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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76화 (176/371)

〈 176화 〉 신서아

* * *

"엄밀히 말하자면, 정말로 좋아한다 말하기도 힘들지."

……무거운 진동이 극장을 뒤흔드는 가운데, 마신은 여전히 변함없는 태도로 그런 소평을 남겼다.

신서아의 기억으로 이루어진 이 극장이 흔들린다는 건, 다시 말해 그녀의 정신이 흔들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정신의 흔들림은 곧 마음의 흔들림.

다시 말해 마신으로서는 그녀의 마음을 장악할 기회가 눈 앞에 닥친 셈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신은 별다른 내색 하나 하지 않았다.

놀랍다기보단 얄미울 정도로.

"아니, 자네의 마음을 의심하는 건 아닐세. 단지, 생물학적인 감정에가깝다는 점도 사실이잖나?"

사람 사이의 연정이 아닌, 생물학적인 반응.

마신은 신서아의 감정을 그리 평가했다.

당연한 이야기지.

생물로 태어난 이상, 대다수는 이성에게 끌리기 마련이다.

그리고 신서아는 어머니나 박우찬을 제외한 세상 어느 누구에게도 더 이상 호의적인 감정을 품을 수 없다.

때문에.

"그야 반할 수밖에 없겠지."

세상 사람들을 향한 신서아의 호의가 높아도 0점이나 되면 다행인 시점에서, 박우찬이 몇 점이라 한들 문제가 되진 않는다.

설령 1점이나 5점에 불과하다 해도 마찬가지.

어차피 그 시점에서 박우찬은 신서아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일 테니까.

"이를 연심이라 하지 않으면 무어라 하겠나?"

"아, 아냐. 아냐, 아냐!!"

"아니라고 해도 말이지. 그럼 자네는 마음에도 없는 사람을 위해 학생들을 죽이려 한 미치광이가 된다만."

물론 신서아가 하고 싶었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다.

자신이 사부를 좋아한다는 건 그런 의미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정말이다. 진심으로 좋아하고 있다.

그렇지만.

마신이 퉁명스레 내뱉은 말을 들은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가장 먼저 변명을 입에 올리고 있었다.

"주, 죽이려고 한 적은 없었어!"

"뭐, 실행에 옮기진 않았지. 학생들에 대한 연민 때문은 아니었지만."

그러나 마신에게 자비는 없었다.

조용히 찔러드는 마신의 말에 신서아의 고개가 푹 하고 꺾인다.

틀린 말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도 그러했다.

일찍이 그녀의 마음 속에서 샘솟은 음습한 욕망.

하지만.

신서아는 자신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간 두려운 계획을 실행으로 옮기진 않았다.

인간으로서의 망설임이나학생들에 대한 연민,하다못해범죄에 대한 두려움 때문도 아니었다.

그녀가 그런 생각을 그만둔 이유는 단 하나.

박우찬 때문이었다.

박우찬이 슬퍼할 테니까.

……만약 그런 이유였다면 차라리 구제가 있었을 테지.

공교롭게도, 당시 그녀가 자신의 손을 멈추었던 건 박우찬을 생각한 결과물 따위가 아니었다.

어쩌다가 자신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사부가 눈치채기라도 한다면?

자신은 더 이상 사부와 얼굴을 맞대고 살 수 없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섰을 뿐.

그리고.

눈 앞의 악마는 신서아의 그런 감정을 낱낱이 꿰뚫고 있었다.

악의의 마신.

사람의 마음 가장 깊은 곳에 자리잡은 악의를 남김없이 맛보는 마신.

바야흐로 그 이름대로였다.

"그게, 그게 이상해?"

어쩌면 그 때문일까.

자신의 가장 추악한 일면.

사람의 가장 추악한 단면을 눈 앞에서 목도한 신서아의 목소리가 볼품없을 정도로 떨렸다.

"누구나 그렇잖아. 누구나 좋아하는 사람이 날 봐주길 원하잖아."

사람의 악의를 희롱하는 마신에게 주도권을 넘겨주지 않기 위한 억지인가.

그렇지 않으면 의식의 가장 밑바닥에 고이고 고인 진심인가.

신서아 본인으로서도 도저히 짐작할 수 없었다.

"그러면 안 돼? 트라우마가 있는 게, 그렇게 이상해?"

숫제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였다.

마침내 터트린 울음 너머로 어영부영 털어놓은 말꼬리가 이윽고 폭포가 되어 쏟아졌다.

"그럼 나는 어떡하라고. 다른 사람들처럼 살고 싶어도, 평범하게 살 수 있는 재능이 없다는 걸 나보고 어떡하라고!!"

걔네들은 가족이 있잖아.

설령 없다 해도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는 있잖아.

나는 그럴 수 없는데.

나한테 유이하게 남은 건 오로지 엄마랑 사부 둘 뿐인데.

그조차 뺏어가겠다는 게 오히려 너무한 일 아니야?

그게 싫어.

그래서 싫어.

그러니까 그런 생각을 한 건데. 그러니까 그런 생각이 든 건데.

"그게 그렇게 나쁜 일이야?!"

"나쁘지, 그럼!"

짐짓 쾌활한 어조로, 악의의 이름을 걸머진 마신은 그렇게 대답했다.

도무지 악마라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건전한 발언이었다.

돌연히 찾아든 정적 속.

마신은 이윽고 머쓱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물론 나는 악마니까 말일세. 나쁘다는 건 곧 좋다는 뜻이지."

어처구니없는 발언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안이 벙벙하던 그녀조차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줄곧 그렇긴 했지만, 눈 앞의 마신은 단순한 악마라 생각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친근한 구석이 있었다.

"농담처럼 말하긴 했지만, 진심이라고. 나는 자네의 마음을 응원하고 있어."

"헛소리."

"헛소리라니, 거 참 너무한 친구일세. 애시당초 그렇지 않으면 내가 이렇게 자네 앞에 나타난 이유가 무엇이겠나?"

확실히 그랬다.

여하간, 눈 앞의 악마는 그녀의 정신을 장악할 기회에도 별달리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역으로 지금처럼 악마의 유쾌한 발언에 마음을 다잡은 적도 있으니, 새삼스레 의심하기도 힘들었다.

"뭐, 믿기 힘들 법도 하지."

"맞아."

"그렇지만, 방금 전 내가 한 말은 전부 진심이야. 필요하다면 도움을 주고 싶을 정도거든."

"도움?"

한층 편안한 마음으로 신서아는 그렇게 되물었다.

뭐, 전설 속 악마처럼 사랑의 묘약이라도 선물하겠다는 뜻일까?

만약 그렇다면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 싶었다…….

"예를 들면, 일찍이 자네가 계획했던 일에 손을 거들 수 있겠지."

그리고.

마신은 그렇게 말했다.

과연 악마라고 할 법한 제안이었다.

참으로 독특한 화법이라고, 신서아는 생각했다.

눈 앞의 악마는 단 한 번도 자신의 말을 강조하지 않았다.

마치 지나가듯 조용히 언급할 뿐.

때문에, 조금 시간이 지난 뒤 놀라는 건 언제나 그녀의 몫이었다.

"뭐?"

"요컨대, 자네가 지레 겁을 먹었던 건 자네의 사부가 범행을 눈치채는 건 아닐까 생각했기 때문이잖나?"

"……겁을 먹진 않았는데."

"그래? 허면, 내 겁을 먹지 않은 자네에게 묻지."

만에 하나, 자네에게 범행을 은폐할 수 있는 수단이 있다.

설령 들키더라도 능히 만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렇다 한다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신서아.

박우찬의 제자.

동시에, 여타 사람들이 그렇듯이 마음에 상처를 품고 살아가는 이.

몬스터를 죽이는 사냥꾼은, 악마의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말해두겠지만, 방법은 정말로 간단해. 게이트를 이용하는 거지."

실제로 흔한 일이기도 했다.

게이트 내의 사고로 위장해 다른 사람이나 헌터를 매장하는 일은.

물론 그 자리에 남은 사념을 읽는 사이코메트리 능력도 있으니만큼 은폐하기도 어렵고, 걸리면 가중 처벌받기 마련이지만.

"특정 장소로 유도하고 신호를 보내게. 허면 우리들 쪽에서 움직이도록 하지. 자, 정말로 간단한 일 아닌가?"

눈 앞의 악마가 얘기한 수단은 사이코메트리 따위를 동원해도 간파하기 힘들 수작이었다.

아니, 그 이전에 들키고 말고 할 문제도 아니다.

요컨대 그녀가 신호를 보내면 예의 비밀 조직 측에서 멋대로 행동에 나서겠다는 뜻 아닌가.

심지어 지금 이 밀약만 해도 마찬가지.

마음 속에서 맺은 약속을 도대체 누가 눈치챌 수 있다는 말인가.

설령 독심술사라 해도 이렇게 깊은 무의식 밑바닥까지 엿보는 건 손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지금은 어쩌다 보니 흔들렸을 뿐.

평상시 그녀는 대다수 정신 간섭 능력을 튕겨낼 수 있다는 자신도 있었다.

즉, 완전 범죄다.

그렇지만.

"그러니까, 나한테 첩자 노릇을 하라 이 소리야?"

"첩자?"

말인즉슨 자신들과 동맹을 맺자는 뜻 아닌가?

신서아는 그렇게 반문했지만, 악마는 도리어 이해하기 힘들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도대체 어쩌다가 그런 결론에 도달한 건진 모르겠지만,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아닐세."

"어? 아니라고?"

"음. 것보다, 누차 말하지 않았나? 이건 단순한 호의라고."

"……나중에 따로 공표하려는 거 아니야?"

"왜?"

"어, 우리 쪽 전력을 줄이려고……?"

"흠."

그 말에 악마는 조심스레 상아를 쓸었다.

허를 찔렸다기보단 진심으로 당황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그러니까, S랭크가 네 명은 있는 자네들 팀의 전력을 줄이기 위해 실질 A­랭크 가까운 자네를 노린다 이 말이지?"

"아니, 그렇게 말하진 말고."

"뭐, 좋은 일이지. 음, 자신감이 있다는 건 그야 좋은 일 아니겠는가."

그렇게 듣자 신서아 또한 무어라 말하기 힘들었다.

어줍잖게 자신을 배려하는 악마의 태도에 부끄러움이 느껴지기도 덤이다.

헌데, S랭크가 넷?

셋 아닌가?

아무리 그래도 혼인회 출신 경비원이 S랭크 상당의 전력을 지니고 있다던가 하는 사정까진 모르는 서아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뭐, 어쨌든.

그렇게 들으면 확실히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이긴 했다.

"만약 내가 거절한다면? 어떻게 되는 거지?"

"뭐 어떻게 되긴 어떻게 되겠나, 거절당하는 거지."

"그게 끝이야?"

"그럼 뭐가 더 있겠나? 어쩌면 내 제안을 거절한 자네가 마음을 다잡고 나를 이 공간에서 추방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심지어 눈 앞의 악마 또한 마찬가지였다.

말 그대로 정말 단순한 호의에 불과하다는 듯, 거절한다 치더라도 별로 상관 없다는 듯한 태도.

오히려 한 번 말해보았을 뿐이라는 듯, 담담하게 이야기를 푸는 악마의 태도는 참으로 신이했다.

허면.

역으로 생각해 보자.

자신이 지금 이 제안을 거절해야 할 이유는 무엇인가?

놀랍게도,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혹시 사부도 여기에 부를 수 있어?"

"미안하지만 그건 불가능하겠군. 유감스럽게도, 자네 사부는 내 권능에 걸리지 않아서 말이야."

"그럼 됐어."

그리고.

다음 순간, 그들이 서 있던 극장이 붕괴하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 몇 번이나 찾아들었던 지진.

마음의 동요조차 무엇 하나 없이, 갑작스레 찾아든 결말이었다.

"흠?"

과연 악마라 해도 이런 결말은 예상하지 못한 것일까.

갑작스러운 사태에도 악마는 여전히 손을 쓰지 않았다.

그저 놀란 것인지,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자신으로서는 단순한 호의였을 뿐인지.

악마의 그런 무반응을 향해, 신서아는 멋쩍은 듯 웃음을 지었다.

"미안. 제안은 고맙지만, 사부랑 한 번 이야기나 해 보려고."

"허어."

미친 건가?

솔직히 말해, 악마는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방금 전까지 한 얘기를 자기 사부랑 공유하겠다고?

왜?

것보다, 그런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일 사람이 어디에 있다고?

"그야 그렇지."

실제로 그녀가 생각하기에도 그랬다.

이런 이야기를 듣고 흔쾌히 고개를 끄덕일 리가.

적어도 그녀가 알고 있는 사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반대로, 그렇다는 이유로 이 이상 대화를 미룰 수는 없다.

사부의 말을 듣지 않고, 사부의 입장을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흘린 한 마디.

그렇게 취한 행동이 사부의 마음에 대못이 되어 박히는 건──.

유감스럽게도, 이미 한 번 저지른 적 있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신서아는 생각했다.

마신의 제안이 아니라, 오늘 느꼈던 기분을 자신은 두 번이나 감당할 수 있을까 어떨까.

그렇게 자문한 결과, 신서아는 도무지 그럴 수 없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역으로 확실하게 마음을 다잡은 신서아의 정신이, 마신의 간섭을 의식 밑바닥에서 추방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 참.'

마신은 조용히 혀를 내둘렀다.

그야 거절하는 경우도 생각하긴 했지.

하지만.

당장 눈 앞에서 자신이 늘어놓은 이야기보다, 사부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 어떨까.

다시 한 번 사부에게 그런 짓을 저지를 것인가 어떤가.

그런 생각 끝에 마음을 다잡았다는 것인가.

문자 그대로, 자신의 사고나 무의식조차 그 사내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건지.

설마 그런 한 마디로 이런 결말이 날 거라곤 상상할 수조차 없었던 마신은, 조용히 그렇게 답했다.

"미친 년이로군."

당연하지만, 사람의 악의를 관장하는 마신에게 있어선 욕지거리가 아니라 칭찬이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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