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화 〉 류지희
* * *
서양의 카발라라는 마법 체계에는 골렘 제작이라는 비술이 존재한다.
일찍이 평소운 박사도 사용했던 마법.
단, 그 본질은 판타지에서 나오듯 바위나 강철로 이루어진 사역마를 만드는 게 아니다.
가라사대, 주께서는 자신을 본따 사람의 형상을 빚었으니.
다시 말해, 골렘이란사람의 손으로 사람을 제작해 신과 같은 영역에 오르기 위한 비술이라는 뜻이다.
단순한 몬스터나 경비 로봇 따위가 아닌 마법적 인조인간.
그게 바로 카발라에서 정의하는 골렘의 정체다.
물론 완전히 틀린 건 또 아니지만.
애초에 골렘이 몬스터의 일종이라 취급되는 건 다름이 아니다.
수많은 랍비들의 일화에서 제작자의 제어를 벗어나 폭주하는 골렘의 모습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폭주한 골렘들은 가고일에 필적하는 소재 덩어리로 각광받는다.
주께서는 진흙으로 사람의 형상을 잡고 숨을 불어넣었으니.
카발라에 있어 골렘이란 곧 사람 형태로 빚은 진흙이나 암석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수많은 판타지에서 골렘이 석재로 이루어진 괴물이라는 식으로 나오는 데엔 그런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리고 이런 점은 가고일 소재에 눈독들이고 있던 정부들로 하여금 새로운 발상을 가능하게 했다.
골렘은 몬스터이며 사역마.
그렇다면, 카발리스트들이 만든 골렘을 풀어 게이트 내부를 장악할 경우.
안정적인 소재 공급이 가능하지 않을까?
바야흐로 경제적인 발상.
몬스터와 사람 사이의 공존을 꿈꾸었던 서아네 전 길드의 꿈이 거기에 있었다.
물론 그렇게 쉬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일단 대다수 골렘들은 생식 능력도 부족했거니와, 기후나 자원 등에 맞추어 새로운 술식을 구성해야 했기 때문이다.
막말로, 진흙으로 이루어진 골렘과 화강암 골렘이 동일한 질량을 가질 리도 없고.
그런 만큼 후자는 다른 마법으로 추가 보강하는 등의 노고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대다수 국가들은 그런 시도 끝에 예산의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고 자멸했다.
하지만 일부 국가들은 그런 식의 골렘 제작에 성공했다.
대한민국 또한 마찬가지였다.
다시 말해, 지금 눈 앞에 있는 지옥도는 바로 그런 안일한 발상이 빚은 결과였다.
"슉, 슈슉. 슈슈슉."
쿵, 쿵.
지축 울리는 소리와 함께, 자욱하니 흙먼지가 일어난다.
목구멍으로 바람 빠지는 소리를 내며 연신 도약해 이 쪽을 향해 다가오는 그 광경을 도대체 무어라 설명해야 할까.
"와, 점핑 돌하르방이다."
두 번의 대침공으로 의무 교육이라는 개념이 폭삭 하고 한 단계 주저앉은 이 시대.
다행스럽게도, 우리들 사이엔 고등 교육을 받은 지희가 있었다.
그리고.
실로 그 말대로였다.
역시 고등 교육의 힘이라고나 할까.
당장 우리들 앞으로 콩콩 뛰며 다가오는 코리안 스톤 골렘의 모습에 눈물이 나올 듯했다.
제 2차 대침공이 종식되었지만, 여전히 일부 기업이나 단체 등은 게이트를 유지 및 관리하고 있다.
아카데미와 마찬가지로, 용맥의 영향이 특히나 짙은 곳에서 마력을 강제 소비하기 위함이다.
실리적인 이유 또한 있었다.
게이트의 성질이 그럭저럭 안정된 편이고, 출몰하는 몬스터 또한 충분히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게이트는 지옥의 입구가 아닌 기회의 장이 될 수 있었다.
물론 그렇게 안일한 생각 끝에 도산하거나 본사가 문자 그대로 무너지는 기업 또한 없잖아 있었지만.
이런 점은 장인 거리 또한 마찬가지였다.
대침공 당시, 헌터들의 장비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정부는 자신들이 집중 관리하고 있는 게이트 중 일부를 장인 길드 측에 제공하기도 했다.
당장 지금 이 게이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품질 좋은 석재를 보급하기 위해 제공된 게이트.
다만, 제 2차 대침공이 종식된 뒤.
헌터들의 발생도 장비의 필요성도 점차 저하하고 있던 지금.
이런 게이트들 또한 이전에 비하면 다소 느슨하게 관리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가 바로 눈 앞에 있었다.
돌하르방이 돌하르방을 깎아 만들어내는 바위의 숲.
이번 지희의 장비 제작을 위한 의뢰 비용으로서, 형님은 내게 이 지역의 소탕을 맡겼다.
다른 소재야 어쨌든, 애초부터 석재는 헌터들의 장비로 그렇게 각광받는 소재가 아니다.
건축 분야라면 또 모르겠지만, 대침공 직후의 피해도 어느 정도 진정된 지금.
석재 수요가 큰 폭으로 감소하면서 방치된 탓에 이런 꼴이 되었다고 하던가.
안 그래도 최근 소탕할 필요성이 있었는데, 마침 내가 찾아왔다고 한다.
하긴, 정부 측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게이트는 우선 순위가 낮을 수밖에 없겠지.
소재도 소재지만, 출몰하는 몬스터가 문제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자칫 잘못하면 브레스 한 방에 거리가 날아갈지도 모르는 이무기.
그에 비해, 콩콩거리는 게 고작인 돌하르방이 있다면 나라도 전자를 우선할 테니까.
나 참, 본래는 몬스터 한 마리도 못 잡아서 끙끙대던 게 바로 작년 일인데.
"살다 보니 이런 기회도 생기는구만."
뭐, 어느 쪽이든.
나는 조용히 칼끝을 걷어찼다.
적어도 가벼운 식후 운동은 될 테지.
즐거운 마음으로 가자.
*
점핑 돌하르방.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한민국 환경에 맞게 적응한 스톤 골렘의 랭크는 못해도 C랭크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
거기에는 스톤 골렘이 지닌 특징이 관련되어 있다.
즉, 압도적인 질량과 방어력이다.
암석은 무겁고, 그 이상으로 단단하다.
그런 돌덩어리가 움직이며 주먹을 날린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다수 헌터는 겁에 질릴 수밖에 없기 마련이다.
어지간한 방패나 방어 능력을 상회하는 위력.
거기에 별로 연마되지 않은 실력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방어력.
단순한 영향력이나 파괴 범위라면 이무기에게 뒤쳐진다 한들, 공략하기 위한 난이도는 여타 몬스터보다 높다.
그리고 헌터 협회의 랭크 제도는 전적으로 공략 난이도를 기준으로 매겨진다.
덕분에, 골렘 계통은 다른 몬스터들에 비해 별로 인기가 없는 쪽에 속했다.
실로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렇게 우선해서 사냥해야 할 몬스터도 아닌데수고만 더 들 뿐이니.
그럴 만도 했다.
용이나 거인도 방어력이라면 동 랭크 몬스터들에 비해 머리 하나 분량은 더 뛰어나다.
그러나.
석재로 이루어진 골렘의 방어 능력은 개중에서도 완전히 별격.
용의 마력이나 거인의 근력 등과 같이 동 랭크 몬스터들에 비해 한 단계는 더 높다는 게 통설이다.
다시 말해, 눈 앞의 점핑 돌하르방은 단순한 방어력이라면 그녀가 상대한 적 있던 흑룡들에 필적한다.
거기에 화강암이나 금속 따위로 이루어진 골렘이라면, 아예 그녀가 손도 못 쓰던 우두머리 레벨일지도 모른다.
"와우."
그리고 그런 석재를 상대로 박우찬은 시원스레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검을 휘두른다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끌을 이용해 틈새를 만들고, 그 사이를 비집는다.
못을 꽂아넣고, 그대로 균열을 퍼트린다.
무게추를 내려쳐, 석재를 무너뜨린다.
언제나 그렇듯, 저 만능 무기는 지금 박우찬의 손에서 가장 적합한 형태로 몬스터를 공략하는 데에 사용되고 있다.
그런 만큼, 작금의 박우찬은 사냥꾼이라기보단 마치 석공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최적의 수를 사용할 때의 이야기.
박우찬의 실력이 있다면 검으로 바위를 두동강내는 것 또한 어렵진 않으리라.
거의 3주에 걸쳐 그녀들이 공략해야 했던 던전의 우두머리.
그조차 마지막엔 아슬아슬했던 흑룡조차, 박우찬에겐 기습 한 번으로 처리할 수 있는 상대일 테지.
어느 정도 격차가 있으리라곤 짐작하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이야.
그 사실에 괜시리 주눅이 들기도 잠시.
"잘 봐 둬라. 네 무기도 저런 식으로 만들 거니까."
"네?"
"마력을 사용한 급가속 능력. 거기에 단순한 방어력으로는 받아내기 힘든 기믹."
횟수는 제한이 있겠지만, 적어도 적들의 방어력에 골골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쾌운철은 그렇게 판단했다.
확실히, 담임이 싸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다 보면 방어력이 높은 적을 어떻게 상대해야 할지도 얼추 감이 잡혔다.
대장장이가 그녀를 데리고 여기까지 온 데에는 그런 이유도 있었다.
적어도 자신의 무기가 어떤 식으로 움직일진 얼추 감을 잡아야 할 것 아닌가.
물론 고작해야 그 뿐인 건 아니었지만.
류지희가 원했듯, 몬스터 소재를 사용하지 않는 장비를 만드는 건 불가능하진 않다.
다만, 제 2차 대침공이 종식된 지금.
그런 소재 또한 비축이 많지는 않다.
그러니, 류지희 편에 그런 소재를 사용한다면 따로 창고를 채워두어야 할 필요도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대다수 헌터들은 몬스터 소재를 기피하는 일은 없으니.
눈 앞의 골렘들을 통해 어느 정도 소재를 보충할 수 있으리라.
거기까지 계산한 대장장이는 슬쩍 박우찬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어째 저 놈은 날이 가면 갈수록 실력이 느는 기분이군."
이미 헌터 사회의 정점에 선 주제에, 실력을 올려서 어쩌겠다는 건지.
탄식처럼 중얼거리는 그 말에, 류지희는 짧게 쓴웃음을 지었다.
어느 정도 짐작이 가는 게 있었던 탓이다.
그런 류지희를 바라보며, 대장장이는 슬쩍 어깨를 움츠렸다.
그리고 마치 지나치듯 그렇게 입을 여는 것이었다.
"이봐."
"네?"
"만약에 저 녀석이 몬스터를 싫어하는 데에 별 이유가 없다면 어떻게 할래."
다소 뜬금없는 주제였다.
그렇지만, 쾌운철은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박우찬은 부정했지만, 눈 앞의 꼬마 또한 박우찬을 바라보는 시선에 심상치 않은 기색이 있었던 건 매한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학생들과 달리 그녀만이 한 걸음 뒤로 물러서 있던 이유.
남자는 그 이유가 방금 전 가게 안에서 그녀가 꺼냈던 날개에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당혹. 의문.
그리고 방금 전의 그 말에 자극된 묘한 감정이 넘실거리는 모습이, 몽마 혼혈조차 아닌 쾌운철의 눈에도 보이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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