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2화 〉 연회장
* * *
그 뒤로도 메인 연회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렸다.
개중에서는 나를 향해 관심을 가지고 다가오는 이들 또한 있었다.
대부분은 서아의 팬이었지만, 공교롭게도 지금 서아는 때 아닌 저기압.
덕분에 나로서도 팔자에 없는 매니저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래. 이런 사업을 구상하고 있네만……."
"하하하."
허나, 진짜로 문제가 되었던 건 다름이 아니라 바로 이런 부류였다.
이번 거룡 토벌에 힘입어 나와 개인적인 인연을 쌓으려 드는 사업가들.
필시 저들로서는 이번 내 모습을 보고 안정적인 소재 수급이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는 거겠지만…….
솔직히 전혀 모르겠다.
아니, 사업이고 뭐고 생각한 적이 있기나 해야 말이지.
때문에 적당히 고개를 주억이며 어떻게든 확답은 주지 않는 일이 내 한계였다.
"훗, 역시 도축업자. 스스로의 값어치를 잘 알고 있군."
"앗, 예."
그러고 있으면 저런 식으로 포기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으니 다행이지만.
덕분에 정작 파트너인 서아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이 없었다.
'곤란한데.'
어쩐지 계속 묘한 태도이기도 하고.
이야기할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그러기엔 여유가 나질 않았다.
본격적으로 파티 시작 시간을 앞둔 지금, 도리어 회장 안의 인파가 한층 두터워진 탓이다.
"오, 쌤. 평소랑 다르게 빼입었네?"
"어, 그러냐? 난 구분도 안 가는데."
무엇보다, 이 녀석들도 있고.
그렇게 말하며 껄렁껄렁 다가온 건 역시 우리 윤하였다.
참가자의 파트너로 참여했다기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자유분방한 태도였다.
실제로 익숙한 얼굴 또한 그 뒤에서 잔뜩 진이 빠진 채로 헥헥대고 있었으니.
'야, 나 좀 도와줘라.'
저 눈빛을 해석하자면 그런 의미가 아닐까.
물론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러므로, 시원스럽게 무시.
이후 윤하 쪽을 살핀다.
내 옷차림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탓일까, 내 시선 또한 자연스레 윤하의 옷매무새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후후, 어때요. 예쁘죠?!"
씨익, 자신만만하게 웃으며 그 자리에서 한 바퀴 도는 윤하.
화려하게 물결치는 말총머리와 함께 드레스 자락이 붕 떴다 가라앉는다.
말마따나, 화려한 드레스였다.
슬렌더한 윤하의 몸을 맵시 있게 감싸는 상반신 쪽.
그리고 그런 상의와는 반대로 과감하게 앞쪽을 튼 스커트.
뒤쪽은 거의 너풀거리는 듯한 디자인이었음을 고려할 때, 다리를 마치 과시하듯드러낸 윤하의 모습은 도리어 신선할 정도였다.
추가로, 새하얗게 뻗은 다리 밑으로는 스타킹과 벨트까지.
퍽 화려한 이미지 체인지였다.
"그래. 귀엽다."
"귀, 귀엽?!"
"아니, 또 왜……."
요즘 이런 반응이 하도 많으니 나까지 절로 위축되는 기분이 들었다.
아니, 나도 나름 공부했다고.
드레스 코드를 칭찬하는 건 곧대화의 서두를 여는 일.
그렇게 들었으니까.
언젠가 최승준이 초대했던 파티에서 아무 말도 못 하고 쩔쩔매던 그 날의 굴욕을 청산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예를 들면, 당장 눈 앞에 있는 윤하의 드레스.
퍽 과감한 디자인이지만, 실제로 포인트를 준 건 탁 트인 앞쪽이 아니다.
도리어 뒤쪽의 레이스 부근이 포인트겠지.
애초에, 드레스 코드가 정해진 파티에선 옷차림 또한 어느 정도 비슷해지기 마련.
그렇기에 참가자들은 알 듯 모를 듯 자신만의 어필 포인트를 마련하곤 한다.
때문에, 칭찬을 돌려야 할 건 과시하듯 드러낸 쪽이 아니라 다소 어슴푸레한 쪽이라고 하던가.
다행스럽게도 이번 파티엔 그런 귀찮은 제약 따위 일절 존재하지 않았지만, 윤하로서는 내심 신경이 쓰였겠지.
아마도 이런 파티에 참여하는 건 처음일 테니까!!
몇 년 전, 최승준이 초대한 파티에 참여한 적 있던 나로서는 알 수 있었다.
그런 만큼 윤하 쪽도 그러지 않을까 싶었는데…….
"마, 맞긴 한데! 맞는데!! 그런데, 거 뭐야. 보통 그런 식으로 말하나?!"
"아니, 그럼 어떻게 말하라고."
"거, 애초에 내가 막 귀엽고 그런 캐릭터도 아닌데. 응?!"
"허어."
과연, 이게 기만인지 뭔지 하는 그건가.
내 명예를 위해 미리 말해두겠지만, 윤하는 충분히 예쁜 편이다.
아니, 귀여운 캐릭터냐고 물으면 그야 나도 조금은 고민하겠지만.
그러나.
어차피 캐릭터의 완성은 결국 얼굴이다.
다시 말해, 예쁘면 귀여운 척을 해도 얼추 먹힌다는 뜻이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윤하는 충분히 먹힐 만한 캐릭터였다.
뭐, 내 입으로 주절주절 설명하진 않겠지만.
아니, 부끄럽잖아.
"윽, 으으윽!!"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사자인 윤하 쪽은 무어라 제대로말 한 마디 없이 성큼성큼 내 쪽을 떠났다.
알고는 있었지만, 참 고생스러운 성격이었다.
"야호, 선생님!!"
다음 타자는 지희였다.
어딜 어떻게 봐도 몽마의 딸이라는 듯, 벌써부터 타이트한 드레스를 걸친 모습이 퍽 남사스러웠다.
여고생이라 주장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폭력적인 바디 라인.
벌써부터 이래서야 성인이 되면 어떻게 될까 기대 반 걱정 반이다.
"어때요, 새삼 반했어요?"
새삼이고 뭐고 애초에 반하지 않았어.
것보다, 그런 이야기를 들어도 곤란하다.
왜냐하면 나는 내 생각보다 엄청 쉬운 남자였기 때문이다.
설마 여고생한테 설레는 날이 올 줄이야.
나도 모르게 치솟은 자괴감에 연거푸 마른 세수를 반복하기도 잠시.
짤막하게 한숨을 토한 나는 그대로 외투를 벗어 지희의 어깨에 걸쳐주기로 했다.
"으엥?"
그런 내 행동에 지희는 얼빠진 목소리를 흘렸다.
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진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나름 파티랍시고 화려한 드레스를 맞춘 지희.
그런 지희의 모습에 당황하면서도 몽마의 딸이니 그럴 수도 있다며 넘어간 남상원.
결국 누구 하나 말리는 일 없이 파티장에 도착하고 만다.
다만, 수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파티장에선 지나칠 정도로 과감한 옷차림인 것 또한 사실.
이윽고 지희 또한 피팅 룸 안에서 시착했을 때와 달리 묘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만다.
뭐, 그렇다 쳐도 지금은 혼인회 대표 입장으로 참석한 상황.
실제로는 단순한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 한들, 스스로 고른 옷이 부끄럽다는 이유로 퇴장할 수는 없다.
그런 만큼 억지로 활기찬 척, 역으로 개의치 않는 척 하고 있는 거고.
내 눈에는 보였다.
태연자약한 얼굴로 낯부끄러운 대사를 던지고 있는 주제에, 누구보다 발갛게 달아오른 지희의 귓가가.
"남 말할 처사는 아니지만, 남상원 저 양반도 참 눈치 없단 말이지."
"어, 어어?"
"지희 너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불편하면 조금 앉아 있어. 괜시리 태연한 척 하지 말고."
"네, 네에……."
그렇게 두 명 보냈다.
허면, 남은 건 둘.
그런 만큼, 마지막으로 찾아든 건 당연히 그 둘이었다.
"거 참, 뻔뻔스러운 낯짝이로고."
언제나 그렇듯 경망스러운 목소리.
나도 모르게 으엑 하는 소리를 내며 몸을 돌렸다.
동시에, 후회했다.
왜냐하면 그 자리에는 내가 지금 제일 보고 싶지 않은 여자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신 티아마트.
언제나 그렇듯, 내가 발작하는 꼴을 피하기 위해 민간인 이하 수준의 힘만을 담은 분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
문제는 티아마트가 아닌 내게 있었다.
방금 전에도 말했듯이, 지금 내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다.
부상도 부상이지만, 마지막에 삼킨 너무나도 끔찍한 그 물건 때문에 전신의 감각이 멋대로 날뛰었기 때문이다.
배배 꼬인 신경. 멋대로 뒤틀린 경락.
이를 되돌리기 위해 병원에선 내게 당분간 절대적인 안정을 권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섣부른 자극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며 오늘도 투하한 마취제엔, 솔직히 별다른 효과를 볼 수 없었다.
여전히 몬스터만 보면멋대로 반응하는 몸.
하물며 입에 대기라도 했다간 즉각 발작이 시작될 정도로 예민한 체질.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감각을 가라앉힌 만큼, 효과가 없지는 않았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멋대로 반응하는 본능 쪽과 달리 이성은 그런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다.
몸에 닿으면 발작이 일어난다.
그렇지만 발작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눈으로 확인할 때까진 감각이 느껴지질 않는다.
즉.
"아니, 누구야 너."
"어, 어? 무, 무어냐. 어찌 그런 농담을 하는 게냐……?"
내심 예상하고 있었지만, 역시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다.
설마 그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는 듯, 큼지막한 눈망울로 울먹이는 여인.
어디 보자.
'그러니까, 얘가 티아마트라 이건가?'
누구야 너.
진심으로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와 달리, 눈 앞에 있는 여신의 분체가 두 발로 걷는 초대형 바퀴벌레처럼 보이질 않았던 탓이다.
것보다, 그 이전 문제.
'씨발.'
내가 티아마트를 보고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는데.
눈 앞에 나타난 티아마트의 모습은, 상상 이상으로 아름다웠다.
진짜냐.
십중팔구 멍청하게 생겼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거의 모델에 가까운 신장. 우아하게 균형이 잡힌 지체.
붉게 늘어뜨린 머리카락 너머로 파격적인 디자인의 드레스가 눈에 밟힌다.
뭔데 저거.
뒤쪽에서 보기엔 등허리까지, 앞쪽에서 보기에도 거의 그 정도로 푹 파인 야외 드레스.
저번이랑 얼추 비슷하게 입고 올 거라 듣긴 했지만, 이 년 저번에도 이런 옷차림이었던 건가?
완전 개변태 아니야, 이거?
"무, 무어라 대답이라도 해 보거라. 어찌 본인에게 그리도 화가 났느냐?"
"아니, 잠깐."
"미, 미안하구나.저번에 그런 말도 들었으니 자연스레 본인이 파트너가 될 거라 생각해 심술을 부렸느니라, 용서하거라."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가 있다면, 본능 쪽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는 점이다.
나야 난생 처음 보는 미녀가 갑자기 울먹이며 내 옷소매를 잡아당기고 있는 지금.
정작 내 손은 미쳐 날뛰기 직전처럼 멋대로 뒤틀리기 시작했고, 구토 기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씨발, 거의 전신 마취 수준이라 들었는데.
혹시나 했지만, 마취제 따위는 전혀 도움이 되질 않았다.
전투 불능. 일반인 수준의 신체 능력. 하루 6시간 활동 가능. 육체와 정신 사이의 괴리.
거기에 나만 알고 있는 발작 증세에 의한 신체 수명 감소까지.
이래서야 채산이 맞질 않는다.
만약 효과만 괜찮았더라면 그냥 저 정도 부작용은 감수하고 평생 마취제나 달고 살까 생각하기도 했었거늘.
설마 고작해야 티아마트 필터가 벗겨지는 게 전부일 줄이야.
아니, 고작이라고 할 만한 외모는 아니긴 했지만.
대답 대신 억지로 고개를 돌린다.
그러자 마지막으로 익숙한 푸른 머릿결이 보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병원에 쳐박혀 치료에 전념하고 있던 나로서는 도저히 평소처럼 호위를 수행할 수 없었다.
덕분에 요 최근은 비교적 보기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저 특유의 독특한 색감은 도무지 잊을 수가 없었다.
입원하고 있던 기간을 넘어, 바로 어제만나기라도 한 듯 성큼 하고 다가오는 기억을 향해 나는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서아야, 나 잠깐 화장실."
"어?"
그리고 2초도 안 돼서 후퇴했다.
어쩌면 후회했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물론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여하간, 티아마트도 하연이도 사회적인 신분은 부족한 편이니까.
때문에, 서아가 내 파트너로 파티에 참가한 지금.
우리들은 서아 분량의 초대장을 티아마트에게 돌렸다.
말하자면 티아마트와 하연이는 서아 명의로 된 초대장을 들고 참여한 셈이다.
서로를 파트너로 삼아서.
그리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하연이가 드레스를 고르는 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한 건 티아마트 뿐이었다.
요컨대, 하연이의 드레스는 티아마트와 비슷한 디자인이었다.
전략적 후퇴를 선택하기엔 충분하고도 남을 사유였다.
"후후. 어떠냐, 효과가 있지?"
"……그러게요."
뒤에서 두런두런 들리는 잡담을 억지로 무시하며, 나는 건물 내에 비치된 화장실로뛰어들었다.
저 멀리 최승준이 개회사를 읊는 목소리가 아스라이 들리는 가운데.
거의 3분 가까운 시간에 걸쳐 세수를 마친 나는 간신히 차분해진 머리로 사고를 정리했다.
그래. 당황하지 말자.
지나치게, 지나치게 화려한 드레스이긴 했지만 뭐 있을 수 없는 수준은 아니잖아?
하연이도 이런 파티는 처음이었을 테니, 기왕지사 화려한 드레스를 고르기로 작정했을 수도 있겠지.
막말로 이런 파티가 아니면 어디서 그런 드레스를 입어보겠나.
외설죄로 신고당할 생각도 아니고.
"흡!!"
짝 소리가 날 정도로 힘껏 뺨을 갈긴 덕분일까.
방금 전 내 눈 앞을 스치고 지나간 허리의 윤곽을 간신히 머릿속에서 내쫓을 수 있었다.
반달을 닮은 새하얀 반구는아직 기억에 남아있긴 했지만.
억지로 호흡을 가다듬으며 거울 속의 나와 눈을 맞춘다.
동시에 뇌까린다.
그래. 내가 누구?
도축업자 박우찬.
"오케이."
바야흐로 임전태세라 할 수 있었다.
실제로도 그런 기분이었고.
아니, 농담이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아카데미 교사라는 작자가 학생들을 보고 발정이라도 난 거 아니냐는 말을 듣고 다닐 수는 없지 않겠는가.
내 앞으로의 평가에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장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그리고.
"응?"
문득.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렴풋이 들리던 최승준의 연설 소리가 멎었다 생각한 바로 그 순간.
뒤늦게, 혹은 다시 한 번.
문을 열고 입장한 내 앞에는 누구 하나 입을 여는 일 없이 침묵에 잠긴 회장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침묵.
덩그러니 방치된 듯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는 세상 속.
"흠? 이런, 불청객이 있었군."
홀 한 가운데.
마치 자신만은 다른 세상에 살고 있다는 듯 그렇게 입을 연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누군가.
실로 적절한 표현이었다.
여하간, 평범한 얼굴 대신 짐승 대가리가 달린 놈을 사람이라 부를 수는 없는 법이니까.
실로 5분.
화장실 때문에 자리를 비우길 고작해야 5분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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