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화 〉 류지희
* * *
그렇게 형님이 자리를 털고 일어난 이후, 나는 지희와 뒤바꾸듯 가게 바깥에서 시간을 떼우고 있었다.
여하간, 장인의 수제품을 만드는 데엔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법.
오히려 지금은 비교적 괜찮은 편이라 말하는 게 정확하겠지.
본디 장인 거리의 시작은 말 그대로 주먹구구식이었으니까.
대다수 몬스터 소재는 가공할 방법도 존재하지 않고, 가공할 수 있다는 확신도 없던 시절.
사용자의 요구에 맞춘 장비를 제작하기 위해선 시시콜콜할 정도로 요구 조건을 캐묻는 게 당연했다던가.
그리고 이런 기풍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다.
한 번 만들어진 문화라는 건 어지간한 이유가 없으면 바뀌지 않는 법이니까.
말하자면, 사전 준비에 걸린 시간이 곧 품질로 이어진다는 기풍이다.
덕분에 비수 하나 만드는 데에도 족히 몇 시간은 문답을 벌이는 일도 비일비재.
나중에 따로 책잡힐 상황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상담 시간을 늘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던가.
그런 만큼, 내가 없는 자리에서 둘이 어떤 대화를 나누고 있을지도 대충 예상이 갔다.
아마도 지금쯤 지희와 형님은 장비의 성능 따위에 대해 상담을 나누고 있으리라.
아니면 지희한테 자신이 제작한 장비를 넘겨도 될지 시험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뭐, 어느 쪽이든.
내가 형님을 닦달해 지희 전용 장비를 뜯어낼 수도 없는 이상, 당장엔 조용히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나로서는 방금 전까지 우리들이 나누던 대화에 대해 충분히 곱씹을 수 있었다.
'심하긴 했지.'
방금 전, 어이가 없다는 듯 내 태도를 성토하던 형님의 모습을 떠올린다.
새삼스레 생각해 보면 확실히 너무하긴 했지 싶었다.
말마따나 성별만 반대였으면 어장관리 운운하는 이야기를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으니까.
당황한 탓에 거리를 두었을 뿐이라 말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무례한 대처였다.
실제로도 그렇지 않은가.
당황하기는 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통에 이리저리 난리를 피웠던 점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반대로, 내게 마음을 털어놓은 학생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나는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고 해야 할까.
어느 날부터 하연이가 나를 부쩍 가깝게 여기는 이유가 무엇일지.
던전 공략 당시 사용했던 불길한 마력은 어디에서 온 건지.
서아는 어째서 다른 학생들에게 그런 마음을 품었던 건지.
애시당초 악마와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던 건지.
과연 예은이는 이준구에게 평소운 박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지.
만약 들었다면 거기에 대해 무슨 생각을 했을지.
윤하는 또 언제부터 내게 그런 마음을 품었던 건지.
무슨 계기로 그 마음을 털어놓고자 결심한 건지.
어느 쪽도 진지하게 파고든 적은 없었다.
개인적인 사정이니까. 배려할 필요가 있으니까.
그렇게 말하기엔 다소 무심한 편이었다는 평가를 피할 수 없겠지.
형님의 설명을 들으니 새삼 눈이 뜨이는 기분이었다.
허면, 형님의 말마따나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조금 생각해 보기로 했다.
허세를 부리고 싶다. 그래서 섣불리 대답하기 힘들다.
그런 개인적인 사정은 둘째치고, 나는 학생들의 고백에 무어라 답하고 싶은 걸까?
대답은 의외로 손쉽게 나왔다.
'전부 거절하자.'
실로 당연한 귀결이었다.
아니, 그야 그렇겠지?
학생과 교사 사이라던가, 작금의 관계가 어떻다던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나는 헌터다.
거기에, 스스로 말하기는 조금 그렇지만 다소 이상한 자식이기도 했다.
몬스터를 보기만 해도 발작이 일어나는 특이 체질.
몬스터를 죽이면 어쩐지 기분이 좋아지는 몬스터포비아.
언젠가 말했듯이, 먼 훗날 인간과 몬스터 사이의 교류가 뿌리내린 시대에 태어났다면 범죄자로 이름을 날렸을 자질.
그게 바로 나다.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지금도 마찬가지겠지.
우연히 사람 아닌 몬스터를 대상으로 살의를 품어, 우연히 몬스터를 죽여도 되는 시대에 태어났을 뿐인 살인마.
박우찬이라는 개인의 본질은 결국 딱 그 정도다.
그런 내가 이제 와서 누군가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사랑을 속삭인다고?
되겠냐?
나는 알 수 있다.
제 3차 대침공.
언젠가, 혹은 머잖아 신세계 질서의 주도 하에 발생할 대사건.
만에 하나 그 전에 내가 다른 애들의 마음을 받아들였다고 치자.
아니, 우리 애들이 아니어도 좋으니 누군가 다른 사람과 가정을 차렸다는 전제 하에.
만약 그런 상황에서 제 3차 대침공이 일어난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하려 들까.
글쎄, 다른 건 몰라도 확실한 점이 하나 있다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십중팔구 무기 하나 꼬나쥐고 그 날로 집을 떠나리라.
사랑. 연인. 의무. 가족. 책임.
여타 모든 일보다 내겐 몬스터를 죽이는 게 더 중요하니까.
말마따나, 고작해야 알레르기 때문에가족을 내팽개치겠다 호언하는 놈이라니.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애시당초 내가 다른 누군가와 함께 온건한 가정을 꾸리는 삶 따위 도저히 상상이 되질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내 죽음은 꽤나 비참한 물건이 되리라.
평소처럼 사냥에 나섰다가 무릎이 말을 듣지 않아서.
혹은 어깨가 더 이상 움직이질 않아서.
어느 쪽이든, 마지막까지몬스터를 도륙하다 힘이 다해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높겠지.
적어도 스스로가 편안한 얼굴로 침대 위에서 눈을 감는 모습 따위는 이 쪽도 사절이다.
그러니, 거절하자.
우리 애들은 다 착하고 귀여운 애들이니까.
이렇게 되먹지도 못한 녀석보다는 더 나은 길이 있겠지.
나는 그리 결론을 내렸다.
*
"미리 말해두겠지만, 딱히 아가씨의 장비를 만들어주겠다고 확정한 건 아니야."
"네에."
아니, 아직 결정된 일도 아니면 왜 이러고 있는 거야?
류지희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둘 사이의 대화를 끝낸 듯 밖에 나와 있던 그녀를 따로 부른 대장장이.
그 부름에 맞추어 방 안으로 들어가니 방금 전 뵈었던 사모님이 그녀의 치수를 재고자 준비하고 계셨다.
아, 슬슬 장비도 만들 생각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지희였지만, 정작 눈 앞의 대장장이는 대놓고 저렇게 말한 탓이다.
"어머, 죄송해요. 저희 그이가 조금 괴팍한 성격이라."
"다 들린다."
조용히 속삭이는 사모님을 향해, 퉁명스러운 어조로 그리 말하는 장인.
영 부루퉁한 태도였지만, 사실 그녀가 보기엔 틀린 말도 아니지 싶었다.
쾌운철.
눈 앞의 대장장이는 틀림없이 그런 이름이었다.
담임인 박우찬도 그렇게 불렀으니.
정확히는 쾌운철 형님이랬던가.
'형님이라.'
잘은 모르겠지만, 둘이 꽤나 친밀한 사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여하간 형님 동생 하는 사이였으니.
그렇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류지희는 둘이 어울릴 만한 인상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아니, 사람마다 개인사가 있는 법이라고 하면 그야 그렇겠지만…….
저 둘의 모습을 보면 누구나 이렇게 말하지 않을까.
다소 경박한 인상의 담임.
그에 비해, 눈 앞의 대장장이는 상당히 과묵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사연이고 뭐고 이전에, 단순히 성격부터 맞물리지 않는 기분인데.
'도대체 어쩌다 알게 된 사이일까?'
류지희는 자신도 모르게 그리 생각하고 말았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 물을 만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이야기는 들었다. 꽤나 복잡한 상황에 얽혔다더군."
"그렇, 죠?"
틀린 말도 아니었다.
꽤나 복잡한 상황.
고작해야 그런 한 마디로 축약할 수 있을까 묻는다면 역시 회의적이긴 했지만.
"그렇지만, 말했다시피 그런 이유가 있다고 해서 너희들에게 무조건적으로 장비를 제공할 생각은 없다."
"으음, 어째서요?"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눈 앞의 대장장이가 양심이나 윤리 따위를 내버린 사람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런 사람이었다면 담임이랑 친하게 지내지도 못했을 테고.
……담임 쪽이 어디까지 사정을 털어놓았을진 그녀도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제 3차 대침공을 목전에 둔 지금.
앞으로도 수많은 위험과 마주칠 신입 헌터 정도라면 충분히 동정심을 이끌어낼 수 있는 타이틀이 아닐까 싶은데.
장인 정신?
글쎄, 그런 이유로 눈 앞에서죽어나가는 사람들을 외면할 수 있는 사람이 실제로 있기나 할까?
때문에, 다음 순간 쾌운철의 설명을 들은 류지희는 역으로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나랑 아가씨는 처음 만나는 사이니까."
"네?"
"사정이야 어쨌든, 나로서는 아가씨에게 장비를만들어주는 대신 군의 납품 의뢰를 받는 쪽이 더 낫지 않나 싶은 게 사실이니까."
과연.
그런 이유라면 그녀 또한 납득할 수 있었다.
막말로, 그녀와 쾌운철이 만난 건 고작해야 반나절도 되지 않은 시점.
눈 앞의 대장장이는 그녀에 대해 무엇 하나 알지 못했다.
류지희가 그렇듯이.
말이야 좋지, 만약 류지희가 장비를 들고 도망치기라도 하면?
아니, 애초에 제 3차 대침공을 대비하기 위해서일 뿐이라면 말마따나 군의 의뢰라도 받는 편이 더 낫지 않겠는가?
즉, 박우찬의 추천을 받은 그녀에게는 눈 앞의 대장장이에게 자신의 의뢰를 납득시킬 의무가 있었다.
뭐, 이 정도면 합당한 이야기 아닐까.
적어도 쓸데없는 꼬장이나 단순한 고집으로 시간을 날리는 건 아니었으니까.
여하간, 아무리 그래도 담임 선생님이 제자를 데려왔다는 사실에 삐진 40대 중년남을 설득해야 하는 쪽보다야 나았으니까.
만약 그런 상황이었다면 몽마의 딸인 그녀라 해도 당황을 금할 길이 없었겠지.
"그럼, 저는 앞으로 아저씨한테 어떻게든 인정받으면 되는 건가요?"
"아, 아저씨?"
"아저씨 맞지, 뭘. 왜 그래요, 이제 와서."
"으, 으흠. 그래, 그렇지."
사모님의 핀잔에 다소 떨떠름한 어조로 답하는 쾌운철의 모습에, 류지희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 애매한 태도로 쓴웃음을 지었다.
깨가 쏟아진다 해야 할지, 그렇지 않으면 무어라 해야 할지.
"그래서?"
"네?"
"거기까지 알아들었다면 지지부진하게 말을 돌릴 필요도 없겠지. 그래서, 아가씨는 어쩌다가 무기를 원하게 된 거지?"
뭐, 그거야 어쨌든.
면접은 이제 막 시작된 참이니.
사내의 질문에 대해, 류지희는 천천히 입맛을 다시며 대답을 골랐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