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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80화 (180/371)

〈 180화 〉 무대 뒤편 이야기

* * *

그리고.

이번 습격 계획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보고를,교주는 마치 남의 일처럼 듣고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애시당초 남의 일이기도 했다.

막말로, 그에게 있어 이 집단은 어디까지나 임시 수입처.

애사심 따위를 가지기엔 지나칠 정도로 멋쩍은 관계였기 때문이다.

지금만 해도 그랬다.

신세계 질서Novus Ordo Seclorum.

말 그대로 세상에 새로운 질서를 가져오기 위해 암약하고 있는 비밀 조직.

비록 그들이 가져오겠다는 질서가 지극히 물리적인 의미였다는 점은 둘째치더라도, 그는 도통 이 조직에 애착을 가질 수 없었다.

사실, 당연한 일이었다.

애초에 그가 운영하던 괴수 신앙 교단만 해도 마찬가지였으니까.

그에게 있어, 몬스터란 어디까지나 새로운 사업 아이템.

이제 와서 몬스터가 어땠느니 신화의 진상이 어땠느니 하는 건 까놓고 말해서 아무래도 좋았다.

것보다, 솔직히 알고 싶지도 않다.

아는 건 힘이다.

반대로 말하자면, 아는 게 힘인 만큼 무언가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한층 더 큰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뜻이다.

사내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비능력자인 그가 이제 와서 세상의 운명 운운하는 이야기를 알아봐야 어디에 쓴단 말인가.

허나.

애석하게도 신세계 질서는 교주를 몬스터 신앙에 미친 광신자라 생각하고 있었다.

때문에, 이 집단의 목적과 맞물려 그는 자연스레 신참 주제에 그럭저럭 괜찮은 입지를 구축하는 데에 성공했다.

……물론 거기에는 교주 나름의 노력 또한 있었다.

처음에 어떻게든 자신의 가치를 어필하기 위해 광신자인 척 몬스터 신앙에 대해 주절거렸던 탓이다.

여기에는 그와 예의 조직의 접촉에 있어 계기가 되었던 김민철 군의 태도가 도움이 되었다.

고맙네, 김민철 군.

자네는 비록 이미 뼛가루가 되어 셀프 화장되고 말았지만, 내 안에서 함께 살아가게나…….

문제는 그게 너무 과했다는 점이다.

신세계 질서가 교주에게 내린 몇 가지 지시.

미친 광신자라면 쉽게 이행할 수 없었을 임무를, 교주는 별다른 문제 없이 처리할 수 있었던 덕택이다.

예를 들어 이번 습격의 빌미가 되었던 게이트 발생 당시.

수많은 구울들이 아카데미를 별다른 차질 하나 없이 점거할 수 있었던 데에는 교주의 역할이 컸다.

교주가 세간에 내세우고 있는 임시 신분 중 하나.

동네 근처 성격 좋은 지역 유지로서의 가면을 쓰고 아카데미를 정찰한 덕택이다.

교주의 정찰을 기반으로 구울들은 아카데미를 순식간에 장악했고, 덕분에 그런 의식을 벌일 수 있었다.

이번 파티만 해도 마찬가지였다.

저런 신분을 가지고 있는 교주에게 있어, 파티에 잠입하는 건 실로 손쉬운 일이었다.

다른 악마 등과 달리 환각 능력 따위로 초대장을 위조할 필요도 없다.

때문에.

이준구 등을 위시로 한 헌터들이 몰래 잠입한 악마들을 때려죽이고 있는 지금.

교주는 별다른 문제 하나 없이 귀환해 이번 사건의 보고를 올릴 수 있었다.

'죽겠네…….'

물론 교주의 본심은 거기에 있지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해서 엄청 놀랐다.

갑자기 파티를 즐기고 있는데 주변 사람들이 풀썩 쓰러지길래 무심코 같이 쓰러진 게 도움이 되었다고나 해야 할까.

마신들을 보낼 것이라는 말이야 들었지만, 설마 이렇게 대놓고 들어올 줄이야.

어쩌면 그 때문일까?

정작 회장에 들어온 악마들은 5분도 되지 않아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그야 그렇겠지.

헌터와 몬스터 사이의 견제는 물론, 제대로 된 전투 경험도 없는 교주로서는 알 수 없었다.

당시 그 자리에서 이어지고 있던 수많은 교환을.

때문에.

'언제 시간이 날까.'

교주의 생각이 그런 쪽으로 기우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 배신하자!

내가 줄을 잘못 섰다.

교주는 어른이었고, 그렇기에 그런 사실을 인정할 수 있었다.

설마 이렇게 멍청한 녀석들이었을 줄이야.

그렇다면.

자신이 줄을 잘못 섰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행동은 하나.

빠른 손절과 반성, 그리고 이탈이다.

즉.

몬스터 숭배 사상의 총화, 괴수 신앙 조직의 우두머리인 교주는 벌써부터 이반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신세계 질서의 휘하에 들길 고작해야 반 년 만의 이야기였다.

물론 교주 입장에서 보자면 실로 당연한 일이었다.

그럴 수밖에.

저들이 교주를 몬스터 신앙에 미친 광신자라 바라보고 있는 건 아무래도 상관 없다.

그렇게 보이도록 어필했으니까.

그러니, 괴수의 왕을 강림시키겠다는 그들의 계획에 협력하리라 멋대로 생각하고 있는 것도 좋다.

하지만.

거기에는 한 가지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즉, 교주가 본질적으로 소시민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니, 이야기는 듣긴 했지만.

몬스터를 부를 생각이라던가, 게이트를 만들 생각이라던가.

그러나.

솔직히 말하자면, 교주는 그들의 계획을 별로 귀담아 듣지 않았다.

너무 허황된 소리였기 때문이다.

아니, 무슨 게이트를 만들고 통제하겠다는 거야.

만약 그럴 수 있는 기술이 있었다면 나도 그 기술 만든 회사 좀 알려줘라, 주식 사게.

진심으로 교주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이해는 했다.

비밀 조직이란 그 조직을 운영하기 위해 보통 허황된 망상을 내걸 때가 많으니까.

일단이나마 비밀 조직을 이끌고 있었던 교주는 그런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때문에.

진짜로 하늘 위에 게이트가 나타났을 때, 교주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저걸 어떻게 예상해?'

설마 진짜였을 줄이야.

그냥 미친 놈들인 줄 알고 있었는데.

이 시점에서, 지원금이나 빼먹으며 살까 생각하던 교주의 뒤꽁무니에도 불이 붙었다.

최승준 측의 파티에 참여한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었다.

막말로, 교주가 바라는 건 어디까지나 남의 돈으로 빌어먹고 사는 삶이다.

지금도 번듯한 직업 하나 없지만, 보다 적극적으로 아무 일도 하고싶지 않다.

그게 바로 교주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에, 교주는 깨달을 수 있었다.

지금이 분기점이라고.

아니, 진짜로 인명 피해가 발생했잖아.

여기서 이 이상 적극적으로 협력하면 무위도식은 커녕 살인 교사죄다.

테러리스트니 뭐니 해도, 진짜배기 미친 자식인 김민철이 합류할 때까지 교주가 하던 일은 어디까지나 선동.

사이비 종교를 만들어 헌금을 챙기는 일 정도에 불과했다.

이제 와서 눈 앞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가운데 네 덕분이라 해 봐야, 오히려 거부감이 올라올 뿐이었다.

그렇지만 정작 저 쪽에 알랑방귀를 뀔 기회 따위는 얻지도 못하고 마신의 습격이 일어나는 꼴이나 보고 있었으니.

결국 저 쪽과 접촉할 채널이 없다는 게 문제다.

그런 현실적인 문제를 되새김질하며, 교주는 슬쩍 시선을 흘렸다.

거기에는 여섯 개의 그림자가 있었다.

냉혹하게 코웃음치는 마신이 있다.

살의로 번들거리는 마신이 있다.

온 몸으로 경련하는 마신이 있다.

열병에 들뜬 마신이 있다.

자연스레 남들을 굽어보는 마신이 있다.

분노에 눈이 뒤집힌 마신이 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A+랭크의 정점에 군림하는 마신.

신세계 질서라 불리는 그들이 부르려 하는마왕의 일곱 권속.

지금은 이 자리에 없는 악의의 마신과 같이, 자신이 관련된 분야에서는 S랭크조차 상회한다 전해지는 괴물들.

바야흐로 악의 총화라 말해야 할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도, 교주는 그렇게 생각했다.

'정보로 따지면 값어치는 꽤 있을 텐데.'

물론 저들이 현지의 협력자인 그들을 존중해 잠잠히 있는 덕택이다.

만약 진심으로 저들이 내비치는 살의에 직면하기라도 하는 순간, 교주는 게거품을 물고 쓰러질 수밖에 없겠지.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때문에 교주로서는 오히려 한층 더 입이 근질거리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확인하셨다시피, 악의의 마신께서 쓰러지셨습니다."

그런 간부진의 회의를 총솔하는 건, 태시영이라 불리는 젊은 헌터다.

교주와 마찬가지로 비교적 최근에 발을 들인 대인전 전문 S랭크 헌터.

꽤나 화려한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탓에 교주 또한 말을 붙이려 접근한 적이 있기에 알고 있었다.

뭐, 정작 김민철 그 친구로 단련된 정신병 레이더 때문에 실제로 말을 붙이진 못 했지만.

"숫자로 밀어붙이는 단순한 방법이 도축업자에게 효과를 보긴 힘들 거라 우리 모두 예상했었죠."

그런 그가 이번 회의를 주도하고 있는 이유는 단 하나.

예의 도축업자라 불리는 헌터와 직접 교전해 본 이가 바로 그였기 때문이다.

때문에, 마왕의 권속이라 불리는 여섯 기둥조차 지금은 그에게 키를 맡겼다.

주제는 도축업자라 불리는 헌터의 말소.

이후, 그 뒤에 있다는번제물과의 접촉이었으니까.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도축업자는 사냥꾼이었습니다."

냉정한 사냥꾼.

그게 태시영이 예의 헌터에게 내린 평가였다.

본디 이번 계획은 선두에 서서 잠입한 마신의 기능을 십분 활용, 저들의 네트워크를 마비시키는 데에 있다.

설령 거기서 도축업자라 불리는 헌터 등에게 예의 계획이 들통난다 해도 마찬가지.

악의의 마신이 사람들의 정신을 쥐고 있는 한, 도축업자는 달려들 수 없다.

아니.

오히려 달려들길 바랐을지도 모른다고, 교주는 그리 생각했다.

만약 도축업자가 무작정 달려들어 악의의 마신이라는 작자가 사람들의 정신을 부술 시간이 있었다면?

당연히 예의 집단으로서는 쌍수를 들어 반기며 무도한 도축업자의 행동을 성토할 수 있었으리라.

뭐, 뒤에서는 저 마신이라는 작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알랑방귀를 뀌었어야 했겠지만.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정작 도축업자라는 사냥꾼이 곧바로 달려들질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침착하게 마신이라는 작자가 빈틈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려 요격.

파티가 별다른 일 없이 재개될 수 있도록 했다던가.

"도축업자라는 이름에 걸고, 몬스터만 보면 무조건 미친 듯이 달려들 거라 생각했던 저희들의 예상이 빗나갔다 할 수 있겠죠."

때문에.

그들은 도축업자를 처리하기 위한 다른 방법을 궁리해야만 한다.

태시영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말 그대로, 지금 이 회의는 어디까지나 도축업자에 대한 대책 회의.

예의 악의의 마신에 대한 조문회 따위가 아니다.

그러므로 교주는 역으로 여유롭게 생각할 수 있었다.

어차피 그는 전투 요원 따위가 아니다.

저들이 무어라 떠드는 이야기 따위, 백 날을 들어도 알아들을 방법 하나 없으니까.

그렇기에, 이런 시간이 찾아올 때마다 교주는 언제나 앞으로의 미래상을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그리기 시작한 청사진은 다름 아닌 방금 전 이름이 언급된 헌터였다.

'도축업자.'

도축업자, 박우찬.

김민철 그 친구와 싸워 그 친구를 결딴내버렸다는 괴물.

교주가 박우찬이라는 이름에 대해 알고 있는 건 딱 그 정도다.

다만, 김민철이 죽은 건 안타깝긴 해도 딱 그 정도.

애초에 친구도 아니고.

유감은 유감이지만, 굳이 무어라 생각하거나 책 잡을 정도는 아니다.

즉.

교주는 생각하고 있었다.

예의 박우찬이라는 헌터와 접촉할 수만 있다면, 이 집단에서도 몸을 빼낼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제공하는 정보는 저들에게도 어느 정도 탐이 날 테니까.

본디 도축업자라 불리던 그 이름 탓에 다소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던 건 사실이다.

단순히 머리에 몬스터 살육만 든 멍청이라면 제대로 된 교섭 따위는 할 수 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이번 회의에서 언급되었듯이, 그 자가 사실은 지독할 정도로 냉정한 사냥꾼이라면?

자신의 복수심과 악의의 마신이 건 수작을 냉정히 고려해, 그 빈틈을 파고들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만한 인내심을 갖춘 헌터라면?

어쩌면 교섭이나 협상의 여지 따위가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 있어야만 한다.

교주는 진심으로 그렇게 바랐고, 그렇게 희망했다.

다른 건 둘째치더라도, 이들의 목표 자체가 별로 내키지 않았던 탓이다.

제 3차 대침공의 재현이라니.

'미친, 이 새끼들은 똥도 안 싸나?'

적어도 교주는 자신이 화장지 대신 잎사귀를 써야 하는 생활 따위는 도저히 반길 수 없었다…….

혹시 몰라서 손톱깎이 등을 대량 구매해두긴 했지만.

여하튼, 몬스터와 이야기를 나눌 언젠가 따위를 운운하기는 했어도 정말로 그런 시대가 오길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던 탓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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