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화 〉 류지희
* * *
다소 전형적인 질문이었다.
다른 사람들이야 어쨌든, 류지희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마치 웹소설 속 깐깐한 대장장이가 무기의 가치를 눈치챈 주인공에게 그리 묻는 듯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 무기에 눈독을 들이는 이유가 무언가?
여기서 적당히 그럴듯한 대답을 던지면 마음에 들었다는 이유로 기연을 챙길 수 있는 걸까?
자신도 모르게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 노골적이었던 탓일까.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쾌운철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진 알겠지만, 그런 건 아니니 마음 편하게 대답하면 된다."
"앗, 네."
부끄러운 상상을 하고 있던 게 얼굴로 드러났던 모양이다.
자신도 모르게 귀끝을 붉힌 지희는 곧 헛기침과 함께 당시 상황을 되짚었다.
즉, 얼마 전 있었던 던전 공략 당시 이야기였다.
류지희가 용을 상대할 때, 가장 문제가 되었던 건 역시 비늘의 방어력 쪽이었다
어지간한 방패 이상으로 단단한 용의 비늘을 돌파할 수단이 그녀에게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던 탓이다.
혼혈로서 지니는 힘.
추가로 배운 격투기.
만약 부족하다면 날개에 의한 가속까지.
모든 방법을 동원해 스스로의 근력 이상의 위력을 때려넣는 것.
그게 바로 류지희의 전법이었다.
그렇지만.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통해 발휘한 일격으로도 용의 비늘은 돌파할 수 없었다.
조무래기들의 비늘은 구부러뜨리는 게 고작이요, 우두머리의 비늘에 이르면 상처 하나 남길 수 없었으니까.
실로 단순하게, 자신의 최대 공격력을 능가하는 통상 방어력.
그런 방어 능력을 지닌 몬스터를 상대로 류지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스스로에게 자문할 수밖에 없는 싸움이었다.
때문에.
수많은 고민을 거듭한 결과, 류지희는 자신의 최대 화력을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결정이었다.
"그래, 바로 그거야."
"네?"
"왜 굳이 새로운 무기를 만드는 길을 선택한 거지?"
쾌운철이 묻고 싶은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더 높은 공격력이 필요해서.
그건 알겠다.
그렇지만.
쾌운철이 알고 있는 박우찬은 고작해야 그런 이유로 제자에게 대장간을 소개할 녀석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녀석이라면 차라리 팔굽혀펴기를 추천했겠지."
"윽."
정곡이었다.
여하간, 그녀도 기초 체력 단련이라는 이름 하에 얼추 반 년 가까이 계속된 학기 초의 수업을 기억하고 있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구태여 무기 쪽을 돌파구로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당연히 그 외의 방법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담임인 박우찬처럼 상대의 특성에 맞추어 여러 시약을 병용하는 전술 또한 마찬가지였다.
몬스터의 특성을 분석하고 파악하는 데에 필요한 지식이야 어쨌든, 상대가 악마나 마신에 속하는 부류라면?
그녀는 여전히 별다른 수단을 사용할 수 없다.
악마를 잡자고 제 손에 성수를 뿌릴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몬스터와 비슷한 성질을 지니게 되는 혼혈 특유의 비애다.
허면, 저번과 같은 상황을 타개하는 데에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은 얼추 둘.
첫 번째는 품질 좋은 무기를 사용해 공격력을 높이는 방식이고, 두 번째는 단순히 근력을 기르는 방법이다.
개중에서도 류지희가 첫 번째 수단을 선택한 이유라 함은…….
……슬쩍, 대장장이의 안색을 살핀다.
적어도 이 쪽을 시험하는 듯한 기색은 아니었다.
뭐, 그렇겠지.
담임인 박우찬은 다른 사람의 사정을 아무렇게나 퍼트리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니까.
알고는 있었지만, 조금은 안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다음 순간, 류지희는 자그마한 불안과 함께 허리춤의 날개를 떨쳤다.
"에그머니나."
"앗, 죄송."
그리고 다시 접었다.
실수로 치수를 측정하시던 사모님의 얼굴을 때리고 말았기 때문이다.
"조심해라."
"넹."
당연한 이야기지만, 쾌운철도 바보가 아니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박우찬이 나오는 신문 기사 정도는 언제나 찾아보고 있다.
박우찬 앞에선 인정하기 싫어서 적당히 둘러댔을 뿐.
때문에, 쾌운철은 방금 전 지희가 선보인 퍼포먼스 또한 얼추 이해할 수 있었다.
"확실히, 아카데미에 위장 입학했다는 혼혈 학생이 있었지."
"위장은 아니거든요?!"
즉, 그런 이유다.
지희는 몽마의 딸이다.
게다가 그 모친은 여왕급 몽마이기까지 하니.
혼혈임에도 불구하고, 그 능력은 어지간한 몽마 이상이라 할 수 있겠지.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특정 취향에 대한 폄하가 아닌 지극히 객관적인 사실로서, 근육질인 여자는 다소 마이너한 취향이었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람을 유혹하는 몽마 내지 그 혼혈인 지희는 근육이 붙기 다소 힘든 체질이었다.
남자를 유혹하는 데에는 하등 쓸모가 없는 기관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사실상 B랭크나 다름없는 힘을 손에 넣은 지금도 팔다리가 매끈한 건 다행인 일이었지만…….
설마 이런 데에서 발목이 잡힐 줄이야.
허리가 늘씬하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었다.
애초에 서큐버스 자체가 육체적으로 뛰어난 종족도 아니니.
보편적으로 알려진 바에 따르면, 몽마의 육체적 능력은 동 랭크 몬스터들에 비해 한 단계 아래.
거기에 일반적인 서큐버스는 C랭크 몬스터에 해당한다.
여왕급 몽마의 딸인 류지희라면 B랭크를 기준으로 잡아도 되겠지.
만약 여왕의 마력을 온전히 소화할 수 있다면 A랭크를 기준으로 잡아도 될 테고.
다시 말해, 자신이 가진 힘을 모조리 소화하는 데에 성공할 경우.
그녀는 B랭크 헌터 평균 수준의 신체 능력을 손에 넣을 수 있는 셈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반적인 헌터가 여왕의 마력에 필적하는 영약을 소화하는 데에 성공할 경우.
족히 A랭크 상위권에 상응하는 힘을 손에 넣을 수 있겠지.
물론 그녀의 매료 능력은 못해도 A랭크 최상위권에 필적하는 수준까지 치솟겠지만…….
공교롭게도, 그녀의 전법은 매료가 아닌 격투.
그리고 맨손 격투를 주체로 삼는 그녀에게 있어, 몽마의 피는 더 이상 이점이 아닌 방해일 뿐이었다.
아니, 다른 분야까지 고려하면 충분히 장점도 있겠지만.
신체 능력에 한해서는 부정할 말도 없다.
특히나, 여왕급 몽마의 힘이 미치지 않는 A랭크 이상의 신체 능력에 이르면 더더욱.
모르긴 몰라도, 거기서부터는 최소 타인의 두 배 이상 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테지.
게다가 그조차 혼혈인 덕택에 평범한 몽마보다는 나은 편이라니.
류지희로서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물론 벌써부터 A랭크 운운하는 시점에서 그 성장세는 상당히 가파른 편이겠지만.
기연이 있었다고는 해도, 또래에 비하면 군계일학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다.
차분하게 몇 년 시간을 들일 여유만 있다면 못해도 지금 신서아 나이 즈음엔 그에 어울리는 실력을 손에 넣을 수 있을 테고.
그렇지만, 그녀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결국 모든 문제는 거기에 있었으니까.
최소 반 년, 길게 잡으면 1년.
신세계 질서가 잠잠할 동안 할 수 있는 일은 모조리 준비해야 하는 지금.
그녀에게는 차분하게 근력이나 키우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문제는 쾌운철 쪽이 이런 이유를 납득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인데…….
"알겠다."
정작 당사자인 쾌운철은 그렇게 답하며 몸을 일으킬 따름이었다.
참으로 시원스러운 대답이었다.
"대충 견적은 나오는군. 위력은 그럭저럭이지만 날개를 이용한 삼차원 기동을 무기로 삼는 쪽인가."
"어, 네?"
"거기에 몽마의 매료 능력을 활용해 빈틈을 찌르거나 물리 내성을 앞세워 난타전으로 몰고 가는 타입. 틀린 점 있나?"
동시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장 쾌운철이 그녀의 정체를 알게 된 건 고작해야 방금 전.
그럼에도 불구하고, 쾌운철은 그녀의 전법을 정확하게 짚고 있었다.
장인 특유의 안목이라는 걸까.
아니, 잠깐.
"그럼?"
"갑옷은 가죽, 무기는 건틀릿 비슷한 형태면 되겠지?"
예상보다 시원스럽게, 대장장이는 그녀의 의뢰를 수용했다.
장인 거리의 괴팍한 장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었던 그녀로서는 도리어 그 태도 쪽에 놀랄 뿐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쾌운철은 다시 한 번 헛웃음을 터트렸을 정도로.
물론 쾌운철은 스스로가 괴팍한 성격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박우찬 그 녀석보단 덜하지 않나 싶지만.
허나, 쾌운철이 무기를 만들어주는 데에 깐깐한 건 그런 편벽함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의 눈 앞에 나타난 벽.
실력의 격차.
혹은, 스스로의 한계를 타도할 수단으로 장비 쪽에 시선을 돌리는 헌터들이 마음에 들지 않을 뿐.
만약 군이 상대라면 그런 태도 또한 이해할 수 있겠지.
오히려 장비의 질을 개선해 해결해야 할 문제로 병사들을 들볶는 쪽이 더 곤란할 따름이니.
그러나, 상대가 헌터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눈 앞에 나타난 벽을 돈의 힘으로 어떻게든 무마하려 드는 건 머잖아 스스로의 목을 죄기 마련이다.
장비와 실력 사이에 격차가 벌어지기라도 하는 날엔 머잖아 파탄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니까.
무기의 힘을 스스로의 실력이라 착각한 부잣집 도련님들.
혹은, 저축을 털어 마련한 장비로 수익을 올리고자 서두르는 사냥꾼.
어느 쪽이든 마찬가지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눈 앞의 계집애는 썩 나쁘지 않았다.
여하간, 충분히 고민한 끝에 더 이상 방법이 없어 장비를 마련하고자 결정했다는 게 아닌가.
홀로 고심한 끝에 최후의 수단으로 장비의 제작을 요구하는 헌터.
의뢰를 거절할 이유가 어디에 있겠나.
하물며.
"아, 혹시 갑옷 쪽 재질만 어떻게 손을 볼 수 있을까요?"
"흠? 왜지? 네 스타일이라면 가죽 장비가 제일 어울릴 텐데."
"아, 아하하. 그게, 선생님이 몬스터 소재를 싫어하시거든요."
물론 박우찬이 직접 그렇게 말한 적은 없다.
여하간, 헌터의 장비는 돈을 먹는 하마니까.
그런 헌터들의 장비 중에서도 대다수를 차지하는 게 바로 몬스터 소재고.
헌데, 그런 몬스터 소재를 거부하고 광물 소재만 사용하려면?
당연히 단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사용할 수 있는 소재의 물량도 한정되어 있거니와, 그렇게 한정된 재료로 다른 장비와 비슷한 성능을 내야 하니까.
때문에, 박우찬은 다른 학생들에게 몬스터 소재를 쓰지 말라는 식으로 이야기를 하진 않았다.
단지, 너무나도 알기 쉽게 몬스터 소재를 기피했을 뿐.
덕분에 그녀들 사이에서는 암암리에 몬스터 소재는 피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말았다.
뭐, 박우찬의 첫 번째 제자인 신서아도 비슷한 이유로 금속 소재만 사용하고 있는 판국이니.
"그래. 가급적 비슷한 소재를 준비하지."
"감사합니다!"
단지.
꽤나 깐깐한 주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쾌운철은 어쩐지 그런 태도가 싫지 않았다.
방금 전 날개를 드러낼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신문 등으로 접한 바에 따르면, 혼혈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탓에 이래저래 시끄러웠던 모양이건만.
정작 난생 처음 보는 대장장이에게 망설임 없이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다니.
박우찬이라는 이름 석 자에 품는 신뢰가 그만큼 크다는 뜻이겠지.
그렇게 생각하니, 저토록 귀찮은 요구도 도리어 귀엽게 보일 정도였다.
여하간, 제 동생을 위해 몬스터 소재를 지양하겠다는 뜻 아니겠는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쾌운철 또한 박우찬을 상대로는 다소 느슨한 면이 있다.
정 깊은 성격인 탓도 있겠지만.
녀석에게 말해둔 바도 있으니, 녀석 또한 돌아간 이후엔 태도를 명확하게 하겠지.
그렇다면.
녀석이 고른 계집애가 눈 앞의 이 애처럼 서로를 배려할 수 있는 성격이기를.
쾌운철은 문득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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