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화 〉 대장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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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내가 다른 학생들도 아닌 지희와 함께 행동하고 있는 건 다름이 아니었다.
예의 던전 공략이 끝난 직후, 지희가 나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결국 제가 한 일이라고는 배달부 역할이 전부였잖아요?"
우두머리 공략 당시, 스스로의 능력을 살려 나쁘지 않은 활약을 펼친 지희.
나로서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로서는 본인의 활약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니, 저렇게 말하면 나도 할 말은 없지만.
날개가 있다는 점을 살려 용의 숨결을 막아낸 지희의 활약은 틀림없이 훌륭했다.
그렇지만.
지희 개인의 전투 능력으로는 흑룡을 상대로 손도 발도 못 내밀었던 게 사실.
달리 부정할 여지도 없었다.
뭐, 애초에 지희의 전법이 용을 상대로는 효과를 보기 힘든 점도 없잖아 있겠지만.
단순한 격투 능력을 앞세워 돌격하기엔 비늘의 방어력을 돌파할 수단이 마뜩찮다.
매료의 능력으로 빈틈을 만들기엔 용들의 어마어마한 마력이 발목을 잡고.
만약 거인처럼 인간 형태를 취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유술로 반입할 수라도 있겠지만…….
'힘들겠지.'
달리 말하자면, 지희가 용을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
순수한 실력 향상 뿐이다.
아니면 용에게 관절기를 걸 수 있을 정도로 격투기에 매진하던가.
어느 쪽이든, 당분간 지희는 자신보다 상위의 용종을 상대로 별다른 성과를 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딱히 이상한 일은 아니다.
오히려 당연한 일이라고 해야 하겠지.
물론 온갖 조건이 갖추어지면 E랭크 헌터가 A랭크 몬스터를 사살하는 경우가 있고, 그 반대 또한 비일비재한 게 이 업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신보다 강한 몬스터를 사냥하는 게 손쉬운 일은 아니다.
상대가 방심하고 있다던가, 능력과 상성이 잘 맞물렸다던가.
하다못해 몇 달에 걸쳐 준비한 사냥이었다던가.
그런 조건이 갖춰진 끝에 거물을 사냥할 수 있는 거지, 별다른 준비 하나 없이 무작정 격상의 적에게 들이받는다?
단순한 자살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압도적인 능력 차이에 무참히 깔려 죽을 뿐이겠지.
그런 만큼, 지희에게도 상성이 나쁜 상대가 있다는 건 오히려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지희의 생각 또한 이해할 수는 있었다.
여하간, 이런 시대니까.
자신이 손도 발도 못 쓸 상대가 있다면 그야사냥꾼으로서는 경계할 수밖에 없겠지.
무엇보다, 스스로의 약점을 무작정 외면하는 대신 극복하려 나선 점은 더더욱 마음에 들었다.
때문에, 나는 지희를 데리고 장인 거리로 걸음을 옮겼다.
이런 문제는 대개 무기의 성능을끌어올리는 쪽이 가장 빠르고도 확실한 해결책이었으니까.
나처럼 대다수 몬스터들에게 대처할 수 있는 시약을 비축해둔 게 아니라면.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나마 부담 없는 상대였던 탓도 있겠지만.
……그래.
예의 강원도 합숙 당시, 내게 마음을 고백한 윤하.
그렇지만 아직 서아의 마음에도 답하지 못한 내가 윤하의 고백에 대답할 수 있을 리도 없고.
결과적으로, 나는 윤하에게 대답 하나 주지 못한 채 지금까지 시간을 끌고 있었다.
속된 말로는 튀었다고도 한다.
아니, 그래도 말이지?
'학생과 교사 관계고…….'
변명할 생각은 없지만, 나로서는 아무래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것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왜 이렇게 된 건지도 잘 모르겠고.
아니,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애초에 나 같은 놈을 좋아할 이유가 있나?
일년 내내 몬스터 생각만 하고 있는 자식인데.
나로서는 당황스러울 따름이다.
만약 내가 우리 꼬마들 입장이었으면 무조건 거리만 둘 것 같은데…….
뭐, 어쨌든.
그런 이유로, 우리들은 장인 거리의 중심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장인 거리 최심부.
개중에서도 유독 동떨어진 골목 한구석에 홀연히 서 있는 가게.
간판 하나 없는 이 구석진 건물이 바로 우리들의 목표였다.
"나가, 이 새끼야."
그리고.
내 얼굴을 확인한 형님은 다짜고짜 그렇게 말했다.
"아니, 왜?!"
"왜는 무슨, 미쳤냐 너? 난데없이 3년 만에 찾아와서 갑자기 무슨 헛소리야."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제 2차 대침공이 공식적으로 종료된 게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새해가 밝았으니 이제는 4년 전 이야기다.
달리 말하자면, 나로서는 이 양반을 굳이 방문할 필요가 없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요 최근이야 신세계 질서 녀석들 때문에 이상할 정도로 바쁘긴 했지만.
이제 와서 새 장비를 발주할 계획도 없고, 수리가 필요한 상황도 아니었으니 연락을 할 이유도 없지 않겠는가.
"아오, 이 새끼."
그런 내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눈 앞의 대장장이는 제 가슴을 쿵쿵 하고 두들겼다.
쾌운철.
나이는 얼추 40 가까운 인상이었지만, 겉보기와 달리 이 장인 거리에서도 최고참인 양반이다.
듣기로는 제 1차 대침공 당시 옆집 땜장이 할아버지를 데리고 도망친 끝에 가게를 물려받은 거라고 했던가.
지금에 와서는 수많은 장인들 사이의 갈등을 조정하는 원로 역할까지 맡았건만, 참으로 경망스러운 태도였다.
나 참, 까탈스럽긴.
정작 먼저 연락하는 건 죽어도 싫어하는 주제에.
"선생님, 선생님."
"응? 왜?"
"저 분께서 화를 내시는 건 선생님께서 연락 한 마디 없었던 점이에요. 정말로 온갖 정이 떨어진 게 아니라."
"아니, 다 사정이 있었던 건데."
꾹꾹,내 뒤에 숨어 소매를 잡아당기는 지희의 말에 나는 무심코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명색에 몽마의 딸인 지희가 사람의 감정을 잘못 보진 않았겠지.
그렇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 양반이?
나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그렇지 않은가.
씨발, 계집애도 아니고.
마! 꼬추 떼라!
"……이봐, 꼬마 아가씨. 미안한데, 빈말은 아니야. 이 놈 요구에 맞추느라 무리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거든."
"빈말이 아니라는 건 방금 전 제가 한 말도 틀리진 않았다는 뜻이죠?"
"야, 얘는 또 누구냐?! 뭔데, 이 꼬맹이?!"
물론 손님 된 입장에서 면전에 대고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었지만, 그 정도만 해도 충분했다.
일개 대장장이가 몽마의 화술에 어찌 저항하겠나.
결국 백기를 든 채 바락바락 외치는 모습이 영 안쓰러웠다.
듣기로는 사모님한테도 저렇게 잡혀 산다던데.
땜장이 할아버지 쪽 손녀딸한테 차근차근 공략당한 끝에 골 인이라니.
참으로 비참한 인생이 아닐 수 없었다.
뭐, 어쨌든.
"내 제자."
"뭐?"
"제자라니까. 나 취직했음."
"그건 알고 있다. 신문 봤으니까."
신분 봤으면 어차피 내 소식도 알 만큼 아는 거 아닌가?
도대체 그런 걸로 화를 낸 이유가 뭐야, 이 양반은.
나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삼키는 사이, 사모님은 우리들 사이에 슬쩍 멜론 담긴 접시를 두고 사라지셨다.
짤막하게 목례를 올리는 가운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가게 한 가운데에 놓인 의자로 몸을 싣는 형님.
"나 참, 어이가 없어서. 진짜로 교사 노릇이나 하고 있을 줄이야."
숫제 어이가 없다는 듯 중얼거리는 게 정말로 상상조차 못 했다는 듯한 태도였다.
아니, 나도 제자 정도는 뒀었는데.
물론 형님이 말하고 있는 건 그런 뜻이 아니었다.
"하물며, 제자를 데리고 나를 찾아오다니."
……뭐, 그렇지.
형님이 알고 있는 난 제자의 성장을 축하한답시고 실력에 맞지도 않는 장비를 주문하려 드는 팔불출이 아니다.
오히려 정 반대.
장비의 성능만 앞세워 무작정 몬스터를 밀어붙이는 일 따위, 내게 있어서도 가장 내키지 않는 사냥법 중 하나니까.
그런 내가 고작해야 제자 한 명만 데리고 형님의 공방을 찾다니?
확실히 생각하긴 힘든 이야기겠지.
그렇지만, 이번엔 내게도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까놓고 말해, 상황이 특수했기 때문이다.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거든."
나나 형님이 그런 수단을 싫어하는 이유는 단 하나.
헌터의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질 않기 때문이다.
하물며, 그런 힘은 언제나 기간 제한이 있는 법.
장비의 성능이 먹히지 않는 상대나 역으로 상성이 나쁜 상대 등을 만난 헌터를 기다리고 있는 건 오로지 단 하나.
죽음 뿐이다.
때문에.
처음부터 죽음의 그림자가 농후한 전장에 선 지금.
쓸 수 있는 수단은 모조리 사용해야 한다.
"헌터라면 누구나 죽음과 이웃한 법이지, 같은 말을 할 때는 아닌 모양이군."
그런 내 말에 형님은 조용히 턱 밑을 쓸었다.
오늘도 사모님에게 붙잡혀 달달 들볶인 탓일까.
수염 하나 없는 턱끝이 영 애처롭게 보였다.
"뭐, 네가 한 말이니 허언은 아니겠다만……."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조용히 뇌까리는 형님.
그야 그렇겠지.
아무리 그래도 내가 학생들을 무작정 위험한 일에 떠미는 타입은 아니니까.
던전 안에서 한 달 이상 생존할 수 있다면 성공, 아니면 실패.
그런 식의 트레이닝을 선호하진 않는다고 자부할 수 있다.
헌데도 목숨 운운하는 이야기라니?
고작해야 스무 살도 안 된 계집애를 상대로 꺼내기엔 지나칠 정도로 무거운 주제였다.
물론, 이런 반응은 나 또한 예상할 수 있었던 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님을 찾아온 건 다름이 아니었다.
"뭐, 알겠다."
쾌운철.
눈 앞의 대장장이는 그런 사정까지 하나하나 시시콜콜하게 캐묻고 다닐 성격이 아니었다.
뭐라도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적당히 넘어갈 거라 예상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 또한 다소 편한 태도로 다음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앞으로도 몇 명 더 데리고 올지도 모르고."
"뭐? 몇 명?"
"글쎄? 셋? 아니면 넷? 그 정도."
다른 애들이야 어쨌든, 서아는 따로 이용하던 가게도 있을 테니.
아니, 만약 길드가 공중분해되면서 사라진 연줄이라면대신 이 쪽을 추천할 수는 있겠지만.
단지.
"……일단 이야기부터 들어볼까."
아무리 그래도 네다섯 가까운 제자들 전원이 목숨 위험할 만한 상황에 처해 있다던가.
그런 이야기는 형님으로서도 예상 밖이었던 거겠지.
성격이 털털하다는 말로 무마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턱, 하고 이마를 짚으며 탄식하듯 그렇게 중얼거리는 형님.
뭐, 그렇지요.
나로서도 어깨를 으쓱일 수밖에 없었다.
"지희야, 잠깐 자리 좀 비켜줄래?"
"네? 아, 네."
지희는 잘 모르겠다는 듯 알쏭달쏭한 얼굴로 밖을 향했다.
필시 사모님 쪽을 거들러 갔을 테지.
물론 지희로서는 어리둥절할 따름이리라.
신세계 질서와 관련된 이야기는 어차피 그녀 또한 알고 있었으니까.
이제 와서 자리를 비우라니…….
그렇게 생각할 법도 했건만, 착실하게 자리를 피해주는 건 나로서도 고마울 따름이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말마따나 지희를 내보낼 이유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내게는 그래야만 할 까닭이 있었다.
때문에, 지희가 자리를 비운 즉시 나는 탁자를 짚으며 눈 앞의 대장장이를 향해 상반신을 기울였다.
"형님, 이 박 모가 간곡한 부탁이 있소."
"뭐, 뭐냐. 부담스럽게."
"오로지 형님에게만 부탁할 수 있는 일이오."
"아니, 존나 부담스러운데."
당장 나를 앞둔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눈 앞의 대장장이는 대놓고 그렇게 말했다.
허나,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여하간 최승준 놈은 이런 문제에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던 탓이다.
감내할 수밖에.
"학생들한테 고백받았는데 어떻게 하지?!""나가, 이 새끼야."
그렇지만,내 장절한 질문에도 불구하고 쾌운철은 방금 전까지 탁자 옆에 내려놓았던 망치를 움켜쥘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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