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화 〉 대장간
* * *
갑자기 발작하기 시작한 형님 덕택에 본격적인 설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건 꽤나 시간이 지난 뒤의 이야기였다.
나 참, 사람이 이렇게 성급해서야 원.
"죽여버린다!!"
그런 내 말에 다시 한 번 눈이 뒤집힌 형님께선 웅혼하게 포효하며 망치를 움켜쥐셨다.
뭐, 어쨌든.
최대한 이 쪽 상황에 맞춘 설명 덕택일까?
형님 또한 어느 정도 사정을 이해하는 데엔 성공했다.
물론 잘 살고 있던 형님까지 신세계 질서의 위협에 휘말리도록 할 수는 없는 법.
때문에, 이 쪽의 설명은 다소 적당적당한 물건이 되고 말았다.
그렇다 쳐도, 크게 사실에서 달라진 부분도 없었다.
예를 들면, 아카데미의 역할.
제 3차 대침공을 대비하기 위해 만들어진 준 군사조직.
거기에 발을 담근 우리들은 언젠가 다시 한 번 제 3차 대침공이 발생하리라는 사실 또한 짐작하고 있었다.
저번에 발생한 초대형 게이트 또한 바로 그 일환이었고.
실질적으로 제 3차 대침공의 가능성이 눈 앞에 나타난 지금, 나로서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이런 느낌이다.
"그런데 왜 저 애 한 명 뿐이냐?"
"일단 요구한 게 저 애 뿐이었으니까."
"흐음."
"애초에 모조리 데려왔다 한들 마찬가지였을 거 아니오."
"뭐, 그건 그렇지."
형님 또한 부정하진 않았다.
막말로, 내가 남은 학생들 전원을 데려왔다 해도 무기를 받아갈 수 있는 건 채 1할도 되지 않았을 테지.
제 3차 대침공 따위 아무래도 좋다던가, 장인 기질이라던가 하는 문제가 아니다.
스스로 무기의 필요성을 깨닫고방문한 학생이 아니고서야, 갑자기 주어진 힘에 휘둘릴 뿐.
그렇다면 차라리 군부 쪽의 주문이라도 받는 편이 낫다.
방금 전, 제 3차 대침공을 명분으로 든 이상 어쩔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물며 저건 어디까지나 최소 조건일 뿐.
당장 지희조차 장비를 받을 수 있을까 물으면 확실하진 않은 판국이니.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놀란 건 다른 점 때문이었지만."
"다른 점?"
"네가 계집애를 데리고 올 줄은 몰랐다."
물론 계집애라 해도 지희는 단순한 학생이었지만.
갑작스러운 발언에 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형님은 조금 의아한 얼굴을 했다.
"고백까지 받았다며? 이야, 박우찬 이 자식. 출세했네?"
"으, 으응."
"……응? 뭐냐, 너. 반응이 왜 그래?"
아니, 그야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나도 모르게 등줄기로 식은땀이 달리는 기분이 들었다.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걸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내게 고백한 제자는 저 애가 아니다.
오히려 저 애만 고백하지 않아서 데리고 왔다.
솔직히 저 애도 조금 위험하지 않나 싶기도 한데…….
내게는 그런 식으로 설명할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용기를 내야 할 때였다.
그렇게 도망친 끝에 쌓이고 쌓인 결과가 바로 지금이 아니었던가!!
"형님, 사실은……."
*
"너 진짜 미친 새끼냐?"
그리고.
박우찬의 설명을 들은 쾌운철은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뭐, 씨발?
사실 고백한 건 이 애가 아니라고?
오히려 저 애가 아닌 다른 학생들 전원이 고백했다고?
그런데 정작 대답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일단 도망쳤다고?
"너는 진짜 개 호로 자식이다."
"아니, 말이 너무 심하네."
"심한 건 지금 네 태도가 심각한 거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대답 한 마디 없이 방치했다니.
'차라리 거절을 하던가.'
만약 지금 눈 앞에 있는 새끼가 근육 떡대가 아닌 미녀였다면 어떻게 됐을까.
모르긴 몰라도, 아카데미 어장녀라는 이름 하에 조리돌림 당하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으리라.
"아니, 그래도 내가 현직 교사인데."
"그럼 거절을 하라니까?"
애초에,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말마따나 박우찬이 학생들의 마음을 거절하는 건 충분히 있을만한 일이다.
교사로서 지닌 의무감.
당장 눈 앞까지 닥친 제 3차 대침공.
하다못해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는 핑계까지.
막말로, 본인이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할 텐가.
허나.
당장 박우찬이 무어라 말해도 얄팍한 핑계에 지나지 않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정녕 그렇다면 거절해야 할 일 아닌가.
설마 학생들의 마음을 배려할 필요도 있다던가 하는 개소리는 아니겠지.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학생들의 마음을 능멸하고 있는 건 지금 박우찬이 하고 있는 행동 쪽이잖은가.
문제는 박우찬이 어째서 그런 결정을 내린 건지 쾌운철 또한 짐작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박우찬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니다.
박우찬이라는 사람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린 결론이었다.
요컨대.
"폼 좀 잡으려고 그런 거냐?"
"그런 이유도 없지는 않지."
다소 어물거리는 태도로 박우찬은 그렇게 내심을 토했다.
때문에, 쾌운철은 자신도 모르게 이마를 짚고 말았다.
허세.
다른 사람 앞에서 잘 보이고 싶다는 허영심.
거기까진 나쁘지 않겠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마음일 테니까.
그러나.
눈 앞의 동생은 그런 거짓말을 쌓아올린 끝에 이런 꼬락서니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저런 말이나 하고 있으니.
쾌운철이라 해도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미루기만 해도 사태는 악화될 뿐이라고 몇 번이나 말하지 않았던가?"
"나도 알지, 아는데! 형님, 마지막으로 이 아우를 돕는다 생각하고……."
"도대체 이걸로 몇 번째 마지막 부탁이냐?"
절로 앓는 소리가 튀어나왔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었다.
아니, 고백을 받았네 운운하는 건 역시 처음이었지만.
그리고 그럴 때마다 쾌운철은 말했다.
몇 번이고.
네 그런 태도는 단순히 남을 폄훼하는 일일 뿐이다.
몬스터 외에는 비교적 아무래도 좋으니까 취할 수 있는 태도다.
여하간, 가족조차 그랬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아무래도 좋으니 오해가 쌓여도 상관 없고, 그러니 만에 하나 들키기라도 하는 날엔 온갖 파국이 일어날 텐데도 개의치 않는다…….
다소 강하게 말하긴 했지만, 그 본질은 틀리지 않았으리라.
……그래.
말 그대로 대다수 제자들이 그에게 마음을 토로한 이 시점.
박우찬이 쾌운철을 찾은 건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쾌운철.
다소 무뚝뚝한 장인 기질의 대장장이.
박우찬의 지인이자 형님이라는 호칭으로 불리고 있는 이 사내는, 박우찬의 진상을 알고 있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었다.
박우찬이라는 작자가 헌터가 되기로 결정한 이유.
사실 지금도 시골 농가에서 농사짓고 계시는 부모님.
나아가서는 단순한 체질에 지나지 않는 몬스터 대상 발작 증세까지.
계기는 실로 간단했다.
박우찬의 무장을 제작하던 와중 이상한 점을 하나 깨달았던 덕택이다.
금속으로 구성된 몬스터의 소재와 마력을 섞어 만들어낸 합금.
성분적으로는 완전히 동일한 물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박우찬은 전자의 물건에 거부감을 표출했기 때문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전자 쪽에만 반응했다고 해야 할까.
덕분에 쾌운철은 박우찬의 살의가 모종의 경험에 의한 트라우마 등이 아니라 지극히 물리적인 증상이었음을 눈치챌 수 있었다.
문제는 그렇기에 더더욱 답이 없었다는 점이겠지만.
아니, 단순한 거부 반응 때문이라는데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정신적인 트라우마라면 차도를 볼 수 있었겠지.
박우찬 본인이야 힘들었겠지만 보살핌에 따라 완전히 극복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
그렇지만 단순한 체질이라면 달리 손을 쓸 방도도 없었다.
거기에 당사자인 박우찬이 눈치도 더럽게 없다는 점이 더더욱 문제가 되었다.
여하간, 본인의 살의만큼은 진심이었으니까.
그런 살의를 직면한 가운데 이제 와서 사실 자신의 부모님은 전부 살아 계시고 자신의 반응은 단순한 체질 때문이라 설명하라고?
다들 따스한 시선으로 박우찬을 바라보며 등을 토닥일 뿐이겠지.
게다가 이 놈이라면 그런 위로를 진심이라 받아들일 가능성도 농후하다.
저런 식으로 오해가 쌓이길 몇 년.
도저히 해명할 수 없을 수준까지 퇴적된 오해를 정작 당사자만 모르고 있는 경우도 부지기수니.
쾌운철로서는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 저런 지경까지 가게 되면 더 이상 해명이 통하는 수준도 아니고.
말 그대로 몬스터에게 가족을 잃고 연인을 잃은 도축업자 탄생이다.
바야흐로 삼인성호라는 식으로 설명하는 건 너무나도 가혹한 일이겠지만.
그야 저 정도로 오해가 쌓이면 자연스레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
때문에, 쾌운철은 매번 박우찬을 붙들고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네가 정말로 다른 사람들을 생각한다면 그런 오해가 생길 때마다 풀어야 한다고.
박우찬 또한 동의했다.
그렇지만 박우찬은 더럽게 눈치가 없었다.
덕분에 박우찬이 자신에 대한 오해를 눈치챘을 땐 이미 늦은 경우가 대다수였다.
하물며 그렇지 않은 일부조차 쑥스럽다는 이유 등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나면 뒤늦을 수밖에.
덕분에 더 이상 풀 수도 없을 만큼 난해하게 꼬인 상황을 정리하는 건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
현역 시절, 녀석 옆에 붙어 다니던 독심술사 계집애가 그런 오해 끝에 떠나갔다는 사실을 녀석은 알고나 있을까?
아니, 십중팔구 모르고 있겠지.
여하간, 녀석은 방금 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나마 저 지희라는 애는 유일하게 자신을 좋아하진 않는 듯해서 도피성으로 데리고 온 거라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쾌운철은 도저히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왜냐하면 정작 그 지희라는 애가 박우찬을 바라보는 시선 끝에선 꿀이 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돌겠군.'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다니길래 저만한 아가씨들이 너한테 반했다는 거냐?
그렇게 묻지는 않았다.
혹시 단순한 착각이 아닐까 하는 생각 정도는 들었지만.
물론 쾌운철도 눈은 있다.
다소 선이 굵은 외모의 박우찬.
농담으로도 미청년이라 말하긴 힘든 외견의 동생과 현역 여고생들.
둘을 나란히 세우고 비교하면 십중팔구 후자가 아깝다고 평하겠지.
그렇지만, 쾌운철은 알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이 답답하기 짝이 없는 동생은 썩 괜찮은 녀석이라는 사실을.
비록 눈치가 더럽게 없고 다소 성의 없는 성격이긴 했지만, 그래도 나쁜 녀석은 아니다.
적어도 단점보단 장점이 많겠지.
그러니까 아직까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거고.
본인은 몬스터만 죽이고 다녔을 뿐이라 말하고는 있지만, 보나 마나 다른 학생들 입장에서 보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었으리라.
단순한 착각으로 고백 운운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친근한 인상도 아니니까.
필시 녀석에게 마음을 털어놓았다는 아가씨들 또한 녀석의 여러 단점을 알고도 장점에 눈이 갔을 것이다.
아니면 장점이 단점을 덮을 수 있다고 생각했거나.
어느 쪽이든 콩깍지가 씌여도 단단히 씌였다 말하고 싶은 마음은 변함 없었지만.
단지, 녀석도 이젠 스물 일곱.
아니, 스물 여덟이다.
여타 착각과는 별개로, 가볍게 여학생들과 만날 수 있을 나이는 아니지 않나.
설령 저 아가씨들의 마음이 변치 않는다 해도 마찬가지.
제 3차 대침공 운운하는 와중에 누군가와 사귈 수 있을 만큼 여유 있는 직업은 아닐 테지.
헌터나 아카데미 교사, 어느 쪽이든.
녀석이 우선 거절을 생각하고 있는 이유 또한 바로 거기에 있을 테고.
다만.
쾌운철은 정 반대라고 생각했다.
저런 사정은 아무래도 좋겠지.
본인들이 좋다면 사제 관계라거나, 미래가 불투명한 직업이라는 게 무슨 문제가 되겠나.
그렇지만.
'적어도 인생의 동반자라면…….'
평생 착각 속에서 허우적대며 살게 할 수도 없을 테지.
그러니, 만약 녀석이 누군가와 사귀게 된다면 저런 착각 또한 손수 해명해야 할 텐데.
공교롭게도 그건 쾌운철이 보기엔 도저히 가망 없는 이야기였다.
애시당초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는 녀석이 아니니까!!
오히려 저 느물거리는 녀석이라면 반대로 생각할 가능성이 더 높겠지.
예를 들면, 이런 식으로 적당히 지내다 보면 고백했다는 사실도 자연스레 잊혀지진 않을까 하는 식으로.
당연한 이야기지만, 전혀 가망 없는 소리였다.
말도 안 되는 망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사내가 보기에 그건 단순한 자살 행위에 지나지 않았다.
애초에, 학생들이 별다른 말 하나 없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정말로 괜찮아서? 대답을 기대한 건 아니라서?
설마.
말이야 그렇게 할 수 있겠지만, 정말 그런 사람이 세상 천지 어디에 있겠는가.
대다수는 박우찬에 대한 배려라는 이름으로 재촉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있을 뿐이리라.
어쩌면 박우찬은 아직도 마음 속에 있는 그녀를 잊지 못한 게 아닐까 지레짐작하고 있는 걸지도 모르고.
쾌운철이 알기에 박우찬은 머리털이 난 이후 단 한 번도 여자친구가 없었는데 말이다!
'어질어질하네.'
여기까지 오면 도리어 녀석의 안일함에도 불구하고 해명해야 하는 건 아닐까 하는 죄책감을 품게 하는 쪽이 녀석을 낚아채는 확실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거기까지 생각한 사내가 질끈 하고 눈을 감았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부분까지 하나하나 신경을 쓰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네 아내 정도는 알아서 찾으라 하고 싶은 기분이었다.
"일단 저 아가씨의 이야기도 들어보마."
"오, 벌써부터 개인 면담? 지희도 팔자 폈네, 진짜."
너 때문이잖아, 이 개자식아.
자신도 모르게 그리 말하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며, 쾌운철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 이상 같은 자리에 있으면 때 아닌 치정 싸움에 휘말릴 듯한 기분이 들었던 탓이다.
바야흐로 수많은 경험 끝에 획득한 박우찬 전용 직감이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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