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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91화 (191/371)

〈 191화 〉 용들의 우두머리

* * *

'꼬리였어.'

방금 전 날아든 공격에 대해, 황윤하는 그리 판단했다.

물론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애시당초 지금 그녀가 의식을 붙잡고 있는 건 단순한 우연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무작정 방패를 앞으로 내민 채 달려들던 그녀의 행동이 빚은 자그마한 기적.

때문에, 그녀는 깨달을 수 있었다.

단 일격에 방패가 삐걱이고, 온 몸의 근육이 파열하는 듯한 이 고통은 틀림없이 꼬리에 의한 일격이었다.

여태까지 수많은 흑룡들을 상대한 경험이 황윤하에게 그리 고하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크게 도움이 되는 사실은 아니었다.

티아마트의 가호.

황윤하의 육체가 버틸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그녀에게 하사한 축복이 모조리 박살났을 정도였으니.

만약 가호가 없었다면 어떤 꼴이 되었을지 상상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무릎에 힘을 주고 억지로 일어선다.

다행스럽게도, 그 때까지 눈 앞의 흑룡은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용종 특유의 오만함 때문인지,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덩치가 커서 눈에 뵈는 게 없는 건지.

어느 쪽이든, 오래 갈 침묵은 아니었다.

……천천히 호흡을 갈무리한다.

일행들의 걱정하는 시선에 고개를 끄덕이며, 한 걸음 앞으로.

온 몸을 감싼 티아마트의 마력이 점차 부상을 회복시키고 있는 게 느껴진다.

덕분에 황윤하는 고통이 빠져나간 자리에 대신 우두머리급 흑룡의 전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백두대간에 전해지는 흑룡 전설 중에서도 상위에 이르면, 그 힘은 바야흐로 자연재해와 다를 바 없다.

대지를 흐르는 용암이 아닌, 화산 그 자체가 의물화된 괴물.

하늘을 가리는 화산재와 같이, 태양을 삼키고 지상에 가뭄을 내린다는 마룡.

그게 바로 눈 앞의 몬스터였다.

'동굴이니까 비행 능력까지 경계할 필요는 없으려나?'

아니, 그럴 리가 없지.

황윤하는 자신이 떠올린 생각을 일언지하에 부정했다.

여기는 단순한 동굴이 아니다.

던전이다.

모르긴 몰라도, 우두머리의 기능을 발휘하는 데에 지장이 있을 리도 없겠지.

허면, 신서아의 저격은 사실상 봉인.

비행을 방해하는 부분에 할애할 수밖에 없다.

날아서 브레스라도 쏘는 날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으니까.

과연 우두머리의 둥지라고 해야 할지, 브레스를 피할 만한 장소나 차폐막 따위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문제는 저 비늘을 꿰뚫을 수 있을 만한 수단인데…….

'이예은 뿐인가.'

여기서 단순한 공격력으로 A+랭크 몬스터의 비늘을 돌파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 신서아 뿐.

그 외에는 이예은의 투척 무기를 믿을 수밖에 없다.

만약 티아마트가 전력을 발휘한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분신인 이상 한계는 있는 법.

던전 최심부에 똬리를 튼 우두머리를 분신의 힘만으로도 타도할 수 있을까 물으면 역시 회의적일 따름이었으니.

하물며, 작금의 분신은 어디까지나 회복 내지 보조 특화형.

비늘을 돌파할 만한 공격력을 발휘하는 건 힘들다.

때문에.

황윤하는 조용히 세 개의 손가락을 펼쳤다.

비행 능력 견제 필요. 신서아의 사격 능력을 견제에 할애.

우두머리 공략을 위해 간단히 준비한 수신호였다.

그 모습에 다른 학생들 또한 다소 어두운 안색이 되었지만, 이윽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들이 보기에도 어쩔 수 없었던 탓이다.

그렇게.

잠시 정적이 찾아왔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녀들은 누가 무어라 할 틈새도 없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쿠르르르릉……!!

동굴이 전율했다.

막무가내로 휘두른 흑룡의 일격이,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녀들이 서 있던 자리를 내려쳤기 때문이다.

"앞발 확인!"

날개를 펼쳐 날아오른 류지희가 수신호와 함께 그리 외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두머리 수준에 이르면 역시 머리나 꼬리 외에도 공격 수단을 갖추고 있는 모양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숨기고 있던 앞발을 흉흉하게 드러낸 채, 거룡이 포효한다.

동시에.

"독이다!!"

발톱이 작렬한 자리에 있던 바위가 기묘한 소리와 함께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어마어마한 열기.

허나, 그 이상으로 무시무시한 독성.

흑룡 특유의 마력이 발톱을 달구고 있는 게 눈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게다가.

다음 순간, 지저에 태양이 떠올랐다.

그리 설명할 수밖에 없는 열기가 들이닥쳤다.

흑룡의 반대쪽 손.

방금 전까지만 해도 텅 비어 있던 손아귀에, 화염이 붙들렸다.

백두산의 흑룡 전설, 그 일부.

팔도의 모든 한발??을 한데 엮었다 일컬어지는 흑룡의 화염검이었다.

의외로 소리는 없었다.

질량을 가진 화염.

그렇게 말해야 할 물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횡으로 휘두른 화염검이 칼끝에 걸리는 모든 암반을 녹여버렸기 때문이다.

목표는 하나.

용의 앞에서 방자하게 날개를 펄럭인 반인반마였다.

"지희야!!"

반응할 수 있었던 건 거의 기적이었다.

말했다시피, 대다수 뱀들은 시각에 의존하지 않는다.

하물며 토굴에 사는 흑룡들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때문에, 만약 자신이 흑룡이라면 당장 눈 앞에서 알짱거리고 있는 지희 쪽을 먼저 공격하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룡의 공격은 지나칠 정도로 강렬했다.

쩌적!!

도약과 함께 류지희 앞으로 내세운 방패.

요 며칠 사이 용들의 공격을 받아내며 고생한 방어구가 마침내 더 이상은 못 해먹겠다며 작별을 고한다.

단순한 보급품이라지만, 내열이나 방탄 처리는 물론 대다수 공격에 대한 방호가 부여되어 있던 물건.

어쩌면 B랭크 헌터의 보조 무장으로도 아깝지 않았을 강철이, 칼끝 한 번 흘린 시점에서 붕괴를 맞이한 것이다.

후우웅!!

강렬한 열기가 코끝을 스치고 지나간다.

정면으로 공격을 받아내는 건 절대로 불가능.

칼끝만 흘리는 걸 목표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이예은의 염력에 의한 방호는 물론 방패까지 날아갈 정도였으니.

"칫!"

단순한 여파만으로도 나가떨어지기 직전이었던 황윤하를, 류지희가 붙잡고 기동한다.

아파 죽겠다며 비명을 지르는 소리가 귓가를 때렸지만, 도저히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당장 눈 앞을 할퀴고 지나간 화염검.

저건 위험하다.

일단 방패가 날아간 시점에서, 두 번 이상 받아낼 수는 없다.

그렇게 직감한 탓이다.

"던진다?!"

"그래!!"

황윤하 또한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비명은 잠시.

전신을 사용해 허공에서 중심을 잡은 류지희가, 이윽고 흑룡의 팔을 향해 황윤하를 내던졌다.

부우웅!!

날개의 기동력까지 아낌없이 사용한 투척.

흑룡의 팔,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비늘 중 한 장이라도 좋다.

저 불꽃으로 이루어진 검을 사용할 수 없도록, 최소한 사용하기 힘들도록.

비늘 한 장이라도 떼어놓을 수 있다면, 충분히 견제할 수 있다……!!

물론 흑룡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다음 순간, 비늘이 잘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황윤하 앞으로 수많은 마법진이 나타났다.

서방의 용과 마찬가지로, 동방의 용 또한 마법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다.

흔히들 용을 물의 신이라 비유하는 바와 같이, 기후를 조작하는 능력이 대표적이겠지.

그리고 화산이 구현된 재해, 흑룡의 경우.

조작할 수 있는 건 가뭄과 열기.

화산 분화로 대표되는 온갖 재앙이다.

만약 그대로 방출되었다면 황윤하의 사지를 분지르고도 남았을 재앙.

마법으로 재현하는 화산탄이, 그러나 마치 무언가에 걸린 듯 정지한다.

자하연이 흩뿌린 저주의 영향이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정말로 찰나.

고작해야 한 호흡에 지나지 않는 여유였지만, 그 정도면 충분했다.

"차아앗!!"

한 손으로 쥐고 있던 창을 마법진 쪽에 내지른다.

동시에, 창날 쪽으로 깃든 황윤하의 마력이 마법진의 핵심 구조를 파괴.

이윽고 마법을 무력화한다.

물론 공격이 막힌 시점에서 실질적으로 이번 수 싸움은 흑룡의 승리라고 할 수 있겠지.

하지만 황윤하는 이번 공격을 흑룡의 승리로 마감할 생각이 없었다.

다음 순간, 황윤하의 몸이 텅 하는 소리와 함께 하늘을 날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쥐고 있던 창을 중심으로 몸을 뒤집고, 그대로 팔의 힘을 사용해 도약.

헌터 특유의 신체 능력 이전에, 지나칠 정도로 탁월한 운동 신경이었다.

문제는 하나.

당장 용의 비늘을 꿰뚫을 수 있을 만한 공격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상관 없다.

무기는 있으니까.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곧 올 거다.

"여기!!"

그러므로.

황윤하는 그렇게 외치며 다리를 들어 올렸다.

동시에, 무엇 하나 없는 허공을 향해 내려찍기.

신체 강화 능력을 응축한 발뒤꿈치 너머로 무언가 걸리는 느낌과 함께, 동굴 안으로 천둥이 쳤다.

쿠르릉!!

말 그대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이예은이 염력으로 사출한 투척 무기.

용의 피를 마셨던 단검이 정확하게 황윤하의 축격 끝에 놓인 탓이었다.

염동력자와 신체 강화 능력자, 양 쪽의 힘이 담긴 합격.

일시적으로 랭크 이상의 힘을 담은 공격이 비늘 틈새로 작렬했다.

여기까지 성공했다면 더 이상 뒤는 볼 필요도 없다.

"으랴압!!"

자유 낙하하던 황윤하의 손이 비늘 사이에 꽂힌 단검 손잡이를 붙들고 매달린다.

동시에, 황윤하의 몸을 중심으로 발생하는 염력.

윤하의 체중에 더해 이예은의 마력까지.

용의 비늘이라 해도 여기까지 오면 어쩔 수 없다.

뿌드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용의 비늘이 벗겨졌다.

고작해야 한 장.

혹은, 벌써 한 장.

화염으로 이루어진 검을 한 번 휘두르는 사이 벌어진 일이었다.

눈 앞의 광경에 대해, 저토록 강대하기 짝이 없는 흑룡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느 쪽이든, 유쾌한 기분은 아니었으리라.

"캬아아아악!!"

그렇지 않고서야 저토록 분통을 터트릴 리 없으니.

용의 둥지 너머.

가장 깊은 굴혈의 사방에 화염의 마법진이 빛을 발한다.

"차라리 화산탄 쪽이었다면 방어하기 힘들었겠다만……."

티아마트는 조용히 그렇게 읊조렸다.

상대는 화룡.

불꽃에 대한 대책 따위, 진즉부터 준비했다.

이번 일주일 사이, 흑룡들의 숨결에 맞추어 재편성한 화염 내성의 가호.

진짜배기 브레스도 아닌 이상, 고작해야 저 정도 마법으로 돌파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다.

흑룡 또한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화염의 마법은 단순한 눈속임.

다음 순간, 마력이 폭발했다.

마법으로 이루어진 불꽃조차 다소 무더운 기분을 주는 게 고작인 지금.

일행들은 역으로 얼굴에서 핏기가 빠져나가는 걸 느꼈다.

넘실대는 불꽃 너머로 마력을 먹고 한껏 몸을 키운 화염의 검이 그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한 번 휘둘러 태백산맥 전역을 불사를 수 있을 법한, 압도적인 위용.

작렬할 경우, 지금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버틸 수 없다.

때문에.

카아아아앙!!

도저히 불꽃이라 생각할 수 없는 금속음과 함께, 가뭄의 검을 이루고 있던 마력이 무산되었다.

신서아의 지원 사격.

방금 전부터 줄곧 마력을 눌러담고 있던 화살은 저 불꽃의 검조차 상회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얘들아!!"

자체적인 판단으로 검 쪽을 상쇄한 건 좋다.

만약 저 검을 그대로 내려쳤을 경우 이번 사냥은 실패.

오히려 그녀들 또한 치명상을 피할 수 없었을 테니까.

그렇지만.

이로 인해, 흑룡은 사수의 존재를 눈치채고 말았다.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나?!'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었다.

사수는 있다.

당장에 보이진 않지만, 틀림없이 지금도 이 쪽을 겨누고 있으리라.

하늘을 나는 용을 상대하기 위해선 활이 필요한 법이니까.

비늘을 벗기려 드는 일행들의 행동을 보고 그런 의심은 확신으로 변했다.

이 쪽의 무기를 견제할 생각인가?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다면, 해결책 또한 간단하다.

흑룡은 저격을 유도했다.

불꽃의 검.

화염의 마법으로 시야를 가려 이 쪽을 견제할 수 없게 한 뒤, 화염의 검을 휘두른다.

허면 저 쪽으로서는 으뜸패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순간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으뜸패라 하면 후방에서 마력을 집중하고 있던 사수 뿐이겠지.

흑룡은 일행들의 전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때문에.

저격의 위협에서 해방된 지금, 흑룡을 가로막을 수 있는 건 단 하나도 없다.

대기가 준동한다.

그리고.

땅에서 솟아 하늘을 향해 뻗은 창처럼, 흑룡의 거체가 하늘을 향해 날았다.

거대한 공동.

용들의 굴, 그 최심부.

지상을 향해 솟구친 듯한 천장의 끝까지.

동시에.

"막아!!"

그제서야 다른 일행들 또한 상황을 이해했다.

아니, 설령 이해하지 못했다 한들 상관 없었다.

상공에서 발산하는 용의 숨결.

다른 공격이야 어쨌든, 브레스만큼은 어쩔 수 없다.

애시당초 대처할 수단 따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흑룡 스스로의 육체를 걱정할 필요 없는, 지상을 향한 공대지 폭격.

저걸 허용했다간 다음은 없다……!!

우두머리 공략 직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책을 생각할 수 없었던 최종 패턴.

눈 앞에 아른거리는 전멸을 피하기 위해, 학생들 또한 용의 꼬리를 따라 상공을 향해 몸을 던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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