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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69화 (169/371)

〈 169화 〉 무너진 도시에서

* * *

다행스럽게도, 녀석 또한 그 이상 추궁하진 않았다.

애시당초 이 쪽에게 맡기다시피 한 일이었으니까.

때문에, 실질적으로 우리들이 상의한 건 앞으로의 이야기였다.

예를 들면 예의 거룡의 소재를 처분하는 방법에 대해서라던가.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재의 대다수는 내 손에 떨어졌다.

뭐, 토벌의 주축을 맡았던 건 내 쪽이었으니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상대는 거룡.

최승준과 예은이에게 나눠준 건 전체에 비하면 정말로 얼마 되지 않는 양이었지만, 그 정도로도 충분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비늘 한 장만 있어도 예은이 장비를 만드는 데엔 별다른 문제 하나 없었지 싶다.

초대형 몬스터란 응당 그런 법이었다.

심지어 상대는 용.

게다가 중동의 용이다.

버릴 부위라고는 무엇 하나 없었다.

흔히 말하는 용의 비늘이나 발톱을 포함한 용골은 물론, 용의 심장과 같은 기본적인 부위.

거기에 더해 중동의 용이 가진 특성까지.

머리를 땅에 묻으면 지력이 회복된다.

피를 잘 사용할 수만 있다면 탁월한 효과를 지닌 회복제를 조제할 수도 있다.

독기를 내뿜는 주제에 이상한 부분에서 효과가 있는 녀석들이다.

문제는 딱히 내가 쓸만한 소재도 아니었다는 점이다.

아니, 애초부터 나는 몬스터 소재 따위 쓰지도 않으니까.

뭔가 기분 나쁘고.

하물며 부스러기 하나 삼키고도 온갖 발작이란 발작은 다 하던 내가 몬스터 피로 만든 포션 따위를 마신다?

미쳤나.

차라리 웃돈 조금 얹어서 비슷한 소재랑 교환하고 말지.

덕분에 내가 사용하는 장비는 가성비란 단어와 인연이 없었지만, 나로서는 충분히 감수할 가치가 있었다.

다만, 이번엔 그럴 수도 없었다.

제 2차 대침공이 종식된 건 벌써 3년 전.

아무리 헌터 협회라 해도이만한 소재와 교환할 수 있을 만한 물건을 창고에 상비하고 있지는 않았다.

덕분에 이번 소재 대다수는 환전할 수밖에 없었다.

비늘 몇 장 정도는 남겨서 하연이나 서아가 장비에 손을 댈 때 보태는 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정작 내가 못 버틸 듯한 기분에 포기하기로 했다.

그럭저럭 싼 값에 넘겼으니 협회 쪽도 손해는 아니겠지.

오랜만에 해체소 양반들한테 일감도 돌릴 수 있었고.

도시를 재건하는 데에도 그럭저럭 도움이 되지 않을까.

"파티를 열 생각이다."

때문에.

나로서는 지금 이 자식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대관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드디어 미쳐버렸나……."

"아니, 미친 건 그 나이 먹고 여고생의 입술을 탐한 네 쪽이다."

"씨발놈아!!"

그렇지만, 놈이라고 해서 대책 없이 그런 이야기를 지껄이는 건 아니었다.

아니, 도리어 상당히 합당한 이유가 있었다.

"알고 있겠지만, 지금 도시 분위기는 최악이다."

"그걸 알고 있는데도 축제를 벌이겠다는 네 정신머리 쪽이 최악이다, 이 자식아."

"흐음."

"잠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진 알겠지만, 일단 진정해라. 사실 모르겠지만, 나도 진정할 테니."

"좋아. 그렇다면 설명이 필요하겠지?"

그렇게 시작된최승준의 이야기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결국 그런 소리였다.

이번 습격으로 도시 내의 분위기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여하간, 제 2차 대침공이 종식되길 3년.

실컷 평화를 향유하고 있던 와중에 발생한 초대형 게이트였으니까.

덕분에 사람들은 세상의 종말이라도 맞이한 듯한 얼굴로 거리를 전전하고 있었다.

만약 그 뿐이었더라면 어디에나 흔히 있는 비극이었겠지.

단지, 타이밍이 나빴다.

지금은 늦가을.

이제 곧 초겨울이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가 반쯤 붕괴했다는 건 이후 어마어마한 2차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었다.

최승준은 역으로거기에서 기회를 보았다.

자신의 이름으로 이러한 도시 복구에 출자를 넣는다.

동시에, 게이트의 침공이 아닌 게이트 공략에 초점을 맞춘다.

방금 전 이야기한 파티는 바로 그 일환이었다.

도시 내에 역병처럼 창궐하고 있는 우울한 분위기를 뒤엎기 위한 쇼.

언제나 그랬듯, 이번 습격을 막아낸 헌터들을 영웅 취급해 띄우는 일이다.

……뭐,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지.

실제로 여태까지 몇 번이나 있었던 일이고.

다만.

"그래서?"

"흠?"

"아니, 그건 정치가들이 할 일이잖아. 네가 할 일은 아니지?"

설령 그렇다 치더라도, 이런 상황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구울들의 침입에 의해 난민이나 다름없는 처지가 되어버린 지금.

최승준의 이름을 전면에 내건 파티 따위는 빈축만 살 공산이 크다.

도시 복구를 위한 기금 제공.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한 이미지 조작.

여기에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 위로 따위를 핑계로 초대 범위를 늘린다 한들 잘해야 반반.

솔직히 적자라는 생각을 거둘 수 없다.

반대로, 나조차 이야기를 들은 즉시 그 자리에서 생각할 수 있는 변론.

최승준이 떠올리지 못했다 여기기엔 아무래도 꺼림칙한 면이 있었다.

다른 목적이 있겠지.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실제로 녀석 또한 숨기려 들지는 않았다.

"제 3차 대침공을 공표한다."

"뭐?"

그리고.

최승준의 입에서 나온 계획은 실로 과감했다.

"잘 생각해 봐라, 도축업자. 이건 기회야."

"무슨 기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 3차 대침공은 꿈 속의 꿈이나 다름없는 이야기였지. 틀린가?"

"뭐, 어지간히도 분위기 파악 못 하는 놈이 아니라면 입에 올리기도 힘들었지."

"그래. 놈들, 신세계 질서가 활개치고 다닐 수 있었던 데에는 바로 그런 사정이 있다."

"흠?"

"어느 누구도 제 3차 대침공을 공론화할 수 없었으니까."

틀린 말도 아니었다.

제 2차 대침공이 종식되길 어언 3년.

벌써 3년이라고도, 겨우 3년이라고도 말할 수 있는 시간.

사람들은 아직도 평화의 늪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었다.

제 3차 대침공의 가능성 따위, 거론하는 쪽이 눈치 없는 이야기라 쉬쉬하면서.

안일하기 짝이 없는 망상이요, 안온하기 그지없는 꿈이었다.

그리고 꿈이란 무릇 잠에서 깨면 신기루처럼 흩어지는 법.

지금 이 도시에 감돌고 있는 분위기 또한 잠결에 눈을 뜨고 만 사람들이 내는 아우성과 다를 바 없다.

놈들, 신세계 질서가 활보할 수 있었던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어느 누구도 제 3차 대침공을 손수 일으키려 하는 테러리스트의 존재 따위는 믿으려 들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사람들은 꿈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었고, 이젠 망상이 아닌 현실을 직면해야 할 때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네게 지금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다."

"뭐?"

"거두절미하고 말하지. 너도 파티에 참가해 다오."

물론 제 3차 대침공을 언급한다 해서 녀석들을 잡을 수 있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놈들은 한층 혼란에 빠진 사회의 분위기를 방패로 삼아 이리저리 미꾸라지처럼 빠져나가려 들겠지.

여태까지 우리들이 놈들에게 손을 쓸 수 없었던 이유 또한 바로 거기에 있었으니까.

사회에 대한 의구. 서로에 대한 의심.

놈들에게 있어선 그토록 편리한 위장도 따로 없으리라.

즉.

"피아를 확실하게 나눈다."

일부에게는 놈들의 존재를 공표하고, 아군으로 서길 종용한다.

하다못해 적이라면 적이라는 사실을 확인한다.

그게 바로 최승준의 노림수였다.

포석은 두었다.

올해 초, 아카데미 측에서 모습을 드러낸 악마.

협회와 손을 잡고 제압한 비밀 연구소.

거기에 이번 사태까지.

놈들로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겠지.

아직 발각되지 않은 비밀 연구소라 해 봐야 어차피 시간문제인 상황.

그렇다면 하는 김에 화려하게 터트리고 갈까 하는 생각으로 던진 수였을 테니.

허나, 상대는 최승준이었다.

의제에 올리기도 영 마뜩찮았던 제 3차 대침공을 여기에 엮어 한 수 앞지른다.

녀석의 계획대로라면 이대로 제 3차 대침공의 가능성이 수면 위로 오르게 되겠지.

뒤숭숭한 사회 분위기를 방패로 삼기엔 최승준의 노림수가 마음에 걸린다.

나를 파티에 초대하겠다는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일 테고.

놈들의 협력자를 압박하기 위해서.

전직 겸 현직 S랭크 헌터, 도축업자라 불리는 헌터의 이름값은 상당히 도움이 될 테니까.

거기에 이준구까지 더하면?

문자 그대로 전면 압박에 들어가는 셈이다.

우리들 아카데미 측은 놈들의 반대편에 서겠다.

당신들은 어떻게 하겠는가?

아니, 반대로 묻지.

이렇게까지 했음에도 불구하고 놈들을 돕는다는 건 다시 말해 인류 최강을 적으로 돌리겠다는 소리.

정녕 각오는 되었나?

그렇게 힐문할 생각이겠지.

넘어져도 그냥 일어서진 않는 게 과연 최승준답다고 해야 할까.

뭐, 이만한 사건이다.

이제 와서 제 3차 대침공의 가능성을 부정하려 드는 얼간이는 없겠지.

"어, 그럼 누구누구 초대하게?"

"일단 너희 동아리 애들은 전원 초대하는 게 좋겠지."

안 그래도 예의 조직에게 노려지고 있던 몸.

확실하게 이 쪽 편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셈인가.

나쁘진 않다.

애초에 이 쪽 편이고 뭐고 이전에 어차피 놈들이 녀석들을 노리고 있던 건 변함없는 사실이고.

오히려 신세계 질서의 끄나풀들에게 보내는 경고가 될 수 있으리라.

적당히 눈치만 보다가 학생 한 둘 정도는 건드려도 괜찮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녀석들에게, 인류 최강의 비호를 내미는 셈이니까.

전원 어떻게든 출석시키는 게 좋을까.

"저번에 맞춘 옷은 가지고 있겠지?"

"사람을 무슨 애새끼인 줄 아나."

"그러면 됐다. 내 이름 대고 찾아가도록. 파트너 쪽도 한 벌 맞춰줘야 할 테니까."

"엥?"

"……응?"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태생부터 재벌가 도련님인 최승준은, 지나칠 정도로 자연스럽게 내게도 파트너 동참을 요구했던 것이다.

"아, 이번에도 여신을 데려갈 건가? 하긴, 그렇다면 구태여 새로 드레스를 맞출 필요는 없겠지."

"뭐? 내가 그 새끼를 왜 데려가."

"나한테 물어도 곤란한데."

"아니, 곤란한 건 내 쪽이거든?"

어처구니없다는 듯 그렇게 반문하자, 최승준은 마저 헛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수많은 속내가 함유된 발언이었다.

다만, 나로서는 여전히 곤란할 따름이었다.

그야 저번에는 적당히 남는 순으로 데리고 갔을 뿐이었지만…….

'씨발, 부부 동반 모임처럼 말한 게 누군데.'

아무리 그래도 내게 대외적인 자리에서 대동할 수 있을 만한 사람은 따로 없었다.

곤란하게도.

아니, 정말로.

왜 없지?

"정 없으면 이예은 학생이라도 데리고 오면 되겠지."

"너 미쳤냐?"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아니, 씹!!"

그건 내가 피해자였다니까!!

쾅쾅 하고 가슴을 두들겼다.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나라도 그렇게 생각했을 테니까.

것보다, 만약 아니라 해도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평생 술자리 안줏감으로 삼았을 테지.

내 일만 아니었다면.

"애초에, 교장이라는 놈이 그런 행동을 추천해도 되는 거냐?"

"안 될 건 또 뭐지?"

"뭣이라?"

"물론 너와 이예은 학생이 언제 그런 관계가 된 건진 나도 잘 모르겠군."

"씨발아."

"그렇지만, 이제는 네게도 행복할 자격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나?"

진지한 어조로 그리 반문하는 놈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도대체 무슨 착각을 하고 있는 건지 묻기 두려울 정도였다.

때문에.

"아니, 이거 그렇게 진지한 얘기였던가……?"

나로서는 그리 말꼬리를 흐릴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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