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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88화 (188/371)

〈 188화 〉 흑룡의 굴

* * *

다행스럽게도, 은신처를 찾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천리안 능력을 보유한 신서아가 있었기 때문이다.

몬스터들이 싫어할 만한 향을 입구에 설치하기도 몇 번.

마침내 그녀들은 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십중팔구 흑룡일 거야. 틀림없어."

가장 먼저 대화의 주제가 된 건 역시 이번에 그녀들을 덮친 몬스터의 정체 쪽.

다행스럽게도, 거기에 대해선 짐작이 가는 바 또한 있었다.

흑룡.

문자 그대로 검은 용.

그러나, 대한민국 설화에서 말하는 흑룡은 단순히 비늘 검은 용을 뜻하는 게 아니다.

일컫기를, 그 검은 비늘이 의미하는 건 하늘을 덮는 화산재.

혹은 대지를 할퀴는 용암의 흔적, 현무암을 뜻한다고 하던가.

때문에.

대한민국에 전해지는 전설 속 흑룡들은 말 그대로 화산과 용암의 현신.

움직이는 불꽃 그 자체다.

"문제는 여기가 태백산맥이라는 점인데."

정작 태백산맥엔 화산이 없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일반적으로 있기 힘든 상황이란 뜻인데…….

"따로 태백산맥과 얽힌 화산 따위는 달리 없더냐?"

"아무래도 있기 힘들 거에요."

"허면, 태백산맥을 본류로 삼는 산맥이나 태백산맥을 포괄하는 개념 쪽을 살펴야겠구나."

"태백산맥을 포괄하는 개념?"

"아, 한반도의 척추라는 별명이 있긴 한데."

"백두대간 말이지?"

"백두대간?"

"네. 백두산부터 태백산맥까지 이어지는 산맥을 그렇게 불러요."

"그거네. 백두산 쪽에는 흑룡 전설도 있어."

"백두산 쪽에서 내려온 놈들이란 소리구나."

정신을 차리고 보면 예의 용들의 정체까지 전부 파악이 끝났다.

뭐, 이 쪽 멤버들이 머리가 꽃밭인 거지 능력이 없는 건 아니고.

말도 안 되는 음모론까지 들먹이며 억지로 자리를 바꾼 덕택일까?

그녀들은 방금 전과 달리 한층 침착한 태도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거면 된 거야, 그래…….'

마치 남의 일처럼 그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윤하.

허나, 그 때문일까?

푸욱 하고 한숨을 내쉬다 문득 고개를 드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그녀를 향하고 있는 게 느껴졌다.

"어, 왜요."

"윤하는 어떻게 생각하니?"

"응? 아, 백두산? 네. 맞지 않을까요?"

실제로 꽤 있음직한 가설이고.

흑룡은 용암의 구현화.

땅을 파고들어 여기까지 내려왔을 가능성은 없잖아 있다.

애초에 태백산맥을 포함하는 백두대간이라 하면 대한민국의 최고 용맥.

다소 과격한 방법이긴 해도, 용맥의 마력으로 배를 채우며 움직였다면충분히 있음직한 이야기였으니까.

단지.

'어색하구만.'

그런 윤하의 대답에 몰래 한숨을 돌리는 모습들이 눈에 밟힌다.

방금 전 대뜸 화를 냈던 탓일까.

아무래도 그녀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형성된 탓이었다.

아니, 화가 났던 건 사실이지만.

"그래서 그런데, 윤하야?"

"네?"

"지휘 한 번 해 볼 생각 없니?"

아무리 그래도 이런 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

황윤하는 자신도 모르게 그리 생각했다.

물론 이해할 수는 있었다.

본디 이 파티의 리더 역할을 맡았던 건 바로 그녀, 신서아였다.

하지만 방금 전 상황에서 그녀는 싸움을 말리긴커녕 오히려 험악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에 일조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윤하의 노력에 힘입어 어찌저찌 분위기가 진정된 지금.

역으로 분위기를 과열시킨 자신이 과연 냉정하게 지휘를 잡을 수 있을까 스스로도 확신할 수 없는 거겠지.

아니, 사실대로 말하자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냉정함을 되찾았다?

말이야 쉽지, 정말로 그렇게 확신할 수 있을까?

단순히 윽박을 지르는 윤하의 모습에 놀라 위축당한 건 아닐까?

스스로도 알 수 없는 만큼, 신서아는 거듭 주의를 기울이기로 했다.

지휘권의 이전 또한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대다수 파티에서 지휘 역할을 맡는 건 보통 둘 중 하나.

전선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피부로 실감할 수 있는 최전선.

혹은 전체를 시야에 넣고 조망할 수 있는 최후미다.

개중에서도 굳이 한 쪽을 꼽자면 역시 최전선 쪽이겠지.

여기에는 현실적인 사정도 있었다.

대다수 사람들은 몬스터의 공세를 직접 받아내는 전위들을 향해 강경한 태도를 취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따로 사령탑을 뽑는다 한들 어차피 전위를 상대론 사양하는 분위기가 생기기 마련.

거기서 누군가 반대로 결론을 내렸다.

차라리 전위에게 사령탑 자리를 맡기는 건 어떨까?

상당히 주먹구구식인 결론이었으나, 의외로 효과가 있었다.

새삼스럽지만, 헌터들이 몸을 담은 이 업계는 단순한 판타지 게임이 아니다.

족히 자신의 몇 배는 될 법한 괴물들을 상대로 생사를 넘나들며 사투를 벌이는 헌터들.

그런 사냥꾼들을 상대로 즉석에서 세세한 지시를 내릴 수 있을까?

아니, 설령 내릴 수 있다고 한들 당장 진창에서 구르고 있을 헌터들이 즉각 지시를 이행할 수 있을까?

뭐, 힘들겠지.

때문에.

헌터들이 사령탑에게 요구하는 건 어디까지나 전술이 아닌 전략.

파티의 목표 설정. 설정한 목표에 따른 지침 하달. 진퇴 여부 결정.

거기에 마지막으로 교전을 앞둔 상황에서최종 방책 점검.

딱 그 정도였다.

그리고 그 정도면 충분했다.

전위가 무너지면 후열의 붕괴 또한 결국은 시간 문제.

바로 그렇기에, 후열은 언제나 전위들의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만 한다.

여기에 사실상 허울 뿐인 사령탑이라는 지위를 더하자 예상 밖의 효과가 나온 셈이다.

혹시 모를 사령탑의 지시를 듣기 위해, 전위의 상태를 살피기 위해.

한층 더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한 후열의 헌터들.

덕분에 전위의 붕괴 또한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었고, 때문에 파티의 붕괴 또한 자연스레 감소했다던가.

물론 여태까지 그녀들은 그런 식으로 파티를 구성하지 않았다.

다름이 아니라 경험 부족 때문이다.

그렇지만.

"혹시 경험 부족이 걸리는 거니?"

"어, 조금은요?"

"그 쪽은 내가 도와줄게."

지금은 그래야 할 당위성도 있다.

애초에, 나쁜 제안도 아니고.

여하간, 전위를 서고 있다 보면 자연스레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이다.

게임처럼 냉정하게 자신의 남은 체력을 파악하고 전체 상황을 조망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거기에 몬스터의 공격에 따른 부상이나 고통 또한 있다.

결국 전위가 내릴 수 있는 명령은 내가 얼마나 아픈지 고래고래 과시하는 게 고작이다.

그러므로, 후열이 참모를 맡아 전체적인 상황을 조율하는 건 헌터들 사이에서도 보편적인 일이었다.

거기에 지금 당장 머리를 맡을 수 있을 만한 사람은 윤하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본인 뿐이었고.

문제는 딱히 내키질 않았다는 점이다.

애시당초 윤하는 그런 식으로 책임을 지는 캐릭터가 아니다.

무엇보다 귀찮은 점이 컸다.

황윤하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스스로는 다소 건성인 면이 없잖아 있었으니까.

시시콜콜하게 하나하나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리더.

만약 그러지 못할 경우 파티 붕괴의 책임을 짊어져야 하는 자리는, 농담으로도 달가운 게 아니었다.

단지.

"씁."

그렇다고 해서 대책이 있는 건 또 아니었다.

막말로, 귀찮다는 문제와 던전 공략을 앞둔 상황에서 풀메이크 상태로 들어갈 생각이었던 누군가에게 고삐를 맡기는 일.

둘 중 어느 쪽을 감수하겠느냐 물으면 그야 전자였으니까.

"알겠어요. 거, 한 번 해 봅시다."

"시원시원해서 좋네!"

신서아 또한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교사 자리를 관둘 생각이었던 건 변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애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확실히 즐거운 면도 없잖아 있었다.

'거북해.'

물론 윤하 쪽은 영 떨떠름한 기분을 감출 수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동급생은 물론이요 당장 교생들한테도 자기 이름으로 지시를 내리라는 뜻이었으니까.

불량아 소리를 듣고 있긴 해도 정말 선생과 드잡이질을 벌인 적은 없는 그녀로서는 다소 곤란한 기분이었다.

"본인은 이럴 필요가 없다만……."

"죽여버린다."

"히이이."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었다면, 꽤나 빨리 익숙해질 수 있었다는 점이다.

가장 먼저 화장품을 지우고 위장 크림을 바르라는 기본적인 지시에도 불복한 누군가를 굴복시킨 덕분이었다.

"그으럼, 보자. 일단 목표부터 재설정하죠."

"목표 말이니?"

"네. 까놓고 말해, 예상 밖인 상황이니까."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지하국대적과 용 사이에는 상당한 스펙 차이가 있다.

다름이 아니라, 부하들 쪽이 문제다.

지하국대적의 경우 단순한 강함은 대략 B랭크.

공략 등에 필요한 요소 등이 까다로운 탓에 추가로 플러스.

얼추 B+랭크에서 가장 유명한 개체에 이르면 A+랭크 가까운 힘을 지니고 있다는 게 통설이다.

다만, 지하국대적의 부하들은 결국 일개 도적.

혹은 일개 도적단을 본뜬 몬스터가 고작.

아무리 강력한 지하국대적이라 해도, 부하의 질은 E랭크나 되면 다행인 게 보통이지.

그렇지만.

용은 다르다.

고등한 용은 물론, 용의 새끼나 이무기 따위도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으니까.

던전 공략은 단순히 우두머리만 처리하면 되는 물건이 아니다.

오히려 대다수 헌터들에게 문제가 되는 건 수많은 부하들 쪽이겠지.

그런 만큼, 지하국대적과 흑룡.

우두머리의 강함이야 둘째치더라도, 단순한 던전 공략 난이도는 이 시점에서 몇 배로 뛰어올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퇴하자는 이야기를 꺼내는 이들은 없었다.

나름 다행인 점이었다.

여하간, 윤하로서는 여기서 맥없이 퇴장해 다시 한 번 담임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지는 일은 피하고 싶었으니까.

정작 다른 인원들이 거부한 이유가 십중팔구 담임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일 거라는 점을 제외하면 나름 나쁘지 않았다.

"좋아요. 그럼 공략을 전제로 진행합시다. 흑룡에게 유효할 만한 물건은 있습니까?"

"윽."

아무래도 신서아는 제 사부와 달리 그런 예비 무장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지는 않는 모양이었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았을 땐 박우찬 쪽이 편집증적이라 할 수 있겠지만.

솔로 헌터로서의 습관이라고 해야 할까.

어느 쪽이든, 당장에 유효한 무기는 이예은의 투척 무기 정도였다.

"그 외에는 이 정도?"

"나쁘지 않네요."

뭐, 그렇다 해도.

신서아 또한 빈털터리로 던전 공략에 착수한 건 아니다.

당장 유효하게 사용할 만한 물건은 없었어도, 여벌 무기 정도는 있었으니까.

최소한 류지희가 사용할 만한 권갑이나 각반을 구할 수 있었던 건 다행이라 해야 할 일이었다.

무엇보다.

"음, 잘 맞네!"

황윤하에게는 다행스럽게도, 그녀가 착용할 만한 무장도 있었다.

최승준의 로비 덕분일까?

아카데미 교복은 당장 신입 헌터들이 사용할 수 있을 만한 방어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말이 교복이지, 사실상 갑옷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그렇지만.

용이 상대라면 아무래도 방어력이 불안한 것 또한 사실.

덕분에, 전위인 윤하는 신서아에게서 추가로 빌린 갑옷을 그 위로 덧입을 수 있었다.

"아, 그래도 너무 믿지는 마? 오더 메이드는 아니니까."

확실히, 체형이 얼추 비슷했던 덕택에 문제 없이 착용할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움직일 때마다 묘한 위화감이 있는 건 사실이었다.

없는 것보다는 나아도, 갑옷의 빈틈을 찔리는 일 또한 있을 수 있으니.

무조건 신용해서도 곤란하겠지.

애초에, 이 갑옷은 신서아가 처음으로 맞춘 오더 메이드 갑옷.

당장 C랭크에 올랐을 적 사용하던 물건이라고 한다.

나름 추억 있는 물건이라 보관하고 있었다곤 하나, 용을 상대로 완벽한 방어력을 발휘할 거라는 건 어불성설이겠지.

거기에 추가로 한 자루 남은 장창을 꼬나쥐니, 나름 괜찮은 듯도 했다.

"오……."

이게 진짜배기 헌터의 무기?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다소 들뜨는 기분은 억누를 수 없었다.

다시 한 번 소도구를 사용해 공간을 닫는 신서아의 모습을 바라본다.

과연, 위쪽으로 가면 저런 물건도 손에 넣을 수 있단 말이지?

나름 향상심이 생기는 기분도 들었다.

"흐음."

"왜요 또."

"아니, 체형이 비슷해서 다행이로구나. 만약 본인의 물건이었다면 사이즈가 맞지 않았을 테니."

"죽여버린다, 진짜로."

"히이잉."

물론 그 전에 살심을 가라앉히는 게 먼저긴 했다.

지끈지끈, 아픈 머리를 누르며 황윤하는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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