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7화 〉 신서아
* * *
누구 하나 움직이기 힘든 침묵.
거의 3분 가까운 시간 동안 이어진 대치에 균열이 달린 건 눈 앞의 악마가 취한 행동 때문이었다.
움찔.
서로를 관찰하고 빈틈을 살피던 도중, 불현듯 악마의 손목이 튀었다.
어째서일까.
그딴 건 나중에 고찰해도 충분하다.
다음 순간, 놈의 목젖을 향해 섬광이 번뜩였다.
쩌엉!!
방금 전까지만 해도 놈의 머리통이 있던 장소에 단검이 작렬한다.
지나칠 정도로 낭비 없는 일격.
손을 휘두르는 것과 동시에 소환한 단검을 후려친 탓이었다.
지금은 평소처럼 여유롭게 단검이나 휘두르고 있을 만하 상황이 아니다.
때문에.
쥐고 휘두르는 대신 후려갈긴다.
한 동작 분량만큼 신속한 공격은, 덕분에 다소 부정확했다.
눈 앞의 악마가단검을 피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치 엉덩방아를 찧듯 주저앉은 악마.
'피했나.'
거의 엉겁결에 취한 행동이겠지만, 나도 모르게 혀를 차고 만다.
허나, 지금은 놈의 목숨 따위가 중요한 게 아니다.
그대로 손을 뻗어 악마가 앉아있던 의자의 등받이를 쥔다.
장갑을 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온 몸에 오한이 도는 듯했다.
그렇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참을 수 있다.
마취제 덕분일까, 아니면 의무감 때문일까.
어느 쪽이든, 별로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다.
등받이를 쥔 팔로 체중을 지탱하며 온 몸을 날린다.
동시에, 다리를 휘둘러 테이블 위를 휩쓴다.
화려하게 박살나는 접시들 사이로 번뜩이는 식기.
이윽고.
"캬아아아악!!"
회장 곳곳에서 짐승 소리가 폭발했다.
한 찰나에 이루어진 공방을 따라잡지 못한 저랭크 몬스터들에게 날아든 식기 때문이었다.
뭐, 상대는 어디까지나 몬스터.
비록 저랭크라 해도 고작해야이런 공격이 효과를 보긴 힘들다.
잘 해도 눈 한 번 깜짝할 시간이나 끄는 게 전부겠지.
그러므로.
'소재는 금속. 재료로 마력을 지불.'
눈 한 번 깜짝할 사이, 나는 다음 행동에 들어갔다.
단검과 동시에 불러낸 철구를 쥐고 마법을 행사한다.
물론 평소처럼 세밀한 조정 따위는 힘들겠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다.
대략 3분.
충분히 생각할 만한 시간이 있었으니까.
심사숙고 끝에 완성된 궤적을 따라 강철이 삐죽인다.
철사로 이루어진 나뭇가지.
그리 설명할 수밖에 없는 형상으로 변한 철구가 살벌한 소리와 함께 괴물들을 도살한다.
그렇게.
메인 홀을 점거하고 있던 몬스터들을 제압하기까지, 얼추 2초 내외.
형세가 뒤집혔다.
'씹.'
하지만.
내 입장에서 보자면 솔직히 만족스러운 결과는 아니었다.
"갸, 갸아아악……."
다름이 아니라, 죽일 생각으로 행사한 마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 놈들이 대다수였던 탓이다.
미친, 설마 이 정도로 열화되었을 줄이야.
마취제 존나 세.
살짝 어지러운 기분에 이마를 짚는다.
어쨌든, 잠입한 몬스터 부대에게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최악의 결말은 피할 수 있었나.
"남은 건 너 하나 뿐이군."
허면, 지금 당장 위험한 건 눈 앞의 이 악마 뿐이다.
추정컨대 대략 A+랭크 몬스터.
정신 조작에 특화된 힘을 갖추고 있지만, 반대로 아직 밝혀지지 않은 능력이 있을 가능성도 높다.
어느 쪽이든, 지금 내 몸 상태로 방심할 만한 상대는 아니겠지.
"거 참 매정하시긴."
정작 당사자인 몬스터는 뜻 모를 소리나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매정하다니, 설마 제 부하들만큼은 살려달라며탄원할 생각도 아닐 텐데.
애시당초 내게 그런 제안을 수락할 생각이 없다는 건 둘째치더라도, 상대는 몬스터.
약육강식을 당연시하는 생물이다.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할 리도 없지.
"제자들이 환각 속에 붙잡힌 상황에서도 가장 먼저 우리 목을 노릴 줄이야."
실제로도 그러했다.
그러나.
당장 눈 앞의 악마가 입에 올린 말을 듣고 있자니 무심코 헛웃음이 나왔다.
숫제 이 쪽을 비난하는 어조였지만, 나로서는 그렇게 말할 정도라면 처음부터 습격하질 말라는 생각이 들 뿐이었으니까.
애초에.
"웃기지 마, 인마."
녀석이 말하는 제자가 누구인진 나 또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여하간, 다른 녀석들이야 기본적인 능력 차이가 너무 크니 저항하기도 힘들었을 테고.
능력의 상성을 고려할 경우 지희.
혹은 서아 뿐이다.
개중에서도 서아일 가능성이 가능성이 높겠지.
짐승들이 으레 그렇듯이, 몬스터 또한 같은 무리에 속하는 상위 개체에겐약한 면이 없잖아 있다.
말하자면 직속 상사나 마찬가지니까.
물론 지희는 혼혈이니만큼 상대적으로 영향도덜하긴 하겠지만,아무리 그래도 완전히 거스를 수는 없을 테니.
비록 여왕급이라곤 해도 어디까지나 일개 몽마의 딸인 지희.
그리고 눈 앞의 대악마.
어느 쪽이 높을까 물으면 그야 후자다.
때문에, 지금 저 놈이 언급한 제자는 서아일 확률이 높았다.
일을 벌이기 직전 내게 붙들리고 만 녀석이 순식간에 쓰러진 다른 애들까지 하나하나 건드리고 다닐 여유는 없었을 테고.
그러므로.
"걔는 내 수제자야."
확신을 가진 채 답할 수 있었다.
환각에 대처하는 방법 따위는 골백 번도 넘게 가르쳤다.
애초에 정신 장악 능력 따위에 빈틈을 보일 만한 성격도 아니다.
본래대로라면 눈 앞의 악마 따위에게 넘어가는 일도 없었겠지.
요 근래 기분이 나빴던 탓에 이번은 별달리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 모양이지만…….
그런 녀석이니만큼, 내게는 서아가 고작해야 악마의 능력 따위에 현혹당하진 않으리라는 믿음이 있었다.
"어이쿠, 그러시다는군."
내 말을 들은 악마는 능청스레 어깨를 좁혔다.
믿는다는 말로 부담을 밀어붙일 뿐이지 않느냐던가, 그렇지 않으면 형편 좋은 핑계에 불과하다던가.
그런 식으로 반박하지 않을까 추측하고 있던 나조차 김이 빠질 만큼 시원스러운 태도였다.
것보다, 눈 앞에 있는 내게 말하는 듯한 어투도 아니었고.
'뭐지?'
내심 그런 생각을 삼키는 사이, 놈은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새삼스럽지만, 다소 지나칠 만큼 전형적인 악마 관상이었다.
우악스러운 짐승의 머리.
그에 비해 깔끔하게 차려입은 정장.
누가 보아도 한 눈에 악마라 짐작할 수 있을 외견과 달리, 신중하게 점잔 빼는 말투.
마치 스며드는 듯한 행동거지에선 모종의 온화함마저 느껴졌다.
바야흐로 악마.
짐승과 닮은 외견으로 드러나는 폭력성을, 정장이라는 엄격함 속에 가두기라도 한 듯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저 안에 잠재된 폭력성을 드러내야 할 때.
방금 전까지는 단순한 사담이었다는 듯, 다음 순간 악마의 몸이 크게 부풀었다.
그리고.
"흠?"
털썩.
묘한 소리와 함께, 악마의 무릎이 바닥에 닿았다.
방금 전, 정장 채로 터트릴 듯 크게 부풀었던 육체 또한 마찬가지였다.
"크흠?!"
아니, 역으로 한층 더 왜소하게 줄어든 듯했다.
제 몸을 가누기도 힘든 듯, 연신 헛기침을 터트리던 악마의 입가에서 죽은 피가 튀어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상황은 녀석에게도 예상 밖이었던 거겠지.
휘둥그레 흡뜬 눈동자가 퍽 인상적이었다.
그야 그렇겠지.
나도 이럴 생각으로 취한 대책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인간사 새옹지마라고 해야 할까?
적어도 지금 이 몸 상태로 연전을 치르는 쪽보단 낫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새로운 단검을 한 자루 꺼내든다.
평소 사용하던 애병과 달리 손에 익진 않았지만, 다루는 부담은 훨씬 덜했다.
"나 참, 그러게 하필이면 잠입 액션 따위를 선택해선."
만약 정면으로 쳐들어왔다면 이런 솜씨를 발휘할 수는 없었겠지.
어설프게 잠입해서 사람인 척 음식이나 집어먹고 있으니 저런 꼴이 된 거 아냐.
나로서는 그리 품평할 수밖에 없었다.
"갸아아아악!!"
실제로도 그러했다.
눈 앞의 악마는 필시 상당한 고위의 존재였던 거겠지.
아직까진 나름대로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다른 잡졸들은 그렇지 않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중상 정도가 대다수였던 악마들 사이에서 비명이 나돌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나뒹굴던 악마들 중 일부는 제 풀에 꺾여버린 듯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녀석들 또한 더러 있었다.
"독, 인가?"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황이라는 물건이지."
"마황?"
"아마도 너희 문화권에선 하오마Haoma라고 할걸?"
그렇게 말하며 어깨를 좁히자, 악마의 얼굴에 이해가 달렸다.
하오마.
인도 신화의 소마와 그 기원을 공유하는 불로초.
페르시아 신화에 전해지는 성스러운 풀이다.
뿌리가 뿌리이니만큼, 대다수 성질은 소마와 동일.
그렇지만 한 가지 특징적인 점이 있다면, 이 쪽은 악마들이 복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인도 신화의 소마는 악마들조차 입에 대길 바랄 정도로 영험한 힘을 지닌 신주라는 점을 생각하면 정 반대라고 해야 할까.
하오마는 다르다.
조로아스터 교에 전해지는 하오마는 신성한 제례에 사용되는 영험한 약초.
때문에, 역으로 악마들을 정화하는 힘을 보유한다.
선지자 조로아스터의 일화에서도 등장하듯이.
즉, 이란 판 성수의 원재료라는 뜻인데…….
현대에서는 이런 하오마라 추측되던 게 바로 마황이라 불리는 식물이었다.
게이트가 열린 지금은 당연히 여타 연금술 레시피처럼 마황을 원재료로 삼는 하오마의 재현에 성공했고.
이번 파티 음식에 조금씩 섞인 건 바로 그 하오마였다.
페르시아 신화 출신 악마에게는 당연히 유효할 수밖에 없겠지.
물론 마황인지 뭔지 하는 재료가 건강에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이 있는 탓에 뺀질나게 주방 쪽을 들락거려야 하긴 했는데.
뭐, 까놓고 그런 사정이라도 없으면 내가 주방을 들락거릴 이유가 어디에 있겠나.
"……처음부터 알고 있었군."
"어, 딱히?"
말마따나, 놈들이 이런 식으로 달려들 걸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면 애초에 회장을 내주지도 않았겠지.
혹시나 해서 준비한 몇 가지 대책 중 하나가 우연히 들어맞았을 뿐이다.
뭐, 덕분에 마황을 가공하는 방법에 대해선 실컷 공부할 수 있었지만.
다음에 함정 용도로 써먹던가 해야지.
"농담도. 허면, 하필 오늘 하오마를 쓰겠다고 생각했을 뿐이라 주장하는 겐가?"
"아하, 그 쪽?"
그렇게 되묻는 악마의 모습에 나는 어깨를 좁혔다.
"그야 알고 있었지."
아니, 당연한 이야기 아닌가?
놈들의 습격은 예측할 수 없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렇게 막 나가는 수단을 쓸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야, 막말로 너희가 보낸 몬스터만 살펴도 알 수 있겠다."
신세계 질서Novus Ordo Seclorum.
여태까지 놈들이 보냈던 건 대부분 중동 출신 몬스터 뿐이다.
아카데미를 습격했던 중동 출신 악마.
중동을 원류로 삼는 서큐버스.
이번 사태에서 대대적인 역할을 한 구울.
심지어 중동 계통의 용까지.
다른 몬스터라 해 봐야 요호나 귀수산, 혹은 두두리 등 현지에서 충원할 수 있는 몬스터들 뿐이고.
정체를 들키지 않았을 거라 생각하는 쪽이 지나칠 정도로 자신감 넘치는 발언 아닌가?
하물며.
"당연히 너희 대장님 정체도 얼추 짐작이 가고. 추정 마신 나으리."
"흠."
"아아, 딱히 대답할 필요는 없어. 순순히 대답할 리도 없고."
사실 헛다리를 짚었다 한들 별로 상관도 없다.
내가 쪽팔린 게 전부고.
이번에 들어맞은 꼴을 보자니 아마도 정답이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 뿐.
거기에, 어느 쪽이든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
몇 번이나 말했다시피, 설령 A+랭크 헌터라 해도 방심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E랭크 몬스터에게 치명상을 입기도 한다.
이번에 놈들이 획책했듯이, 완전히 무력화된 상황이라면 저랭크 몬스터의 손으로도 S랭크 헌터를 사냥할 수 있겠지.
허면?
눈 앞의 악마와 내가 대치하고 있던 시간만 해도 얼추 3분 이상.
체내에 하오마 성분이 돌고도 남을 시간이겠지.
비유하자면, 몽마의 여왕 따위가 교황청에서 직접 정제한 최고급 성수를 마신 셈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굳이 싸우고 말고 할 필요도 없다.
완전히 방심한 A+랭크 헌터가 E랭크 몬스터에게 목숨을 잃을 수 있다면, 반대가 성립하지 않을 이유는 무엇인가?
설령 A+랭크 몬스터라 해도, 지금 이 상황이라면 도저히 정상이라 하기 힘든 내 몸으로도 충분히 처리할 수 있다.
우리들은 사냥꾼이니까.
독이 든 미끼를 먹이는 데에 성공했다면 직접 싸울 필요는 어디에도 없는 법이다.
"자, 입 꽉 다물고. 네 이빨, 잘 보니까 혀 씹으면 구멍 뚫리게 생겼더라 야."
시덥잖은 웃음소리와 함께 단검을 고쳐쥔다.
이준구나 최승준이 돌아올 때까지, 남은 시간은 1분 남짓.
그 정도로 여유가 있으면 이 놈의 모가지 정도는 충분히 썰어버릴 수 있겠지.
주변에 널린 시체들이야 그 놈들보고 치우라 하면 될 테고.
사실상 내가 다 잡은 수준인데, 이 정도 여흥은 즐겨도 괜찮겠지.
뒷처리를 할 필요도 없다. 달리 신경을 써야 할 일도 없다.
새삼 행복한 기분으로, 나는 눈 앞의 마신을 향해 단검을 들이밀었다.
"염병할."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마신은 조용히 그렇게 뇌까렸다.
다행스럽게도, 질기긴 했지만 칼이 안 들어가진 않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