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3화 〉 전후 처리
* * *
허면, 그 뒤의 이야기.
어떻게든 몸을 추스른 일행들은 그 뒤 추락한 흑룡의 사체를 확인했다.
백두산의 분화를 재현한다 일컬어지는 백두산 흑룡의 브레스.
그만한 화력이 내부에서 폭발한 이상, 설령 우두머리라 해도 목숨을 건사할 여지가 없었다.
실로 간난신고 끝에 얻어낸 승리라 할 법했다.
허나, 무작정 승리의 미주에 취해 있을 수는 없었다.
우두머리를 처리했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난 건 아니니까.
물론 그녀들의 목적은 달성했다.
그렇지만 우두머리를 잃은 흑룡들이 잠자코 그녀들을 보내주려 할 리도 없다.
때문에, 그녀들은 당장 승리의 환호성을 내지르는 대신 기척을 죽이고 은신처까지 털레털레 귀환할 수밖에 없었다.
무사히 귀환할 때까지가 던전 공략의 첫걸음이요 마무리.
우두머리와 공멸한 끝에 여력 한 방울 남지 않은 상태로 던전 최심부에 방치된 헌터에게 남는 건 피할 수 없는 죽음 뿐이다.
충분히 숙지한 사실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울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하물며, 귀환길도 마냥 편하지는 않았다.
공중전에 합류하지 않았던 티아마트와 신서아는 어쨌든, 다른 학생들의 부상이 심상찮았던 탓이다.
우두머리를 견제하기 위해제 몸을 추스를 기회조차 포기한 이예은과 자하연.
류지희에게 분말 주머니를 넘기고 추락한 황윤하.
거기에 본인 또한 폭발에 휩쓸리는 걸 감수하고 주머니를 던진 류지희까지.
그야 브레스를 쏘게 둘 수는 없었겠지만, 학생들 전원이 중상을 입었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아니, 만약 티아마트의 가호가 없었다면 십중팔구 중상자가 나왔겠지.
어쩌면 그 이상이거나.
때문에, 그녀들 또한 지금은 잠자코 회복에 진력할 따름이었다.
그렇게.
전원의 몸 상태가 그럭저럭 호전되어, 마침내 전원이 갱도를 더듬고 나온 날.
일행들은 동굴 입구에서 그녀들을 기다리고 있던 강원도 지부의 헌터들을 보고 그제서야 의식을 놓을 수 있었다.
눈을 뜬 이후로도 마찬가지였다.
던전 내부에 남은 몬스터의 소재라던가, 우두머리의 사체라던가.
세세한 문제는 모조리 미루고 일단 욕실에 신세를 지기로 했기 때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그녀들에게 중요한 건 통장에 찍힐 금액이 아니라 안전하게 몸을 씻을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애초에 심각한 사안까진 아니었다.
이 쪽에서 제공했던 정보가 미흡했던 점에 사죄드리고 싶다.
그 대신, 일행들이 방치할 수밖에 없었던 소재도 강원도 지부 측에서 회수해 드리겠다.
원한다면 전문 해체사를 붙여드릴 수도 있다…….
요컨대 실수를 빌미로 한 소재 관련 협상이다.
애시당초 제공한 정보가 잘못되었다 운운하기엔 다소 멋쩍은 부분도 있었고.
까놓고 말해, 이번 의뢰의 본질은 어디까지나 던전 공략.
지부 측에서 지하국 대적이 출몰하는 던전을 콕 집어 지정한 게 아니었으니까.
오히려 의뢰를 수락한 당사자인 박우찬 쪽에서 일부러 정확한 정보가 없는 던전을 선택한 거겠지.
의도적으로 강원도 지부 측에서 정보를 은폐했다면 모를까, 이제 와서 굳이 책잡힐 일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원도 지부 측에서 이렇게 찾아올 만한 이유라고 하면 크게 두 가지.
하나는 이번에 사냥한 우두머리 때문이다.
협회의 기준에 따르면, 이번에 그녀들이 사냥한 몬스터는 A+랭크.
어렴풋이 예상하곤 있었지만, 대다수 일행들에 비하면 까마득히 격상인 상대였다.
당연히 그 소재의 가치도 이루 말할 수 없겠지.
지부 측으로서는 조금이라도 잡음을 줄이고 싶을 법했다.
하물며, 일행들 중에는 유명인들이 다소 섞여있었으니까.
차세대 헌터 필두. 영웅의 여동생.
거기에 최근 떠들썩했던 혼혈 출신 학생까지.
나중에 군소리가 나오는 일 없도록 미리 쐐기를 박고자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담임이 부탁한 일이던가.'
황윤하는 그렇게 생각했다.
즉, 두 번째 이유.
박우찬이 강원도 지부 측에게 부탁한 건 아닐까 하는 의문이다.
던전 공략부터 전후 협상까지, 사냥꾼이라면 응당 경험해야 할 일.
담임이라면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을까.
뭐, 어느 쪽이든.
협상 자체는 느슨한 선에서 끝을 맺었다.
소재는 강원도 측에게 회수를 부탁하되, 수수료는 없음.
대신 강원도 지부 측을 통해 매각한다.
단, 해체비는 별도.
이런 조건에 따라, 스스로 흑룡 해체에 도전할 생각이었던 황윤하를 제외한 일행들은 전원 소재를 매각하기로 했다.
다른 흑룡들의 소재야 어쨌든, 우두머리의 소재는 작금의 그녀들에게 있어선 다소 버거울 수밖에 없었던 탓이다.
오히려 장비에 휘둘릴 가능성도 있으니.
지금은 일단 매각하고 그 자금을 사용해 따로 장비를 발주하는 편이 낫다는 판단이다.
정작 이런 소재를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신서아는 제 사부와 같은 이유로 거부.
남은 한 명 또한 별로 다르지 않았다.
"알고 있느냐? 메소포타미아 신화에서, 여신의 옷은 곧 신들의 권능을 나타내는 권위의 상징이란다."
"……팔겠다는 뜻 맞죠?"
뭐, 그녀들로서는 아무래도 이해하기 힘든 이유였지만.
그렇게, 대략적인 뒷처리를 끝내고.
던전에 처음 발을 들였을 당시로부터 어느덧 3주 가까운 시간이 지난 어느 날.
일행들은 다시 한 번 담임인 박우찬과 얼굴을 마주보게 되었다.
"다들 모였니?"
온화한 어조.
한데 모인 그녀들을 바라보는 박우찬의 얼굴엔 만면의 미소가 가득했다.
그런 모습을 앞두고 있으니 그녀들 또한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좆됐다."
단 두 명, 신서아와 황윤하를 제외하고.
신서아는 알고 있었다.
여하간, 그녀는 박우찬의 첫 번째 제자였으니까.
한 마디로 말하자면, 박우찬의 저런 표정은 일종의 위험 신호였다.
당장 눈 앞에 욕지거리를 퍼붓고 싶은데 참고 있다는 얼굴.
물론 황윤하로서는 거기까진 알 수 없었다.
다만, 아무리 그래도 좋은 평가를 기대할 수 없으리라는 사실 정도는 나름 짐작하고 있었다.
아니, 리더 역할을 맡은 이후로 노력한 건 사실이지만.
동시에 몇 번이나 한탄했던가.
여기서 몇 가지 도구만 더 있었다면.
여기에 몇 가지만 더 준비했었더라면.
사실대로 말하자면, 일행들이 마주한 고난 중 일부는 결국 그녀들이 스스로 자초한 셈이었으니까.
"결론만 말하자면, 이번에 내가 따로 지적할 만한 부분은 없더구나."
그리고.
툭 하고 박우찬이 내뱉은 말에 돌연 공기가 얼어붙었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여하간, 그녀들 또한 알고 있었으니까.
후반이야 어쨌든, 던전 초입 당시 그녀들이 보였던 추태는 도저히 저렇게 말할 수 있을 법한 문제가 아니었으니까.
덕분에 그녀들 또한 사태가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 건지 대강이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지? 예은아, 너 혹시 원숭이를 보면서 왜 옷을 입질 않았을까 짜증이 난 적 있니?"
"서, 선생님?."
"그런 거란다. 너희들은 너희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틀림업이 최선을 다했잖니."
"……아뇨."
"흠? 스스로에 대한 과대평가가 대단한걸. 스스로가 이 이상의 결과를 낼 수 있다고 자부하는 거니?"
"죄, 송합니다……."
"아니, 죄송할 건 없고. 걷기 힘든 사람을 보고 왜 하늘을 날고자 노력하지 않느냐 묻는 사람은 없잖니."
"그게……."
"불가능한 건 어쩔 수 없지.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는 건 너희들한텐 너무 버거운 일이었던 모양이야. 미안하구나."
조곤조곤한 어조와 달리, 당장 눈 앞에 모인 일행들은 숫제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이었다.
그런 모습을 눈 앞에 두고, 박우찬은 그제서야 슬쩍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먹히지도 않을 잔소리는 여기까지만 하자. 다들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진 알겠지?"
"네, 네."
"앞으로 평생 다른 헌터들이랑 합 못 맞추는 반쪽짜리 꼬리표 달기 싫으면 사전에 준비들 잘 하고."
"죄송해요……."
"됐고, 내가 살다살다 던전 들어갈 거라는데 준비 한 번 안 하는 녀석들은 이번에 처음 봤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박우찬 또한 이제는 알고 있었다.
던전 공략을 하루 앞둔 그 날, 그녀들이 정말로 반나절 내내 노닥거리기만 했다는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지만, 박우찬은 자신이 학생들을 다소 지나치게 옥죄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만약 신세계 질서 등을 통해 조우하는 몬스터들까지 고려하면 학대 운운하는 소리가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테지.
당장 대침공이 일어난다 치더라도 이렇게 고랭크 몬스터만 줄줄이 상대하는 일 따위는 드물 테니까.
그런데도 이 사달이 났으니.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각자 단점 위주로 리포트 적은 거 있으니 따로 챙겨서 들어가.지금 이 꼴로는 내가 백날 뭐라 해도 너희 귀에 안 박힌다."
물론 성과는 있었다.
던전 내에서 직면한 온갖 고생들.
흑룡들을 상대로 한 전투 경험.
거기에 던전에서 살아남는 방법 등, 어느 쪽이든 쉽게 얻을 수 있는 지식은 아니겠지.
다만, 아무리 그래도 처음에 보였던 추태를 고려하면 도저히 높은 점수를 줄 수가 없었다.
애시당초 저래서야 던전 공략이 아니라 우당탕탕 던전 생존기 아닌가.
몬스터의 습성을 분석하고 대처하는 전법을 으뜸으로 치는 박우찬에게 있어선 별로 만족스럽지 않은 결과였다.
막말로, 이번 훈련이 던전 공략에 도움이 될까?
박우찬으로서는 다소 회의적일 수밖에 없었다.
그야 던전 내부에서 살아남는 데엔 도움이 되겠지.
만약 몬스터들에게 포위당한 상황이라면 더더욱.
얻어갈 수 있었던 게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던전 공략을 위한 경험을 쌓았노라 말하기엔 아무래도 힘들지 않을까.
박우찬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아, 그리고 윤하는 따로 나 좀 보자."
……뭐, 팀플레이까지 고려하면 아슬아슬하게 급제점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든,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건 어려운 일이구나.
박우찬으로서도 황윤하로서도 새삼스레 그런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