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9화 〉 커튼 콜
* * *
신서아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박우찬은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었다.
해코지?
아니, 왜?
그로서는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지금 신서아가 말하는 표정을 보고 있으면 알 수 있다.
단순히 화가 났다거나, 혹은 익숙치 않은 교사 노릇에 스트레스가 쌓였다거나.
눈 앞의 그녀가 말하는 건 고작해야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문제는 1학기 내내 몬스터 뒤꽁무니만 쫓았던 그로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도저히 짐작이 가질 않았다는 점이다.
어,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혹시나 싶어 기억을 뒤적거리기도 잠시.
'몬스터를 죽였어!! 공기가 달콤해!! 기분이 즐거워!!'
크윽, 제기랄.
박우찬은 자신도 모르게 탄식했다.
알고는 있었지만,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뭐, 불만도 있었구."
"불만?"
"응. 오랜만에 돌아왔더니 난생 처음 보는 애들이 사부 옆에 붙어있더라구."
음, 하고 짧은 침음성이 흘렀다.
확실히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신서아는 박우찬의 첫 번째 제자였으니까.
동시에, 수제자이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일한 제자이기도 했다.
그런 그녀에게 때 아닌사매가 우루루 생긴 셈이니, 그런 기분이 들 법도 하겠지.
박우찬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그렇게 단순한 기분이 아니야?"
허나.
정작 당사자인 신서아는 그런 박우찬의 추측을 일언지하에 부정했다.
"뭐, 뺏긴 듯한 기분이 들었던 건 사실이지만."
그렇지만.
자신이 자리를 비운 사이 제자랍시고 나타난 학생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당황스럽고, 질투가 났다.
서아는 자신이 품었던 감정은 그렇게 단순한 마음이 아니었노라 첨언한다.
"진심으로 죽일까 하는 생각도 했으니까."
으쓱.
애써 태연한 척 어깨를 좁히는 신서아.
"그런데, 사부. 내가 왜 그런 걸 관두고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 건지 알고 있어?"
"……나쁜 짓이니까?"
"뭐야 그게."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그리고 한 순간의 지체도 없이,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사부한테 찍히면 슬프지 않을까 싶어서 그랬어."
벌을 받을까봐.
나쁜 일이니까.
그래서는 안 되니까.
제제가 두려워서.
그런 이유가 아니라, 오로지 박우찬 한 명에게 미움을 사는 일이 꺼려져서.
그래서 신서아는 자신이 품고 있던 계획을 폐기했다.
……짧은 탄식이 샜다.
박우찬으로서도 무어라 답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알겠지? 그러니까, 교사 노릇은 처음부터 나한테 어울리지도 않았겠지 싶어."
부정할 수 없었다.
만약 그녀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그녀는 도저히 교사에 적합한 인재라고 말할 순 없었으니까.
형편 좋은 말을 건네는 건 가능하겠지.
설령 그렇다 쳐도 너는 직접 행동으로 옮기지 않았다.
그런 생각은 누구나 한다.
나도 그렇다.
누구나 다른 사람이 콱 하고 죽어버렸으면 하고 생각하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
만약 그녀가 교사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말할 수 있었으리라.
실제로도 그러했으니까.
박우찬 자신부터가 그런 산물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저런 기분을 고백한 그녀를 계속해서 교사 자리에 앉혀두겠다 말하는 건 역시 힘들었다.
"그래. 여태까지 수고했다. 내가 잘 말해 둘게."
때문에, 박우찬으로서는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뭐, 새로운 인재를 구해야 하는 건 꽤나 힘들겠지만 다음 학기까지 시간도 있고.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다.
그렇게 생각하던 박우찬에게, 그러나 신서아는 이해할 수 없는 제안을 덧댔다.
"그래서 말하는 건데, 사부."
"응?"
"사부도 학교 그만두고 나랑 여행이나 다니지 않을래?"
"엉?"
"물론 자기중심적인 발언이라는 건 나도 알지만요! 그래도, 같이 다니면 즐겁지 않을까 싶어서!"
"아니, 그게 아니라……."
박우찬은 다소 떨떠름한 얼굴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 표정을 눈에 담은 신서아는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이런,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실패했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야 그렇겠지.
지금 사부가 짓고 있는 표정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한 얼굴.
박우찬의 입이 열리기도 전에, 신서아는 대답을 들은 기분이 들었다.
……뭐, 그렇지.
당연한 이야기다.
사람은 각자 자신이 모르는 장소에서 인연을 쌓고 성장하며 살고 있다.
다른 사람에게 있어선 당일 신문 3면 구석을 차지할 정도에 불과했던 사건이, 신서아에겐 인생을 바꿀 경험이 되었듯이.
그녀가 자리를 비운 사이 누구 하나 만나지 않을 것 같았던 박우찬이 어느덧 방문을 박차고 나와 아카데미의 교사가 되었듯이.
더 이상 그녀는 박우찬의 유일한 제자가 아니다.
자신의 세상에서 박우찬은 여전히 유일무이한 존재였지만, 박우찬에게 자신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기뻐야 하는데 슬퍼서.
자신에게는 무엇 하나 남지 않아 이런 제안을 건넬 수 있었지만, 박우찬에게는 그렇지 않아 이런 제안을 거절할 만한 인연을 손에 넣어서.
그 사실이 신서아는 못내 안타까웠다.
여름날 받은 풍선 같은 사람이었다.
조금이라도 손을 떼면 손가락 사이로 날아가버릴 듯해서, 그래서 꼭 쥐고 있던 풍선.
아직 아빠가 살아있을 적 들렀던 놀이공원에서 받았던 풍선이었다.
그렇지만.
그 풍선에는 어느덧 무게추가 달려 있었던 모양이다.
더 이상 하늘로 날아가지 않도록.
더 이상 붙잡을 필요가 없도록.
자신에게 있어선 유일무이한 풍선이지만, 풍선에게 있어서 자신은 결국 누름돌 중 하나.
자신을 땅에 묶어 둘 무게추가 충분한 지금, 굳이 그녀의 손에 구애될 필요는 없다.
오히려 손을 놓는다 해도 눈치채지 못할 테지.
그런 사실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다 생각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실이 눈 앞에 들이밀어지는 기분은 도저히 좋은 게 아니었다.
"뭐야, 여행 가게?"
"엥?"
"거 참, 고풍스럽네. 아니, 상관은 없는데. 어차피 겨울 방학이고. 어디로 갈 건데? 겨울 바다?"
다만.
박우찬은 오히려 그렇게 되물었을 뿐이었다.
마치 그녀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한 듯한 답변이었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신서아에게 있어선 일생일대의 고백.
박우찬에게 환멸받는 일조차 감수한 성토를, 박우찬은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던 탓이다.
"아니, 사부. 지금 나랑 장난해?"
"어?"
"농담하는 거야, 아니면 뭐야. 내 말 못 알아들었어?!"
자신은 사부의 옆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학생들에게 살심을 품었다.
그러니 다른 학생들에게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학생들 전원을 사부에게서 떼어놓는 건 아무래도 현실성이 없다.
아니, 그 이전에.
자하연 그 계집애만 해도 사부 옆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사정이 있다.
그러니 떠나야 하는 건 자신이다.
다만, 마지막으로 남은 미련 탓에 사부에게 그리 말하고 말았다.
다른 인연 전부를 정리하고 사부가 나를 따라와주진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헌데, 도대체 뭐야 저 태연한 답변은?!
"아니,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물론 박우찬으로서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다.
아니, 교생 자리에서 내려오겠다는 건 백 번 양보해서 알겠다.
그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면 내려오는 게 현실적이지.
단순한 스트레스만 봐도 그렇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갑자기 여행을 떠나겠다?
박우찬으로서는 그리 답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악마의 영향도 있겠지.
어쩌면 스스로의 내면에 고인 악의와 살의를 직면한 탓에 억지로 거리를 두고자 결심했을지도 모른다.
다만.
그런 사정은 일체 짐작할 수 없는 박우찬으로서는 다소 뜬금없는 발언에 지나지 않았다.
"거기까지 해야 해?"
아니, 애초에 알았다 한들 마찬가지였을지도 모른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살심을 품었다.
그런 자신이 무섭다.
그러니 거리를 두겠다.
서아가 그렇게 결심했다면, 박우찬으로서는 이해할 수 있다.
힘내라고, 노력하라고 박수를 쳐 줄 수도 있겠지.
다만, 그게 정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야 그렇겠지?
말했다시피, 누군가 콱 하고 죽어버렸으면 하는 건 세상 사람 누구나 마찬가지다.
아마 중소 기업 부장들이 제일 그러지 않을까 싶은데.
사실 박우찬 본인도 마찬가지고.
만약 박우찬 자신이 티아마트의 전담 비서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하면 그야 사퇴했겠지.
그렇지만, 티아마트가 기거한다고 해서 협회 가입을 반드시 피해야 한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실제로 죽여버리면 그야 문제가 되긴 하겠지.
허나, 아무리 그래도 자신이 세상 모든 혼혈로부터 거리를 두어야 한다곤 생각하기 힘들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뭐 존중이야 하겠지만.
그런 박우찬의 반응에 대해, 신서아는 역으로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일을 통해 새삼스레 깨닫게 된 이야기.
그녀에게는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한 재능이 없다.
다른 사람을 자신의 울타리 안으로 넣는다는 행동이 불가능한 인간.
사회를 이루고 사는 짐승인 인간 입장에서 보자면, 바야흐로 치명적인 결점이다.
그러니까 역으로 거리를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폐니까.
그래선 안 되니까.
사부가 실망할 테니까.
자신의 내면에 처음으로 직면한 신서아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나보다?"
물론, 박우찬이 보기엔 코웃음 한 번으로 흩어놓을 수 있는 이야기였다.
실제로 신서아 또한 제대로 된 반박 하나 하지 못했다.
평범한 삶을 살기 위한 재능이 없다?
말이야 좋지, 박우찬에 비해 자신이 그렇느냐 물으면 역시 신서아라 해도 회의적인 기분을 품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올해가 올 때까지 거의 두문불출하던 사부의 모습을 떠올린다.
몬스터를 향해 끝없는 증오를 품고 있던 그 옆얼굴을 안다.
오로지 몬스터를 죽이기 위해 살아가는 듯한 그 삶의 가열참도, 익히 알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신은 고작해야 한 명 분의 죽음만 가지고도 이렇게 되고 말았는데.
사부가 저렇게 되는 데에는, 도대체 몇 명의 죽음이 있었던 걸까 자문했던 적도 있었다.
물론 박우찬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신처럼 살라고 말하진 않는다.
내가 너보다 많이 참고 있으니까 너도 나처럼 참으라고 강요하지도 않는다.
실제로, 신서아가 낸 해답이 그런 것이라면 나름의 존중도 보일 테지.
그렇지만.
신서아가 내놓은 해답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다는 걸 아니까.
"누구나 그래."
이런 미친 세상이다.
대한민국 국민 중 3할이 가족을 잃은 이 미친 시대.
반대로, 이런 미친 시대에서 평범한 삶을 살 수 있을 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 건 도대체 얼마나 축복받은 사람일까.
때문에, 박우찬은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누구나 그렇다.
누구나 이런 시대에선 평범한 삶을 살기 힘들다.
아니, 설령 살 수 있다 해도 마찬가지다.
평범한 삶 속에서도 사람들은 자신에게 짜증나는 누군가가 콱 하고 죽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떠올릴 때가 있다.
심지어 가족이 상대라 해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 중에서 정말로 눈 앞에 자신이 생각하던 사람이 억 하고 죽음을 맞이할 때.
흔들림 없는 기쁨을 느낄 사람이 세상 천지 얼마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구나 당황하겠지.
그런 문제다.
까놓고 말해서, 박우찬이 보기에 그녀의 문제는 딱 그 정도였다.
교사 일을 맡기기엔 불안하지만, 반대로 거기까지 하는 건 결벽증 아닌가 싶은.
……만약 다른 누군가가 그리 말했다면, 신서아라 해도 화를 내고 말았을 테지.
허나.
사부이기 때문이 아니라, 박우찬이기 때문에.
이미 그런 삶을 살고 있는 박우찬이기 때문에, 신서아는 그 말에 무어라 답하기 힘들었다.
다른 어느 누군가도 아닌 박우찬이라면, 그녀의 질문에 저리 답할 자격이 있었다.
문득, 신서아는 언젠가 들었던 우화를 떠올렸다.
짐승의 왕인 사자를 향해 상주를 올린 토끼의 이야기였다.
자신들을 잡아먹는 사자에게, 토끼는 그렇게 말했다.
우리들이 불쌍하진 않느냐고.
살육은 옳지 않다고.
우리들을 죽이지 말아달라고.
물론, 사자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약 토끼의 말대로 살육이 나쁜 일이라면.
자신은 전혀 공감할 수도 없고 내키지도 않으며 마음이 움직이지도 않았지만, 그런 말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고기를 끊고 풀을 먹을 가치는 있다.
그렇게 생각해 육식을 끊은 사자의 이야기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사자에게 채식을 할 수 있는 기능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우화의 마지막에서 사자는 죽음을 맞이하고 만다.
일종의 어리석음. 모종의 우둔함.
신서아는 자신의 사부에게서 그런 모습을 보았다.
자신이 전혀 공감하지도 못할 이유로 살의를 억누르며, 그게 옳다고 살아가는 모습.
그런 그이기에야말로, 그녀는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다 생각했고.
동시에 자신이 그 울타리 안에 있어서 다행이라고, 정말로 오랜만에 그런 생각을 했다.
"……아, 너무 오버했나?"
"어, 조금은?"
때문에.
그녀는 조금 어색하게 그런 말을 했다.
마치 방금 전까지 했던 말들 전부가 농담이었다는 듯이.
그러자 그녀의 사부는 그렇게 그녀의 말을 받았다.
언제나와 같은 교환.
그 사실이 사뭇 마음에 사무쳐, 그녀는 조금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띄었다.
그리고.
"하긴, 내가 생각해도 너무 오버했다. 그치?"
짧게 어깨를 으쓱이며, 그녀는 말했다.
분위기. 상황. 혹은 지금 이 순간.
그렇지 않으면, 다른 무언가의 힘이 작용한 결과일까.
요 몇 년, 단 한 번도 입 밖에 낼 수 없었던 말은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혀뿌리 위로 굴러나왔다.
"아, 맞아. 사부, 그거 알아?"
"응?"
"나, 사부 좋아해."
……그리고.
한 순간, 밤의 테라스에 침묵이 깔렸다.
그렇게.
최승준이 주최한 그 날의 파티는 그런 식으로 끝이 났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