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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73화 (173/371)

〈 173화 〉 연회장

* * *

공교롭게도, 파티에 참석한 뒤 서아의 기분은 나빠지면 나빠졌지호전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애초에, 문제의 발단인 박우찬에게 사과를 건넬 수 있을 만한 상황이 나오지도 않았고.

게다가.

"그래. 이런 사업을 구상하고 있네만……."

"하하하."

파티에 참여한 박우찬에게 이런 식으로 수작을 부리는 사업가들 또한 문제였다.

이번 거룡 토벌 당시 박우찬의 활약을 풍문으로 들은 이들이 새로운 연을 쌓고자 하는 마음에 접근하는 것이었다.

물론 그녀에게도 그런 경험은 있었다.

단지.

A+랭크 헌터와 S랭크 헌터 사이에는 한 마디로 말하기 힘든 격차가 있는 법.

한없이 헌터 사회의 정점에 가깝다고는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 문명의 척도 안에존재하는 A+랭크.

현대 문명 척도를 벗어나 헌터 사회의 정점에 군림하는 S랭크.

어쩌면 이제 막 헌터가 된 E랭크와 A+랭크 사이의 격차보다 S랭크 앞에 놓인 도랑보다 깊을지도 모른다는 말은 괜히 있는 게 아니다.

"훗, 역시 도축업자. 스스로의 값어치를 잘 알고 있군."

"앗, 예."

때문에, 그녀는 박우찬이 모종의 협상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비참한 기분이었다.

너무나도 태연한 얼굴을 한 채 경제가 들썩일 만한 협상을 주도하는 박우찬.

사부인 박우찬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게 된다는 건 틀림없이 기뻐해야 할 일이다.

그렇지만, 신서아는 도저히 그렇게 생각할 수 없었다.

본디 둘의 사회적인 입장은 정 반대였으니까.

차세대 헌터 필두로서 사회적인 명성을 손에 넣은 서아.

이에 반해, 비 인가 헌터 출신이라는 과거 때문에 실력에 비해선 상대적으로 홀대받고 있던 박우찬.

허나, 지금은 달랐다.

본래 그녀가 적을 두고 있던 길드 쪽에서 있었던 추문 탓에 가급적 자숙하고 있는 서아.

그에 비해, 도시를 덮친 초대형 게이트를 사실상 홀로 해결한 박우찬.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상황 속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스타의 출현을 갈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박우찬의 등장은 실로 적절했다.

날숨 한 번으로 도시를 날려버릴 수 있을 거룡을 토벌한 실력파 헌터.

일찍이 헌터 협회와 척을 진 비 인가 헌터였지만, 지금은 몬스터의 손아귀에서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협회와 손을 잡은 사냥꾼.

도시의 재건을 위해 초대형 몬스터의 소재마저 헐값에 매각했다는 청년의 소문은 사람들의 입맛에도 딱 맞았다.

신서아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 명의 사회적 입장이 완전히 역전된 지금, 자신에게는 무엇이 남았을까.

외모?

그렇게 말할 수야 있겠지.

하지만.

오랜만에 재회한 사부의 곁에는 자신을 제외하고도 많은 여자들이 있었다.

대부분은 이제 막 고등학교에 입학한 꼬맹이들이었지만, 신서아는 알 수 있었다.

사부를 바라보는 꼬마들의 시선은 도저히 꼬맹이들의 치기 어린 마음이라 딱 잘라 치부할 수 없다는 걸.

때문에, 신서아는 막막한 기분이 들 뿐이었다.

자신에겐 도대체 무엇이 있을까.

사부가 자신의 옆에 남아있을 만한 이유를, 적어도 신서아는 단 하나도 댈 수 없었다.

오히려언제부터 자신이 이렇게 추한 사람이었던 건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그런 기분은 사부에게 다가와 인사를 건네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더더욱 심화되었다.

한껏 화려한 드레스를 뽐내며 온갖 칭찬과 함께 돌아서는 아이들.

여고생 특유의 쾌활함이 담긴 그 동작들을 바라보며, 신서아는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쉬었다.

'예쁘다, 귀엽다…….'

나름대로 빼입는다고 빼입었지만, 사부는 자신에게 저런 말을 하지 않았다.

예전부터 생각했지만, 자신은 사부의 취향이 아닌 걸까?

그런 마음에 울적한 기분이 들 따름이었다.

물론 그녀가 냉정하게 사고할 여유가 있었다면 깨달을 수 있었겠지.

평범한 사람이라면 그녀처럼 한숨 푹푹 쉬고 있는 사람 앞에서 드레스를 칭찬하진 않는다고!!

그러나.

박우찬의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고도 그가 온갖 회사 사장님들과 대등하게 협상하고 있노라 착각하고 있는 지금.

천리안이라는 능력이 아까울 정도로 콩깍지가 낀 그녀로서는 도저히 그런 사실들을 눈치챌 수 없었다.

바야흐로 악순환이었다.

이렇게 되자, 그녀의 마음 속에 샘솟고 있는 나쁜 생각은 도저히 걷잡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애초에 사과할 만한 상황이 찾아오지 않는다는 건 도대체 뭘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참으로 방자한 말이었다.

사과할 기회는 얼마든지 있었다.

비단 지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족히 몇 년.

신서아에게는 사과할 기회가 있었다. 마음을 고백할 기회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척비척 미루다가 지금 이런 꼴이니.

그런 자신의 어리석음에, 신서아는 한숨을 내쉬고 싶을 지경이었다.

하긴, 이러니까 그렇겠지.

이렇게 귀찮고 뻔뻔한 여자는 자신이라 해도 내키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 생각은 박우찬이 잠깐 자리를 피하며 한층 더 심해졌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소 어색할 정도로.

'……응?'

문득, 위화감이 느껴졌다.

이상할 정도로 부정적인 방향을 향해 치닫는 사고.

물론 파티에 참여하기 전까지만 해도 썩 즐거운 마음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 기분은 자신이 생각해도 이상할 정도였다.

사냥꾼으로서, 신서아는 그런 이상함을 눈치챘다.

일전에도 몇 번 이야기가 나왔듯이, 신서아는 단순한 몬스터에 대한 지식으론 박우찬의 절반 이하에 가깝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우찬이 그녀를 하산시킨 이유는 단 하나.

일정 부분에 있어선 그녀가 박우찬의 능력조차 상회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측.

천리안 능력을 갖추고 있기 때문인지, 그렇지 않으면 이 쪽 분야에 뛰어난 자질을 갖추고 있기에 천리안이 발현한 건지.

그건 알 수 없었지만, 신서아는 순수한 관측 능력에 있어선 박우찬조차 능가하고 있었다.

전장 관측. 현장 관측. 흔적 관측.

혹은, 자기 관측.

지금 자신의 몸 상태가 정상인지, 그렇지 않으면 위험한지.

이 이상 탐색을 지속해도 괜찮을지 어떨지.

그런 상황의 갈림길에 설 때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오판을 내린 적이 없었다.

스스로의 상황에 대한 객관적 파악.

자기의 객관화.

사냥꾼으로선 박우찬이 지닌 몬스터에 대한 지식에 필적할 만큼 압도적인 자질이었다.

그렇기에, 신서아는 지금 이 홀에 가득찬 위화감을 가장 먼저 눈치챘다.

"……흐음, 곤란하군요."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고 한다면, 상대 또한 만만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애초에 수작을 허용한 시점에서 한 걸음은 뒤쳐진 상태로 시작된 승부다.

거기에서 뒤늦게 대처하려 들어도, 상대가 남은 한 걸음을 좁히게 두지 않는다면 마땅히 쓸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때문에.

'몸이 움직이질 않아.'

다음 순간, 신서아는 그런 사실을 깨달았다.

의식은 있다. 그렇지만,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마치 정신과 육체가 괴리된 듯한 상황이었다.

무기를 꺼내려 해도, 눈을 돌리려 해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심지어 목소리를 높이려 해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설령 무어라 소리칠 수 있었다 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겠지.

신서아의 예민한 오감이 홀 내의 상황을 뚜렷하게 포착한다.

어느덧 홀 안에는 자신과 같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사람들 천지였다.

언제부터?

언제 이런 상황이 된 거지?

도대체 바깥 경비들은 뭘 하는 거야?

이런 걸 그냥 내버려두고 있었다고?

'……아니.'

반대다.

경비들의 눈을 피해 잠입한 게 아니라고, 신서아의 직감이 답을 고했다.

놈들은 처음부터 잠입하고 있었다.

신세계 질서Novus Ordo Seclorum.

사부가 몇 번이나 말했던 비밀조직의 끄나풀은, 처음부터 이 파티 내에 스며들어 있었다.

내통자가 있다.

물론 그 정도 사실은 그녀들 또한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피아를 구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거니까.

다만.

상대는 거기에서 한 수를 더 두기로 했다.

박우찬을 비롯한 아카데미 측 인원이 전원 한 자리에 집결한 지금.

달리 말하자면, 지금 이 장소엔 놈들의 대항마 대다수가 한 자리에 모여 있는 셈이었다.

즉.

행동에 나설 거라면, 지금 뿐이다.

파티 개최 도중 발생하는, 정말로 자그마한 틈.

놈들이 준비한 패를 이용해, 최승준과 이준구가 자리를 비우게 한 지금.

족히 5분도 되지 않는 이 한 순간이, 그들이 승부를 건 시점이었다.

정신 장악 능력을 중심으로, 최승준이나 이준구가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미약한 마력을 지닌 부하들을 대동.

이후 그 사이 속내를 들추어 확인해 적으로 돌아설 이들을 미리 숙청한다.

그렇게 되면, 남는 건 최승준과 이준구 뿐.

이런 수작에 걸리지 않을 거물들인 만큼 따로 미리 바깥으로 유도하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

고작해야 둘밖에 남지 않는다면 저들로서도 더 이상 어찌할 수 없다.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건 박우찬 쪽.

도저히 인맥이나 기타 등등을 활용해 바깥으로 유도할 수 없을 만큼 철저하게 과거가 비밀로 감춰진 그 사냥꾼 뿐이었지만…….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건가.

정작 그들이 이 메인 홀을 장악한 지금까지, 사냥꾼은 별다른 반응 하나 없었다.

결국 도축업자니 뭐니 해도 나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이라는 뜻인가.

비웃음과 함께, 그는 아직도 저항하고자 정신을 곤두세우고 있는 서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확실히, 이 정도로 전력을 모은 건 놀랄 일이었다.

설마 그 둘을 제외하고도 아슬아슬하게 저항하고 있는 대상이 있을 줄이야.

역시 처음부터 전력을 동원해 으깨버렸으면 이런 일도 없었을 텐데 말이지.

그렇게 생각하며, 사내.

지금 이 회장을 홀로 장악한 두려운 대악마는, 조용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사람의 것이 아닌 짐승의 손이 그녀의 눈꺼풀 위를 뒤덮자, 과연 신서아라 해도 더 이상 저항할 수 없었다.

스르륵 하고 의식이 잠든다.

바닥 없는 무저갱을 향해 떨어지는 정신이, 끝없이 추락한다.

그렇게.

박우찬이 화장실을 가기 위해 자리를 비운 5분 사이.

회장은 한 마리 대악마의 손아귀 안에 떨어졌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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