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5화 〉 능력 측정
* * *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었다고 한다면, 말했다시피 강원도 지부엔 S랭크 몬스터가 없다는 사실이다.
아니, 나로서는 오히려 안타까운 일이긴 했지만.
그러나.
몇 번 언급했듯, 내 능력은 단순한 수치로 셈할 경우 대략 A+랭크 가량.
협회에 남은 기록이야 어쨌든, 강원도 지부 측에서 S랭크 몬스터를 믿고 맡기기엔 다소 미묘한 수치다.
허면 나는 당장 옆 던전에 S랭크 몬스터가 둥지를 틀고 있는 와중에도 그 이하의 몬스터나 상대하고 있었을 테지.
실로 최악의 상황이다.
"캬아아아악!!"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지금은 그리 크게 좋지도 나쁘지도 않았다.
다시 한 번 달려드는 몬스터의 목을 동시에 참수한다.
족히 아홉 개나 되는 머리가 하늘을 나는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그 위로 흩뿌린 잿가루에 맞추어 몬스터의 거체가 기우뚱 하고 무너진다.
쿠웅.
이걸로 족히 열 번째 몬스터 퇴치였다.
'존나 편하네.'
제일 먼저 든 감상은 역시 그런 쪽이었다.
지금 나는 강원도 지부 측 헌터들과 함께 미공략 던전을 쏘다니고 있었다.
훈련을 위해 안배한 던전과는 별도로, 사전에 위협이 될 만한 던전을 솎아내기 위해서였다.
내 입장에서 보자면 일종의 선금인 셈이다.
뭐, 나름대로 재미있기도 했고.
여하간, 강원도 지부가 골머리를 앓던 우두머리 개체는 대개 불사신.
모종의 조건을 갖추지 못할 경우 쓰러뜨릴 수 없거나, 그런 조건을 만족하기 극히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런 녀석들을 상대하는 데에 이골이 나 있었다.
단순한 무력이 부족했을 뿐이라면, 내가 온 시점에서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무언가 조건이 필요하다면, 평소처럼 거기에 맞춰 싸우면 된다.
거기에, 대다수 던전은 강원도 지부 측에서 이미 정보 분석을 끝낸 상황.
나로서는 마지막으로 숟가락만 얹으면 그만이었다.
물론 모든 던전의 정보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었던 건 아니다.
상황에 쫓겨 불사신 계통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만 눈치챌 수 있었던 던전 또한 부지기수라고 했었으니까.
실제로, 방금 전 돌았던 열 개의 던전 중에서도 두 개는 그런 부류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게는 별다른 문제가 되지 못했다.
예쁘게 베기.
내 시그니처는 모종의 가호 또한 무시할 수 있었으니까.
불사신 특유의 예비 목숨이나 소생 능력 따위를 활용한 죽은 척도 내 앞에서는 통하지 않고.
그대로 죽여버리면 그만이다.
뭐, 그렇다 쳐도.
이렇게 상쾌할 만큼 손쉽게 던전을 공략할 수 있는 건 틀림없이 강원도 지부 측에서 붙여준 헌터들 덕분이겠지.
정보도 있다. 대책도 마련되어 있다.
안내인도 있고, 자잘한 몬스터는 멋대로 처리해 길을 열어주고 있으니.
'이게 던전 공략……?'
정보 하나 없이 투신할 필요도 없다. 홀로 던전 내의 모든 몬스터를 상대해야 할 필요도 없다.
이게 던전 공략이라면, 여태까지 내가 했던 건 도대체……?
"엄청난 실력이십니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을 들자면, 이런 감상은 나만 느낀 게 아니었다는 점이다.
반나절 사이에 열 개.
강원도 지부 측에서 준비한 자료를 본 내가 처음으로 그런 목표를 제시했을 때.
현지 헌터들은 도저히 내키는 얼굴이 아니었다.
던전 공략이 무엇인지, 던전을 정면에서 공략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무엇 하나 모르는 초보자가 왔구나.
이번에도 어지간히 고생하겠군.
그렇게 생각하는 모습들이 눈에 밟힐 정도였다.
허나,내가 제시한 목표는 딱히 허황된 게 아니었다.
그야 나 혼자였다면 말도 안 되는 목표치였겠지.
하지만.
'할 수 있다.'
강원도 지부가 제공할 수 있다는 정보와 지원을 보고 나는 그렇게 판단을 내렸다.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반나절.
고작해야 반나절 사이, 우리들은 강원도 지부를 괴롭히던 던전을 열 개나 공략할 수 있었으니까.
아니, 우두머리가 무적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별로 눈에 띄는 특징 하나 없는 던전도 있었으니 가능한 일이었지만.
"여태까지 몇 번 S랭크 헌터를 본 적이 있지만, 이토록 전문적인 사냥꾼은 없었습니다."
"쪽팔리게 무슨."
"아뇨, 진심입니다. 도축업자라는 이름은 허명이 아니었군요."
"그건 조금 허명이었으면 좋겠는데."
나도 모르게 그리 툴툴거리자, 주변에서 왁자지껄한 웃음이 터져나왔다.
거 참, 신났네 신났어.
물론 그럴 법도 했다.
반나절 사이에 열 개의 던전을 공략한다는 강행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망은커녕 제대로 된 중상 하나 입은 헌터가 없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보기에도 말이 안 되는 전공이었다.
강원도 지부 출신 헌터들은 그만큼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지나칠 정도로 태백산맥 내에서의 싸움에 특화된 모습은 없잖아 있었지만.
뭐, 충분하고도 남을 정도다.
"자기가 A랭크랍시고 거들먹대면서 정작 몬스터 발자국 하나 못 쫓는 헌터들도 부지기수인데 말이죠."
"나도 나름 사냥꾼 짬은 먹었으니까."
"예. 덕분에 안심할 수 있었습니다."
"안심은 무슨. 대장!! 이 새끼 대장이 발자국 찾을 때 좆도 모르면서 아는 척만 한다고 궁시렁……."
"내가 언제, 씨발아!!"
"잘들 논다, 잘들 놀아."
어느덧 나를 대장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헌터들의 모습에 실소를 흘리며 병을 딴다.
이번에 강원도 지부 측에서 지급한 마력 포션이었다.
심지어 진짜.
마력은 대기와 접촉하면 순식간에 기화하는 성질이 있다.
때문에, 시중에서 통용되는 마력 포션은 사실 마력 회복을 촉진하는 각성제 역할인 게 부지기수였다.
아니면 사용자의 체력을 깎아 억지로 마력을 보충하는 식이던가.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지금 내가 마시고 있는 마력 포션은 진짜배기였다.
복용자의 마력과 순식간에 융화될 수 있도록 가급적 성질을 제거한 고순도의 마력 용액.
실질 유통기한이 반나절이나 되면 다행이라는 점에서, 가격 이전에 솔로 헌터라면 사용하기 힘든 물건이다.
반나절 단위로 포션을 사러 돌아갈 순 없는 노릇이니까.
'최전선이라고는 해도, 이런 물건을 보급 받을 수 있는 건가…….'
헌터 사회의 계급 격차를 엿본 기분이었다.
자영업자 헌터 다 죽겠다, 이 놈들아!!
"대장. 그런데 아까 그 마법은 뭡니까? 난생 처음 보는 건데요?"
"아, 이거?"
그렇게 말하며 적당히 주변 어귀를 향해 손가락을 겨눈다.
다음 순간.
파파팍!!
내가 가리킨 흙무더기가 멋대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눈이 좋은 녀석이라면 알 수 있겠지.
방금 전 내가 취한 행동은 말 그대로 마법.
마력을 발사하거나 보이지 않는 마력의 칼날 따위를 휘두른 게 아니라는 사실을.
그래.
이게 내가 평소운 박사의 연구소에서 약탈한 세 번째 마법.
"던전 파괴용 마법."
지형 붕괴다.
본래는 타인이 사전에 점거한 영지를 빼앗는 용도로 개발한 마법이었던 모양인데…….
평소운 박사의 마법이 으레 그렇듯이, 지나칠 정도로 빈틈이 커서 사용하기 힘들었다.
아니, 개인 단위에서 사용할 수 있는 영지 약탈 마법이라 생각하면 그야 획기적이지만.
'사용에 여섯 시간은 걸리는 물건이었고.'
열 두 시간에서 여섯 시간으로 줄었다 하면 그야 획기적이긴 하겠지.
다만, 실시간으로 사용하기엔 무리가 있었을 뿐이다.
때문에.
나는 이 마법 또한 억지로 경량화했다.
풍수도참 특유의 스케일을 축소한다.
용맥에 접속해 발동하는 공정을 대폭 생략한다.
대상을 나와 그 외의 누군가로 한정한다.
그렇게.
평소운 박사의 대규모 마법.
풍수도참에 근거해 상대가 점거한 마법적 영역을 내게로 기울이는 마법은, 거의 환골탈태 수준으로 바뀌었다.
즉, 내가 지정한 장소에 깃든 타인의 마력을 억지로 유폭시키는 식이다.
대상의 마법적 영역을 빼앗는 게 아니라, 일부를 자괴시키는 셈일까.
내가 손에 넣은 세 가지 마법 중에서도 원본과 가장 거리가 먼 물건이었다.
뭐, 나는 마법사도 아니고.
던전의 핵심 영역을 공략하는 데엔 이 정도면 충분하다.
아군 진지일 때?
안 쓰면 되지.
"어쩐지. 던전 공략할 때 편리해 보이더라고요."
"하긴. 세 번째 던전 기억하냐? 그 새끼, 몸으로 막을 수도 없어서 억울해 뒤지겠는 모양이더라."
"알려줄까?"
"예? 막 알려주고 다니셔도 됩니까, 그거?"
"뭐 어때. 어차피 나도 불법 연구소 털어서 얻은 건데."
"그래도 수강료 정도는 드려야죠."
"수강료는 무슨. 됐어, 인마들아. 넣어 둬, 넣어 둬."
"아뇨. 이런 데니까 더더욱 제대로 해야죠. 돈 문제로 해산하는 파티가 얼마나 많은데."
그렇게 말하며 자기들끼리 이번 마법에 어울리는 가치를 매기고 자빠졌으니.
그 모습을 보며 피식 하고 웃음을 터트리기도 잠시.
'오랜만이네, 이런 분위기.'
어쩐지 현역 시절로 돌아온 기분이었다.
별다른 근거는 없지만, 앞으로 있을 훈련도 다 잘 되겠지.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는 오후였다.
*
이건 망했다.
황윤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있을 훈련 때문이었다.
여름방학 당시와 마찬가지로, 박우찬은 이번에도 저번과 같은 여섯 명을 불렀다.
그리고 이번엔 자신 또한 참관하되 이 쪽의 힘만을 이용해 던전을 공략하도록 할 생각이라 밝혔다.
황윤하가 보기에, 커리큘럼 자체는 썩 나쁘지 않았다.
여하간, 여름방학 당시에도 그들은 귀수산 위에 자리잡은 요호들의 둥지를 공략한 바 있었으니까.
다만.
당시엔 그녀들 사이에 있었던 능력적 차이가 지나칠 정도로 컸다.
나름대로 나쁘지 않은 파인 플레이 또한 여럿 있었지만, 딱 거기까지.
실질적으로 두 명의 교생에게 의존하는 식이었지.
그런 만큼, 다시 한 번 던전을 공략할 기회가 주어진다는 건 그녀로서도 고마운 일이었다.
무엇보다, 담임인 박우찬이 실수한 걸 되짚어준다는 건 더더욱.
일전의 초대형 게이트 발생 당시.
수많은 구울들과 맞서 싸우며 성장한 덕택일까?
황윤하는 자신의 실력이 나날이 증가하는 감각에 이제 막 맛을 들린 참이었기 때문이다.
조건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박우찬이 참관을 위해 따라붙는 시점에서 정말로 목숨에 위협이 되는 일은 아무래도 적을 테고.
학생들 측의 실력도 올랐다.
저번 여름방학에 비하면 오히려 훨씬 나은 조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문제는 조건이 아닌 내부의 관계 쪽이다.
가장 먼저, 이예은.
이 녀석이 제일 글러먹었다.
황윤하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왜냐하면 방금 전부터 책을 한 번 볼 때마다 창밖을 향해 족히 10분 이상은 시선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칠 정도로 딱딱한우등생이었던 이예은이라곤 도저히 생각하기 힘든 태도였다.
본디 이예은이라면 강원도 지부 측에서 제공한 책자를 완전히 독파하기 전까진 숙소 밖에 얼씬도 하지 않았겠지.
그렇지만.
당장 눈 앞에 있는 모습은 영웅의 여동생이 아니라 숫제 사랑하는 소녀와 다를 바 없었다.
마찬가지로 사랑하는 소녀인 황윤하 또한 알 수 있었다.
이예은의 저런 태도는 지금 자리를 비우고 있는 박우찬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란 사실을…….
'우욱, 씹.'
사랑하는 소녀는 무슨.
황윤하는 자신도 모르게 무심코 떠올린 서술에 고개를 저어 부정했다.
허면, 다른 친구들은 어떨까 싶어 살피면 다음으로는 자하연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제일 먼저 담임인 박우찬에 대한 마음을 드러낸 소녀.
다만, 지금은 어째서인지 마음이 콩밭에 간 듯 멍하니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뿐이다.
'저건 또 왜 저래?'
황윤하로서는 알 수 없는 이야기였다.
문제는 이럴 때 학생들을 다잡아야 할 교사들 또한 마찬가지였다는 점이다.
"박우찬 그 녀석은 언제 돌아오는 게냐?"
아예 처음부터 숙소 바닥에 배를 깔고 뒹굴거리는 티아 언니.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황윤하 또한 티아마트에게는 조금도 기대하지 않았다.
저 사람은 어쩐지 학생들을 이끌긴커녕 가족 한 명 못 가르칠 것 같았으니까.
거침없는 험담과 함께, 지희는 다음 타자로 시선을 돌렸다.
본래 여기서 학생들의 분위기를 환기시키는 건 신서아의 역할이다.
그리고 황윤하는 그런 신서아의 훈계 밑에 깔린 질투심을 얼추 읽을 수 있었다.
즉, 평소야 어쨌든 이런 상황에서 저 선생은 진심으로 학생들을 훈도하는 게 아니다.
단순히 학생들이 담임인 박우찬을 향해 발산하는 감정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거기에 제동을 걸고자 움직이는 셈이다.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좋다.
제 역할만 다하면 그만이고.
문제는 정작 신서아 또한 이번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는 점이다.
사표를 냈기 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요 최근 박우찬이 자신을 의식하는 모습에 모종의 만족감을 손에 넣은 탓일까.
어느 쪽이든, 작금의 신서아는 그런 학생들의 반응을 코웃음 한 번으로 비웃고 넘어갈 따름이었다.
물론 황윤하가 보기엔 그렇게 웃어넘길 상황이 아니었다.
'아니, 나 빼고 아무도 던전 공략 준비 안 하고 있잖아.'
심지어 류지희 또한 마찬가지였다.
애시당초 이런 감정 변화에 가장 민감한 게 바로 몽마 혼혈인 그녀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누군가 담임과 진도를 나갔다는 사실에 애가 타는 걸까.
방금 전부터 의자를 붙들고 온 몸으로 들썩이는 꼴이 퍽 꼴사나웠다.
이제 와서라도 주의를 주는 게 좋을까.
그렇게 생각하기도 했지만, 황윤하는 도저히 군기를 잡는 자신의 모습 따위를 상상할 수 없었다.
때문에.
도대체 담임은 요 며칠 사이 무슨 일을 벌인 거냐고 투덜거리기도 잠시.
누구 하나 이런 상황을 지적하는 일 없이, 다음 날이 밝고 말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