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8화 〉 무너진 도시에서
* * *
그 뒤의 이야기.
내가 다시금 눈을 떴을 때는 이미 대다수 상황이 정리된 뒤였다.
도시의 하늘을 수놓고 있던 초대형 게이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게이트는 총력을 다해 자신이 선택한 터주를 보조한다.
때문에, 터주가 쓰러진 게이트는 그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자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탱크와 연결된 수도꼭지를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겠지.
터주에게 마력을 공급하는 게이트란 즉 물탱크와 마찬가지다.
터주라는 수도꼭지에게 물을 공급하는 물탱크.
헌데, 만약 수도꼭지를 틀어놓은 상황에서 갑자기 밸브가 폭발하기라도 한다면?
당연히 물탱크가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줄줄 새는 물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와 마찬가지로, 터주가 사라진 게이트는 계속해서 마력을 허비한 끝에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고 만다.
이윽고 스스로를 유지할 마력조차 상실한 게이트는 별다른 조치가 없을 경우 그대로 폐문.
문자 그대로 소멸한다.
터주 살해가 게이트 공략의 정석이라 여겨지는 이유다.
하물며 이번에 모습을 드러낸 초대형 게이트는 어디까지나 일시적으로 발생한 물건.
거기에 내 손으로 터주까지 베어 죽였으니, 순식간에 닫히는 것도 당연한 일이겠지.
물론 도시가 입은 피해는 가볍지 않았다.
터주가 죽고 게이트가 닫혔다 한들 이미 나타난 몬스터까지 사라지는 건 아니니까.
용이 내뿜은 위압Fear에 당해 쓰러진 구울들을 간신히 의식을 부지한 헌터들의 힘을 빌려 확인사살한 이후.
그제서야 협회는 사태의 종식을 선언할 수 있었다.
……그래. 종식이다.
몬스터가 입힌 피해. 몬스터에 의한 죽음.
어느 쪽도 해결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로지 사건만이 끝을 맞이했다.
남은 건 무너진 도시의 폐허와 그 위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 뿐.
정말로 오랜만에, 이 나라는 대침공 당시의 기억을 상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평소운 박사의 논문 해석이 끝났다."
병원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두 번의 대침공을 거친 세계 각국은 도심지에 발생한 게이트를 대처하는 방법 또한 확립했다.
환자들을 수용할 수 있는 병원을 중심으로 진형을 굳히는 이유 또한 바로 그 일환이었다.
덕분에 나로서도 이렇게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셈이고.
공교롭게도, 이번 싸움동안 내가 입은 피해는 만만치 않았다.
한계까지 혹사한 육체.
몇 번이나 바닥을 드러낸 마력.
과도하게 복용한 포션.
마지막으로 부족한 마력이나마 쥐어짜 구사한 세 번째 시그니처까지.
이러고도 멀쩡하면 그야 나도 놀랐을 거다.
막말로 내가 재생 능력자도 아니고.
게다가 더더욱 문제가 된 건 최후에 시도한 예의 끔찍한 행동이었다.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을 정도로 참렬한 행동을 취한 탓일까.
혼절한 직후, 내 몸은 멋대로 발작을 시작했다고 한다.
아예 경련까지 일어날 정도였다고 하던데.
사실 지금도 어느 정도 감각 이상이 남아있을 정도였고.
때문에, 병원 측에서 내게 내린 진단은 최소 한 달 이상 절대 안정.
눈에 띄는 후유증은 없지만, 이 이상 무리했다간 어쩌면 정말로 평생 가는 장애를 안고 살 수도 있다던가.
거 참, 무시무시한 일이었다.
헌터의 회복력이 있어도 그 정도란 말이지.
"그래?"
"뭐,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이다만."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따로 휴가를 낼 필요는 없었다는 점이다.
도시가 붕괴하고 아카데미 교사의 절반이 붕괴한 지금.
아카데미도 휴교령을 내릴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도저히 기말고사가 어쩌고 하는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것보다, 기말고사 이상으로 충격적인 경험이었을 테고.
아카데미가 다시금 문을 여는 건 내년 다음 학기.
과연 그 날이 되었을 때 몇이나 되는 학생들이 자퇴서를 제출할까.
이처럼 울적한 전망만이 눈 앞에 드리운 지금.
마찬가지로 아카데미 휴교를 맞아 오랜만에 여유를 얻은 최승준이 나를 찾아와 그런 말을 건넸다.
주제는 물론 이번 게이트 발생과 거기에 부속된 피해.
그리고 우리들만 알 수 있는 정보.
다시 말해, 신세계 질서의 주도 하에 진행된 이번 사건의 전말이었다.
놈들이 어떻게 그토록 아카데미 구조를 제 손바닥처럼 꿰뚫어보고 있었던 건지.
하물며 예은이를 촉매로 썼다 한들 어떻게 그만한 거물이 튀어나온 건지.
거기에 대해, 최승준은 이제서야 제대로 된 해답을 손에 넣은 셈이었다.
물론 평소운을 제외하더라도 마력 공학을 전공한 이들은 더러 있었다.
그렇지만 그런 전문가들에게도 평소운의 논문은 상상 이상의 난관으로 다가왔다.
일단 기본적인 개념이나 전제부터 그렇거니와, 몬스터의 지식을 흡수한 이상 더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승준의 자금을 아낌없이 투자한 연구원들은 평소운 박사의 연구 결과에 간신히 해석서를 낼 수 있었다.
즉.
"이예은은 반신이다."
이런 미치광이 결론을 내린 게 최승준이 아니라 예의 연구원들이었다는 뜻이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잠깐 정신이 멍해질 수밖에 없는 부분이었다.
"뭐라고?"
"아니, 표현에 조금 어폐가 있나."
최승준은 그렇게 말하며 턱밑을 쓸어내렸다.
확실히 맛이 간 이야기였다.
그야 티아마트도 그렇게 말하긴 했지.
신화 속 존재들이 각기 성좌와 몬스터라는 이름을 쓴 채 날뛰고 있는 것이 지금 이 세상이라고.
그러니 반신이라 할 법한 존재들도 없지는 않겠지.
않겠지만…….
'존나 뜬금없네.'
나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 반신이라 해 봐야 결국 성좌 혼혈이라는 거 아니냐?
지희랑 다르게 예은이한테선 그런 기미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그런 의문을 갈무리한 채 설명을 재촉하자, 최승준 또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처음부터 되짚어야 할 듯한데."
"그래. 천천히 설명해 봐라."
"평소운 박사가 인공 헌터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했던 건 알고 있겠지?"
"엉."
"당시 프로젝트에서 진행되던 방법은 실로 여럿이 있었다."
뭐, 그렇겠지.
들어서 좋을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준구 그 놈도 그런 뉘앙스로 이야기하기도 했으니.
다만.
"개중에서도, 평소운 박사가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 케이스 C. 세 번째 이론이었다."
"세 번째?"
"그래. 헌터가 마력을 각성하는 방법 말이지."
"첫 번째는 게이트와 접촉. 두 번째는 스스로 마력 운용법을 알아내는 거였던가."
"허면, 세 번째는?"
세 번째.
즉.
"성좌의 축복이군."
"그래."
요컨대, 그런 이야기다.
평소운 박사가 인공적으로 헌터를 만드는 데에 집중한 케이스는 세 번째.
말마따나, 의도적으로 헌터를 제작할 수 있는 성좌들의 기술을 참조한 셈이었다.
성좌의 선택을 받아 능력을 개안한 헌터들의 마력 파장을 기록하고.
정부의 지원을 받아 그런 헌터들의 유해를 살피고.
어쩌면 정확히 성좌의 계시를 받은 순간 발생한 마력 파동을 복사해.
인공적으로 그런 마력을 재현하려 했다.
"이예은은 그 성공 케이스라는 모양이다."
최승준은 담담하게 그리 말했다.
과연.
그래서야 성공하기 힘들 법도 하지.
막말로, 지상에 강림한 성좌라 할 수 있는 티아마트조차 헌터를 만드는 일에는 인색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마음에 드는 이들을 우선시해 선별했다고나 할까.
그리고.
신화 시절의 영웅들을 본 적 있는 성좌들에게, 눈에 차는 이들이 그토록 많을 리 없다.
때문에, 성좌들의 선택을 받아 각성한 헌터들은 수많은 헌터들 중에서도 극소수.
참고로 할 샘플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애초에 예은이가 각성한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을 테고.
'단순한 체질, 혹은 우연.'
이준구는 그렇게 평했다.
즉, 사실상 최고의 성공작이라 할 수 있는 예은이조차 실제로는 단순한 우연에 가깝다는 뜻이다.
부족한 시범 케이스. 재현성이 부족한 능력.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적으로 능력을 개화한 성공작.
심지어 그 능력조차 이준구처럼 불안정한 게 아니라 실로 안정적인 유일한 케이스라고 했던가.
이를 고려하면, 단순히 예은이에게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을 뿐일 가능성이 높다.
설마 당시 연구에 참가했던 양반들이 인류 최강의 이름을 걸고 찾아온 이준구에게 거짓을 말한 게 아니라면 말이지.
말하자면, 현대에 나타난 인력거를 끄는 재능과 마찬가지다.
만일 인류 사상 최고의 인력거꾼이 될 수 있는 재능이 있다 해도, 현대에서 쓸 데는 없다.
분명 예은이 또한 마찬가지였겠지.
본디 다른 나라나 머나먼 고대 시절 태어났다면 신들의 사제가 될 수 있었을 재능.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신화 하나 남지 않은 이 나라에선 발아할 수 없는 자질이 어쩌다 눈을 떴다.
평소운 박사의 연구 결과가 훌륭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정도로 조악한 이론으로도 눈을 뜰 수 있을 만한 자질이 있었기에.
말하자면 그런 이야기다.
때문에.
평소운 박사는 생각했다.
조악하기 짝이 없는, 기술로 재현한 성좌의 계시.
고작해야 그 정도만으로도 안정적인 능력을 개화할 만큼 우수한 그릇.
그게 바로 예은이다.
그렇기에.
"중동의 용한텐 그런 전승도 없잖아 있지."
마법진에 조금만 손을 대면 소환의 촉매로도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 생각한 결과가 바로 이번 사태였다는 뜻이다.
여신.
혹은, 신들의 계시를 받아 거기에 응하는 여신관이 용을 부르는 제물이 되는 건 흔하디 흔한 이야기니까.
물론 그 정도 상성으로도 규격 외 몬스터를 부를 순 없었지만.
'아니, 반대인가.'
예은이의 총체적인 능력은 B랭크 헌터 수준.
개중에서도, 단순한 능력은 B랭크에 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랭크 몬스터를 부르는 촉매가 될 수 있었다는 건…….
방금 전 이야기한 예은이의 자질이 상상 이상이라는 뜻이다.
당연하지만, 직접적으로 관련된 촉매가 아닌 한 고랭크 몬스터를 부르는 데에도 한계가 있고.
다시 말해, 별다른 준비 하나 없이 S랭크 몬스터를 소환할 수 있었던 예은이는 최소한 S랭크에 도달할 자질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평소운 박사의 밑준비를 고려하더라도 말이지.
문제는, 그런 예은이조차 능가하는 하연이의 적성 쪽인데…….
거기에 대해선 무어라 할 말도 없다.
적어도 지금 당장은.
그렇게 생각하며 나는 입을 다물었다.
왜냐하면, 당장 입을 열진 않았지만 나 또한 어느 정도 짐작이 갔기 때문이다.
하연이의 정체에 대해서?
아니.
'규격 외 등급 몬스터, 라.'
이번에 잠시 모습을 드러낸 놈에 대해서.
그렇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건 무엇 하나 없다.
그러므로, 일단 지금은 놈의 설명을 듣고 있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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