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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81화 (181/371)

〈 181화 〉 무대 뒤편 이야기

* * *

그리고.

"최승준!! 최승준!!"

파티가 끝난 직후.

태연한 얼굴로 학생들과 작파한 나는 그대로 뒤로 돌아 최승준의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매달렸다.

"우왁."

방금 전까지만 해도 태연하게 다른 기업 사장님들을 상대하고 있던 최승준이 그런 기성을 내뱉었다.

여러모로 처리해야 할 일들이 널려있던 탓일까.

눈 밑으로는 피로의 흔적이 역력하게 남아 있었다.

그러나.

나로서는 지금 당장 그런 모습을 보고 배려할 만한 여유가 없었다.

말 그대로 긴급 사태였기 때문이다.

"또 뭐냐. 아니, 따로 부를 생각이긴 했지만."

"속보, 나 고백 받음."

나를 바라보는 최승준의 시선이 단박에 미묘해졌다.

잠시 메인 홀의 천장을 올려다보는 최승준.

그대로 주변을 훑더니, 달리 떠맡길 만한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뒤에야 푸욱 하고 한숨을 내쉬며 나를 직시한다.

"그래. 축하한다."

"아니, 씹새야. 그런 문제 아니니까 들어 봐 좀."

그제서야 조금 흥미가 도는 얼굴로 내 쪽을 향해 시선을 돌린다.

그렇게 나는 천천히 방금 전 나와 서아 사이에 있었던 일을 설명할 수 있었다.

물론 가급적 개인적인 부분은 빼고.

여하간, 이 녀석은 현 헌터 아카데미의 교장이다.

다른 부분은 어쨌든, 교사 자리를 고사하겠다면 전달하지 않을 수도 없으니까.

"시덥잖군."

그리고.

서아의 고민에 대해, 최승준은 딱 잘라 그리 말했다.

냉정한 면이 있는 녀석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말할 줄이야.

"오히려 네 쪽이 느슨하게 생각하고 있는 거겠지."

"뭐, 그런 점도 없잖아 있지만 말이야."

당연한 이야기.

헌터란 말 그대로 사냥꾼이다.

능력에 눈을 뜨지 못한 사람들을 대신해 몬스터를 죽이는 직업.

그렇게 말해도, 실상은 다르다.

것보다, 정부 측에서 저런 교육을 몸소 주도한다는 사실 자체부터 그렇다고 할 수 있겠지.

애초에 모든 헌터들이 전부 바른 생활 어린이라면 정부 측에서 저렇게 노력할 필요도 없으니까.

즉.

"헌터는 기본적으로 하루살이다."

최승준은 그렇게 말했다.

물론 나 또한 알고 있는 사실.

그렇지만, 최승준의 입에서 듣는 헌터에 대한 이미지는 다소 신선한 면이 있었다.

여하간 당사자부터 헌터라기보단 기업인에 가까운 인상이라 그런 걸까.

"초창기 헌터는 대다수 복수에 미친 복수귀고, 후세대 헌터는 제 목숨을 담보로 삼아 돈을 벌고자 업계에 투신한 일용직 노동자들이지."

매서운 평가였지만, 틀림없는 사실이다.

두 번의 대침공 전후로 발생한 헌터들은 대개 전자.

말 그대로, 갑작스레 발생한 대침공의 여파에 따라 가족 등을 잃고 헌터가 되기로 결심한 이들이다.

이에 비해, 다소 전선이 안정된 이후 나타난 헌터들은 대개 후자.

붕괴한 산업 기반.

사회 밑바닥으로 추락한 입지.

혹은, 일확천금을 노리고 찾아온 사람들.

헌터들을 구성하고 있는 건 대개 저 두 부류다.

목숨을 바쳐 몬스터를 죽이겠다 서원한 미치광이.

그렇지 않으면, 목숨을 걸고 일확천금을 노리는 골드 러시 시대의 광부 같은 친구들.

요컨대.

"스스로의 상황을 직시하고 이실직고할 수 있는 시점에서 이미 충분하고도 남는다."

최승준이 보기에, 서아의 그런 태도는 오히려 플러스면 플러스지 마이너스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긴, 내 쪽만 해도 그런 부분은 철저하게 가르쳤으니까.

다른 교사를 구해도 서아 이상으로 마음이 다잡힌 사람일 거라는 보장은 없지.

때문에, 최승준 또한 서아를 내보내는 건 별로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일단 설득이나 해 볼까? 별로 기대는 못 하겠지만."

"부탁하지. 무엇보다, 연락 체계가 나뉘는 게 최악이다."

"연락 체계?"

"놈들에게 대적하기 위한 연락 체계지. 지금이라면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모이면 그만이다만……."

"서아가 나갈 경우 라인이 하나 더 늘어나게 된다, 이 뜻이지?"

"그래. 이 쪽의 사정은 쉬이 퍼트릴 만한 게 아니니까."

그러니 이미 이 쪽의 사정을 알고 있고, 참전할 의사도 있으며 전력도 나쁘지 않은 서아.

그런 서아가 아카데미를 떠나게 된다는 건 다시 말해 이 쪽의 환경이 한층 복잡해진다는 뜻이다.

막말로, 일단 교장실에 집결하라는 연통 하나만 아카데미 내에 돌리면 되는 지금 상황과 서아가 퇴직한 이후 상황.

편리한 건 전자이기도 하고.

"그렇긴 하지. 이번에 보니까 저 쪽도 간부 비슷한 게 나온 모양이고."

"그래. 안 그래도 그걸 물으려 했다만."

지나가듯 흘린 발언에, 최승준이 슬쩍 눈매를 좁히며 입을 열었다.

"마신이라는 게 뭐지?"

"응?"

"시치미 떼지 마라."

딱히 시치미를 떼려 한 건 아니었지만.

뭐, 그야 그렇지.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번 파티는 최승준이 주최한 물건.

거기에 회장조차 간신히 빌릴 수 있었던 거지, 정식 파티 홀을 대관하거나 이벤트를 맡긴 건 아니다.

다시 말해, 이번 파티를 위해 차출된 건 대개 최승준 쪽 기업 소속 인물들이었다.

요리사들 또한 마찬가지다.

이번에 내가 준비한 함정을 마련하기 위해 신세를 진 주방 인원 대다수는 최승준 쪽 사람이겠지.

그렇다면, 하오마라는 게 뭔지 자존심 강한 요리사들을 설득하기 위해 구구절절 설명해야 했던 내 이야기도 귀에 들어갔을 것이다.

때문에 오히려 더더욱 의문이었다.

"아니, 조로아스터 교 계통 악마일 거라고 했잖아?"

애초에 놈들이 선별한 규격 외 등급의 몬스터 후보는 여럿 있었다.

중동은 전 세계적으로 보아도 문화권 교체가 가장 격렬하게 일어난 문화권이었으니까.

그런 만큼, 메소포타미아 쪽은 물론이요 이슬람 계통이나 기타 등등에 대한 대책도 어느 정도는 준비했고.

개중에서 우연히 들어맞은 게 페르시아 신화 내지 조로아스터 교 계통이었을 뿐이다.

마신이라는 이름도 거기에서 산출한 거고.

"그래. 그러니 그 마신이라는 게 뭐냐?"

"몬스터라니까."

마신.

정말로 이제 와서 하는 이야기이긴 했지만, 이번에 상대한 놈은 아마도 그렇게 불리는 부류다.

페르시아 신화에 존재하는 절대악.

말 그대로, 규격 외라 말하기에 부족함 없을 괴물 밑에 존재하는 일곱 권속 중 하나.

조로아스터 교의 선신, 아후라 마즈다의 밑에 복무하는 일곱 선한 존재…….

기독교로 치면 천사에 가까운 존재들과 맞서 싸우는 일곱 가지 악.

마왕의 권속이며, 동시에 조로아스터 교에 전해지는 일곱 가지 악덕을 관장하는 대악마.

요컨대, A+랭크 몬스터라는 뜻이다.

"이번에 나타난 놈도 그런 부류였다고?"

"그렇겠지."

추정컨대, 악의의 마신.

사자와 같은 갈기를 늘어뜨린 채, 코끼리의 상아와 같은 어금니를 번뜩이는 존재.

짐승과 같은 악의를 지닌 반인반수.

"악의의 마신, 아코만Akoman이다."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큰 특징은 역시 그 정신 장악 능력.

개중에서도, 서아와의 대화를 통해 추론할 수 있었던악의에 대한 능력이다.

전하기를, 조로아스터 교의 일곱 마왕은 그들의 신으로부터 절대적인 권한을 하사받았다.

즉, 사람으로 하여금 악을 행하게 하는 일곱 가지 개념에 대한 절대적인 제어권.

혹은, 그들 자체가 사람으로 하여금 악을 행하게 한다 일컬어진 개념의 권화.

말하자면, 이번에 나타난 마신은 악의라는 개념이 구현화된 존재였던 셈이다.

그 외견만 해도 그렇고.

추악한 외견.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중한 어조 위로 단단하게 여민 정장.

모르긴 몰라도, 사람의 악의에 접하고 부추기는 능력 정도는 가지고 있었겠지.

"그런 놈들이 있다고?"

"솔직히 별로 유명하진 않지. 나중에 따로 정리해서 보내줄게."

"부탁하지."

최승준이 슬쩍 고개를 끄덕인다.

동시에.

"그런 놈들이 나타났다는 건……."

"거의 확실하겠지."

저번에 이야기했던, 얼추 짐작이 가는 존재.

즉, 놈들이 부활시키려 하는 규격 외 등급 몬스터의 정체도 얼추 감이 잡힌다.

조로아스터 교의 일곱 마신.

사람으로 하여금 악행을 거듭하게 한다는 마왕을 거느릴 수 있는 존재 따위는, 아무리 세상이 넓어도 한 명 뿐일 테니까.

그 머리, 셋.

그 몸, 산보다 거대하다.

그 꼬리, 한 번 휘둘러 하늘의 별을 지우고.

그 숨결, 조용히 내뱉어 지상의 생명을 소각한다.

그렇게 일컬어진 거룡.

어떨 때는 악의 현신 된 마왕으로, 어떨 때는 사람의 형태를 벗어던진 삼두룡의 형상으로.

조로아스터 교에 전해지는 절대악이 취하는 가장 강력한 모습이자 화신.

산중휴거King in the Mountain의 때에 이르러, 먼 미래에 다시금 부활하리라 일컬어진 거악.

"아지다하카인가."

최승준이 침음성을 흘렸다.

대침공 이전이라면 결코 유명한 이름은 아니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어느 정도 전설에 대한 보급이 이루어진 지금, 그 이름은 최승준마저 알고 있었다.

가라사대, 페르시아 신화와 조로아스터 교에 전하는 절대악의 화신.

먼 훗날, 기독교 세계의 사탄과 그 원본이 되었다고도 전해지는 존재.

과거의 영웅들마저 억누를 수는 있었으나, 쓰러뜨릴 수는 없었다 하는 거룡.

때문에 산에 묶어 봉한 그 거룡은, 언젠가 먼 훗날 부활해 다시 한 번 세상에 사악을 퍼트린다 한다.

페르시아 신화에 전해지는 모든 악룡들의 부모이며, 뱀과 독을 낳은 이.

그 몸에 사악한 천 개의 비술을 지녔다고 전해지는 존재, 인가.

'저번에 그 기술이겠지.'

이 쪽의 시그니처를 읽어, 역으로 파훼한 마법.

둘로 베인 마법진이 각기 다른 마법을 구성해 유동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마련한 치밀함.

몬스터라곤 감히 생각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운 고등 기술은, 바로 놈이 지녔다 전하는 천 개의 비술이었던 셈이다.

'염병할 이야기란 말이지.'

거 참 대단한 분이시네요, 하고 말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전설처럼 과거의 영웅이 부활해 놈을 쓰러뜨려줄 거라 믿을 수도 없다.

아니, 애초에 그렇다 한들 놈이 나타나며 일어날 피해는 여전히 변하지 않으니까.

거기에, 문제는 아직도 산처럼 쌓여 있다.

예를 들면.

"즉, 앞으로 남은 마신은 여섯이라는 소리인가."

"아마도?"

당장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마신들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페르시아 신화에서 저 일곱 마신은 예의 마왕님의 제일 가는 심복.

절대악을 구성하는 악행의 근저 원인, 그 자체다.

그만한 존재들이 갑자기 모습을 드러냈다는 건…….

예의 마왕이라는 존재 또한, 본격적으로 힘을 쓰겠다는 것.

저번 소환 내지는 그 때 느껴졌던 기척이 모종의 계기가 되었던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무언가 놈들의 준비가 끝나기라도 한 것일까.

어느 쪽이든, 마왕의 직속 되는 일곱 권속이 나타났다는 건 우리로서도 즐거운 이야기는 아니었다.

막말로 단순히 셈만 해도 A+랭크 몬스터가 여섯 마리니까.

나는 기쁘지만, 최승준까지 그럴 수는 없을 테고.

무엇보다, 이번엔 다소 전형적인 권능.

말 그대로 악마라 하기에 부족함 없는 능력이었지만, 다른 마신들까지 그러리라 생각하긴 힘들다.

말이야 A+랭크 몬스터지, 정말로 순수한 A+랭크 몬스터라 생각해선 안 되겠지.

피곤한 느낌이 들 법도 했다.

"어처구니가 없군. 이란 쪽 놈들이 왜 하필이면 우리 나라에?"

"그야 우리 나라 풍토가 나름 잘 맞으니까 그렇겠지."

"뭐라고?"

아니, 그렇게 미친 놈처럼 바라봐도 말이지.

딱히 틀린 말도 아닐 거다.

것보다, 요 최근 한 달 사이 조사한 게 그런 쪽이었고.

"자."

"뭐지, 이건?"

"책."

책의 제목은, 쿠쉬나메.

보다 적극적으로 해석하자면, 쿠쉬의 이야기.

"신라까지 도망친 영웅의 후손을 뒤쫓아 추적한 마왕의 형제, 또 다른 마왕 쿠쉬의 이야기지."

"뭐? 신라?"

나를 바라보는 최승준의 시선이 미친 놈처럼 변했다.

솔직히 말해, 나도 이란 놈들이 왜 하필이면 대한민국까지 왔나 하고 생각하는 기분이 있었으니 이해할 수는 있었다.

신라라니, 이게 왜 사실이고 지랄.

십중팔구 환빠일 줄.

"도저히 긍정적인 소식은 아닌데."

그렇게 말하며 최승준은 툴툴댔다.

뭐, 그럴 수밖에 없겠지.

달리 말하자면, 앞으로 남은 마신은 여섯.

거기에 저 쿠쉬인지 뭔지 하는 놈까지 더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저번의 그 악룡만 해도 상당한 거물이었으니, 상상하고 싶지 않을 만도 했다.

하물며 그 이유가 하필이면 페르시아 따위에서 신라를 모티브로 한 지역을 등장시켰기 때문이라니?

아니, 티아마트의 말에 따르면 당시 페르시아에서 신라까지 교통로가 있었던 탓이겠지만.

쓸데없이 대단한 고대인의 해양 문화에 한탄하고 싶을 법도 했다.

"일단 다른 작품들도 몇 개 읽어봤는데, 솔직히 이 쪽이 제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양가장연의에서 나오는 두 발로 걸어다니는 꽃게 인간 따위가 마신을 지배하고 있는 게 아니라면.

실제로 최승준 또한 동의를 표했고.

기왕지사라고 해야 할까, 뭐라고 해야 할까.

타 국가에서 우리 나라를 그린다면 조금 멋있게 나왔으면 하는 마음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해, 세계를 위협하는 꽃게 인간보단 세계를 위협하는 절대악의 화신이 멋있지 않은가.

단지,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있었다.

허면, 어째서 이 페르시아 신화 출신 존재들은 일찍이 머나먼 동방의 나라 따위로 그려진 신라 따위에 와서 의식을 진행하려는 것인가?

구 페르시아, 현 이란 지역에서 강림 의식을 시행하면 안 되는 것인가?

거기에 대해선 우리 또한 이해가 일치했다.

즉.

"이슬람 겁나 세."

어쩌면 처음엔 이란 등을 점거하려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자비 없는 이슬람 성전사가 어떤 가여운 악마나 마신의 머리통을 부순 이후에야, 그들도 다른 곳으로 말머리를 돌린 거겠지.

그야 뭐, 이슬람 성전사들과 부대끼며 절대악의 부활 의식 따위를 주관하고 싶지는 않을 거다.

거기에 제 1차 대침공만 해도 그렇지 않던가.

제 1차 대침공의 근간인 티폰조차 헌터들이 거의 자폭하다시피 억지로 뚜껑을 닫았다는 판국.

그리고 나와 최승준이 알기로, 중동 쪽만큼 자폭에 일가견이 있는 집단도 얼마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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