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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89화 (189/371)

〈 189화 〉 흑룡의 굴

* * *

대한민국의 흑룡 전설에 대해서.

말했다시피, 대한민국 설화 속에 등장하는 흑룡들은 화산과 용암의 현신.

때문에 그 형태는 대부분 뱀에 가깝다.

땅 위로 흐르는 용암의 강을 연상하면 비교적 이해하기 쉬울까.

배를 깔고 땅을 기는 검은 뱀.

백두대간의 흑룡들은 대부분 이런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만큼, 공격 또한 예상하기 쉬웠다.

'이빨, 꼬리. 추가로 브레스!'

다리도 없다. 앞발도 없다.

허면, 필연적으로 흑룡이 사용할 수 있는 공격 수단은 두 개.

주둥이와 꼬랑지 뿐이다.

거기에 지금 그녀들이 있는 장소는 좁디좁은 지하 동굴.

부족한 공격 수단마저 추가로 제약당할 수밖에 없었다.

눈 앞의 흑룡은 오른쪽에 벽을 끼고 있는 상황.

꼬리를 휘두르려 하면 그 궤도는 왼쪽으로 한정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눈 앞의 흑룡 또한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빨!'

첫 수를 끊는 건 이빨일 수밖에 없다.

거기까지 예측할 수 있다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다.

빙글 하고 손가락 사이로 돌린 장창을 여유롭게 파지한다.

그리고.

"샤아아아앗!!"

거리를 재며 달려든 뱀의 아가리를 요격한다.

푸욱!

솟구친 창날이 뱀의 입천장을 꿰뚫는다.

용의 비늘이라 해도 입 안까지 보호할 순 없는 법.

대치하는 헌터와 몬스터.

둘 중 먼저 피를 흘린 건 몬스터 쪽이었다.

용이 그 머리를 뒤로 당긴다.

여기에 맞추어 뱀의 주둥아리에 꽂힌 창날을 회수하는 황윤하.

능력 덕분인지, 한 팔로 용의 돌격을 받아낸 셈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데미지는 느껴지지 않았다.

잘그락, 뱀의 비늘이 곤두선다.

파충류 계통 포식자로부터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위협 동작이다.

즉, 머리에 상당히 열이 올랐다는 뜻!

쩌어엉!!

때문에.

다음 순간, 벽력처럼 작렬한 충격에도 황윤하는 비명을 지르지 않았다.

꽉 하고 어금니가 부서져라 이를 악물었을 뿐.

마력의 도움이 없어도 충분한 기술만 있다면 평범한 인간의 손으로 음속을 돌파할 수 있는 무기가 바로 채찍이다.

허면.

마치 채찍처럼 휘두른 용의 꼬리가 작렬했을 때, 얼마나 강렬한 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그 대답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끄으으으윽!!"

이건 씨발 내가 아니라 황윤하 애미가 와도 뒈진다.

윤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혹은 어디까지나 용의 몫이었다.

흑룡. 화산과 용암의 현신.

고대의 사람들이 바야흐로 불꽃과 같다 경외한 용은 작금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어떻게 저토록 작은 인간이 자신의 공격을 받고도 여전히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물론 그렇게 물었다 한들 황윤하 또한 제대로 된 대답은 돌려줄 수 없었으리라.

솔직히 말하자면 거의 요행에 가까운 행동이었으니까.

다만, 이유가 완전히 없지는 않았다.

예를 들면 지형.

꼬리의 움직임을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는 장소라는 점.

거기에 꼬리가 날아들 수 있는 장소는 왼쪽 뿐이라는 점.

마침 윤하는 양손잡이었고, 때문에 이번엔 왼손으로 방패를 들고 있었다는 점.

용 또한 생물인 이상 눈 앞의 날벌레에게 화가 나면 마법이나 브레스 따위 잔수작보단 일단 팔을 휘두르려 들 거라는 점.

그러나 방금 전 반격으로 인해 턱을 움직이긴 힘들다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다음 공격은 꼬리일 수밖에 없다!

이런 결론을 거의 반사적으로 도출한 윤하는 간신히 늦지 않게 방패를 들어 올릴 수 있었다.

용으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는 상황.

하지만.

요행이라 한들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생존을 위해 수많은 동포들과 겨루며 그 살로 배를 채운 용은 알고 있었다.

싸움에는 운 또한 적잖은 변수로서 작용한다는 사실을.

그러므로.

다음 순간, 용은 망설임 없이 다음 수를 두었다.

그리고.

간신히 자세를 추스른 황윤하는 용이 기묘한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머리나 꼬리를 휘두르기 위한 모습은 아니었다.

'마법 아니면 브레스!'

결론은 순식간이었다.

다시 한 번 창을 고쳐 파지한다.

어느 쪽이 정답일지, 황윤하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단순한 마력 운용법은 물론, 전문적인 마법 기술까지.

황윤하는 그런 이론적인 면에 턱없이 약했으니까.

다만, 자신이 해야 할 행동은 알고 있었다.

어차피 마법에 대처하는 건 자신이 아닌 후열 친구들이 해야 할 일이다.

그러므로.

"차아아아앗!!"

다음 순간.

용이 주둥아리를 벌렸을 때, 황윤하는 일단 브레스라는 쪽에 걸고 행동했다.

발을 넓게 딛고, 다리를 굽힌다.

전신의 힘을 한데 그러모아 손가락 끝으로 옮긴다.

인체라는 정밀 기계를 사용해 출력하는 운동 에너지.

다시 말해, 투창이다.

벽력과 같은 굉음을 내며, 투창이 하늘을 날았다.

황윤하의 능력은 신체 강화.

개중에서도 방어에 특화된 신체 경화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기본적인 강화 능력까지 사라진 건 아니다.

때문에.

단순한 전위라는 인식과 별개로, 황윤하의 공격력은 지금 여기 모인 학생들 중에선 제일이었다.

그리고.

마치 빨려들어가듯 용의 턱을 창이 꿰뚫은 다음 순간.

퍼어어어엉!!

작렬하는 폭음과 함께, 용이 크게 비틀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그녀의 직감은 틀림없었던 모양이다.

용의 숨결.

이를 앞두고 내던진 투창이 용의 독샘을 꿰뚫어 그대로 체내에서 불이 붙은 것이다.

"이런."

훌륭한 전과였으나, 황윤하로서는 솔직히 감탄할 수만은 없었다.

말했다시피, 뱀은 시각이나 청각보단 촉각 등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다.

내부에서 유폭된 폭발. 거기에 따른 고기 굽는 냄새.

추가로 폭발에 의한 진동까지.

이 정도면 다른 몬스터들 또한 눈치챘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철수, 철수!!"

"윤하야!!"

"미안!!"

그리고.

다른 몬스터들이 눈치챘다는 건 곧 그녀들의 계획에 차질이 생겼다는 뜻이다.

적어도 지금 이 장소에서는 이탈해야겠지.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뱀의 시체를 넘어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느 쪽이든,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뱀의 시체를 보고 눈이 돌아간 흑룡들이 폭음에 대해선 의문을 품지 않길 바라며.

어느덧 다른 흑룡들 또한 처리한 일행들은 그대로 그 자리를 이탈했다.

*

게릴라.

황윤하를 머리로 삼은 일행들이 선택한 전법은 간략하게 말하자면 그런 느낌이었다.

우두머리가 지하국 대적이라 예상했던 당초와 달리, 이번 던전의 우두머리는 용이라 생각되는 바.

퇴각 대신 마저 던전을 공략하기로 결정한 이상 방침에 대대적인 수정이 있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E랭크 도적떼 상대하듯 흑룡들을 쓸어버릴 수는 없다.

이는 그녀들 전원의 공통된 견해였다.

때문에.

"필요한 요점만 제압하자."

그렇게 되었다.

몬스터는 짐승이지만, 바보는 아니다.

하물며 상대는 용.

강력한 힘과 무한에 가까운 마력은 물론이요, 교활한 지혜까지 겸비한 괴물이다.

당연히 기척을 죽이고 무작정 잠입한다 해서 우두머리가 있는 중심부까지 도착할 수는 없겠지.

요소요소에 자신의 부하 중에서도 비교적 심복에 가까운 이들을 배치했을 공산이 크다.

길을 막고 통과할 수 없게 하는 식으로.

이번에 그녀들이 목표로 삼은 건 바로 그런 중간 다리들의 제거였다.

다행스럽게도, 기습의 이점은 그녀들에게 있다.

본디 던전이라 함은 적들의 영역.

철저하게 몬스터로 하여금 유리한 환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실제로, 말이 게릴라지 전투가 조금이라도 장기화되면 오히려 그녀들이 궁지에 몰릴 수도 있었겠지.

용의 불길은 길을 끊고, 용의 육체는 가로막는 벽을 부순다.

거기에 이토록 여러 길목이 돋은 토굴이라면?

십중팔구 교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다른 굴에서 대기하고 있는 용들 또한 합류할 수 있는 구조일 터다.

아니, 오히려 그녀들의 머리 위에서 나타나 물어뜯으려 들지도 모르지.

그러니,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단 하나.

단기 결전이다.

최대한 주변 지형을 머리에 넣어둔 채, 기습의 이점을 살려 순식간에 제거한다.

그렇게 몇 군데 빈 장소를 만들면 어거지로 비집고 들어갈 수 있다.

그 다음은 지독할 정도로 단순한 반복 작업.

다시 말해, 맵핑이다.

몬스터들의 흔적을 쫓아 기록하고, 길이나 방위를 기입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온라인 게임처럼 자동 기록되는 기술 따위는 없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동적으로 기록되긴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이 인식한 범위 내의 정보 뿐.

모든 정보가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기록될 만큼 뛰어난 지도 기록 마법 따위는 아직 개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지도는 보통 후발주자들의 손에 넘어가 다음 공략을 위해 이용되곤 한다.

단 한 번의 공략으로 던전 내의 모든 몬스터를 일소하는 건 어지간한 힘의 차이가 없는 한 힘든 탓이다.

그녀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던전 공략을 포기하진 않는다.

그렇지만, 노리는 건 우두머리의 목 뿐.

던전의 해체와 자잘한 몬스터들의 소탕은 강원도 지부에게 맡겨야 하겠지.

그렇게 일주일이 지났다.

간신히 늦지 않게 세 번째 은신처로 돌아온 그녀들이 깨달을 수 있었던 사실은, 이 던전이 꽤나 귀찮은 구조라는 점이었다.

용암이 구현된 몬스터라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고나 해야 할까.

마치 뱀굴처럼 이리저리 이어진 길에서 다시 한 번 갈림길이 나오고, 그 너머로 굴이 이어지는 구조.

이래서야 땅굴이라기보단 차라리 개미굴이다.

그래도 이번엔 다소 획기적인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신서아의 저격 능력을 메인으로 한 화력.

어느덧 그럭저럭 제 역할을 다할 수 있게 된 학생 팀.

마지막으로 티아마트의 끝없는 회복 능력.

여기에 힘입어 그녀들은 통상의 몇 배 가까운 속도로 해당 던전을 해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걸로 대충 길이 뚫렸어."

세세한 부분이야 어쨌든, 대략적으로 전체적인 조망도를 훑은 결과.

그녀들은 던전의 최심부로 향하는 최단 루트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던전의 최심부란 곧 용맥이 고이는 최심지.

다시 말해, 주인의 거처다.

즉, 이 던전 공략에도 끝이 찾아왔다는 뜻이었다.

"나가면 바로 씻을 거야."

"선생님이 앞에서 기다리고 있지만 않으면 좋겠는데……."

"에이, 그 녀석이라 해도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느냐?"

"아니, 사부면 그럴 법도 해."

"저도 동의해요."

그런 사실에 한층 더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감돈다.

여하간, 본디 그녀들은 고작해야 하루 있으면 다행일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지하국 대적의 머리만 따고 돌아가면 그만이라 생각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그런 일정이 벌써 일주일 째.

던전 공략으로 따지면 상당히 빠른 속도였지만, 그렇다 해도 흰소리가 나오지 않긴 힘들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황윤하는 그런 식으로 생각했다.

적어도 지금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당장 처음 출발했을 때를 생각하면 더더욱.

만약 그랬으면 애초에 지금과 같은 말도 나오지 않았을 테지.

어쩌면 담임한테 잘 보이고 뭐고 땀 냄새 나면 더 나쁜 인상만 준답시고 포기하자 징징거렸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요 며칠 사이 본격적으로 협력한 덕분일까?

그녀들 사이에는 알게 모르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흐르고 있었다.

거의 떠맡다시피 한 리더 역할이었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이런 부분에선 자신이 나름 잘 했구나 싶은 안도감도 있다.

뭐, 밖으로 나가면 다들 다시 한 번 담임을 가운데에 두고 투닥거릴지도 모르겠지만…….

'거기까진 내가 생각할 일이 아니지.'

어느 쪽이든, 지금 그녀들이 해야 할 일은 명백했다.

짝짝, 짧게 박수를 친다.

"자, 그럼 오랜만에 다들 쉽시다. 우두머리랑 싸우려면 최소한 제 정신은 들고 있어야죠."

"와!!"

"저번에 만든 표대로 불침번 서고, 전원 회복된 다음엔 마지막으로 추정 우두머리 쪽 전설 한 번 복기하고 들어갑시다. 오케이?"

"오케이!!"

소리 차단의 결계가 없었다면 당장 흑룡들이 몰려들 기세로 환호를 올리는 그녀들.

아무래도 여태까지 티아마트의 능력에 힘입어 정신을 차리고 있었던 점도 없잖아 있었기 때문이겠지.

그렇지만, 우두머리를 상대로 피곤에 쩌든 머리를 억지로 각성시키며 싸울 수는 없다.

최소한의 휴식은 취할 필요가 있겠지.

그렇게.

처음엔 가볍게 시작했던 던전 공략도 어느덧 끝을 바라보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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