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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74화 (174/371)

〈 174화 〉 악의의 마신

* * *

눈 앞에 나타난 악마의 모습을 보고서 가장 먼저 느낀 감정은, 일종의 생경함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당장 몬스터를 눈 앞에 두고도 냉정하게 그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마취제를 투여하지 않았을 때도 몬스터를 관찰해야 할 일은 더러 있었다.

확실한 사냥을 위해선 필요한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처럼 차분한 마음으로 겉모습을 살필 수는 없었다.

지나칠 정도로 과열된 머리.

그리고 미쳐 날뛰는 감각은 당장 저 괴물들의 약점을 찾아내고 간파해 쑤시라며 호통을 치곤 했었으니까.

말하자면, 어디까지나 약점과 빈틈을 찾기 위한 행동이었던 셈이다.

허나, 지금은 달랐다.

느긋하게 눈 앞의 악마를 살핀다.

다소 펑키하게 생긴 친구였다.

마치 짐승처럼 늘어뜨린 갈기.

푸르다 못해 창백하게 질린 듯한 눈동자.

동시에, 흉측하게 돋은 어금니.

마치 코끼리의 상아처럼 우악스레 돋은 이빨이 사방으로 휜 모습부터 아주 인상적이었다.

비유하자면 사자와 코끼리를 반쯤 섞어 성의 없이 다듬은 듯한 쌍판떼기였다.

이토록 신묘한 머리통을 달고 있는 반인반수라니.

혹시나 싶긴 했지만, 부모에게서 지나칠 정도로 유전적 요인을 물려받았을 뿐인 혼혈 나부랭이는 역시 아니겠지.

슬쩍 손목을 확인한다.

뒤틀린 손목의 각도로 보건대 상대는 대충 A랭크 이상.

거의 A+랭크에 가까운 몬스터인 모양이다.

나 참, 아무리 그래도 내가 적의 수준을 파악하는 데에 능력 대신 손목 꺾인 각도를 확인해야 하다니.

실로 말세가 아닐 수 없었다.

"도축업자, 박우찬이라……."

그래서.

정작 그 악마 비슷한 양반이 무얼 하고 있느냐 하면, 딱히 아무 것도 안 하고 있었다.

아니, 아무래도 그 말에는 어폐가 있겠지.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행동은 이미 끝났다.

이준구는 자리에 없다.

사실 녀석만큼 행동을 유도하기 쉬운 녀석도 드물고.

적당히 하급 헌터 한 명을 이용해 팬이랍시고 부르기만 하면 얼마든지 빈틈을 만들어낼 수 있겠지.

호위 자격으로 참가한 것도 아니니만큼, 무어라 쓴소리를 하기도 힘든 판국이다.

최승준이 자리를 비운 이유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어렴풋이 짐작하기만 할 뿐.

일찍이 신세계 질서 놈들에게 협력하고 있는 사촌들이 있다 들었으니, 아마도 그 쪽을 사용한 게 아닐까.

가족이라는 명분을 앞세운 호출.

혹은, 신세계 질서의 힘을 빌린 반격?

어느 쪽이든,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때문에.

그렇게 주요 인물들이 자리를 비운 지금.

단순한 시간으로 따지면 실로 5분도 되지 않을 사이, 놈들은 본색을 드러냈다.

어떻게 잠입했느냐 묻는 것만큼 어처구니없는 질문도 없겠지.

아무리 그래도 이번 파티를 위해 고용한 경비원 전원이 나와 같은 감각을 가지고 있을 리도 없지 않겠는가.

하물며 상대는 추정 A+랭크 몬스터.

게다가 십중팔구 정신 간섭에 특화된 녀석일 테지.

순식간에 회장을 장악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해서, 문제는 놈들의 목적이다만…….

'좋은 의도는 아니겠지.'

당연한 이야기였다.

설마 이제 와서 신세계 질서가 개심할 테니 부디 우리를 적대하진 말라고 부탁하러 온 건 아닐 테니까.

추측건대 이 쪽 세력을 일소하려는 속셈이 아니었을까.

말했다시피, A+랭크 헌터라 해도 충분한 조건이 갖추어진 상황이라면 E랭크 몬스터에게 치명상을 입을 수도 있다.

지금처럼 환각에 넘어간 상황이라면 더더욱 그렇고.

실내엔 남상원을 비롯한 무투파 또한 여럿 있었지만, 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아니, 것보다 남상원은 거인 혼혈 비슷한 무언가.

그리고 예로부터 거인이란 환각 등 정신 계통 능력에 취약한 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면 놈들이 하필 정신 간섭 계통 능력에 특화된 몬스터를 보낸 이유 또한 짐작이 갔다.

남상원이 우리 쪽으로 넘어왔다는 건 저들 또한 알고 있었을 테니까.

해서, 놈들의 목적대로 메인 홀을 장악한 지금.

'하필이면 내가 뒤늦게 합류했다, 라는 건가.'

실로 아슬아슬한 타이밍이었다.

어쩌면 정말로 조금만 더 늦게 나타났을 경우 메인 홀이 피바다가 된 광경을 보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녀석들로서는 퍽 아쉬운 상황일까.

다 된 밥에 재 뿌린 셈이니.

아니, 내 입장에서 보자면 당연한 결말이지만.

그렇지 않은가?

파티의 빈틈을 노린 계획이라 들으면 말이야 좋지, 실제로는 5분 내에 참가자 대다수를 도륙하고 떠난다는 벼락치기 스케줄이다.

저토록 섬세한 계획에 변수 하나 없을 리가.

오히려 여태까지 나 말고 단 한 명도 녀석들의 계획을 벗어나지 않았던 시점에서 지나칠 정도로 운이 좋은 편이다.

그리고.

내가 곤란한 이유 또한 바로 거기에 있었다.

'대충 봐도 스물 이상, 인가.'

놈들의 계획에는 실로 기본적인 전제 사항이 있었다.

바로 이준구 내지 최승준의 존재다.

정신 간섭에 취약한 남상원이야 어쨌든, 저 둘을 정신 간섭 한 번으로 처리하겠다?

글쎄, 아무래도 허황된 망상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겠지 싶은데.

만약 그런 일이 가능했다면 애초에 세계 각국은 정신 간섭 계통 능력자를 수집하려 혈안이 되었을 테고.

때문에, 놈들의 계획 속에서도 이준구와 최승준은 어디까지나 바깥으로 유도할 뿐.

딱히 어떻게 할 생각은 없는듯했다.

현실적인 목표 설정이라고 해야 할까.

그렇지만.

만약 저 둘이 회장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대해 눈치를 채기라도 한다면?

과연 신세계 질서로서도 곤란할 수밖에 없을 거다.

어쩌면 그 때문일까?

지금 이 회장에 잠입한 몬스터.

무력화된 이 쪽 세력을 도살할 생각으로 잠입한 축생 새끼들은 수만 많은 오합지졸처럼 느껴졌다.

하긴, 어줍잖게 고랭크 몬스터를 동원한다 한들 이준구를 당해낼 수 있을 리도 없고.

정신 계통 능력에 당해 무방비한 헌터 따위, 도살하는 데에는 E랭크 몬스터로도 충분하다.

숫자도 많을 테고,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 이 상황에서 필요한 건 강력한 A랭크 대악마가 아니다.

손쉽게 동원할 수 있으며, 인간으로 위장할 수 있는 E랭크 몬스터 여럿이다.

문제는 이런 전력으로 익히 알려진 도축업자의 손을 멈출 수는 없다는 점이다.

눈 앞의 개자식이 내 앞에 와서 조용히 뇌까리고 있는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일 테고.

어떻게든 시간을 끌려는 몸부림이다.

거기까지 눈치챘다면, 평소의 나로서는 실로 간단한 일이다.

버터 나이프 한 자루만 있어도 여타 조무래기들을 도려내는 건 일도 아니니까.

그렇지만.

'좆됐네그려.'

지금 내가 환자라는 점이 문제였다.

듬뿍 투여된 마취제.

거의 마비된 감각.

솔직히 말해서 지금도 잠이 와 죽겠는데, 지금 이 상황에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작해야 마취제 몇 방 놓은 걸로 내 감각을 온전히 잠재울 수는 없다.

지금도 억지로 움직이려 들면 싸울 수야 있겠지.

문제는, 완전히 영향이 없지도 않다는 점이다.

마취제를 투여한 상황에서 억지로 몸을 일으켜 눈 앞의 악마들을 토벌한다…….

가능할까?

그렇게 묻는다면, 못할 건 없다.

아마도.

말했다시피, 놈은 십중팔구 정신 간섭에 특화된 몬스터.

전투 계통이라면 모를까, 지금 나도 상대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지 않을까 싶은 기분은 있다.

문제는 딱히 확실하지도 않다는 점.

당연하지만, 저번 전투처럼 끔찍하기 짝이 없는 행동 따위 나로서도 난생 처음이었다.

것보다, 두 번째였다면 애초에 시도조차 안 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한 번 해보니 알겠다.

그거, 도저히 제정신으로 할 행동이 아니더라.

하여튼.

그런 만큼, 사실 지금 이 상황도 내게 그리 유리한 편은 아니었다.

아마도 움직일 수 있다.

아마도 싸울 수 있다.

어디까지나 가정법일 뿐, 확신은 없으니까.

싸울 수 있다고 생각이야 했지만 어디까지나 망상이었을 뿐, 눈 앞의 한 마리도 당해내지 못할 수 있다.

거기에.

'피해는?'

이길 수 있다손 쳐도, 그 외의 피해는?

막말로 내가 눈 앞의 괴물 새끼를 회쳐버릴 수는 있다고 치자.

그럼?

지금 당장 무리 사이에 섞여 인간들을 도륙내고자 준비하고 있는 새끼들은?

전원 처리할 수 있을까?

평소였다면 시그니처를 사용할 수라도 있겠지만, 마취제에 담뿍 절여진 지금은 그럴 수 있을 거라는 확신도 없다.

때문에.

상황은, 실제론 교착 상태였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대충 5분 내외밖에 없을 눈 앞의 몬스터.

거기에, 본 모습을 드러내고 인간들을 도륙하기 직전 갑자기 나타난 나 때문에 정지한 부하들.

반대로, 5분만 버티면 되지만 솔직히 그럴 수 있다는 확신이라곤 무엇 하나 없는 나.

심지어 실제로 싸우면 이길 수 있다고 확신하기엔 지금 상황이 아무래도 멋쩍다.

게다가, 시간만 끌어서 좋을 것도 없다.

일단 내가 눈 앞의 몬스터라 해도 5분이 지나면 당장 죽기살기로 난동을 부리거나 할 거라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정신 계통 능력에 있어, 능력에 잠식된 시간 따위는 별다른 의미가 없으니까.

어느 정도 한계는 있지만, 1초 내에 300번 이상의 죽음을 경험하게 하는 일도 이론 상 불가능하진 않겠지.

하긴, 당연한 일이었다.

애시당초 물리적인 피해로 따지면 독보다 못한 물건이니까.

그런 제약까지 있었다면 세뇌 능력을 제외한 모든 능력이 사장되었을 테고.

요컨대, 지금 이 상황 속에서도 놈들의 계획은 차근차근 진행되는 중이었다.

필요하다면, 죽일 수 있는 인원들은 죽인다.

놈들은 틀림없이 그런 생각으로 잠입했겠지.

그렇지만.

사람을 무력화하는 데에는 꼭 그런 방법만이 필요한 건 아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정신이 부서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

남은 시간은 5분이라지만, 실질적으로 그 전에 결판을 내야 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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