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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84화 (184/371)

〈 184화 〉 능력 측정

* * *

그렇게.

몇 가지 불안 요소를 품고, 우리들은 강원도 지부에 도착했다.

오랜만에 보는 강원도 지부는 역시 별세계처럼 느껴졌다.

울창한 숲. 준엄한 산맥.

바야흐로 야생의 총화라 해야 할 광경 한 가운데에 우뚝 솟은 건물의 모습은 지나칠 정도로 위화감이 강했기 때문이다.

"어서 오십시오.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자, 안으로."

"앗, 예."

물론 그 이상으로 위화감이 있었던 건 강원도 지부 측 사람들의 반응이었지만.

썩 친밀한 태도.

뭐, 이해할 수는있다.

그 때는 나 또한 아카데미의 교사진으로서 학생들을 인솔해강원도 지부를 방문한 상황이었으니까.

게다가 그 목적은 어디까지나 헌터 협회의 이미지 신장.

반드시 필요한 행동이라는 건 강원도 지부 측 사람들도 동의했겠지만…….

'내키지는 않았겠지.'

요컨대 선거철마다 찾아드는 정치인을 맞이하기 위해 차출된 최전방 부대였던 셈이다.

당연히 짜증났겠지.

수많은 던전이 도사리고 있는 태백산맥 입구에서 병아리들을 가르쳐야 하는 판국이었으니.

만에 하나 문제가 생기기라도 하면 그 책임 소재는 강원도 지부에 달렸을 테고.

최전선에서 구르는 헌터들이라 해도 바보는 아니다.

그야 중앙 쪽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주장할 테고, 실제로도 사실이겠지만.

강원도 지부 쪽에서는 영 내키지 않을 수밖에.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커리큘럼을 구성한 강원도 지부의 헌터들이 존경스러울 따름이었다.

만약 나였으면 그대로 판을 뒤집으려 들었을 것 같은데.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이번에 우리들이 방문한 건 협회 측에서 획책한 계획 따위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자원 봉사.

강원도 지부 측의 공문을 보고 자발적으로 참가한 재능 기부자들인 셈이다.

저들로서도 반응이 남다를 수밖에 없겠지.

여하간, 요 몇 년 사이 공문을 보고 참여하는 헌터 따위는 단 한 명도 없었을 테니까.

그렇게 우리들이 탄 차 근처까지 다가온 헌터.

허나, 그 표정이 삽시간에 미묘해졌다.

그야 그럴 만도 했다.

탁,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린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만 해도 차 안에 갇혀 있던 이 쪽 인원들이 우르르 쏟아져내렸다.

"어우, 대박. 완전 갑갑했잖아, 나."

"선생님, 차 한 대 새로 뽑으시면 안 돼요?"

"얘는, 얘는. 무슨 차 뽑으라는 말을 지나가듯 말하네."

꺄르륵, 가벼운 웃음소리가 발랄하게 퍼진다.

머잖아 던전에 발을 담글 헌터 집단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청량한 음색.

차라리 걸그룹에 가까운 비주얼이었다.

실제로도 그랬다.

단순한 외모 평가는 아니었다.

정부의 적극적인 포장 정책에 의해 헌터들이 아이돌 비슷한 입지에 오른 건 그야 부정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나.

당장 눈 앞에 펼쳐진 총천연색 머리카락들을 보고 있으면 그런 감상이 드는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쟤네 머리카락만 모아도 무지개 만들 수 있겠네.'

나로서는 그런 감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우리들을 맞이하기 위해 나온 현지 헌터 또한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일곱 명. 이게 전원인가요?"

"그렇수."

"……선생님을 제외하면 전부 여성이구요."

"그렇게 됐수."

만약 눈 앞의 헌터가 고작해야 일곱 명밖에 안 되는 인원수에 실망을 표했다면 나 또한 이해할 수 있었겠지.

혹시 여기가 학생들 놀이터인 줄 알고 있냐는 식으로 시비를 걸었다면 실력을 증명할 필요가 있었으리라.

하지만.

눈 앞의 여성 헌터가 나를 바라보는 눈은 숫제 쓰레기를 보는 듯한 눈이었다…….

'씨발.'

질끈 눈을 감는다.

물론 예상이야 할 수 있었다.

그야 이런 상황이니까.

실력 등과 별개로 지금 이 모습은 무어라 말하기 힘들 테지.

굳이 여학생들만 데리고 온 건가?

아니면 처음부터 놀러 올 생각이었나?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으리라.

다만, 나로서는 변명하고 싶었다.

애초에 계집애들만 부른 게 아니다.

최승준이나 이준구는 물론, 남상원까지 불렀으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내 목적은 보호자들에게 학생들 관리를 떠맡기는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미쳤나?]

[예은이가 기분 나쁘대.]

[지희한테 원망 받을 일 있나?]

정작 내가 초대를 돌린 남정네들은 단 한 명도 이번 부름에 응하지 않았다.

개새끼들아.

"일단, 숙소까지 안내해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행스럽게도, 헌터 아가씨 또한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그 뒤를 털래털래 따르며, 나는 내심 한숨을 삼켰다.

어쩐지 오늘따라 배려가 뼈에 사무치는 날이었다.

*

의외라면 의외였지만, 처음부터 내 호출을 무시한 남정네들을 제외하면출석률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것보다, 우리가 집결한 모습을 보자마자 줄행랑친 문영석 박사만 빼면 사실상 100%였다.

[죄송합니다만, 조퇴하도록 하겠습니다. 속이 안 좋아서.]

[아니, 박사님? 방금 전 도착하신 거 다 봤는데요.]

[도대체 저한테 왜 그러시는 겁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기대 이상의 성과였다.

왜지?

막말로, 요즘은 스포츠물에서도 낡았다며 기피하는 강화 합숙이다.

설마 요 계집애들이 전부 모일 거라곤 생각도 못 했었는데.

'혹시 친구가 없나?'

걱정스러울 따름이었다.

뭐, 어쨌든.

덕분에 나로서는 안심할 수 있었다.

서아는 부루퉁하니 화를 내긴 했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훈련의 필요성은 인정했다는 뜻이었다.

던전 공략.

사실 우리 꼬마들에겐 낯설지 않은 주제다.

여하간, 여름방학 당시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으니까.

귀수산.

그 자체가 하나의 요새나 다름없던 요호들의 둥지.

비록 임시 거처에 가깝다는 한계야 있었지만, 나름대로 훌륭한 경험이었으리라.

다만, 그 때 나는 따로 우두머리를 사냥하고 있었으니.

이번에는 다르다.

우두머리 사냥을 학생들에게 맡기는 건 물론, 이번엔 각자의 보완점 등을 중심으로 지적할 생각이었으니까.

한 마디로, 말마따나 단순한 던전 공략이 아니라 던전 공략을 통한 훈련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일단 우리 학생들의 실력을 검증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상상 이상이군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나를 환멸하고 있던 강원도 지부 소속 헌터 또한 이번엔 순수한 감탄을 토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얼마 전 우리 아카데미는 강원도 지부를 방문한 적이 있었다.

그 때.

학생들에게 지부 내의 시설을 과시하기 위해 강원도 지부는 이러한 시설을 전면 개방했다.

물론 스케줄 상 이용할 수 있는 시설들은 어느 정도 한정되어 있었지만.

어쨌든, 당시 학생들의 능력을 측정한기록은 아직도 강원도 지부 내에 남아 있었다.

딱히 무슨 이유가 있어서 보관하고 있었던 건 아니고, 처분할 시기를 놓친 탓이겠지만.

덕분에 강원도 지부 측 직원들 또한 지금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결과가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 실감할 수 있었으리라.

"어때요?"

가장 현저한 능력 향상을 이룩한 건 역시 예은이었다.

당시 강원도 지부에 남은 기록을 토대로 파악할 수 있는 예은이의 순수한 실력은 대략 C­랭크.

전술을 고려하면 B­랭크 헌터에 가깝다.

생도로서는 충분히 합격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

오히려 기대치 이상이다.

그렇지만.

지금 예은이에 비하면 아무래도 그조차 부족한 평가라는 말을 피할 수 없으리라.

B랭크.

현 예은이의 능력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그 정도일까.

본디 문제가 되었던 능력 행사에 익숙해진 건 물론이요, 판단 또한 낭비가 없다.

예의 거룡을 상대한 경험 덕분일 테지.

극한 상황까지 갈고닦은 능력. 그렇게 날을 세운 능력을 적절하게 운용하기 위한 방법.

자신의 능력으로 상대할 수 없는 적에게 응전하고자 궁리한 경험이 그대로 실력에 반영되었다고 해야 할까.

단순한 반사 신경은 물론이요, 부족한 임기응변까지 어떻게든 보충한 느낌이다.

지금 이 실력을 유지할 수만 있다면 즉각 현역으로 데뷔할 수 있겠지.

못해도 B랭크는 너끈히 받을 수 있으리라.

"예이!"

지희 또한 마찬가지였다.

애시당초 혼혈로서의 능력을 억누르고도 그럭저럭 상위권에 속하던 지희다.

현장학습 당시엔 혼혈이라는 사실도 들통난 직후였지만, 아무래도 거부감은 있었을 테지.

그렇지만 요 몇 달 사이 지희는 자신의 능력에 익숙해질 시간이 있었다.

거기에 여왕급 몽마의 마력까지 손에 넣은 지금, 지희의 실력 또한 예은이에게 뒤지지 않았다.

"읏차!"

물론 단순한 성장세로 따지자면 제일 가파른 건 역시 윤하였다.

별다른 경험 하나 없이 무작정 아카데미의 문을 두드린 탓일까?

사실대로 말하자면, 학기 초 윤하의 성적은 거의 밑바닥에 가까웠다.

다만.

최승준이 억지로 A반에 쑤셔 넣은 걸 보면 알 수 있듯이, 자질 자체는 처음부터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윤하는 그렇게 부족한 경험을 채우고도 남을 상황에 직면했다.

즉, 요 최근 있었던 초대형 게이트 발생이다.

듣기로는 당시 여타 헌터들과 함께 힘을 모아 구울들을 상대로 맞서 싸웠다던가?

안 그래도 기초치는 착실하게 다지고 있던 윤하다.

대략 C랭크에 준하는 몬스터인 구울들의 공격을 받아내기 위해 능력을 한계 이상으로 운용한 결과.

윤하의 방어 능력은 이미 현역 헌터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통용될 만큼 현격한 상승세를 손에 넣었다.

여기에 더해 본격적인 실전까지.

모르긴 몰라도, 현재 윤하는 C랭크 헌터들 사이에서도 별다른 문제 없이 전선을 유지할 수 있겠지.

하연이와 서아 또한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하숙집 방어전을 지휘하며 아는 몬스터만 알고 있다는 단점을 어느 정도 극복한 서아.

애초부터 나한테 가르침을 받을 기회가 다른 아이들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하연이.

둘다 A랭크 내지 C랭크.

파티 내에 어느 정도 등급 차등이 있긴 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운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오히려 하연이 쪽이 조금 걱정인데.'

김민철 등을 참고한 덕분일까?

전법 등에 문제는 없다.

정일현 선생님의 가르침 덕분에 본격적으로 체술을 배울 수 있었던 점도 플러스가 되겠지.

그렇지만, 정작 능력 쪽에 별다른 성장이 없으니 원.

어쩐지 주춤거리는 기색으로 마력을 다듬는 하연이의 모습을 보고 있으면 일목요연한 일이었다.

다른 학생들의 능력을 보고 위축된 탓이겠지.

아니, 꾸준한 성장으로 C랭크 부근에 도달한 하연이의 능력도 부족한 수준은 절대 아니었지만.

오히려 객관적으로 보았을 땐 충분히 훌륭한 성적이다.

물론 당사자가 느끼기엔 다를 수밖에 없겠지만…….

그런 점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조금 고민하고 있자니, 문득 내 옷소매를 꾹꾹 하고 잡아당기는 손길이 있었다.

"본인은? 본인은?"

"넌 원래 그렇잖아, 개년아."

"아악."

장갑을 낀 손으로 티아마트의 이마를 밀어낸다.

전 B랭크, 현 A+랭크.

그야 성과만 보자면 괄목할 만한 성적이었지만, 녀석의 정체를 알고 있는 나로서는 오히려 귀찮을 뿐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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