 그런 도약도 단순한 점프라는 한 마디 말로 끝낼 수 없는 법이다.

자욱한 먼지를 일으키며 상공으로 치솟은 우두머리.

마법적인 기능으로 확보한 시야를 통해, 지상을 조준하는 우두머리의 모습이 마치 손에 잡힐 듯 뻔했다.

질량은 곧 힘이 된다.

위치 에너지와 가속도까지 더해진다면 더더욱 그렇다.

하물며 전신이 마법적인 금속 따위로 보강된 골렘의 자유 낙하.

거기까지 가면 단순한 폭력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우찬은 움직이지 않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영격할 준비를 취하고 있었다.

……이미 주변에 널린 스톤 골렘이라고나 할까, 점핑 돌하르방 중 제대로 움직이는 녀석은 없다.

지나칠 정도로 적확한 공격에 의해 전원 파손당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남은 상대는 단 한 마리.

그조차 순식간에 결판이 나리라고 이 자리에 있는 전원은 알고 있었다.

이윽고 우두머리의 거체가 정점에 닿았다.

천천히 느려지는 상승.

마침내 그 움직임이 정지한 직후, 지상을 향해 우두머리의 육체가 추락하기 시작했다.

마법적인 결속에 의해 한층 더 단단하게 결집한 육체.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간 게이트 내부의 대지가 통째로 뒤집히고 말겠지.

당연히 뒤에 있는 류지희나 쾌운철에게도 그 피해가 향할 터.

때문에.

이 시점, 박우찬이 내밀 수 있는 수단은 단 하나.

정면에서 영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양자는 각기 다른 이유로 승리를 확신하고 있었다.

우두머리는 이런 상황까지 사냥꾼을 몰아넣은 작금의 모습에.

사냥꾼은 눈 앞의 전법에 대처할 방법을 알고 있다는 사실에.

당연한 이야기였다.

애초에, 스톤 골렘의 도약은 범용적인 수단이 아니다.

위력이야 나쁘지 않겠지만, 돌하르방 형태의 골렘이 아니라면 사용할 일은 거의 없는 공격이지.

허면.

스스로의 질량을 살린 초고도에서의 낙하 공격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몬스터는 어떤 종인가.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

가고일이다.

비행 상태에서 즉각 석재로 몸을 바꿔 자유 낙하하는 가고일.

프랑스 부근에서 수많은 피해를 발생시켰다는 공격 방식이다.

때문에 프랑스는 지금도 건물을 지을 때마다철저하게 낙하하는 가고일을 대책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을 주의깊게 살피고 있다던가.

이 전법의 가장 성가신 점은, 중력의 힘을 빌려 본인들의 강함 이상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하물며 당장 눈 앞의 우두머리까지 가면 말할 필요도 없겠지.

그렇지만.

대처하는 법 정도는 알고 있다.

첫째. 건물을 노리는 가고일에 대비해, 프랑스는 언제나 충격 분산 소재를 사용하고 있다.

둘째. 헌터를 노릴 경우에 한해, 건곤일척의 카운터를 노린다.

어느 쪽이든, C랭크 몬스터인 가고일을 맞상대할 헌터에게는 어려운 방법이다.

물론 대다수 헌터들과 달리 박우찬에게는 충분한 자신이 있었다.

검을 앞으로 내민다.

칼끝을 건드리듯 가볍게 튕기는 손동작.

……시그니처를 쓴다면 손쉽게 정리할 수 있겠지.

문득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러나 그만두기로 했다.

지금은 자신 또한 순수하게 실력을 키워야 할 때.

예의 규격 외 등급 몬스터라는 괴물을 사냥하기 위해선 그래야만 한다고 박우찬은 생각했다.

때문에.

다음 순간 발생한 격돌은 정말로 단순한 기예라 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특수 소재를 사용한 천장처럼, 격돌 순간 흔들린 칼끝이 거체의 낙하를 받아넘긴다.

손목. 팔꿈치. 어깨. 허리. 골반. 무릎. 발목.

온 몸의 스프링이 한계 이상으로 구동한다.

절묘한 컨트롤로 분산한 충격이 육체를 통과해 대지로 흐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낙하의 충격을 완전히 줄이는 건 불가능.

팔이 고통으로 신음하는 가운데, 박우찬은 양 손으로 쥔 대검의 손잡이를 살짝 퉁겼다.

그걸로 충분했다.

예리하게 갈고닦인 감각이, 정확히 중심을 무너뜨린다.

고작해야 그 정도였음에도 불구하고, 칼날이 크게 뒤로 튕겨져나갈 정도로 강렬한 위력.

허나, 덕분에 골렘의 낙하와 그 방향을 바꾸는 데엔 성공했다.

물론 바꾸었다 해도 정말로 찰나.

박우찬이 들어올린 칼끝으로부터 바닥까지는 고작해야 5m도 되지 않는다.

다만.

지금은 그 정도면 충분했다.

크게 뒤로 날아간 칼날을 억지로 붙드는 대신 역으로 힘을 뺀다.

동시에, 손목을 기점으로 반전.

빙글 하고 돌리기도 힘든 대검을, 적의 공격을 이용해 역수로 쥔다.

반대쪽 손으로는 대검의 보조 손잡이를 쥔 채.

충돌까지 고작해야 5m.

시간으로 따지자면 1초 내외.

마치 봉처럼 대검을 거꾸로 쥔 박우찬의 일격이 우두머리의 머리통을 박살냈다.

……그리고 그 모든 광경을 류지희와 쾌운철은 똑똑히 지켜보고 있었다.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는 광경이었다.

애시당초 헌터가 아닌 쾌운철은 단순히 압도적이라는 사실밖에 짐작할 수 없었지만.

류지희는 다르다.

방금 전과 마찬가지로, 어마어마한 실력 격차가 느껴지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다.

만에 하나, 자신에게 무장이나 장비가 있었다 치더라도 저런 상황에서 제대로 대처할 수 있었을까?

십중팔구 불가능한 일이리라.

참으로 첨예한 기술.

그 이상으로 갈고닦은 실력.

무엇보다도, 박우찬 본인의 집념이 있었기에 가능한 기예이리라.

그런 만큼, 류지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고?'

방금 전, 쾌운철은 그렇게 말했다.

사실 박우찬은 너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어마어마한 이유가 있어서 몬스터를 적대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단순히 몬스터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싫어서 저러는 것 뿐이라고.

거기에 대해, 류지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렴풋이 짐작하고 있었다, 틀림없이 과거에도 무슨 일이 있었으리라…….

그러나 대장장이는 그런 그녀의 예상을 일언지하에 부정했다.

박우찬에겐 정말로 별다른 일이 없었다.

내가 한 말도 무언가의 비유 따위가 아니라 단순한 사실이다.

녀석이 몬스터만 보면 발작을 일으키는 이유는 정말로 몬스터와 접촉하면 발작을 일으키는 체질 때문이라고.

저게?

그녀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저만한 실력을 쌓기 위한 시간.

그럴 만한 동기.

하물며, 방금 전부터 줄곧 내비치던 살기까지.

어느 쪽이든, 그냥 체질이 그런 거라는 말로 납득하기는 지나칠 정도로 힘들었다.

"새끼, 이런 건 편하다니까."

저 멀리 쾌운철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럴 만도 했다.

일반적으로, 몬스터를 죽이고 나면 그 소재는 전문 해체사들을 통해 다시 한 번 가공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당장 박우찬이 쓰러뜨린 몬스터들은 달랐다.

해체할 필요가 없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게이트를 가득 채우고 있던 돌하르방 무리.

그들 전원을 상대로, 박우찬은 태연한 얼굴로 있을 수 없는 기예를 보였다.

결과.

무차별적으로 쓰러뜨렸을 뿐이라 생각한 돌하르방들은 전원 깔끔하게 해체된 채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마치 게임과 같은 광경이었다.

박우찬은 종종 자신들이 게임 속 인물이 아니라는 식으로 말하곤 하지만, 지금 이 광경을 보면 그리 말하기도 힘들 테지.

온라인 게임 속 몬스터를 쓰러뜨리면 떨어지는 드롭품.

그런 게 도처에 주욱 널린 듯한 풍경이었다.

이런 기술을 단순한 체질 때문에 연마했을 뿐이라니.

류지희로서는 역시 이해하기 힘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지희는 그 말이 사실이었으면 하고 바라는 자신을 눈치챘다.

그야 그렇지 않은가.

자신은 몽마의 딸이다.

만에 하나, 박우찬이 몬스터에게 가족을 잃은 경험 따위를 한 적이 있었던 것이라면.

그렇다면 그의 눈에 자신은 어떻게 보일까.

몬스터에게 놀아난 남자가 남긴 씨.

몽마의 여왕이 낳은 반인반마.

역겨운 물건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을까.

하지만, 만약 박우찬이 정말로 단순한 체질 때문에 몬스터를 싫어할 뿐이라면?

자신의 의혹과 달리, 사실 박우찬은 자신을 더러운 오물 보듯 생각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꾸욱 하고 가슴 안쪽이 기분 좋게 옥죄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동시에, 묻고 싶었다.

여태까지 류지희는 그렇게 생각했다.

박우찬이 자신을 도와주는 건 아마도 박우찬 또한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몬스터에게 희롱당한 끝에 홀로 남겨진 지희.

그 모습에서 무언가 느끼는 바가 있었던 게 아닐까 하고 생각했던 탓이다.

허나.

그런 게 아니라면.

만일 박우찬이 몬스터를 미워하는 게 정말로 단순한 체질 때문에 지나지 않는다면.

박우찬은 어째서 자신을 도와주었던 걸까?

어째서 자신의 말 한 마디에 불필요한 출혈을 감수하며 혼인회와 충돌을 피한 걸까.

아니, 어째서 자신에게 몽마의 구슬을 가져다준 걸까.

박우찬에게 있어 그건 단순한 손해 뿐인 일이었는데.

제 손으로 그토록 싫어하는 몬스터를 늘리게 될지도 모르는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우찬은 그녀에게 몽마의 여왕이 남긴 유품을 전달했고, 그녀의 선택을 지지해주었다.

때문에, 류지희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쾌운철의 말이 단순한 허언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럴 이유가 있겠느냐 싶어 일단 긍정해두긴 했지만.

언뜻 보기엔 질 나쁜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이야기.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류지희는 점차 제 얼굴만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확실히, 쾌운철의 말은 이상하다.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 느낌도 있다.

그렇지만.

만약 그 모든 말이 사실이었을 경우.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내게 그렇게 말해준 걸까.

무슨 생각으로 혼인회와 아카데미 사이를 박쥐처럼 왔다갔다했던 혼혈 여학생의 말을 듣고 칼을 늦추기로 한 걸까.

박우찬이라는 사람이 자신에게 얼마나 많은 호의를 베푼 것인지.

류지희는 충분히 알고 있다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알고 있다 생각했던 것조차 사실은 부족했을 정도라니.

도대체 어떤 얼굴로 그를 마주보는 게 좋을까.

방금 전부터 고민하던 사실에 무엇 하나 제대로 대답을 내리지 못한 채.

류지희는 저 멀리서 손을 흔들며 다가오는 박우찬의 모습에서 시선을 돌리고 뺨 양 옆으로 잡아올린 머리칼 속에 제 얼굴을 파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은빛으로 반짝이는 머리칼 너머.

발갛게 달아오른 양 뺨이 지나칠 정도로 눈에 밟힐 정도였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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