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 마왕의 권속
* * *
솔직히 말하자면, 박우찬은 자신이 어떻게 살아있는 건지 실감이 가질 않았다.
물론 머리로는 이해가 갔다.
방금 전 부활에 가까운 회복은 놈에게도 예상 밖이었던 거겠지.
딱히 소생한다 해서 물리법칙을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때문에, 추락하고 있던 용으로서도 꼬리에 힘을 넣기 힘들었던 게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하던 박우찬은 힘없이 웃음을 흘렸다.
머리로는 이해가 갔지만, 실감이 들진 않는다.
요컨대 겁나 아프다는 뜻이었다.
어찌저찌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지만, 이 이상 싸울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질 않았다.
왜냐하면 더럽게 힘들었으니까.
아니, 진짜로.
'농담이 아니야, 이거.'
박우찬 본인의 실력은 스스로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몬스터가 상대라는 전제 하에, 게이트를 점거한 S랭크 몬스터조차 정면으로 타도할 수 있는 레벨.
다시 말해, 사실상 어떤 조건 하에서라도 몬스터가 상대라면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스펙 문제가 아니다.
전술과 전법의 문제다.
그렇지만.
방금 전 눈 앞에 비친 마법은 그 정도 수준이 아니었다.
규격 외 등급.
문자 그대로, 현대의 헌터가 발휘할 수 있는 하이엔드 스펙인 박우찬조차 손이 닿지 않을 정도인가.
말했다시피, 어떠한 이론도 근거도 없다.
단지.
알싸한 확신.
직감에 가까운 직관으로, 박우찬은 방금 전의 개입이 규격 외 등급 몬스터의 짓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전제에 수정을 가해야 하지 싶었다.
솔직히 말해서, 박우찬은 놈들의 소환이 실패했다 생각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확실히, 눈 앞의 거룡은 강대하기 짝이 없는 존재다.
단순한 마력량으로 보자면 역대 최고.
이론 상 존재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고봉의 마력을 보유한 괴물이다.
부하가 없고 게이트의 환경에 따른 보조 또한 없지만, 단순한 전투력이라면 S랭크 최상위.
거기에 게이트의 마력을 추가 가용할 수 있는 지금.
순수한 전투 능력이라면 몬스터가 발휘할 수 있는 하이엔드 스펙에 가깝다.
박우찬 자신과 마찬가지로.
다만.
반대로 말하자면, 딱 거기까지.
확실히 현역 시절에도 보기 드문 괴물인 건 사실이지만, 단독으로 인류를 멸망시킬 수 있는 괴물은 아니다.
박우찬은 그렇게 판단했다.
아니, 이대로 풀어놓으면 대륙 정도는 날아갈지도 모르겠지만.
모르긴 몰라도, 최고 화력으로 방사한 용의 숨결이 직격한다면 한반도의 절반은 날아갈 테니.
단지.
잴 수 있다. 측정할 수 있다. 비교할 수 있다.
따라서, 쓰러뜨릴 수 있다.
그런 견적이 나왔으니까.
문자 그대로, 규격화할 수 없는 존재는 아니다.
뭐, 당연한 이야기지.
애시당초 조건부터 마땅치 않았다.
별다른 검증 하나 없던 평소운 박사의 이론에서 시작된 계획이다.
게다가, 마찬가지로 놈들은 이예은을 제물로 쓰기 좋게 가공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촉매를 대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촉매의 성장까지 실시간으로 반영했을진 역시 의심스럽다.
아니, 애초에 정말로 촉매를 대체할 수 있긴 할까?
어느 쪽이든, 확신 하나 없는 이야기.
때문에 박우찬은 놈들의 소환이 실패했다 가정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게이트와 연결된 S랭크 몬스터를 실패라는 한 마디로 잘라 말할 수는 없겠지만…….
'어쨌든.'
바로 그게 오산이었던 거다.
확실히, 소환은 실패했다.
하지만.
길은 열렸다.
방금 전 눈 앞에서 일어난 일이 바로 그 증거였다.
즉.
규격 외 등급 몬스터를 소환해 제 3차 대침공을 일으킨다는 놈들의 계획은 실패했다.
그렇지만.
의식이 불완전했을 뿐, 어쩌면 전자는 성공한 걸지도 모르겠다.
'분신, 인가.'
지금 박우찬 자신의 눈 앞에 있는 거룡.
놈은 십중팔구 예의 규격 외 등급 몬스터의 분신이다.
박우찬은 그렇게 판단했다.
때문에, 방금 전 상황에서도 개입할 수 있었으리라 가정하면 딱 들어맞는다.
여하간, 놈들이 벌인 소환 의식은 제 3차 대침공을 위해 따로 안배한 규격 외 등급 몬스터의 소환진.
별다른 관계 하나 없는 몬스터 한 마리가 뚝 하고 떨어졌다 생각하는 쪽보다야 훨씬 더 그럴듯한 이야기였다.
문제는 예의 규격 외 몬스터라는 놈이 S랭크 몬스터조차 분신으로 사역하고 있다는 뜻인데…….
"니미."
진짜 규격 외로군.
헛웃음을 지으며, 박우찬은 입 안에 넣어두었던 알약을 씹었다.
그제서야 조금 감각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방금 전 일격으로 방독면이 박살난 탓일까.
주변 대기 중에 흩어진 독소를 직접 들이마신 뒤로 온 몸이 얼얼했기 때문이다.
과연 용의 숨결.
빗나갔음에도 불구하고 독소를 흩뿌릴 정도는 되었나.
"아, 눈물 나와."
너무 아프니까 헛소리가 다 나오기 시작하는군.
킬킬 웃으며, 박우찬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간신히 움직이는 손으로 창고를 조작.
이윽고 회복 포션을 천천히 입에 대었다.
……회복 포션도 무조건 능사는 아니다.
단순한 부상이라면 모를까, 심각한 부상이면 부상일수록 치료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러지 않았으면 헌터들이 그토록 쉽게 죽어나갈 리도 없겠지.
예를 들어, 지금 박우찬의 상황이라면 족히 몇십 분은 정양해야 한다.
최고급 포션조차 이 정도니, 싸구려 포션이라면 입원과 병행해 일주일은 걸릴 테지.
그만한 부상이었다.
그러나.
박우찬은 망설임 없이 포션을 삼켰다.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못 이겨, 이거.'
이대로 있으면 못 이긴다.
살든 죽든, 포션의 회복력에 걸어볼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 포션 없이 나가 죽는 것.
그리고 얼마간 시간을 들여 다시 한 번 전세 역전을 노리는 것.
박우찬이 선택한 건 후자였다.
문제는 시간을 끌 수 있을까 하는 점인데…….
축지를 사용할 최소한의 마력마저 포션에게 갈취당하는 지금 이 상황을 보면, 아무래도 힘들지 않을까 싶다.
피식, 웃음이 나왔다.
한 가지 다행인 점이 있다면, 놈 또한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라는 걸까.
방금 전의 마법으로 회복된 건 어디까지나 두 번째 시그니처 뿐이다.
첫 번째.
거룡으로부터 날개를 앗아간 시그니처에 대해선 아직까지도 별다른 회복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았다.
때문에, 놈 또한 지금 지상으로 추락한 데미지를 추스르고 있는 상황.
다시 한 번 몸을 일으킬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까지 어림잡아 10분.
개중에서 5분 정도는 이렇게 벌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남은 5분은──.
'글쎄, 어떡할까.'
다행스럽게도, 방도는 있었다.
어디 보자.
"최승준, 있냐?"
[찾았다.]
허공을 향해 말을 걸자, 얼음으로 이루어진 문자가 눈 앞에 나타났다.
괴물 같은 놈.
이런 상황에서도 아직 마력이 남았나.
자신도 모르게 투덜거리기도 잠시.
박우찬은 입을 열었다.
"저 새끼, 정신 차리고 나면 발 좀 묶을 수 있겠냐?"
[어느 정도는.]
"그럼 됐어."
[……지금이라도 이준구를 보내는 건 어떤가?]
"안 돼."
판단은 여전히 같았다.
거기에,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못 죽여."
눈 앞의 거룡과 이준구의 시그니처는, 지독할 정도로 상성이 나쁘다.
나와 마찬가지로, 이론 상 무적이나 다름없는 이준구의 시그니처에 대처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하나는 뇌속으로 내지르는 스트레이트를 보고 반응하는 쪽.
다른 하나는 뇌속의 스트레이트를 맞고 견뎌 반격하는 쪽이다.
그리고.
눈 앞의 거룡은, 틀림없이 후자다.
심지어 일격 신앙에 의한 방호 능력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전력을 이렇게 나눌 수 있었던 일 자체가 행운이 아닐까.
"예은이는?"
[근처에 있다. 그 쪽으로 보내지.]
"음."
글쎄, 솔직히 말해 승산이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무슨 생각이 있으니 저러는 거겠지.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풀숲 너머로 예은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추락 직전 내가 나눠주었던 무기들은 물론이요, 벗긴 용의 비늘조차 억척스레 회수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선생님……."
"꼴이 말이 아니지?"
박우찬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방독면 너머, 이예은이 짓고 있을 표정이 너무나도 쉽게 그려졌던 탓이다.
"후퇴하죠."
"안 돼."
"……왜요? 선생님, 지금 무슨 꼴인진 알고 계세요?!"
"야, 야. 목소리 너무 높이지 마. 쟤도 듣겠다."
그렇게 말하자 그제서야 목소리를 낮추는 이예은.
다른 건 몰라도, 이런 상황에서까지 방독면을 쓰고 있으니 조금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
"아무튼 안 돼."
"어째서? 어째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알고 있잖냐."
당연한 이야기지.
저 새끼, 지금 잡아야 한다.
이대로 놓아주면 피해가 너무 커지기도 하거니와…….
흘끔, 그 등을 살핀다.
거대한 용의 날갯죽지.
흉흉하게 드러난 참상을.
"저 새끼, 놓아주면 다시 날개 달고 온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박우찬의 시그니처도 영구적인 건 아니다.
전투 한 번 치를 동안 효과가 사라질 정도로 만만한 건 아니지만.
반대로, 미래영겁 지속되는 부류도 아니다.
때문에.
용의 압도적인 마력이 있다면, 재생하는 것도 어렵진 않겠지.
박우찬은 그리 판단을 내렸다.
그리고 그 판단은 실로 합리적이었다.
이제 막 눈을 뜬 사냥꾼인 이예은으로서도 고개를 끄덕일 수 있을 만큼.
"제가 부탁해도, 안 되나요?"
때문에.
이예은의 그런 부탁은, 사냥꾼으로서 내뱉은 게 아니었다.
놀란 듯 당황한 듯, 얼빠진 표정을 짓는 박우찬.
방독면이 박살난 덕분에 그런 모습이 이상할 정도로 눈에 밟혔다.
"응."
그렇지만.
대답하는 말투만큼은 어찌도 저리 밉살스러운지.
자신도 모르게 울컥 하는 기분으로 이예은은 교복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너무해.'
나, 나도 처음이었는데.
이렇게까지 부탁하면 조금은 생각할 수도 있는 거 아닌가?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박우찬의 판단이 실로 합리적이라는 사실을.
아니, 오히려 지금 선택이 그녀를 비롯한 수많은 사람들을 생각한 결과라는 것쯤은.
때문에.
"죽어 진심."
"아니, 말 너무 심하네……."
"……취소."
이예은으로서는 그리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그녀가 걱정할 만한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 박우찬은 생각했다.
결국 이건 연장전.
이미 결판이 난 싸움에 추가로 덧붙인 싸움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승부가 나는 건 한 순간.'
놈이 충격을 추스르고, 그 거체를 움직여 박우찬을 발각한 뒤.
최승준이 놈의 발을 묶고, 박우찬이 어떻게든 한다.
그 때까지 얼마나 몸을 회복할 수 있을까 하는 문제일 뿐.
그렇기에.
시간이 영글어 맺힌 어느 순간.
승부는, 정말로 쥐죽은 듯 시작되었다.
쩌어엉!!
낙하의 충격을 추스른 채 고개를 젓던 거룡의 시선이 박우찬과 이예은에게 닿는다.
다음 순간.
용이 포효를 터트리기도 전, 그 전신이 얼어붙었다.
두말할 필요도 없겠지만, 최승준의 능력이었다.
물론 손쉬운 일은 아니다.
용이 지닌 어마어마한 마력은 그대로 항마력으로 취급되는 법이니까.
갑자기 지상에 나타난 빙산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 안에 갇힌 거룡이 용틀임을 하고 있는 탓이었다.
허나.
최승준은 멈추지 않았다.
최대 출력으로 능력 행사.
얼어붙은 거룡의 머리 위로, 순식간에 형성된 쐐기 모양 얼음이 포신을 조준한다.
일격 신앙에 의한 방어 능력을 고려하면, 완전히 헛짓이다.
오히려 용의 부상을 회복시킬 뿐이겠지.
때문에.
[조준 잘 하도록, 이예은 생도!]
"네!"
최승준은 얼음의 제어권을 이예은에게 넘겼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일개 생도의 능력으로 조작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질량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이런 형태인 거겠지.
최승준은 얼음을 형성하기만 하면 그만이다.
적절할 때에 얼음을 놓으면, 중력 쪽이 멋대로 거룡에게 빙산을 떨굴 테니까.
그 위를 염력으로 덮어 세밀하게 조작하는 게 바로 이예은의 역할이다.
여태까지 투척 무기를 던진 적은 있어도, 염력으로 적을 직접 공격한 적은 없음.
이예은의 능력은 일격 신앙에 의한 방어, 그 대상 외였다.
'이런 걸 준비했나!'
박우찬이라 해도 감탄할 수밖에 없는 연계였다.
동시에.
최대 한도까지 부풀어 오른 빙산이 낙하하는 바로 그 순간.
거룡이 얼음을 깨트렸다.
"───────!!!!"
너무나도 절묘한 타이밍.
아슬아슬한 그 순간, 박우찬이 움직였다.
남은 용살구??는 세 개.
거기에 벼락의 마력을 두른 박우찬의 손목이 예리하게 휘었다.
그리고.
푸푸푹!!
세 개의 단검이 거룡의 육체에 꽂혔다.
비늘 하나 없는 맨살.
세 장의 비늘이 벗겨진 장소였다.
……거룡의 포효가 메아리친다.
물론 단검에 깃든 동족살상의 성질을 고려해도 저만한 거룡에게 큰 데미지를 줄 수는 없겠지.
보통 단검보다야 잘 듣겠지만, 단순한 크기 문제다.
일전에도 그랬다시피, 효과는 잠시 몸을 움찔할 뿐.
그리고.
지금은 그 움찔하는 수준으로도 충분했다.
콰드드드득!!
염력을 두른 채 낙하한 빙산이 거룡의 목을 내려찍는다.
지상에 못박듯 고정당한 용.
그런 빙산의 뒤를 이어, 전격을 휘감은 투척 무기가 비늘을 벗긴 틈새로 날아가 꽂힌다.
평소라면 이처럼 노골적인 빈틈 따위는 없었겠지.
그렇지만.
방금 전 연계는 실질적으로 최승준이 발휘할 수 있는 전력.
세계 최고봉의 재능에 의한 2연타는, 저만한 거룡이라 해도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시간은 충분히 벌었다.
저 정도 타격을 주었다면, 없는 마력을 긁어모은 시그니처라 해도 충분하겠지.
이를 악물며 몸을 일으킨다.
시그니처, 예쁘게 베기.
허공에 칼질 한 번 할 수 있으면 발동할 수 있는 이 기술을 사용하기 위해, 몇 분이나 되는 시간을 허비했던가.
조용히 호흡을 가다듬는다.
의식을 집중한다.
그리고 마력의 흐름을 일치시켜…….
"니미럴."
다음 순간.
박우찬은 자신도 모르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추락 전까지만 해도 일정했던 거룡의 마력 패턴이, 지금은 이상할 정도로 미쳐 날뛰고 있었기 때문이다.
족히 천을 넘는 방어 마법.
각기 다른 마력을 매질로 삼은 방호가 거룡을 보호하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일지, 공교롭게도 예상하는 건 아주 쉬웠다.
"빌어먹을 새끼."
규격 외 등급.
그 의미를 알려주겠다는 건가?
아이러니하게도, 이 순간 박우찬은 언젠가 들었던 제 1차 대침공의 무대를 떠올리고 있었다.
무기술을 비롯한 기량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특권.
박우찬은 그렇게 말했지만, 세상 만사가 다 그렇듯 모든 일에도 예외가 있다.
예를 들면, 저 그리스의 미궁 답파자.
신이 내린 무술, 복싱πυγμαχα과 레슬링πλη을 결합해 고대 종합 격투기를 창제했다는 창시자 중 한 명.
위대한 아테네의 왕은, 미궁 한 가운데에서 마주친 자신의 숙적과 싸우며 예의 무술을 창제했다고 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궁에서 만난 반인반우의 괴물과 나눈 공방.
아테네의 왕에게 있어서도 가장 험난했던 싸움이, 그리스식 종합 격투기παγκρτιον의 기원이 되었다고.
그렇기에.
당연하게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우두인신 몬스터가 소환된다면 그 기술은 범상한 수련자를 아득히 상회하고 있겠지.
지금 눈 앞에 펼쳐진 모습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법.
마력을 다루는 법.
예의 규격 외 몬스터는, 틀림없이 대다수 마법사를 능가하는마법적 지식을 갖추고 있었다.
하긴,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식으로 시그니처를 타개할 수 있을 리가 없지.
당장 지금만 해도 그렇고.
천 개가 넘는 마법 전부를 넘어, 다시 한 번 거룡을 잡을 수 있을까?
마치 그렇게 되묻는 듯한 광경이었다.
물론 불가능하다.
박우찬은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천 개의 방어 마법 전부를 넘어 거룡만을 베는 테크닉 따위, 아무리 그래도 도가 지나친 법.
도축업자라 해도 그토록 달리 쓸데없는 기교 따위는 연마하지 않았다.
때문에.
지금 필요한 건 섬세한 기술 승부가 아니다.
힘겨루기다.
박우찬이 욕설을 내뱉은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개새끼가."
너는 진짜 내 손에 뒈졌다.
온 몸으로 그렇게 다짐하며, 박우찬은 옆으로 손을 뻗었다.
방금 전, 이예은이 가지고 합류한 용의 비늘이었다.
그 옆.
용의 비늘에서 나온 부스러기를 쥔다.
장갑 너머로 느껴지는 감촉에 온 몸이 경종을 울렸다.
솔직히 말해, 정말로 내키지 않았다.
다만.
"최승준 개새끼야!!"
네가 예은이 데리고 튀었으면 안 됐냐 그냥?!
욕설과 함께, 박우찬은 입 안으로 손에 쥔 가루를 털어 넣었다.
그리고.
──서걱!
다음 순간.
승부가 났다.
평소 박우찬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
허나, 그 효과는 확실했다.
확실히, 천을 넘는 마법 전부를 넘어 거룡을 벨 수는 없었다.
대신.
용의 육체. 수많은 방호 마법. 각기 다른 마력의 파장.
눈 앞에 놓인 마력이 한 순간 일치한 찰나.
천이 넘는 마법과 함께 거룡의 육체가 두동강났기 때문이다.
"해, 해냈나?! 선생님, 저희가 해냈어요! 선생님?"
문제는 정작 당사자인 박우찬이 그 광경을 확인할 수 없었다는 점이겠지만.
풀썩, 가벼운 소리와 함께 몸이 기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의식을 잃기 전.
"우웨에에엑!!"
성대한 구토와 함께, 박우찬의 정신이 끊겼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