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6화 〉 마왕의 권속
* * *
방독면 너머로 호흡을 고르며, 박우찬은 행동에 나섰다.
파앗!!
다시 한 번 비수를 뿌린다.
고작해야 네 발밖에 남지 않은 용살의 단검.
첫 수에 과감하게 이를 앞세우며, 반대편으로 질주.
용의 시선을 끌어들이며 방금 전 들어낸 비늘 사이의 틈새를 향해 쇄도한다.
놈의 공세를 피하려 들 때마다 축지를 밟아야 할 정도로 정신 나간 가성비.
이를 고려하면 처음부터 시선을 끄는 행동도 있을 수 없는 선택은 아니다.
물론 용으로서는 시선을 돌리며 꼬리를 흔들면 그만.
꼬리를 휘두르는 궤적에 따라, 얼음으로 이루어진 대지에 협곡이 생긴다.
잔인한 수준의 격차.
생물로서의 격이 몇 단계는 다르다는 걸 증명하는 듯한 위력이었다.
때문에.
"흡!!"
인간은 학습하고 대처하기 마련이다.
몬스터와 마찬가지다.
용의 마력. 거인의 물리력.
수많은 몬스터들이 각기 다른 특성을 지니듯이, 인간이라는 종족은 철저하게 저런 부분으로 특화된 면모가 있었다.
작금의 판단 또한 마찬가지였다.
'놈이 반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공격 수단은 꼬리 뿐이다.'
박우찬은 그렇게 판단했다.
생김새만 봐도 일목요연한 사실이었다.
뱀을 그대로 잡아늘린 듯한 신장.거기에 추가로 덧붙인 네 개의 다리.
저만한 덩치와 체중을 지탱하기 위해선 섣불리 다리를 공격 수단으로 삼을 수 없다.
신체 구조상 자연스레 발생하는 결점이다.
그리고.
예상할 수 있다면, 피할 수 있다.
염력의 발판을 밟아 다시 한 번 점프.
두 번의 도약으로 용의 꼬리를 회피한다.
동시에창고 안에서 꺼낸 바람의 마력 결정을 운용,몰아닥친 질풍을 흩어놓는다.
'끌이랑 대패는 썼고.'
남은 건 못과 톱, 추가로 칼날과 무게추 정도다.
쇠사슬로 교살 운운하기엔 지나칠 정도로 비현실적인 크기니.
그렇다면 이번에 사용해야 할 건…….
"흡!"
톱 쪽이다.
벼락의 마력을 두른 톱날이 작렬한다.
이예은이 던진 무기에 의해 삐걱인 비늘.
그리고 그 사이의 틈새는 지나칠 정도로 손쉽게 톱날과 맞물렸다.
보조 손잡이를 밟으며 억지로 힘을 불어넣는다.
동시에.
서걱!!
자잘한 부분은 힘으로 뭉게며, 세 번째 비늘이 떨어졌다.
"────!!"
노호.
괴물의 왕이라 불리는 용 특유의 프라이드인가, 그렇지 않으면 고통에 차 부르짖는 포효인가.
어느 쪽이든, 다시 한 번 하늘 아래로 용의 외침이 울려퍼졌다.
다음 순간.
푸쉬이이익!!
솟구치던 실혈이 순식간에 기화한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중동의 용이 흘리는 피는 곧 독.
독성으로 이루어진 안개가 되어 흩뿌려지거나, 거기에서 새로운 독사를 낳는다고 한다.
이번에는 전자였다.
방독면을 쓰고 있었던 덕택에, 호흡기에는 별다른 데미지가 없다.
문제는…….
휘익!
안개의 분사와 거의 동시에 뒤로 내던진 쇠사슬을, 염력이 잡아당긴다.
접촉한 시간으로 따지면 거의 1초 남짓.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래서 싸구려는 쓰는 게 아닌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거에요, 지금?!"
"예은아, 너도 잘 들어두렴. 정장은 싸구려 쓰는 게 아니다. 무조건 오더 메이드야."
투덜대는 소리와 함께, 박우찬은 팔 위로 해독제를 뿌렸다.
고작해야 1초.
허나, 그 1초 사이에 독기가 피부를 타고 오르는 중이었다.
'피부 접촉식이라.'
평소의 무장이었더라면 별다른 문제도 없었겠지.
독안개 안에서 데굴데굴 구르는 게 아니라면.
그렇지만, 지금의 예비 무장으로는 아무래도 불안한 점이 있었다.
……양 팔의 감각이 천천히 회복된다.
쯧,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차는 박우찬.
동시에, 알약 형태로 된 해독제를 입 안에 던져넣는다.
당장 삼킬 생각은 아니고, 만약을 대비해서였다.
독안개를 분출할 때마다 거리를 벌려서야 앞으로의 싸움이 힘들어질 뿐이니.
입 안에 남겨둔 해독제를 믿고 어느 정도 피해는 감수하며 싸울 수밖에 없다.
평소와 마찬가지다.
정장이나 코트의 방어력을 믿고 어느 정도의 공격은 받아넘기며 싸운다.
이번에는 어차피 버틸 수도 없는 물리 공격 대신 독성을 대상으로 할 뿐.
문제는 다름이 아니었다.
반사적으로 박우찬을 잡아당긴 이예은의 행동은 실로 신속했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거리를 벌리고 말았다.
예를 들면, 용의 눈동자가 박우찬의 모습을 포착할 수 있을 만큼.
다음 순간.
박우찬의 감각이 없더라도 알 수 있는, 명확한 죽음의 감각이 번뜩였다.
"예은아!!"
찰나.
각자가 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했다.
심상찮은 기색을 느낀 최승준은 박우찬과 이예은을 얼음의 벽으로 감쌌다.
이예은은 그 위에 염력을 더하고 얼음을 압착해 한층 더 두터운 방어력을 갖추었다.
박우찬은 창고를 해금해 해독제를 있는 대로 쏟아냈다.
그리고.
철저한 방비 위로, 폭풍이 불어닥쳤다.
만약 지금 이 도시를 관찰하고 있는 기상 위성이 있었다면 참으로 격렬한 바람의 움직임에 감탄을 표했겠지.
성층권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만큼 뚜렷한 대기의 흐름.
하늘에 걸린 구름마저 갈가리 찢어지고 녹아내린 끝에 드러난 마른 하늘이 퍽 청량했다.
그러나.
과연 그 누가 알 수 있을까.
방금 불어닥친 이 폭풍이, 단순한 날갯짓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당연한 이야기였다.
저만한 거구를 지니고 있기에 바깥의 자극에 둔하다.
저만한 체중을 지니고 있기에 섣불리 다리를 휘두를 수 없다.
그렇다면?
저만한 거구. 저만한 체중.
저만한 덩치를 지탱할 수 있을 만한 날개는,어찌나 강한 힘을 품고 있을 것인가.
"윽……!"
이예은이 신음을 흘린다.
진짜배기 폭풍이라 해도 이러할까 싶은 강풍.
언젠가 본 적 있는 A+랭크 대기 조작 능력자의 총력조차 가볍게 상회하는 위력이었다.
하지만.
만일 그 뿐이었더라면 별다른 문제는 없었겠지.
다름이 아니라, 여기엔 최승준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다음 순간, 이예은은 왈칵 하고 검은 피를 토했다.
방독면 너머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한 흔적이었다.
……그래.
거룡의 날갯짓엔 독기가 담겨 있었다.
호흡. 접촉. 마비. 중독.
심지어 마력조차 부식시키는 극독이.
그리고 그렇게 날아든 독기가 예은이의 능력을 붕괴시킨 결과.
예은이의 장기가 멋대로 발작을 시작했다.
일종의 반동이었다.
"예은아! 그만, 손 떼!"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최승준은 여기에 없다.
달리 말하자면, 지상에서 충분한 보급을 받을 수 있다.
지금만 해도 그렇고.
해독제외 회복약을마시며 방어에 치중하면 충분히 제 역할을 다할 수 있겠지.
허면, 중요한 건 이예은의 상태 쪽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이예은의 이탈을 권장한 박우찬이었지만…….
"예은아!"
"선생님. 죄송한데, 머리가 울려요. 조금만, 조용히……."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예은은 마지막까지 손을 빼지 않았다.
알싸한 예감 때문이었다.
……최승준은 지금 이 자리에 없다.
어디까지나 원거리에서 이 쪽을 지원하고 있을 뿐.
당연히 눈 앞에서 직접 능력을 행사할 때보단 출력이나 섬세함이 뒤떨어질 수밖에 없다.
물론, 세계 최고봉의 재능이라는 표현은 장식이 아니다.
실제로, 지금 보조하고 있는 정도만 해도 평범한 수준은 진즉에 벗어났으니까.
그렇지만.
지금 손을 보태고 있는 이예은은 알 수 있었다.
'여기서 내가 손을 빼면, 순식간에 기울어.'
막아낼 수는 있겠지만, 그 여파까지 거둘 수는 없다.
그렇게 결론이 나온 순간, 이예은은 후퇴할 생각을 접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언컨데 담임인 박우찬 쪽이다.
허면, 자신도 헌터로서 여기서는 맡은 바 책무를 다해야 할 때……!!
……그런 이예은의 모습을, 박우찬은 하릴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아니, 무슨 생각인진 알겠다.
알겠지만.
'좆같네.'
속 편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때문에.
"예은아. 너도 한 번 했으니까 이걸로 쌤쌤이다."
"네?"
다음 순간, 박우찬은 본인의 방독면을 벗었다.
이윽고 주변에 꺼내둔 해독제와 회복약을 입가에 머금는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살며시 벗긴 방독면 너머.
땀에 젖은 소녀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진 모습을 확인한다.
'아, 이런.'
지금 이 표정 보여주기 싫은데.
고통에 잠식된 이예은의 머릿속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는 가운데.
박우찬은 조용히 눈 앞의 소녀에게 입을 맞췄다.
[씨발.]
저 멀리 도시 한구석에서 뇌까린 최승준의 욕지거리가 글자의 형태를 이루다 사라진다.
동시에.
"읍, 으읍?!"
입가 너머로 스며든해독제나 회복약 덕분일까, 그렇지 않으면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 때문일까.
자신도 모르게 이예은은 그런 소리를 내고 말았다.
다만.
이윽고 잦아드는 반응.
동시에, 이예은의 사고가 눈 앞에서 멀어진다.
어라? 이게 무슨 일이지? 아니, 과연. 의료 행위구나. 그렇죠, 선생님?
응? 응?! 응?! 잠깐, 어떡해. 아니, 나 처음인데. 잠깐만, 이래도 돼요?!
하긴, 저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으니까요.
생각해 보니 나도 이랬었구나. 응?! 잠깐, 그거 완전히 변태 아니야?! 게다가, 선생님은 그러면 안 되죠!!
이건 의료 행위니까.
그렇지만, 의료 행위고 뭐고 솔직히 모르겠어. 싫냐, 고 물으면 싫은 것 같지는 않아. 상상한 적 없는 상황도 아니니까, 기쁘기도 하고…….
생각의 저울이 순식간에 기운다.
입을 맞추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기울기가 점차 깊어지는 가운데.
이예은은 자신이 어떻게 아직도 염력을 유지할 수 있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박우찬이 입을 떼는 순간과 거의 동시에, 날갯짓이 멈췄다.
"엇, 아."
"하고 싶은 말 있는 건 알겠는데, 나중에 하자. 방독면 써!"
"으, 네. 네!"
허겁지겁 방독면을 걸치는 박우찬.
그런 그의 등을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입술을 만지작거리고 있던 이예은은 아쉬운 기색으로 마저 방독면을 썼다.
스르륵.
이번에는 어떠한 말 없이 얼음벽이 내려갔다.
다소 불성실한 이야기지만, 박우찬으로서는 잠깐 안심할 수 있었다.
잠깐이었던 이유는 물론 그 이후 눈 앞에 펼쳐진 상황 때문이고.
펄럭이는 날개.
저만한 거체. 저만한 체중.
저만한 덩치로도 하늘을 날 수 있다니, 마력이란 도대체 뭐 하는 물건인가.
마력이나 마법도 만능은 아니다. 특정한 법칙 하에 움직이고 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마력 공학 전공자의 상투어였지만, 지금 저 모습을 보고 있으면 아무래도 반문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하늘에 그림자라도 새길 듯한 기세였다.
안 그래도 얼음의 벽 때문에 채광이 나쁘던 도시에, 때 아닌 밤이 찾아왔다.
날아오른 거룡 때문이었다.
우악스레 펼친 날개가 태양을 가린다.
문자 그대로 신화 속 한 장면.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어쩐지, 단순한 날갯짓 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바람이 강하다 싶었더니만.
"날아오를 생각이었나."
하긴, 저만한 몸뚱이를 띄우려면 예열에도 꽤나 시간을 허비할 수밖에 없겠지.
박우찬의 소평과 함께, 용은 그 주둥이를 벌렸다.
결집하는 마력.
설령 감응 능력이 없다 해도 눈치챌 수 있을 정도로 농밀한 마력의 흐름이었다.
진짜배기 용의 숨결Dragon Breath.
괴물의 왕이 내뱉는 마력의 격류.
독기를 머금은 날숨 따위가 아닌, 형체를 이룬 마력 덩어리.
용이 지닌 수많은 공격 수단 중에서도 으뜸을 자랑하는 일격이었다.
비유하자면 대포다.
저 아가리가 포구라면, 장전된 마력은 포환.
지상을 겨누는 포탄이 떨어질 때까지 남은 시간은 채 1초도 되지 않는다.
때문에.
별다른 말 없이, 박우찬은 검을 늘어뜨렸다.
'됐다.'
애시당초 이렇게 되리라 예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니, 당연한 이야기지?
무대를 봐라.
하늘 위. 게이트 위. 그 위에 새로 만들어진 얼음 천장.
상대는 둘. 거룡에 비하면 작달막한 인간이 두 마리.
이런 상황에서 실혈사를 유도하는 전술을 앞세우면?
용.
괴물의 왕.
저 우악스러운 거룡은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열심히 꼬리를 휘둘러 때려잡자고 생각할까?
설마 그럴 리가.
대답은 눈 앞에 있었다.
넓은 개활지.
이런 상황에서 용이 내놓을 수 있는 최적의 해법은, 비행 후 지상을 향해 브레스를 내뱉는 것이다.
중동의 용이 내뱉는 브레스는 독과 불꽃.
거기에 인화성 가스를 이용한 폭발 정도.
숨결을 내뱉을 시간만 있다면, 설령 상대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해도 확실하게 일소할 수 있겠지.
문자 그대로 최적해.
때문에, 예상하기도 쉽다.
찰칵.
박우찬의 머릿속에 격철이 울렸다.
퍼즐이 맞아떨어졌다.
그려두었던 반상이 현실로 나타난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해야 할 행동 또한 명확했다.
그러므로.
용이 숨결을 격발하기 직전.
박우찬의 대검이 허공을 갈랐다.
시그니처, 예쁘게 베기.
참격이 작렬한 다음 순간.
용은 어느덧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깨달았다.
"────?!"
지상에 햇볕이 드리운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태양을 가리던 날개가 힘없이 나부낀다.
그제서야 용은 깨달았다.
보이지 않는 참격인가? 그렇지 않으면 공기의 칼날인가?
어느 쪽이든, 자신은 날개를 잃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날개 잃은 생물들이 으레 그렇듯이, 용은 지상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콰아아아아!!
방향을 잃은 용의 숨결이 하늘을 향해 방사되었다.
도저히 억제할 수 없을 만큼 응집된 마력.
거기에 날개가 통째로 절단된 지금.
용은 자신의 몸조차 가눌 수 없었다.
날고 있는 것도 아니요 땅에 발을 붙이고 있지도 않은 지금.
스스로가 방출한 용의 숨결과 그 반동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쿠우우우웅!!
얼음 천장에 추락한 용의 거체가 마력으로 이루어진 얼음 바닥을 뒤흔든다.
동시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문제 없이 용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던 바닥이, 기울기 시작했다.
추락으로 발생한 충격 때문인가?
아니.
오히려 정 반대.
추락에 맞추어, 얼음 천장을 형성하고 있던 최승준은 자신의 마력으로 이루어진 구조체를 기울였다.
날개가 잘려 추락한 용.
제 몸 하나 건사할 수 없는 상황.
내뱉은 숨결의 반동.
멋대로 기울기 시작하는 얼음 바닥.
조건은 갖추어졌다.
애시당초 박우찬에게 저만한 거룡을 도시 바깥으로 밀어낼 능력은 없다.
사내의 능력은 어디까지나 마력 감응.
하물며 본인의 전술 또한 철저하게 사냥꾼으로서의 수렵기???에 특화되어 있다.
저만한 질량 덩어리를 밀어낼 만한 기술이 있을 리가.
때문에, 박우찬은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이 전장에서 용의 거체를 밀어낼 수 있는 건 단 한 명.
용 본인 뿐이라고.
거룡의 육체가 미끄러진다.
발톱을 세우고 꼬리를 흔들어도, 기우는 빙판을 붙들어놓을 수는 없었다.
최승준의 절묘한 조작 덕분이다.
용이 발톱을 박을 때마다, 그 부분이 마력으로 되돌아간다.
결국 용의 몸부림은 단 한 순간도 스스로의 추락을 저지할 수 없었다.
대기가 준동한다.
저만한 거체에 더해, 저만한 거룡을 지탱할 수 있었던 구조물이 통째로 기울어지고 있는 탓이다.
실로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원근감이라는 개념이 증발하는 듯한 풍경.
그렇지만.
그런 광경에도 머잖아 끝이 찾아왔다.
마침내 용의 육체가 도시의 상공을 벗어난다.
그리고.
도시 바깥으로 한 번 더 추락하기 시작하는 용의 거체를 향해, 박우찬은 몸을 날렸다.
지금 이 순간,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뒈져!!"
승리를 확신하며, 박우찬의 감각이 곤두섰다.
시그니처, 예쁘게 베기.
방금 전 날개를 절단한 절초 중의 절초가, 용의 마력과 동조한다.
깔끔한 가로 베기.
마침내 작렬한 결정타가 용의 주둥이부터 꼬리까지, 정확히 상하를 반으로 나누는 바로 그 순간──.
키득, 하는 조소가 들린 듯한 기분이 들었다.
꽤나 훌륭한걸, 그렇게 상찬하는 듯한 목소리였다.
……알 수 없는 위화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엇인가 단단히 잘못된 듯한 환시.
다행스럽게도,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방금 전 두 동강이 난 거룡의 육체 위로 이질적인 마력이 깃들었기 때문이다.
회복 마법.
찰나에 박우찬은 그 정체를 파악했다.
물론 그 정도라면 별다른 문제는 없었겠지.
예쁘게 베기.
이름은 우스꽝스럽지만, 문자 그대로 신화 속 마검의 성능을 재현하는 듯한 절초.
그 여파는 우습게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용의 유해 위로 덧붙인 회복 마법 또한 용과 같이 상하로 쪼개지고 만다.
그렇지만.
박우찬은 보았다.
눈 앞에서 둘로 나뉜 마법진이 멋대로 움직이는 모습을.
아니, 조금 다를까.
둘로 나뉜 마법을 외부의 마력이 억지로 연결하는 등, 그런 수준이 아니다.
둘로 나뉜 마법진이,우연히새로운 마법을 구성한 거다.
'우연?'
설마 그럴 리가.
지금 이 상황.
지금 이 순간, 우연이 개입할 여지 따위가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므로 박우찬은 확신할 수 있었다.
의도된 거다.
방금 전, 회복 마법을 행사한 누군가.
아마도 이 전투를 처음부터 끝까지 관측하고 있었을 누군가.
박우찬이 시그니처를 사용해 거룡의 날개를 절단하는 모습도 보고 있었을 누군가!
바로 그 누군가가, 박우찬의 시그니처를공략했다는 사실을.
시그니처의 여파에 의해 마법진이 둘로 나뉘는 순간, 새로운 마법진이 되도록!
"아니, 뭔 씹."
뭐 이딴 좆망겜이 다 있어──.
경악은 한 순간.
둘로 나뉜 회복 마법이 새로운 마법진을 형성했다.
일찍이 박우찬 또한 견식한 적 있는 저주.
피해 부담의 마법.
다시 말해, 방금 전 대상이 받은 데미지를 다른 누군가에게 이전하는 저주였다.
때문에.
『───────!!!!』
한 호흡 뒤.
다음 순간, 죽음을 밟아넘어 부활한 거룡이 다시 한 번 포효를 부르짖었다.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자신도 모르게 헛웃음을 토하길 잠시.
문득, 박우찬은 깨달을 수 있었다.
어떠한 이론도 근거도 없는, 막연하기 짝이 없는 깨달음이 벽력처럼 자신을 스치고 지나갔던 탓이다.
'과연.'
이게,규격 외 등급인가.
짧은 너털웃음과 함께, 망연하니 추락하고 있던 박우찬을 향해 거룡의 꼬리가 작렬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