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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78화 (178/371)

〈 178화 〉 커튼 콜

* * *

사태는 실로 순식간에 마무리되었다.

잠시 자리를 비웠던 이준구와 최승준이 돌아올 때까지 대략 5분.

그 사이 놈들은 야욕을 드러냈고, 뒤이어 내게 살해당했다.

덕분에 몬스터들을 상대한 시간보다 오히려 설명하는 쪽이 더 오래 걸릴 지경이었다.

하긴, 어쩔 수 없겠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회장 밖을 어슬렁거리고 있던 이준구.

혹은, 최근에 있었던 사촌들과 관련된 사건으로 잠시 자리를 비울 수밖에 없었던 최승준.

저 둘 입장에서 보자면 그야말로 마른 하늘의 날벼락이었을 테니까.

문자 그대로 고작해야 300초.

몬스터들의 습격이 있어 격퇴했다기엔 지나칠 정도로 짧은 시간이다.

뭐, 한 가지 다행인 점을 꼽자면 다른 참가자들을 상대로 구구절절 사정이나 설명해야 할 필요는 없었단 점이다.

여하간, 대다수 참가자들은 악마의 환각에 빠졌던 참이니.

최승준이 개회사를 미루고 자리를 비운 찰나, 때 아닌 졸음에 눈이 감겼다…….

그런 기분이 아닐까.

실제로 지금 이 자리에 분신을 보낸 티아마트 또한 그렇게 말했고.

아니, 이 녀석은 유달리 심하긴 했지만.

"뭣이? 몬스터의 습격? 전파 오류가 아니고?"

전파 오류 이 지랄.

하여튼.

정말로 타이밍 좋게 난입했던 덕택일까?

따로 확인한 결과, 정신에 문제가 생긴 참가자는 없었다.

정신 조작 능력 앞에서 실제 시간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

그렇지만, 정신 간섭 또한 결국 마력을 운용하는 방법의 일종.

당장 눈 앞에 있는 나를 견제하기 바빴던 그 시점.

이미 쓰러진 사람들을 상대로 하나하나 수작이나 부리고 있을 여유는 없었단 뜻이겠지.

아슬아슬하게 정신을 붙들고 있던 서아 쪽에 조금 더 힘을 싣는 정도가 고작이었을 것이다.

덕분에 파티 또한 자연스레 재개할 수 있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악마의 피가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생각하기 힘들 만큼 느긋한 분위기 속.

마치 한여름 밤의 꿈이라도 꾸었다는 듯 메인 홀 너머로 잔잔한 음악이 흐른다.

물론 실제로는 주변에 잠복한 악마들을 추적하기 위한 헌터와 몬스터 사이의 술래잡기가 벌어지고 있겠지만.

뭐, 이런 자리에서 꺼낼 만한 이야기도 아니고.

실제로도 그러했다.

이준구와 함께 악마 시체를 처분하느라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던 최승준 또한 지금은 전혀 그런 기미를 보이지 않았으니.

우아하게 담소를 나누며 잔을 드는 최승준의 모습으로부터 시선을 돌린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으리라.

애시당초 저 쪽 편에 선 자들이라면 이번 습격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사실 정도는 이미 짐작하고 있을 테지.

반대로, 우리 쪽에 붙기로 한 친구들에겐 최승준이 따로 설명할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때문에, 정작 누구 하나 몬스터의 습격에 대해 언급하는 일 없이 파티는 점차 끝을 맞이하고 있었다.

적어도 겉으로는.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평화롭고, 아는 사람이 보기엔 갑갑한 메인 홀 속 분위기.

나와 서아는 이를 피해 근처 테라스에서 몰래 숨을 돌리고 있었다.

"에엑, 죽었어……?"

그리고.

우리 둘 사이에 화두로 오른 건 당연히 이번 습격을 주도한 예의 악마였다.

회장 내의 분위기야 어쨌든, 서아는 이번 사건의 전말을 들을 자격이 있었다.

다른 학생들 쪽도 걱정되긴 매한가지였지만, 나로서는 서아를 한층 더 염려할 수밖에 없었다.

방금 전 악마와 나누었던 대화를 고려할 때, 놈이 마지막까지 노리고 있었던 건 서아 쪽.

달리 말하자면, 서아는 이번 습격 사건에 있어 다른 사람들을 보호하는 방파제 역할을 맡았던 셈이다.

마지막에 놈이 보인 빈틈으로 추측건대, 서아도 놈의 간섭을 뿌리치는 데엔 성공했을 테고.

그렇지만.

요컨대 서아는 거의 3분 가까운 시간 동안 예의 마신에게 정신을 공격당했다는 뜻이다.

당연히 걱정될 수밖에.

다행스럽게도, 겉으로 보기엔 정신 쪽은 별다른 문제 하나 없음.

오히려 파티 참석 전에 비하면 쾌활한 듯 느껴지기도 한다.

일단 악마의 유혹 따위에 넘어가진 않은 모양인데…….

"응? 왜?"

"아니, 다음에 또 보자는 식으로 헤어졌거든."

정작 서아는 그렇게 말했다.

도대체 무슨 대화를 나누었던 건진 나로서도 알 수 없지만, 얼핏 훑은 서아의 얼굴에선 묘한 아쉬움이 느껴졌다.

으음, 위험한데.

악마의 유혹에서 벗어난 사례 중 가장 위험한 패턴이다.

정신을 보호하는 데엔 성공했지만, 당사자가 악마에게 정을 붙여버린 경우.

"뭐, 저 쪽에서도 진지하게 한 말은 아니었겠지만!아마도 나를 회유하기 위한 거짓말 아니었을까?"

내 떨떠름한 표정을 보며 서아는 능청스레 그리 말했다.

하지만.

"아니."

"응?"

나로서는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거인 이하의 육체적 능력. 드래곤 이하의 마력적 자질.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마가 가장 기피당하는 몬스터라 불리는 데엔 바로 그런 사정이 있었다.

악마는 인간과 대화가 통한다.

인간을 꼬드기고 악의 길로 유도하기 위해서다.

때문에, 여타 몬스터와 달리 악마들은 인간을 단순한 먹이가 아닌 대등한 교섭 상대로 여기는 성질이 있다.

폭넓은 능력 이상으로 경계해야 하는 특성이다.

이름에 어울리지 않는 친절함 또한 마찬가지다.

악마라는 이름을 듣고 경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열고 접근하기 위한 수단.

말하자면, 악마에게 있어 교묘한 화술은 다른 몬스터의 발톱이나 이빨과 같이 생존을 위한 수단이요 무기인 셈이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악마들은 사악하다.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해 친절한 척 가장하고 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경계하는 쪽이 오히려 더 위험하다.

내가 서아에게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고.

왜냐하면 악마들은 정말로 순수한 의도를 품은 채 접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악마의 진의를 의심하며 달려든 사람들이 역으로 회의감을 느끼게 될 만큼.

그렇게 죄책감을 느끼게 될 때부터 악마들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뭐, 당연한 이야기지.

사람을 포함한 짐승들 전원이 악의를 경계하고 선의를 반기기 마련이다.

허면,악마들 또한 선의를 내거는 쪽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다.

대놓고 악의를 드러내면 누구나 의심할 테니까.

예를 들면 지희의 모친 등이 있겠지.

순수한 선의로 지희를 타락시키고자 접근했던 몽마의 여왕.

비록 빡대가리에 보기만 해도 성질이 뻗치긴 했지만, 그 본질은 인간에 대한 악의가 아니다.

애초에 인간을 그토록 미워했다면 인간 남자와 아이를 낳을 이유가 어디에 있겠나.

'지희 앞에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악마는 딱히 인간을 적대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냥 생겨먹은 게 인간들에게 해가 되는 생물.

순수한 선의로 다가와 무구하게 악을 권하는 존재.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바이러스다.

솔직히 말해, 그냥 힘만 센 악마 쪽이 차라리 상대하기는 더 쉽다.

일전 아카데미 지하에 나타났던 녀석과 같이.

지금 서아가 품고 있는 감정 또한 마찬가지겠지.

모르긴 몰라도, 서아 또한 이번 악마에게서 모종의 친절함을 느낀 거다.

자신에 대한 악의나 거짓말 따위가 아닌, 순수한 호의로 이루어진 마음을.

악마에게 저항하는 데에는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악마에게 마음의 빚을 만들어버린 상황.

이런 경우, 악마에게 저항한 경험이 있답시고 악마를 상대하는 데에 보내면 오히려 더 위험한 상황을 만들기 마련이다.

마음의 빚을 품고 있는 상황에서 악마와 접촉할 경우 역으로 빈틈을 만들어버리기 때문이다.

악이란 잔비와 같이 점차 스며드는 것.

그렇게 말하는 것처럼, 악마에게 마음을 내준 헌터 또한 여럿 있었다.

예의 악마 또한 마찬가지였겠지.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서아의 분위기가 한층 부드러워진 걸 보면 알 수 있다.

분명히 서아의 마음이 풀릴 만큼 느긋하게 이야기라도 나누었던 게 아닐까.

오히려 그런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마음을 다잡은 우리 제자가 자랑스러울 지경이다.

"……아니, 그런 건 아니었어."

하지만.

서아는 내 말에 대해 그렇게 대답했다.

"솔직히 넘어갈 뻔했거든."

자신이 악마의 유혹을 거부할 수 있었던 게 아니다.

오히려 넘어갈 뻔했다, 라고.

서아의 가장 깊은 무의식 속에서 나눈 대화에 대해선, 아무리 나라고 해도 짐작할 수 없다.

쉬이 물을 수도 없는 질문이고.

때문에, 우리들 사이로 때 아닌 침묵이 들어선 바로 그 다음 순간.

"사부."

"응?"

"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뭐야?"

"미안해."

다소 뜬금없는 발언이었다.

그렇지만, 이후 이어지는 서아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나 또한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몇 년 전.

아무래도 서아는 그 날 내게 했었던 말을 줄곧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잊어버리고 있던 것을 최근에 떠올렸다고 해야 할까.

덕분에 나를 대할 때마다 미안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고.

이번 파티 내내 기분이 우울했던 건 바로 그 때문인 모양이다.

'으음.'

솔직히 말해, 꽤나 곤란했다.

아니, 사과하는 이유는 알겠다.

나도 마음에 담아두었던 이야기니, 서아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게 아니라면 다행이라 말해야겠지.

오히려 서아가 가족의 원수 앞에서 사부라고 부르며 헤실대고 있었던 게 아니라면 나야 마음이 놓일 따름이고.

허나.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

까놓고 말해, 대답하기 엄청 힘들었다.

그야 그렇겠지.

무슨 상황이었는진 알겠다. 어떤 기분이었는지도 알겠다.

왜 미안해하고 있었던 건지도 들어서 안다.

그렇지만, 내 입장에서 보자면 갑자기 다른 주제가 나온 셈이니까.

말하자면, 다른 친구 생일 파티에서 네 생일엔 못 가서 미안하다고 큰 소리로 사과하는 친구를 보는 기분이었다.

마음이야 알겠지만, 여기서 그렇게 말해도 곤란해……!!

"뭐, 틀린 말도 아니고……."

때문에, 나로서는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나를 바라보며 쓴웃음을 짓는 서아.

이런, 오답인가?!

나도 모르게 그런 감상을 삼키는 사이, 서아는 파하핫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사부가 왜 미안해, 내가 미안하지."

"응?"

"미안, 사부."

그렇게 말하며 서아는 빙글 하고 몸을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밤하늘 아래로 곱게 땋아내린 녹색 머리칼이 호선을 그렸다.

"나, 학교 때려칠지도 몰라."

"어?"

"사실, 학생들한테 별로 좋은 생각도 안 들었고."

씩 하고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는 미소가, 평소와 달리 위태위태하게 보인다 싶었던 바로 그 순간.

"나, 학생들한테 해코지를 하려 한 적이 있거든."

"뭬야?"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꼴사나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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