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1화 〉 의식을 파괴하는 방법
* * *
대검이 회전한다.
호선을 그리며 풍차마냥 궤적을 덧그리는 강철.
거기에 닿을 때마다 구울들은 비명을 지를 틈새 한 번 없이 갈가리 도륙난다.
내 근력. 거기에 회전에 따른 원심력.
이 순간, 내 참격은 단순한 공격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절삭기에 가까웠다.
물론 그러는 사이에도 놈들은 별달리 개의치 않고 대검의 간격 안으로 거리를 좁혔다.
걷어차거나 두들겨 패는 데에도 한계는 있다.
것보다, 패고 싶지도 않다.
그런 근본적인 문제 때문에, 대검이 돌아갈 때마다 놈들은 꾸준히 내 몸에 손톱을 박으려 들었다.
머리가 날아간다. 그런데도 손톱을 꽂는다.
팔이 박살난다. 그런데도 손톱을 휘두른다.
다리가 뭉개진다. 그런데도 손톱을 펼친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라고 해도 무적은 아니다.
오히려 육체 강화 능력자라 해도 방심한 상황에선 E랭크 몬스터에게 목을 내줄 수 있는 게 바로 이 업계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여태까지 견딜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방어구 때문이었다.
코트보다는 덜하지만, 내가 평소 입고 다니는 정장 또한 어지간한 절품.
심지어 주변의 마력을 흡수해 자동으로 수복되는 기능까지 갖추고 있다.
물론 평소에는 클리닝을 맡기지 않아도 된다는 점 외에는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능력.
그러나 억지로 마력을 때려 박을 수만 있다면 이 정장은 파손된 부위도 순식간에 복원하는 것이 가능했다.
말하자면 마력으로 이루어진 형상 기억 소재인 셈이다.
거기에 자체적인 내구도도 있다.
어지간히 넋을 빼놓은 게 아니라면 B+랭크 몬스터의 공격은 흘릴 수 있을 정도고.
하물며 내 감각이 더해진다면 매 순간 즉석에서 공격을 반응할 수도 있겠지.
문제는.
"염병!"
욕지거리와 함께 거리를 벌린다.
그런 나를 향해 다시금 달려드는 구울 무리들.
나도 모르게 진절머리를 치고 말았다.
……그래.
당연한 이야기지만, 감각 신경에도 한계는 있다.
애초에 내 감각은 형편 좋은 보조 마법 따위도 아니고.
몬스터를 만나면 발작한다는 성질을 어떻게든 왜곡해 전투에 응용하고 있을 뿐.
끝없이 몰려드는 몬스터와 맞서다 보면 당연히 한계가 찾아온다.
한계라고 해도 엄청나게 거창한 건 아니고, 단순히 머리가 아픈 정도지만.
"좀 뒈져라, 새끼들아!"
내가 짜증을 내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이미 단순한 두통을 넘어 머리를 쪼갤 듯 내달리기 시작하는 감각.
누군가 신경을 붙들고 톱날로 문대는 듯한 기분에 언성이 절로 높아졌다.
섬세한 컨트롤로 공격을 흘려 받는다던가, 적절하게 마력을 분배해 방어한다던가.
'그러기도 한두번이지!'
심지어 여기 있는 놈들은 전원 B+랭크.
몬스터 전체로 보면 중상위지만, 내게는 삘이 오질 않는다.
한 마디로, 어중간했다.
만약 여기 있는 놈들이 전원 E랭크 수준이었다면 애초에 신경을 긁을 일도 없었겠지.
반대로, 놈들 전원을 일격에 보내버릴 수 있는 S랭크 몬스터였더라면 차라리 나았을 거다.
그렇지만.
어중간하게 숫자만 많은 불사 계통 몬스터.
거기에 손톱에는 독까지 있다.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전원 몰살하는 게 불가능하다곤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지금 당장에라도 시그니처를 꺼내들면 상황을 해결할 수 있겠지.
문제는 오히려 거기에 있다.
즉, 내게 작금의 상황을 해결할 수단이 있다는 점.
아무리 속내를 달래려 해도 점점 그냥 시그니처를 써버리자는 생각 쪽이 더 강해진다.
이후 놈들이 무슨 안배를 하고 있는 줄도 모르는 상황에.
여기에는 구울들의 전법 변화도 한 몫했다.
짐승은 결국 짐승.
그렇게 생각했지만, 고등 전술이야 둘째치더라도 울프팩 정도는 시도할 수 있단 뜻이겠지.
팔을 내주고 다리를 내준다.
물론 내게는 일격 신앙에 의한 방어를 관통할 수단도 갖추어져 있다.
허나, 그 찰나 사이 놈들은 손톱을 꽂고 내 다리를 붙잡으려 든다.
설마 놈들이 손톱 한 번 꽂아서 날 죽여버릴 수 있을 거라는 착각에 빠진 게 아니라면…….
'발목을 잡을 셈이군.'
독을 주입해 해독을 강제한다.
몸을 붙잡아 시간을 지연시킨다.
거기에 놈들을 죽여도 죽여도 감각이 가라앉질 않는다는 점.
즉, 끊임없이 몰려드는 몬스터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누가 짠 건지는 몰라도, 나를 상대하기 위해서라면 참으로 효율적인 전법이라 할 수 있었다.
시그니처를 남발할 수 없는 상황으로 몰아넣어, 다수의 몬스터로 발을 묶는다.
사냥꾼다운 싸움법을 자처하고 있는 만큼, 나는 시그니처를 제외한 부분에서 다수를 상대하기 벅차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애초에 그러니까 시그니처를 다수도 상대할 수 있는 방향으로 다듬은 거고.
소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지만, 그 틈새를 노린 거라면 칭찬할 만도 했다.
방어전이었다면 함정이라도 준비할 수 있다.
공략전이었다면 분석할 수라도 있지.
단순한 물량, 지겹기만 한 반복 작업이라.
슬슬 짜증이 났다.
물론 귀찮은 상황이라는 건 틀림없는 이야기다.
때문에.
놈들이 전법을 바꿨다면, 나도 전법을 바꾼다.
"키에엑?"
다시 한 번 달려들던 구울 중 한 마리가 흰소리를 낸다.
방금 전과 달리, 부드럽게 구울의 목을 움켜쥐는 칼끝.
그대로 머리통을 동강내는 대신, 밀어내듯 구울을 휘두른다.
장외 홈런.
부우웅!!
휘두른 구울이 붕 하고 날아가며 멀뚱멀뚱 서 있던 녀석들과 부딪혀 나동그라진다.
야구라기보단 볼링에 가까운 모양새였다.
진영에 한 번 파도를 일으켰다면, 그걸로 충분.
파도의 틈새로 파고들어 억지로 열어젖힌다.
대검의 보조 손잡이를 쥔 채, 방패처럼 앞세워 억지로 밀어붙인다.
방금 전, 날아든 구울에 맞아 비척이던 놈들로서는 당연히 견디지 못하고 쓰러진다.
물론 거기에도 한계가 있다.
압착이라도 당한 듯 턱 하고 구울들의 육체로 이루어진 압력의 벽이 대검 너머에서 나타난 순간.
나는 그대로 대검을 밟으며 도약했다.
"뒈져!!"
동시에, 도약할 당시 풀어잡은 쇠사슬을 당겨 대검을 회수.
창고에서 꺼낸 기름통을 다시금 바닥으로 흩뿌린다.
'소재는 기름. 재료로 원소와 마력을 지불!'
거기에 추가로 싸구려 마력석을 투하.
다시 한 번 행사한 즉석 연금술이, 결과를 빚는다.
즉.
거선조차 순식간에 불태울 수 있다 일컬어지는 '그리스의 불'.
그 재현이다.
콰아아아앙!!
현대의 연금술사들이 추가 배합한 성분 덕분일까.
본디 불을 뿜는다 일컬어진 중세식 화염방사기는 상상 이상의 화력을 지닌 폭발물이 되었다.
"니기미!"
이래서 안 쓰려고 했던 건데.
좁은 데에 모인 무리를 일소하기엔 좋지만, 여기는 지하.
도저히 폭발물을 사용할 수 있을 만한 장소가 아니다.
텅, 텅, 텅텅텅!!
상공으로 몸을 날렸음에도 불구하고, 작렬한 폭발이 나까지 덮쳤다.
그대로 낙법 한 번 취하지 못하고 바닥을 구르길 잠시.
몸에 남은 폭발의 데미지를 살려 순식간에 일어선다.
동시에, 너덜너덜한 정장 위로 툭툭 먼지를 쳤다.
폭발의 여파에 휘말린 탓일까?
정장 위로 남아있던 불티가 사그라드는 게 눈에 보였다.
물론 여파는 어디까지나 여파.
당장 눈 앞에서 불이 붙어 타죽고 있는 구울들에 비하면 훨씬 나은 형편이었다.
"……후!"
후들거리는 다리에 억지로 힘을 넣어 몸을 일으켰다.
놈들의 손톱에 당해 찢어진 정장.
직격은 피한 덕택에 독 기운이 돌진 않았지만, 충격까지 완전히 죽일 수는 없었다.
거기에 방금 전 폭발까지.
정장을 재생하느라 소비한 마력.
여태까지 연금술을 사용하느라 허비한 마력.
'몸은 움직이지만 반응이 둔하고, 마력은 잘 쳐줘도 3할 이하인가.'
참으로 거지같은 상황이었다.
포션을 쓰기에도 지금은 마땅치 않다.
현재 용맥은 놈들이 점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
지금 이 부상을 회복하기 위해 포션을 사용했다간 마력이 텅 비어버릴지도 모른다.
대신, 효과는 확실했다.
밀집된 장소에서 터트린 폭발.
추가로, 마법이 작용해 잘 꺼지지도 않는 불꽃.
내가 직전에 썰어댄 놈들까지 포함하면 남은 상위 구울은 대략 1할 이하.
통상 구울까지 포함해도 얼추 4할 남짓일 것이다.
그리고 남은 구울들은 외부에서의 개입을 차단하기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상황.
즉, 눈 앞에 남은 놈들만 처리하면 슬슬 끝을 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적성에 안 맞는 짓은 하는 게 아니야."
평범한 사냥.
혹은, 이 쪽이 건물을 점거한 상황에서 영역전.
나아가서는 강력한 단일 개체에 대한 공략전.
내 특기는 역시 그런 쪽이었다.
씨발, 막말로 차라리 던전 공략이 낫지.
당장 확인한 숫자만 500.
스펙을 고려하면 천 마리 가까운 숫자를 하나하나 베어넘긴 셈인데.
"이런 일은 슈퍼 히어로한테 맡기라고……."
젠장, 아무래도 내가 지금 힘들긴 힘든 모양이다.
계속해서 혼잣말이 나오는 걸 보면 더더욱.
자체적인 진단과 함께, 피식 하고 헛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니, 그럼 힘들지 안 힘들겠나.
하숙집 방위전 당시만 해도 부상만 없었을 뿐 마법은 몇 번이나 썼어야 했고.
거기에 지금도 지금이지만, 애초에 오늘은 잠도 못 잤단 말이다.
'하여튼 티아마트 그 년도 참 오라질 년이란 말이지.'
내심 그렇게 투덜거리며, 운 좋게 불이 붙지 않은 구울들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더 이상 자신들과 함께 할 동포들이 없다는 사실을 눈치챈 덕분일까.
놈들은 그대로 뒤를 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망설임 없는 후퇴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추레했다.
뭐, 마침 지하 쪽이기도 하고.
발끝에 힘을 주어, 앞으로 쇄도한다.
자, 저 놈들만 죽이면 이제 의식장이다──.
'……응?'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일까?
문득 눈에 비치는 세상 전부가 느릿하게 보였다.
폭음을 터트리며 녀석들을 향해 쇄도하는 나.
그대로 문짝을 부수며 지하로 구르듯 내려가는 구울들.
동시에, 놈들이 문을 부수는 순간 그 배후를 점한 나.
휘두른 대검.
뎅겅 하고 하늘을 나는 구울들의 모가지…….
그 너머.
게이트 앞.
얼마 전까지만 해도 출입 금지 테이프가 붙어 있던 아카데미 지하 게이트를 둘러싼 마법진.
나로서는 도대체 뭐가 뭔지 알 수도 없는 문자로 그려진 마법진 한 가운데에, 문득 시선이 닿았다.
익숙한 금발.
거기에, 익숙한 교복.
"응?"
어라, 예은이가 왜 여기에?
한 순간, 나도 모르게 의식 사이로 공백이 생겼다.
그리고.
그 틈을 파고들었다고 해야 할지, 그렇지 않으면 뒷걸음치다 쥐 잡은 격이라고 해야 할지.
그런 내 목덜미를 향해, 방금 전까지만 해도 지하 너머에 몸을 숨기고 있던 구울들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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