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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70화 (170/371)

〈 170화 〉 파티

* * *

그리고 시간은 순식간에 지나갔다.

결론만 말하자면, 예은이를 파트너로 삼는다는 계책은 실패했다.

것보다 시도할 수도 없었다.

학생과 교사. 담임과 제자.

요즘 세상엔 별 일도 아니라지만, 아무래도 영 꺼림칙했던 탓이다.

애초에 이준구한텐 무어라 설명해야 할지 막막하기도 했고.

야, 네 동생 입술 쩔더라?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 있을 리가.

때문에, 내 남은 입원 기간은 이준구를 피해 도망 다니는 나날이었다.

이준구가 찾아올 때마다 갑자기 발작이 시작되거나 잠에 들길 족히 한 달 가까이.

나를 바라보는 최승준의 시선이 점차 매정해지는 가운데, 마침내 퇴원 일자가 찾아왔다.

"얼리버드 퇴원."

"늦었어……."

최승준은 그렇게 탄식했다.

물론 녀석의 말마따나 정말로 사소한 문제가 있긴 했다.

이준구를 피하다 보니 정작 파트너를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조금 그렇잖아 진짜로.

뭐, 후보 정도는 좁힐 수 있었지만…….

일단 예은이는 제외하기로 했다.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도대체 누가 여고생인 건지 모르겠군."

다시 한 번, 최승준은 그렇게 탄식했다.

그렇게 말해도 말이지.

이 쪽으로서는 진지한 문제다.

당시 나나 예은이의 행동이 어디까지나 의료 행위였다는 입장엔 변함이 없다.

문제는 정작 당사자인 예은이가 내 쪽을 이상하게 의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만약 예은이가 정말로 단호하게 의료 행위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면 나 또한 납득할 수밖에 없었겠지.

떨떠름하긴 했겠지만.

허나, 그런 태도를 취하고 있으니 아무래도 나 또한 멋쩍은 기분이 들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로 못 할 짓이라도 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예은아, 네가 그렇게 나오면 어떡하니…….

침착하지 못한 기분으로 마른 세수를 했다.

하여튼, 그래서 제외다.

이러다가 정말로 선을 넘는 게 아닐까 싶은 기분도 있고.

무엇보다, 예은이 쪽에서 먼저 그런 식으로 나오니 나 또한 괜히 이상한 생각이 들 때도 있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 이유로, 하연이도 제외.

요 근래 부쩍 거리감이 가까워진 하연이를 생각하면 실로 당연한 판단이었다.

어디 보자, 핑계는 뭐가 좋을까.

아무리 그래도 이런 자리엔 동석하기 마땅치 않다는 게 좋겠지.

허면, 같은 이유로 지희와 윤하 또한 빠지게 된다.

그럼, 남은 건 티아마트 혹은 서아인데…….

"서아야, 파티에 관심 좀 있냐?"

그렇게 되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서아 또한 별다른 일정은 없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최승준의 말마따나 옷이나 맞출까 싶어 이렇게 다시금 얼마 전 가게를 방문했지만.

"저, 정말 잘 어울리세요 손님!"

어설픈 미소와 함께 그리 응대하는 직원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이 애처롭다.

그런 점원들의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서아는 여전히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듯, 사부의 돈이니 마음껏 쓰겠다며 가가대소를 터트리지도 않았다.

잘 어울리냐며 우쭐거리듯 물어보지도 않았다.

그저, 한숨.

무엇이 그리도 문제인지, 서아는 오늘 하루 내내 기분이 꿀꿀한 듯했다.

그리고 고작해야 여고생 입맞춤 한 번에 두근거리는 나약한 사부로서는 서아의 마음을 도저히 헤아릴 수 없었다.

*

다시 한 번 피팅 룸에 발을 들인 뒤에야, 신서아는 나지막이 한숨을 풀어놓았다.

방금 전, 가게 안에서 슬며시 내쉬던 한숨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깊은 탄식이었다.

'도대체 이게 뭐 하는 꼴이람.'

자신이 분위기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 정도는 신서아 또한 자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에 날아든 파티 초대장.

아카데미 교장, 최승준의 이름으로 날아든 연회에 무슨 목적이 있는진 그녀 또한 익히 들은 바가 있었다.

때문에.

사부인 박우찬이 자신에게 파트너로 함께 출석하자는 제안을 건넸을 때.

서아는 별다른 고민 없이 그 제안을 수락했다.

기뻤기 때문이다.

물론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지.

예를 들면, 이런 공적인 자리에서 내세울 만한 파트너로는 서아가 제일 제격이라던가.

지금 와선 부끄러운 별명일 뿐이지만, 현역 시절부터 이름을 날린 그녀의 명성은 사회 상층부에도 널리 알려져 있으니까.

그렇지만, 어느 쪽이든 상관 없었다.

자신이 사부의 파트너로 파티에 참여할 수 있다는 사실.

너무나도 달콤한 미끼에, 신서아는 거의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고민은 그녀의 수락 뒤에 찾아왔다.

얼마 전 깨달은 사실.

"가족의 원수."

얼마 전, 티아 교생을 위해 다시 한 번 자리를 비우겠다 선언한 박우찬을 향해.

신서아는 도대체 그녀가 자신의 사부와 무슨 관계가 있는 거냐고 그리 물었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부끄러울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질문.

거의 막무가내에 가까운 의문에 대해, 박우찬은 그렇게 대답했다.

가족의 원수라고.

자신이 그 교생의 가족을 죽여버린 적이 있다고.

그래서 그러는 거라고.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아니라고…….

박우찬은 그렇게 말했다.

평소 아둔하기 짝이 없던 사부로서는 의외로 눈치가 빠른 대답이었다.

그런 일이라니.

도저히 박우찬이 할 만한 말은 아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신서아는 깨닫고 말았다.

그 날.

박우찬이 그녀에 대해 설명했던 말은, 비단 그 교생에게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닐 거라고.

"당신이 죽인 거나 다름없으니까."

일찍이, 신서아는 그렇게 말한 적이 있었다.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를 구해 준 젊은 시절의 박우찬에게.

묘한 죄책감.

자신이 조금만 더 빨리 왔더라면 아이 앞에서 부모가 잡아먹히는 일은 피할 수 있었을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박우찬을 향해.

거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예를 들면, 그렇게 말해야 박우찬의 죄책감을 자극하기 좋다.

헌터가 될 예정이었던 그녀로서는, 당장 헌터로서의 교습을 받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집에 돈은 없고.

그러니 눈 앞에 있는 헌터의 죄책감을 이용해야 했다…….

뭐, 그런 이야기.

물론, 전부 핑계였다.

냉정한 척, 침착한 적.

당시의 신서아는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에게 잡아먹힌 아버지.

몬스터에게 트라우마가 생긴 어머니.

둘을 대신해 갑자기 가장이 되어야 할 처지에 내몰린 고등학생 소녀.

그런 그녀에게 있어, 갑자기 닥친 현실은 스트레스가 되어 다가왔다.

때문에.

헌터가 되어야 한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 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선.

그런 사고에 내몰려 있던 그녀에게는, 누군가 탓할 사람이 필요했다.

만약 그 몬스터가 살아남았다면 그 몬스터를 원망할 수 있었겠지.

그렇지만.

당시 그녀에게 닥친 불행은, 공교롭게도 딱히 드문 물건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3할이 가족을 잃었다 일컬어지는 시대.

그녀의 앞에 나타난 몬스터는 딱히 눈에 띌 정도로 강력한 종도, 희소한 개체도 아니었다.

때문에.

박우찬의 손아귀 안에선 고작해야 10분도 걸리지 않아 짓이겨질 몬스터.

신문 기사로 따지면 3면 한구석에 기록될 수준의 재난을 대상으론, 그녀의 감정을 쏟아부을 수 없었다.

말하자면, 당시의 신서아에겐 감정 쓰레기통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와 그녀의 가족들을 구해준 헌터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삼았던 셈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면 실로 부끄럽고, 그 이상으로 염치를 모르는 행동.

말 그대로, 수치를 모르는 꼬맹이이기에 가능했던 행동이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런 꼬맹이었던 그녀는 머잖아 그렇게 말했던 기억을 잊었다.

아버지를 잃었다는 슬픔. 흔하디 흔한 불행.

사람의 마음은 생각보다 유들유들해서, 절대로 잊을 수 없을 듯한 충격도 머잖아 익숙해지고 만다.

그와 마찬가지였다.

지나칠 정도로 버거운 훈련을 거치고 나면, 애초에 누군가를 슬퍼할 여유도 생기지 않는다.

덕분에 서아는 다른 이들보다 훨씬 빨리 현실에 적응할 수 있었다.

현실과 맞서 싸울 힘을 길렀다, 그렇게 말해도 될 테지.

박우찬에게서, 그녀는 틀림없이 그런 은혜를 받았다.

그러므로.

그 날.

박우찬을 잡아두기 위해 던졌던 거짓말 따위는, 진즉에 잊어버리고 말았다.

어차피 치기 어린 꼬마의 거짓말.

단순히 입에 잡히는 대로 내던졌을 뿐에 지나지 않는다고.

문제는, 돌을 맞는 개구리 입장에선 절대로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는 점이다.

얼마 전, 서아는 그런 사실을 깨달았다.

절대로 그런 일은 없다.

그렇게 말하며 눈물을 닦던 박우찬의 시선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그녀는 일찍이 자신이 했던 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당신 때문에 아버지가 죽었다고.

내게 있어서도 당신은 가족의 원수라고.

그렇게 말한 적 있던 자신의 발언을.

……잊어버렸을 거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런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

신서아 본인은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사실조차 기억할 수 없었으니까.

그렇지만.

박우찬은 잊지 않았다.

아니, 잊지 못했다.

그 날.

자신이 던진 돌은, 아직까지도 박우찬의 가슴에 박힌 대못이 되어 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신서아는 도저히 지금 이 상황을 즐길 수 없었다.

그런 일을 없을 거라는 박우찬의 말 때문이 아니다.

자신은 도대체 무엇으로 다른 학생들과 겨룰 수 있을까.

그렇게 생각했지만, 그조차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음을 전한다. 다른 이들과 싸운다.

그런 문제가 아니다.

신서아는 아직 스타트 라인에조차 서지 못했다.

신서아가 박우찬에게 가장 먼저 건네야 할 말.

그건, 자신 혼자 편해지자고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는 게 아니라 그 날에 대한 사과를 건네는 일이라고.

신서아는 이제 그걸 알고 있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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