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7화 〉 지하 던전
* * *
우리는 좆됐다.
비교적 진지하게, 황윤하는 그리 생각했다.
혹시나 싶어 심사숙고하기도 했지만, 역시 좆된 게 맞았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방심에 있었다.
아이러니한 이야기지만, 대다수 업계에서 숙련공을 죽음으로 이끄는 건 위험한 작업이 아니다.
몇 년이나 반복한 끝에 완전히 손에 익어버린 반복 작업.
나만큼 이 일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도 없다는 사실.
그런 방심이 목숨을 앗아가는 법이니까.
지금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한 번 호흡을 맞춰본 적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독이 된 셈이다.
여름방학 당시에도 괜찮았고.
실력이 오른 지금이라면 더더욱 문제 없겠지.
애초에 이런 동굴형 던전에서 출몰하는 몬스터 따위 불을 보듯 뻔할 테고…….
뭐, 틀린 말은 아니었다.
사실상 이번 공략대의 리더라 할 수 있을 신서아 또한 바보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이런 진형을 취한 거고.
정면으로 달려드는 몬스터가 상대라면 손쉽게 요격할 수 있다.
배후를 덮치려 들어도자신이 감당할 수 있다.
그런 판단이 섰기 때문에 여유를 부렸고, 위장 크림 대신 메이크업을 선택할 수 있었던 거겠지.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몬스터를 피하는 게 아니라, 던전 내의 모든 몬스터를 도살할 기세로 나아가던 그녀들.
허나, 정작 이번 던전에서 마주한 건 그녀들이 예상하고 있던 몬스터가 아니었다.
"제기랄!!"
욕지거리와 함께, 황윤하는 방패를 들어올렸다.
강원도 지부 측 헌터에게 부탁해 빌린 물건이었다.
하지만 과연 강원도 지부라고 해야 할지.
수많은 소재가 복합적으로 사용된 방패는 몬스터의 공격을 거의 완벽하게 받아내 분산했다.
"캬아아아악!!"
분하다는 듯 격한 울음을 터트리는 괴물.
신서아가 예상했던 바와 달리, 지하국대적이라 말하기는 아무래도 힘들지 않을까 싶은 생김새였다.
다리 하나 없는 몸. 길게 늘어뜨린 꼬리. 잘그락거리는 비늘.
뱀이라기보다는 용.
용이라기보다는 거의 동굴의 길목 전체를 차지한 그 모습은 차라리 지형지물에 가까운 위압감이 있었다.
"잘 잡고 있어!!"
그런 용이 자그마치 셋.
바야흐로 때 아닌 난관이었다.
물론 황윤하는 알 수 있었다.
눈 앞의 용들은 그렇게 강한 편이 아니라는 사실을.
얼추 짐작하기에 대충 C+ 혹은 B랭크.
구울과 비교하자면 조금 강한 편일지도 모르겠지만, 단순한 힘은 그렇게 엄청난 차이가 있는 수준까진 아니다.
문제는 그 크기와 질량일까.
방패와 능력을 사용해 흘렸음에도 불구하고, 전신이 삐걱이는 듯한 감각.
솔직히 말하자면, 부상과 별개로 밀리지 않은 건 거의 기적이었다.
그런 용의 머리 위로 류지희가 쇄도한다.
목의 비늘에 손을 댄 채, 마치 물구나무 서듯 다리를 위로.
그대로 팔을 굽혀 전신을 튕긴 한 순간.
날개를 꺼낸 몽마의 딸이 천장을 박차고 추락한다.
콰드득!!
용의 비늘조차 무시할 수 없는 충격.
작렬한 무릎차기가 용의 비늘을 우그러뜨린다.
그러나.
"딱딱해……!!"
말해두겠지만, 류지희의 대처가 부족했던 건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뛰어난 편이었다 할 수 있겠지.
만일 상대가 구울이었다면 지금쯤 모가지가 부러졌을 테고.
다만, 상대는 용.
동굴의 길목을 통째로 틀어막을 수 있을 법한 거체다.
용의 비늘에 의한 방어력.
거기에 크기나 질량에 따른 체력을 고려하면, 도저히 류지희의 일격으로 쓰러뜨릴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때문에.
모종의 힘이 한 순간 뒤늦게 황윤하의 전신을 감싼다.
티아마트에 의한 보조와 이예은의 염동력 장벽이다.
그리고.
황윤하의 뒤에서 솟구친 투척용 단검이 용의 비늘을 도려내고 해체했다.
마찬가지로, 염동력을 사용한 투검.
얼마 전, 거룡을 상대할 때 박우찬에게 완전히 양도받은 무기 중일부였다.
박우찬으로서는 입원하기까지 한 만큼 따로 회수하기도 힘들어 적당히 떠넘겼을 뿐이었겠지만.
당장 눈 앞에 있는 용보다 훨씬 더 상위의 개체를 쓰러뜨린 무구다.
효과는 탁월.
벗겨진 비늘 너머로 다시 한 번 류지희가 주먹을 쑤셔 넣는다.
몸부림치는 용.
다음 순간, 황윤하는 본능적으로 류지희를 향해 몸을 날렸다.
쩌어어어엉!!
방패와 용의 육체가 부딪힌다.
꼬리 치기.
실로 단순하면서도 효과적인 일격이, 마치 채찍처럼 류지희를 요격하려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유, 윤하야! 괜찮……."
"끄아아아아아아아아악!!!"
"……지는 않나봐!! 미안!!"
씨발년아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냐?!
황윤하는 살의라는 감정이 이토록 쉽게 생겨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얘들아!!"
그렇지만.
그런 감정을 내뱉을 시간 따위는 어디에도 없었다.
신서아의 경고가 귀에 닿은 바로 그 순간.
화아악!!
무더운 공기가 동굴 속을 뒤흔들었다.
용의 숨결.
화염과 독기로 이루어진 마력의 격류.
넘실대는 불꽃의 방사가 통로를 가득 채웠다.
이런 좁은 통로 속에서 용의 불꽃을 피할 방법 따위는 어디에도 없다.
헌터 랭크가 높다거나, 강력한 능력이 있다거나.
그런 점과는 완전히 별개의 문제.
때문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른 동포를 상대하고 있던 헌터들을 향해 후방의 용은 망설임 없이 불의 숨결을 터트렸다.
5초.
10초.
20초.
마침내 30초.
족히 30초에 걸쳐 불꽃을 방사한 후방의 용이 짧게 입을 닫는다.
그리고.
쿵!!
두 번의 충격음이 거의 동시에 작렬했다.
하나는 방금 전, 일행들의 방패가 되었던 첫 번째 용의 시체가 추락하는 소리였다.
불꽃이 작렬하기 직전.
용의 턱 밑까지 파고든 자하연이 휘두른 쿼터스태프가 그대로 용의 몸뚱이를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도저히 효율적이라 말하기는 힘들 정도로 과도하게 응축된 마력이 발휘한 기적.
덕분에 첫 번째 용은 두 번째 용이 내뱉은 화염에 노릇노릇하니 익어버리고 말았다.
허면.
그 뒤는 실로 간단하다.
족히 30초.
마력을 가득 눌러 담은 신서아의 화살이 두 번째 용의 안구를 꿰뚫었다.
세 번째 용은 이미 저격으로 처리한 상황.
우발적인 교전은 이렇게 끝났다.
다만, 일행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그야 그렇겠지.
상처 하나 없는 완승이라 말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졸전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자신들의 실수를 힘으로 밀어붙여 억지로 돌파한 상황.
박우찬의 성격을 고려했을 때, 감점이면 감점이지 고평가를 받는 일은 절대로 없을 교전 내용이었다.
"하."
짧은 탄식.
누구라 콕 집어 말하기도 힘들 정도로 나지막이 흘러나온 한숨이었다.
물론 몇 가지 핑계는 댈 수 있겠지.
예를 들어, 다른 일행들이야 어쨌든 황윤하는 알고 있었다.
바로 어제.
협회 측에서 지급한 팜플렛 쪽에도 용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단 사실을.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상대는 십중팔구 지하국대적이라 예상한 신서아의 판단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지.
단지.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작금의 추태에 대해선 변명할 수 없으리라.
막말로, 지하국 대적과 용 사이에는 지나칠 정도로 많은 차이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용하는 공격 수단. 발자국. 비늘의 유무. 둥지의 형태 등.
만약 그녀들이 마음을 다잡고 있었다면 충분히 대처할 수 있었을 테니까.
문제는 정작 대처하기는커녕 오히려 경계를 느슨하게 풀고 있었다는 점이겠지.
방금 전 모습만 해도 그렇다.
적절하게 반응해 제 역할을 다한 건 어디까지나 황윤하 뿐.
류지희는 첫 수로 별다른 효과 하나 보기 힘든 공격을 내밀었다.
티아마트는 애초에 반응부터늦었고.
이예은의 공격이 효과가 있었던 건 단순한 요행에, 전위와 호흡도 맞지 않았다.
자하연은 뒤늦게 대처하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
신서아는 애시당초 용의 숨결을 허락해선 안 되는 포지션이었으니.
전원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던 탓일까?
최소 한 순간.
다들 행동에 어색함이 있었다.
고작해야 한 순간이라 말하는 건 쉽겠지만, 지금 그들은 6인조 파티.
단순히 셈해도 다섯 호흡이다.
그리고 다섯 호흡이나 뒤처진 상황이라면 보통 어떻게 해도 뒤집을 수 없기 마련.
단언컨대, 만약 전원이 평균적인 수준의 헌터였다면 방금 전 교전해서 전멸했으리라.
황윤하는 감히 그렇게 단언할 수 있었다.
여기에 비하면 예상과 다른 몬스터가 출몰한 일 따위 고작해야 재수없게 꽝 제비를 뽑은 정도겠지.
애초에 던전 탐사라 하면 미지의 위기와 조우해 해결하는 실력 또한 포함하기 마련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지금 그녀들의 성적은 완전히 낙제점 수준이었다.
"아, 씨발."
물론 그 정도는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다.
여하간, 첫 습격을 별다른 피해 없이 해결한 건 사실이었으니까.
문제는 작금의 분위기였다.
누군가 무심코 흘린 욕설 한 마디.
도대체 누가 그런 건지 알 수 없을 만큼 자그마한 불만도 사방이 꽉 막힌 동굴 안에선 지나칠 정도로 잘 울렸다.
"뭐?"
"누구야, 방금?"
곧장 날카로운 반응이 튀어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귓가에 닿은 욕설은 그토록 명확한 뜻을 담고 있었으니까.
나는 잘 했는데.
이게 뭐야.
짜증나게.
제대로 못해?
씨발이라는 단어는 이처럼 많은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
당연히 분위기는 순식간에 험악해졌다.
사람 심리라는 게 다 그런 법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의 실수를 돌아보고 있던 쪽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나는 그렇게까지잘못한 건 아니지 않나?
다른 애들이 더 노력했어야지.
만일 박우찬이 보았다면 망설임 없이 대침공 이전 게임을 예시로 들며 협곡의 원리라 칭했을 현상이었다.
다른 일행들에 대한 불만.
혹은 불신이 점차 구체화되는 모습을 황윤하는 마치 남의 일처럼 바라보고 있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겠지.
다들 스트레스도 많이 쌓였을 테고.
황윤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곧 크리스마스였으니까.
그야 왜 이런 데에서 구르고 있나 하는 억하심정이 생겨도 이상하지 않았다.
때문에.
"아가리 닥쳐!!!"
정말로 누군가 남탓을 위해 입을 열기 직전, 황윤하는 그렇게 소리쳤다.
씨발 나는 이해하지만 과연 내 주둥아리도 용서할까?!
애초에 지금 이 파티 내에서 저런 말을 할 수 있는 건 단 한 명, 황윤하 뿐이었다.
얼굴에 바른 위장 크림이 바로 그 증거였다.
일단 아직까진 교생인 서아나 티아마트조차 포함한 욕지거리.
과격한 언사에 일행들이 입을 다문다.
딸꾹, 누군가 자신도 모르게 딸꾹질을 하기도 잠시.
황윤하는 무심코 욕설을 내뱉은 끝에 느껴지는 시원함을 억지로 억누르며 머리를 굴렸다.
머리털이 난 이래 가장 시급한 상황이었다.
"갑자기 욕을 한 건 미안한데, 조금 조용히 합시다. 다들 잊은 건 아니죠?"
쉿, 하고 손가락을 세우며 발 밑의 뱀을 가리키는 윤하.
몬스터가 아닌 뱀 대다수는 보통 시각이나 청각보단 촉각을 사용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리고 이런 밀폐된 공간 안에선 그녀들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 하나하나가 용들에게 있어선 정보가 될 수도 있었다.
여하간, 몬스터 또한 생물.
뱀과 얼추 비슷한 형태로 성장한 용이라면 뱀과 비슷한 생태를 지니고 있는 게 보편적이다.
일종의 생물학적 합리성이라고 해야 할까.
덕분에 그녀들 또한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그럼 어떻게 할까.
무심코 빡친 탓에 소리를 지른 건 좋지만, 덕분에 시선이 자신에게 집중되고 말았다.
보통 이런 역할을 맡아야 하는 건 자신이 아니라 연장자일 테지만…….
"일단 지금 이 상황은 무언가 이상합니다. 다들 알고 계시죠?"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야 지하국대적 따위를 예상하고 있던 바와 달리 갑자기 용이 나타난 상황이니.
물론 황윤하가 보기에 그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확률로 따지면 10번 중 한 번은 이러지 않을까.
그렇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저는 이게 예의 그 집단의 술책이라고 봅니다."
"예의 집단?"
"신세계 질서 말이죠."
"허억……!!"
지옥에 있는 악의의 악마가 들었다면 화들짝 놀랄 누명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찍이 그들이 이 강원도 지부에서 저지른 일을 생각하면 거의 가능성이 없는 일이었다.
그렇지만 황윤하는 자신의 평온을 위해 일단 그들의 이름을 팔기로 했다.
사실 완전히 틀린 말도 아니지 않은가?
애초에 그들이 이 꽃다운 나이에 던전 탐사나 하고 있는 이유가 그들 때문이니 억울할 일도 아니었다.
"알겠습니까? 지금 이 상황은 실전이라고요."
"실전."
"그러면 지금 우리들이 해야 할 건?"
"은신처를 찾고 상황을 정리하는 것?"
"좋아요."
사실 황윤하도 거기까진 몰랐지만, 다행스럽게도 신서아가 대답해주었다.
덕분에 황윤하는 대충 고개만 끄덕이고 넘길 수 있었다.
그렇게.
어떻게든 대충 분위기를 수습한 황윤하를 중심으로, 일행들은 다시 한 번 포지션을 조정했다.
신서아의 천리안을 위시로 한 정찰 위주 포진.
일단 은신처를 찾는다.
그리고 다들 화장품부터 지우게 한다.
그런 목표로 황윤하의 머리는 어느 때보다도 팽팽 소리를 내며 돌아가기 시작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