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1화 〉 파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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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전체가 반쯤 주저앉은 상황에서 제대로 된 연회장을 대절하는 건 당연히 힘든 일이었다.
그렇지만, 운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최승준이 뿌린 돈의 액수가 불가능조차 가능하게 할 만큼 어마어마했던 걸까.
우리들의 눈 앞에 놓인 연회장은 상당히 그럴싸했다.
최소한 밀담을 나눌 수 있는 장소가 마련된 2층 건물.
거기에 만일 가능하다면 사람들을 수용할 수 있는 홀.
놀랍게도, 눈 앞의 장소는 그런 조건을 남김없이 갖추고 있었다.
덕분에 파티 또한 별다른 문제 없이 한창 무르익는 와중이었다.
바깥에선 구호라는 물품으로 최승준 휘하의 기업이 사람들에게 생필품을 나눠주고 있는 가운데.
나와 서아는 아슬아슬하게 늦지 않고 파티 회장 쪽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물론 분위기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뭐가 그리도 문제인지.
최종 점검을 위해 주방을 다녀온 뒤에도 서아는 여전히 울적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옷이 마음에 안 드나?'
문득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니겠지.
아니,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왜냐하면 지금 눈앞에 있는 서아의 옷차림 때문이었다.
타이트한 파티 드레스.
전체적으로 늘씬한 서아의 몸을 감싸듯 조인 드레스 위로 우아하게 어깨를 덮는 망사.
거기에 추가로 파티용 긴 장갑까지 곁들이니 당장 서아가 내뱉는 한숨도 우수에 찬 귀부인의 탄식처럼 보일 정도였다.
전부 서아가 직접 고른 차림새였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저러고 있는 와중에도 제 코디는 나름 챙겼다는 뜻인데…….
어쩐지 급격하게 괜찮지 않을까 싶은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뭐, 혹시나 해서 주변을 살펴도 결과는 마찬가지.
다행스럽게도, 서아를 보며 미친 멧돼지 같은 년이 꼴에 파티랍시고 차려입은 거냐며 킬킬대는 친구들은 없었다.
하긴, 부잣집 도련님들도 목숨 아까운 줄은 알 테니까.
"저게 그 도축업자인가?"
"이번에 거룡을 사냥했다는?"
"……미친 개라더니, 소문도 믿을 건 아니로군."
오히려 의외였던 건 나에 대한 평가였다.
내 입으로 할 말은 아니지만, 나에 대한 평가는 농담으로도 좋다 말하기 힘들었으니까.
도축업자.
아는 사람만 아는 비 인가 헌터.
사람을 구하기 위함이 아닌, 몬스터를 도륙하기 위해 헌터가 된 사냥꾼.
그게 박우찬이라는 개인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이다.
뭐, 틀린 말도 아니니 구태여 정정할 필요도 없겠지만.
그러나.
아는 사람만 안다는 점이 오히려 호재로 작용한 것일까.
나를 바라보는 참가자들의 시선엔 순수한 탄복만이 머무르고 있었다.
하긴, 저 양반들이 알고 있는 나는 현장에 선 내가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 참여한 이들이라면 암암리에 알고 있겠지.
최승준이 교장으로 있는 아카데미 앞마당에 나타난 악마를 별 말 없이 도살한 사냥꾼.
남해 지부에선 요호 무리를, 강원도 지부에선 폭주한 도깨비를.
그리고 이번엔 거룡을 참살한 헌터.
거기에, 그 소재 대다수를 별다른 관심도 없다는 듯 헐값에 처분한 젊은이.
현장에 별다른 연이 없던 사업가들로서는 그야 저리 생각할 수밖에 없으리라.
좋아. 나를 칭찬해. 좀 더 칭찬해……!!
"오, 뭐야. 이젠 괜찮은 모양이네?"
"크아아아악!!"
물론 그렇게 말할 여유는 없었다.
왜냐하면 다음 순간 내게 다가온 녀석 때문이었다.
나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피를 토하는 듯한 고함을 내지른다.
요 한 달 사이 몸에 밴 동작이었다.
이준구.
놈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파트너로선 자신의 여동생을 대동한 채로.
"어, 뭐야. 아직 불편해? 괜찮아? 병원에 연락 넣을까?"
"아니, 됐다……."
그야 만나게 될 거라곤 생각했지만,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올 줄이야.
떨떠름한 표정으로 녀석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허나, 어째서인지 다짜고짜 나를 향해 놈의 시그니처를 담은 라이트 스트레이트가 날아오진 않았다.
뭐지? 미친 건가?
그렇게 생각했지만, 정작 녀석은 멋쩍은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래서야 오히려 한 달 간 온갖 핑계를 대며 피하려 했던 내 쪽이 다 무안할 지경이었다.
아니, 전부 핑계였던 건 아니지만?
실제로? 지금도? 온전한? 상태는? 아니고?
퇴원이야 했지만 딱 거기까지.
도저히 제 상태라고는 말할 수 없다며 스스로에 대한 합리화를 마친다.
"그래도 참여할 수 있었으니 다행이네."
"뭐, 그렇지."
"조금 아깝긴 한데. 그렇지, 예은아?"
"잠깐, 오빠!!"
"응?"
아깝다니, 뭐가?
그렇게 되묻자, 이준구는 넉살 좋은 표정을 지었다.
오히려 그 옆에 서 있던 예은이가 빼액 하고 소리를 질렀을 따름으로…….
"아니, 예은이가 이번 파티 엄청 기대하고 있었거든. 무슨 자신감인지, 너한테 초대 받을 거라고……. 아악!"
"오빠, 그만!!"
"와우."
세상에.
망설임 없이 이준구의 조인트를 까는 예은이를 보며 나도 모르게 탄복하고 말았다.
아니, 얘네가 다른 남매처럼 평범하게 싸우는 거 처음 보는 기분인데.
그렇지만.
"나한테 초대받을 거라고?"
"으, 으윽."
피식 웃으며 그런 말을 건네자, 예은이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아니, 무슨 생각을 했는진 알겠다.
알겠으니까 더더욱 초대하지 않은 거고!
단지.
"오빠한테 말하진 않은 모양이네."
"어, 어떻게 말해요 그런 걸."
작게 속삭이자, 예은이는 쥐 죽은 듯한 소리로 그렇게 답했다.
도저히 그 날 과감하게 자신의 입술을 빼앗은 소녀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태도였다.
아니, 그렇게 들으면 괜시리 피해다닌 건 나로서도 미안하게 됐지만.
"저일 거라고 생각했는데."
"응?"
"파트너 말이에요."
예은이도 그렇게 덧붙였고.
으음, 그런 줄 알았다면 확실히 무난하게 예은이를 초대하는 쪽도 괜찮았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어색한 분위기를 푸는 데에 자리를 만들긴 쉬웠을 테니까.
'아니.'
어쩌면 그 쪽도 힘들었을지 모르겠네.
그런 생각을 하며 슬쩍 예은이의 옷차림을 살핀다.
조금 민망하긴 했지만, 파티를 기대했다는 말은 사실이었던 모양이다.
예은이의 옷에도 상당히 힘이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서아가 마치 귀부인같은 차림새였다면, 예은이는 전반적으로 아가씨라는 느낌이 강했다.
이준구 저 놈이 제 여동생만큼은 부족함 없이 키웠던 탓일까.
당장 이런 장소에서도 어색함 없이 녹아드는 몸짓.
특유의 독특한 분위기야 어쨌든, 아직은 여인이라는 표현보단 소녀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나잇대이기 때문일까.
하얀 색을 기조로 단정하게 차려입은 옷매무새는 화려하다기보단 정갈한 느낌에 가까웠다.
곧 다가오는 겨울을 형상화하기라도 한 듯, 누구 하나 발자국을 찍지 않은 설원색 드레스.
그 위로 조용히 틀어올린 금빛 머리카락은 진짜배기 금사로 딴 듯 한 올 한올 정성스레 손질되어 있었다.
평소 이상으로 화사한 하늘빛 눈동자 또한 마찬가지.
언제나 그렇긴 했지만, 오늘따라 한층 더 이국적인 향취가 강하다.
것보다, 마력에 의한 변질을 고려해도 점점 한국인이라 주장하긴 힘들지 않나 싶은데.
"잘 어울리네."
짤막하니 그렇게 품평하자, 예은이는 기쁜 듯 쑥쓰러운 듯 얼굴을 붉히며 씨익 하고 웃었다.
거 참, 바쁜 아가씨일세.
"친구들은?"
"어머, 지금 제 앞에서 다른 애들 이야기하시는 거에요?"
"아니, 그렇게 따지면 너랑 이야기하는 것도 마찬가지인데……."
지금 내 파트너는 서아고.
솔직히 말하자면, 지금 이 행동도 비매너 아슬아슬하지 않나 싶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불행이라 해야 할지.
정작 당사자인 서아 쪽에서는 흘낏 이 쪽을 바라보다 다시 한 번 한숨을 내쉴 뿐이었지만.
아니, 괜찮은 거 맞아 이거?
"흐응."
그런 내 모습에 비죽 하고 입술을 내미는 예은이.
그 동작에 따라 멍하니 흐르던 시선을 억지로 잡아세운다.
아니, 미친.
아무리 그래도 너무 내성 없잖아, 나.
스물 일곱 살이라는 나이의 무게. 담임 교사로서의 자존심.
혹은 계집애들 앞에선 폼을 잡고 싶다는 온갖 허세까지 동원해 간신히 시선을 잡아 묶는다.
"지희는 그 쪽 양반들이랑, 윤하는 사장님이랑 같이 오기로 했던가."
"네."
저렇게 말하니까 뭔가 위험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각각 아는 사람들 얘기다.
지희는 혼인회 출신이니 남상원 그 양반의 파트너 자격으로 입석하기로 했고.
윤하 또한 마찬가지였다.
해체소 대표로 참여하게 된 형님의 파트너 자격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했던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번 파티는 명목 상으론 어디까지나 이번 참사에 대한 위로회.
앞으로의 도시 재건 계획 발표 따위를 틈타 피아 구분을 확실히 하겠다는 게 바로 최승준의 계획이다.
아무리 그래도, 필요하다는 점과 별개로 학생들 개개인에게 초대장을 던질 수는 없었다.
다른 일이야 어쨌든, 왜 우리 동아리 애들에게만 초대장을 보낸 거냐는 말은 피할 수 없을 테니까.
편애나 부정 입학 논란 따위는 이 쪽도 사정이다.
그래서 이런 식으로 쪼개고 쪼개서 들어오게 된 셈이고.
뭐, 어느 쪽이든.
아직 둘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최승준의 기업을 통한 지원 발표 등은 커녕, 파티도 제대로 시작되기 전.
무언가 어쩌고저쩌고 왈가왈부하기엔 아직 시기상조다.
주변을 향해 낮게 시선을 깔면서, 나는 그렇게 판단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은가?
일전, 최승준은 그렇게 말했다.
신세계 질서Novus Ordo Seclorum.
일찍이 놈들은 최승준의 사촌 등을 이용해 최승준의 기업에도 손을 뻗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 자리에서 놈들이 가만히 있을 리도 없다.
때문에, 나도 이준구도 확신하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분명히 무슨 일이 일어난다.
겉으로는 단순한 파티지만, 우리 입장에서야 여긴 전장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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