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3화 〉 겨울방학
* * *
당연한 이야기지만, 강원도 지부의 허락을 받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헌터 협회, 강원도 지부.
작금의 대한민국에 있어 사실상 최전선이나 진배없는 장소.
비록 요 최근 수도권에서 발생한 초대형 게이트 때문에 주목이 쏠리긴 했지만, 그 본질은 여전히 변함없다.
남한 전 지역에 걸쳐 몬스터 활동이 가장 활발한 장소.
그런 장소를 고작해야 학생들 몇 명의 훈련을 위해 대절할 순 없는 법이다.
아니, 설령 나나 서아라 해도 마찬가지겠지.
단순한 연습을 위해 땅 몇 마지기 빌려주시오 하고 말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강원도 측에 양해를 구할 수 있었던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실력.
최소한 주변 던전을 깔짝거리다 비명횡사하진 않겠지 싶은 확신이 있어야 한다.
가장 기초적인 부분이다.
그야 갑자기 누가 강원도 지부 근처에서 죽었다는 이야기가 나오기라도 해 봐라.
당연히 책임은 강원도 지부 측이 덮어쓰기 마련이다.
설령 강원도 지부 측에 책임 소지가 없다 해도 마찬가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강원도 지부 측이 제대로 일을 안 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니까.
둘째는 인맥.
일전 현장학습 당시 발생한 스탬피드를 해결하는 일에 손을 보탰던 덕분일까?
어느 쪽이든, 강원도 지부의 여론은 내게 다소 호의적인 편이었다.
마지막으로 셋째는 형식이다.
즉, 이번 내 행동은어디까지나 적법한 절차에 따른 움직임이었다.
단순히 내 명성이나 인맥 따위를 방패로 삼아 억지로 밀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여기에는 강원도 지부가 상시 내걸고 있는 공모가 연관되어 있었다.
[태백산맥 공략을 위한 헌터 모집 중!]
강원도 지부는 언제나 그런 공모를 내걸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효과를 기대할 수는 없었다.
제 2차 대침공이 종식되길 어언 3년.
저런 공모를 보고 강원도 지부에 투신할 만한 사람은 이미 몸을 담그고 있을 테니까.
그렇지 않은 헌터들이야애초에 별다른 관심도 없을 테고.
말 그대로 혹시나 하는 기분에.
혹은,여전히 강원도 지부가태백산맥 탈환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증거로써.
강원도 지부는 아직도 저런 공모를 남겨두고 있었다.
내가 노린 건 바로 거기에 있었다.
던전 공모.
'여기에 편승하자.'
다시 말해, 나는 던전을 공략한다는 명분으로 강원도 지부에 방문할 생각이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던전 공략 자체를 훈련으로 삼을 생각이었다고 해야 할까.
물론 쉬운 일은 아니겠지.
던전이란 곧 몬스터의 영역.
설령 주축이 되는 몬스터의 랭크가 시원찮다 해도 공략에 힘이 드는 건 마찬가지다.
아니, 어지간한 고랭크 헌터라 해도 저랭크 몬스터의 던전에 발목이 잡혀 쓰러지는 건 드문 일이 아니었다.
그야 그렇지 않겠는가.
똥개라 해도 제 앞마당에선 반은 먹고 들어가는 법이니.
다만, 그건 강원도 지부 또한 마찬가지다.
태백산맥 내의 던전이라면 강원도 지부가 꽉 쥐고 있는 형편이었으니.
애초에 강원도 지부가 파악하고 있는 태백산맥 내의 던전들은 한둘이 아니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원도 지부가 태백산맥 탈환에 나서지 않는 이유는 여러모로 짐작할 수 있었다.
시간이 없어서.
자원이 부족해서.
생태계 밸런스를 위해서.
우선해야 할 지역이 아니라서.
마찬가지로, 공략해야 한다는 판단이 섰지만 단순하게 힘이 부족해서 포기한 던전도 부지기수일 테지.
내가 노리는 건 바로 그런 쪽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강원도 지부의 헌터들은 전체적으로 질이 높았다.
태백산맥 전역을 장악 및 제어하기 위해선 다수의 고랭크 헌터가 필요할 테니까.
여기서 중요한 건 고랭크 헌터가 아니다.
다수의 헌터라는 표현 쪽이다.
태백산맥은 넓고, 그 이상으로 깊다.
한반도의 등줄기라 불리는 태백산맥 전역을 관리하기 위해선 당연히 압도적인 숫자의 인력이 필요하겠지.
최소한 태백산맥 던전 내에서 죽지 않고 귀환할 수 있을 실력까지 있으면 금상첨화일 테고.
틀린 건 아니다.
오히려 정답에 가까운 대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아주 가끔씩이라고는 해도, 몬스터를 공략하기 위해선 단순한 무력이 필요할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용.
자신과 대등히 맞겨룰 수 있는 실력자가 아니라면 감히 그 앞에서 의식을 유지할 수도 없다는 용의 안광Fear.
소위 말하는 드래곤 피어로 대표되는 부류다.
때문에.
자신은 이번 기회를 틈타 저런 식으로 공략 불가 판정이 내려진 던전을 순회할 생각이었다.
당장 강원도 지부에 속한 S랭크 헌터는 없다.
태백산맥 내에 둥지를 튼 몬스터 중 S랭크 몬스터가 없었던 탓이다.
아니, 그야 저만한 거물이 있었다면 정부도 어떻게든 처리하려고 나섰을 테니까.
필시 전국 팔도의 헌터들이 몰려들었을 거다.
그런 만큼 강원도 지부에 S랭크 헌터가 없다는 건 실로 당연한 이야기였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S랭크 헌터는 어디까지나 최중요 전력.
정부의 무력으로도 대처할 수 없는 괴물들을 쓰러뜨리기 위한 최종 전선이다.
태백산맥 탈환이라는 목표 또한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아무리 그래도 S랭크 헌터를 움직일 수는 없었다.
언제 탈환할 수 있을지 별다른 확신도 없고.
그렇게 차도 하나 없이 방치된 던전을 노리고 파고든다.
강원도 지부로서는 오래 묵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어서 좋고, 우리 애들은 연습 장소를 빌릴 수 있어서 좋고.
나는 겸사겸사 몬스터들을 썰어댈 수 있어서 좋고.
바야흐로 일석 삼조다.
거기에, 연습이라지만 학생들 쪽도 대충 넘길 생각은 없으니.
이번 실습 목표는 던전 공략.
실제로 강원도 지부 내에 방치되어 있는 적절한 던전 중 일부를 학생들과 함께 추가 공략할 생각이다.
다시 말해, 강원도 지부로서는 나와 우리 꼬마들.
두 팀 분량의 던전을 손도 대지 않고 해결할 수 있는 셈이다.
이 정도면 저 쪽에서 양보할 만도 하겠지.
이처럼, 나는 겨울방학 일정에도 진심이었다.
비록 당황한 통에 강원도 지부라면 근처에 스키장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말이나 주절거리는 처지였긴 했지만.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직히 말하자면 서아의 시선을 돌리기 위한 면피성 발언에 지나지 않았던 근처 스키장.
쓰레기 같은 발언이긴 했지만,그 일정을 진지하게 찾아보고 있는 데에는 한 가지 다른 이유가 더 있었다.
즉,저번부터 묘하게 하연이의 반응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예의 초대형 게이트 발생부터 지금까지 줄곧.
다소 어색하다고 해야 할까?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아니, 침착하게 생각해 보면 당황할 일 투성이이긴 했지만.
그야 눈 앞에서 게이트가 열린 건 처음일 테고.
'으음.'
어쩌면 자신 탓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자책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신세계 질서 녀석들의 소행이니만큼.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든 기분을 풀어주는 게 좋겠는데…….
"사부, 나랑 쇼핑하고 있는데 다른 여자애들 생각하지 마."
"따, 딱히 그런 적 없는데?"
"정말?"
"……미안."
*
결론만 말하자면, 자하연은 바보가 아니었다.
언제나 멍한 태도이긴 했지만.
박우찬의 추측처럼, 마음이 아픈 건 사실이다.
자신 때문에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게 아닐까 하는 의혹 또한 있다.
그렇지만.
설령 그렇다 해도 자하연은 그런 단락적인 마음으로 행동에 나설 만큼 어리석지는 않았다.
자신의 목숨 운운하는 이유 이전의 문제다.
만약 그녀가 지금 이대로 자리를 비우기라도 하면?
어디까지나 저 쪽에게 좋은 일이 될 뿐이겠지.
제 3차 대침공.
신세계 질서라 자칭하는 집단은 그런 말도 안 되는 목표를 획책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비현실적인 계획의 중심이 되는 게 바로 그녀.
헌데, 이런 상황에서 만약 자하연이 모습을 감춘다면 어떻게 될까?
신세계 질서 쪽에서는 쌍수를 들고 환영할 테지.
박우찬 등을 피해 그녀와 접촉할 기회를 손에 넣는 셈이니까.
하물며, 소환 등의 마법에 있어 제물은 굳이 살아있을 필요가 없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죽여 가공하는 쪽이 소재로서의 가치는 훨씬 더 높다.
때문에.
이제 와서 그녀가 말 한 마디 없이 사라지거나 자살해 저들의 손에 시체가 넘어갈 경우.
오히려 이 사회는 갑작스러운 제 3차 대침공을 맞이할 가능성이 있다.
더 큰 피해로 이어지는 셈이다.
그런 만큼, 그녀가 요 최근 위축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건 모종의 죄책감 때문이 아니었다.
보다 직접적인 이유.
즉, 그녀는 무언가 이상한 기미를 느끼고 있었다.
예의 초대형 게이트가 열렸을 때부터 마신이라 불리는 존재가 회장을 습격한 바로 그 때까지.
모종의 그리움?
혹은 즐거움이라 말해야 할 감각이 스스로에게서 느껴졌던 탓이다.
만약 그 뿐이었더라면 당황하고 말았을 테지.
단순한 착각이라고.
예의 조직의 노림수가 이런 감정의 동요를 유발하려는 쪽일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스스로를 다독였으리라.
그러나.
자하연은 슬며시 손가락을 펼쳤다.
그 위로 또아리치는 검은 마력.
저주.
자하연이 각성한 능력이었다.
다만.
그 능력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략 D랭크 가량.
솔직히 말하자면, 미약하기 짝이 없는 수준이었을 터.
그렇지만 지금 자하연의 손가락 위에서 맴도는 마력은 그렇게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농밀했다.
못해도 B랭크는 되지 않을까?
자하연은 스스로의 마력을 그렇게 어림했다.
단순한 과대 평가는 아니었다.
여하간, 저런 평가를 들었던 이예은의 마력과 비교한 끝에 내린 결론이었으니까.
공교롭게도, 순수하게 기뻐할 수는 없었다.
헌터로서의 재능은 있다.
박우찬은 그렇게 말해주었지만, 지금 그녀의 손끝에서 메아리치는 마력은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도시의 하늘 위로 열린 문.
그 너머로 강림한 용.
그리고.
"쉬잇."
……저 멀리 아득하기 짝이 없던 게이트 저편에서 속삭이던 목소리.
자하연의 능력이 싹트기 시작한 건 바로 그 때부터였다.
마치 막혔던 혈도가 뚫리기라도 한 듯 폭발적인 성장.
예의 마신과 마주했을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녀는 마신의 능력에 당한 것이 아니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신의 능력에 당해 쓰러진 직후.
자하연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마신의 능력을 뿌리칠 수 있었다.
어째서일까?
본인도 알 수 없었다.
마치 역으로 마신의 마력을 잡아먹은 듯한 감각이었다.
실제로, 그 이후 그녀의 마력은 한 단계 더 높은 경지에 올랐었으니까.
박우찬이 내렸던 평가에 따르면, 자하연의 능력은 D랭크.
체술과 조합할 경우 한시적으로 C랭크에 가깝다는 평이었음을 고려해 보면 바야흐로 장족의 발전이었다.
오히려 지금은 전술이 능력에 끌려가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말하자면, 고작해야 한 달 사이 그녀의 마력은 두 단계나 더 상승한 셈이었다.
명백히 비정상적인 상황이다.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자신과 신세계 질서 사이에는 모종의 관계가 있으리라고.
그렇지만, 이렇게 눈 앞에서 느껴지는 체감은 역시 처음이었다.
낯설다.
'나는, 뭐지?'
자신이 낯설다.
자하연은 그렇게 생각했다.
촉매.
저들의 목표 되는 제 3차 대침공을 일으키기 위한 번제물.
그 정도는 짐작하고 있다.
다만.
이 시점에서, 자하연은 드디어 본질적인 문제와 마주할 자격을 손에 넣었다.
즉.
자하연이 촉매라는 사실은 알겠다. 모종의 번제물로 선택되었음이 틀림없다.
허면.
자신의 어떤 부분이 제 3차 대침공을 일으키기에 충분한 촉매가 될 수 있으리라고 신세계 질서는 파악했던 것인가.
자하연이라는 개인의 무엇이 규격 외 등급 몬스터를 불러내기에 적합하단 말인가.
자하연은 처음으로 그런 사실을 자문할 기회를 얻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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