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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86화 (186/371)

〈 186화 〉 지하 던전

* * *

마침내 다음 날이 찾아와, 우리들은 본격적으로 던전 공략에 착수했다.

이번에 내가 따로 살핀 바에 따르면, 우리 꼬마들에게 어울릴 만한 던전은 역시 동굴 쪽.

즉, 지저 던전이다.

딱히 드문 이야기도 아니다.

동굴이란 예로부터 대지에 돋은 굴혈??.

다른 세상으로 통하는 입구라 여겨지곤 했으니까.

여기서 말하는 다른 세상이란주로 땅 밑을 뜻하는 말이었고.

때문에, 세계 각지에서 동굴은 주로 사람을 삼키는 괴물의 아가리 따위로 비유되고는 했다.

우리 나라 또한 마찬가지.

거구귀 설화 등, 무엇 하나 모르고 발을 들인 동굴이 사실은 뱀의 입이었다는 식의 이야기는 정말로 셀 수도 없이 많다.

이번에 내가 선별한 던전 또한 바로 그런 부류였다.

동굴을 통해 지하로 향하는 길.

그 밑에 둥지를 튼 몬스터들이야말로 이번 공략의 목표였다.

본래부터 훈련이 목적이었던 만큼, 기초적인 실력 향상에도 상당한 도움이 되겠지.

무기를 휘두르기엔 지나칠 정도로 좁은 통로. 어두컴컴한 시야.

발디딤은 불안정하고, 소리가 울려 거리감을 잡기도 힘들다.

대열 변경은 물론이요, 의사소통조차 쉽지는 않을 테고.

단순한 호흡이나 연계 이상으로 파티 전체의 실력을 살피려면 역시이런 지형이 최고다.

거기에, 중요한 건 바로 등장하는 몬스터의 종류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우리 나라 전설 속 지하 세계에서 등장하는 몬스터들은 어느 정도 정해져 있는 편이었다.

소위 말하는 지하국 대적.

지하 세상을 통치하는 도둑들의 우두머리다.

땅 밑에서 나는 영약을 마신 끝에 무한한 힘과 끝없는 생명력을 손에 넣은 존재.

바로 어제, 내가 퇴치한 몬스터 중에서도 저 부류에 속하는 놈들이 몇 마리는 있었을 정도로 그럭저럭 유명한 몬스터다.

이번 던전의 우두머리 또한 십중팔구 지하국 대적 중 한 마리일 테지.

여기서 가장 중요한 점은 지하국대적 자체는 그렇게 강한 몬스터가 아니라는 점이다.

단순한 강함으로 평가할 경우 B랭크.

수많은 지하국대적 설화 중에서도 가장 이름 높은 괴물들이 A랭크에 준하겠지.

거기에 영약의 힘을 고려할 경우 추가로 플러스.

대개 B+랭크에 가까운 힘을 지니고 있다.

뭐, 어쩔 수 없는 이야기지.

지하국대적 퇴치설화에 따르면, 지하국을 지배하고 있는 우두머리.

다시 말해 지하국의 대적은 지상에서 수많은 재물과 비보를 약탈한다.

심지어 타인의 연인이나 아내까지도.

때문에, 이런 사람들을 되찾고자 지하국으로 투신한 장사는 지하국대적을 상대로 맞서 싸우고자 결심한다.

그리고 대적과 싸우기 위한 힘을 손에 넣고자 몰래 숨어들어 동일한 영약을 입에 대고.

덕분에 목이 날아간 지하국 대적.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한한 생명력과 신통력으로 다시 한 번 목을 붙이고 일어선다…….

지하국대적의 능력이라 하면 보통 이런 레퍼토리다.

달리 말하자면, 영약의 힘만 있으면 평범한 장정도 어느 정도 싸울 수 있을 정도라는 뜻이다.

쉽게 쓰러뜨릴 수는 없겠지만, 반대로 불사만 공략할 수 있다면 어려운 상대는 아니다.

문제는 저런 열악한 환경 속에서 대책을 궁리할 수 있을까 하는 점.

말하자면 순발력과 대응 능력을 대상으로 한 평가인 셈이다.

'어쩌면 영약도 손에 넣을 수 있을 테고.'

저런 지하국대적 퇴치 설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게 바로 영약이다.

물론 영약이라고 해도 소위 말하는 무협지 속 물건들처럼 어마어마한 건 또 아니지만.

만약 그랬으면 당장 나부터 영약이란 영약은 모조리박박 긁어 모았을 테지.

몬스터의 내단 따위는 제외하더라도.

결국 영약이란 곧 마력의 덩어리.

자연의 진기 등 모종의 마력이 응축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말하자면, 헌터 개인의 실력과 별개로 사용할 수 있는 추가 마력인 셈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나쁜 이야기는 아니다.

본디 꾸준한 훈련을 거듭한 끝에서야 손에 넣을 수 있는 마력을 별다른 노력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셈이니까.

일단 마력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이고.

그렇지만.

헌터의 성장에 영약이 반드시 도움이 되느냐 묻는다면, 역시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다.

오히려 영약의 마력에 지나칠 정도로 연연한 탓에 전법이 망가진 헌터들 또한 더러 있었으니.

어느 정도 리스크와 리턴이 있는 셈이다.

여왕급 몽마의 힘과 기억이 담긴 물건을 손에 넣은 지희 쪽이 도리어 특이한 사례라고 할 수 있겠지.

말하자면 성좌의 축복이나 다름없다고 해야 할까.

자신에게 잘 맞는 전법을 손에 넣은 시점에서 그야 성장세는 가파를 수밖에 없겠지.

다만, 별다른 고생 하나 없이 성장한 헌터는 언젠가 마주할 벽을 뛰어넘는 방법 또한 모른다.

좌절한 적이 없으니까.

달리 말하자면 불안정한 강함이라는 뜻이고.

자신에게 맞는 길잡이가 있는 이상, 반대로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으니.

물론 어느 쪽이든 맨몸으로 몬스터를 상대하는 쪽보단 훨씬 나은 길이겠지만.

단지, 영약을 손에 넣은 헌터나 성좌의 선택을 받은 존재가 그렇지 않은 사냥꾼보다 무조건 강한 건 아니라는 뜻이다.

일종의 경험치 가속 시스템 내지 다음 단계에 오른 스스로의 힘을 미리 체험할 수 있는 권리라고 생각하는 게 현실적이겠지.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굳이 영약을 언급한 이유는 단 하나.

지금은 그런 힘조차 아쉬울 시점이기 때문이다.

상대는 신세계 질서.

족히 열 마리 이상 되는 고랭크 몬스터를 거느린 집단이니까.

"자, 다들 준비는 끝났고?"

그렇게.

던전 입구 앞에 서서 나는 녀석들을 주욱 하고 훑어보았다.

묻기는 했지만 사실 정말로 준비가 끝났는진 나로서도 알 수 없었다.

여하간, 이번 던전 공략은 녀석들에게 전적으로 일임하고자 결정했으니까.

지적하는 건 좋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탐사가 끝난 다음.

그리 판단한 탓이다.

때문에.

나는 시작하자마자 탄식하고 싶은 기분을 억지로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

'뭐야 이거.'

진심이었다.

왜냐하면 위장 크림을 바른 게 윤하 한 명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뭔데 이거?

내가 뒤에 있으니까 괜찮다고 생각한 건가?

그야 정말로위험한 상황이 닥치면 내가 나설 거라고 말이야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현장 뛰러 가는데 대다수가 풀메이크를 하고 있는 건 조금 이상하지 않나?

나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바로 어제, 나는 거의 반나절 동안자리를 비웠다.

즉, 녀석들에겐 이번 던전 공략을 위해 상의할 시간이자그마치 반나절이나 있었다는 뜻이다.

만약 저 풀메이크가 자기들 나름대로 상의한 결과라면?

무언가 의도가 있는데 내가 파악하지 못했을 뿐이라면?

어느 쪽이든, 이제 와서 내가 훈계하기엔 다소 멋쩍은 부분이 있었다.

뭐, 이번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적으로 맡길 생각이었고…….

"전원 끝났다면 더 이상 내가 할 말은 없다."

그렇게 입을 열자, 윤하의 시선이 번뜩 하고 나를 향했다.

진심이냐고 묻는 듯한 그 눈빛엔 나도 무어라 답할 말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윤하만 위장 크림을 바른 이유가 뭐야?

굳이 따지자면 전위는 모습을 숨길 필요가 제일 적은 포지션 아닌가?

혹시 이 녀석들이 윤하를 따돌리고 있기라도 한 건지.

만약 그렇다면 이 녀석들 전원 머리를 박아야 할 거다.

그런 마음을 담아 윤하를 보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잠시.

윤하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제 이마를 탁 하고 칠 뿐이었다.

아니, 뭔데.

나도 알려줘……!!

애초에 선생님은 너희가 갑자기 왜 화장을 한 건지도 잘 모르겠다고……!!

화장품 냄새로 뭔가 할 생각인가?

당장에 짐작할 수 있는 건 고작해야 그 정도 뿐이었다.

"시시콜콜하게 장구 검사 따위 할 생각도 없고. 다들 어떤 던전인진 대충 이야기 들었겠지?"

"동굴이요."

"그래. 동굴 계통 던전을 공략할 땐 과연 어떤 점을 숙지해야 할지, 잘 생각해보도록."

그 뒤로는 지지부진한 설명 뿐이었다.

만약 무슨 일이 생겨도 당황하진 마라.

내가 뒤에서 따라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도록.

단, 그렇다고 해서 너무 방심하면 안 된다.

이번 던전 공략은 어디까지나 너희들의 실력을 보기 위함이니까…….

그런 내 말에 녀석들은 엄숙한 태도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풀메이크 상태로 그렇게 행동해 봐야 어색할 따름이었지만.

참으로 낯선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강원도 지부 식인가?'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강원도 지부 측에서 무언가 따로 조언이라도 한 걸까?

입이 근질거리다 못해 거의 비뚤어질 지경이었지만, 어떻게든 억누른다.

그러나.

그런 내 속내는 녀석들이 취한 진형을 보고 다시 한 번 뒤집어지기 시작했다.

전위엔 신체 강화 계통 능력을 지닌 윤하와 물리 내성 및 격투기에 자신이 있는 지희를.

중위엔 어떤 거리에서도 대응할 수 있는 하연이와 만능인 티아마트를.

후위엔 거리를 두고 싸워야 하는 서아와 후방 대응이 가능한 예은이를.

진형 자체는 나쁘지 않았지만, 다소 전형적인 모양새였기 때문이다.

'어차피 이렇게 싸울 거라면 왜 위장 크림을 포기한 거지?'

나로서는 그렇게 묻고 싶을 따름이었다.

뭐, 어쨌든.

전형적인 진형이라 함은 곧 기본적인 진형이라는 뜻.

만약에 녀석들이 정말로 별다른 생각 하나 없이 메이크업을 지우기 싫었을 뿐이라 할지라도 최저한의 역할은 다할 수 있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렇게 믿고 싶었다.

"좋아, 출발!"

하지만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들은 일체의 망설임 없이 던전 내부로 발을 들이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잠깐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린 윤하 또한 이윽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따름이었으니.

그렇게.

계집애들의 모습이 동굴 속 어둠 너머로 사라진 직후.

나는 씁 하는 소리와 함께 혀를 차고 말았다.

"뭔가 불안한데, 이거."

사실대로 말하자면, 나는 이번 훈련에 대해 별다른 걱정을 하고 있지 않았다.

여하간, 이번에는 티아마트나 서아도 있었으니까.

무슨 일이 생길 줄 모르는 게 던전이라지만, 그런 최소한의 위협을 제외하면 문제가 생길 일도 없으리라 판단한 덕분이다.

때문에, 본래는 어제 녀석들이 무슨 준비를 했는지 강원도 지부를 들쑤시다 합류할 생각이었지만…….

이번에는 뭔가 촉이 구렸다.

그러므로.

조용히 기척을 죽인다.

발소리를 죽이고, 호흡도 낮게 깐다.

몸을 낮추고, 공기의 움직임을 계산에 넣어 팔다리를 조작한다.

그렇게.

녀석들이 동굴에 발을 들이길 5분.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시점에서, 나 또한 뒤늦게나마 그 뒤를 밟아 동굴 안으로 발을 들였다.

아무리 그래도 정말 대책 하나 없이 반나절 내내 놀기만 한 건 아니겠지?

그런 생각을 억지로 삼키면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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