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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60화 (160/371)

〈 160화 〉 의식을 파괴하는 방법

* * *

거두절미하고 말하자면, 아카데미에 잠입하는 건 나름 손쉬운 일이었다.

현재 아카데미를 뒤덮고 있는 결계의 성능 때문이다.

시야 차단.

결계라 불리는 물건이 으레 그렇듯이, 아카데미 교사를 감싼 결계 또한 마찬가지였다.

내부와 외부를 차단하고, 외부에서의 간섭이 내부에 미치지 못하도록 한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뿐이었다.

물리적인 침입 차단.

난입자에 대한 요격 기능.

혹은, 외부인을 헤매게 하는 진법 등.

아카데미를 둘러싼 결계에 그런 기능은 존재하지 않았다.

……녀석들 또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반복하고 있다는 거겠지.

현재 인공 게이트 발생 기술은 어디까지나 전적으로 평소운 박사의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허면?

예를 들어, 아카데미에 펼쳐진 결계를 본 협회 소속 헌터들이 과연 무슨 생각을 할까?

누군가 하늘에 인공적인 게이트를 띄우고 그 사이 아카데미를 점거해 무시무시한 계획을 꾸리고 있구나!

아니.

현실은 다르다.

인공 게이트 발생 기술은 아직까지도 상용화되지 않았다.

협회 내에서도 당시 비밀 연구동을 습격하는 데에 협력했던 헌터들 일부 사이에서나 도는 소문이겠지.

때문에.

만약 결계를 목격한 헌터가 있다 해도 가장 먼저 이렇게 생각할 테지.

누군가 아카데미 안에서 결계를 발동했구나!

어쩌면 구울들의 시선을 피하기 위해 그런 모양이라고 멋대로 살을 붙일지도 모르고.

게이트란 천재지변.

두 번의 대침공을 겪은 지금 이 시대에 있어, 사람들은 은연중에 그리 생각하고 있다.

갑자기 발생한 게이트. 돌연히 나타나 아카데미를 점거한 시야 차단의 결계.

사정을 아는 사람에겐 의심스럽기 그지없는 두 요인도, 이 시대의 상식을 기반으로 판단하면 그렇게 된다.

누군가 솜씨 좋은 마법사가 아슬아슬하게 타이밍을 맞춰 결계를 발동했다.

너무나도 절묘한 타이밍이다, 수상쩍다…….

그런 생각 따위는 할 수도 없고 하지도 않는다.

멋대로 열린 게이트를 관리하는 데에만 해도 꾸준히 피해가 나오는 판국인데.

임의로 게이트를 열 수 있다는 건, 대다수 사람들에게 있어선 그저 맹점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놈들 또한 게이트에 별다른 기능을 추가하진 않은 거겠지.

만약 요격 기능 따위를 설치했다가 누군가 신고하기라도 한다면?

현재 아카데미를 사실상 방치하고 있는 헌터 협회라 해도 손을 뻗을 수밖에 없다.

게이트나 음모론 운운하는 이야기와 별도로 말이지.

말하자면, 작금의 상황은 놈들로서도 한계.

협회의 공연한 의심을 사지도 않고, 아카데미를 장악할 수 있는 아슬아슬한 밸런스다.

물론 그건 어디까지나 결계 자체에 한한 이야기.

실제로는 결계 내부를 빼곡하게 점거한 구울들 탓에 발을 들이기도 쉽지 않다.

반대로 말하자면, 딱 거기까지.

어느 정도 타협한 결계의 성능.

애시당초 감시보다는 유인에 특화된 구울 종족.

눈에 띄게 어렵다, 불가능하다고 말할 정도는 또 아니었다.

적어도 내게는.

육체파도 아니고, 능력 위주로 전술을 짤 수도 없다.

그런 내게 있어, 사냥꾼으로서의 기술은 구명삭이나 다름없었으니까.

은신이나 잠행 또한 그 일환이다.

구울들이 한눈파는 틈을 타 담을 넘어 잠입.

이후 상황을 파악하기까진 실제로도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놀란 건, 당장 아카데미 안에 도사리고 있는 구울들의 수와 질이었다.

마력을 기준으로 살필 때, 숫자는 가히 500 이상.

개중에서도 상위종이 대략 100체 가까운가.

'어지간히도 긁어모았군.'

어쩌면 이번 게이트에서 나온 놈들에 더해 처음부터 조직 쪽에 협력하고 있던 구울들이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고서야 설명할 수 없는 숫자고.

뭐, 나로서는 아무래도 좋을 일이다.

협력을 구하는 건 힘들다.

헌터 협회. 도시 내에 출몰하고 있는 구울들을 상대하는 데에만 해도 힘이 부칠 지경이고.

티아마트. 이미 헌터 협회와 합류했다.

서아와 하연이. 하숙집을 지킬 필요도 있거니와, 하연이는 아예 놈들의 주된 목적이기도 하다.

지희와 윤하. 티아마트의 보고에 의하면, 전자는 혼인회와 후자는 협회와 협력하고 있는 상황.

이준구나 최승준에 이르면 더 이상 도시의 피해를 확산시키지 않기 위해 두 팔을 걷어붙이고 있겠지.

즉, 당장 여기서 움직일 수 있는 건 나 뿐이라는 소리다.

'익숙해.'

뭐, 이제 와서지.

나는 본래부터 솔로 헌터 출신이다.

구태여 협력할 인원을 찾아 헤맬 필요는 없다.

그리 생각하며 나는 손을 뻗어 아직까지 벌겋게 눈을 뜨고 있는 경비들의 눈을 감겨주었다.

경비실이었다.

만약 놈들이 아카데미를 점거했다면 가장 먼저 확인해야 할 건 경비실 쪽.

그렇게 생각했던 탓이다.

여하간, 현재 아카데미 경비를 맡고 있는 건 일찍이 놈들의 수하였던 혼인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 참."

어쩌면 혼인회가 배신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으로 방문한 경비실은, 주변에 피보라가 한창이었다.

혼혈들의 시체.

드문드문 그 사이에 섞인 구울들의 시체.

어느 쪽이든, 여기서 격렬한 싸움이 벌어졌음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었다.

혼혈들의 시체는 셋.

아카데미 경비실의 스케줄을 생각해 보면 사실상 당직을 서던 경비 전원이 싸우다 죽음을 맞은 셈이었다.

……처음부터 배신한 혼인회를 용서하거나 회유할 생각은 없었던 건지, 그렇지 않으면 혼인회 측에서 거절한 건지.

아니면 이번에도 배신할 경우 정말로 뒤가 없다 생각했던 건지.

어느 쪽이든, 괜한 생각을 품었던 이 쪽이 다 민망할 지경이었다.

놈들을 몰살시켜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나.

생각을 정리하며 다시금 장갑을 낀다.

허면, 목표를 정하자.

당면한 목적은 일단 아카데미에서 벌어지고 있는 묘한 의식의 파괴.

다음으로는 구울들의 몰살이다.

그렇다면.

놈들이 의식을 벌이고 있는 장소는 어디일까.

마력 감응 능력을 통해 살핀 결과, 전력이 가장 두텁게 배치된 장소는 역시 옥상이었다.

'옥상이라.'

있을 수 없는 선택지는 아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녀석들이 벌인 수작을 고려할 때, 과연 현명한 대처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나는 가장 먼저 옥상이 아닌 지하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놈들에게 휘둘리는 듯한 지금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런 애같은 이유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태까지 놈들이 벌인 수작을 고려해 보자.

내가 없는 사이 게이트를 열어 도심에 구울들을 풀었다.

하연이를 노린다는 선입견을 이용해 하숙집을 탈환하도록 유도.

그 뒤로는 구울들의 상위종을 모아 아카데미를 점거했다.

결계의 능력을 적절하게 조정해 협회의 눈길을 벗어났고, 지금은 목적을 달성하기 직전.

만약 티아마트가 없었다면 애시당초 나 또한 아카데미를 염두에 두지는 않았을 테지.

허면?

놈들은 정녕 결계 하나만 믿고 옥상에 모든 전력을 배치한 걸까?

나로서는 그렇게 생각하기 힘들었다.

이번 사태에서 놈들이 선보인 모습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정면 대결 회피다.

나와 티아마트가 없는 틈을 타 게이트를 열었다.

협회와 부딪힐 걸 염려해 적절한 수준으로 결계의 성능을 낮추었다.

하연이를 노릴 거라는 인식을 역으로 이용해, 나를 하숙집에 매달리게 했다.

반대로 말하자면, 나와 티아마트가 있는 상황을 피해 문을 열었다.

협회와 충돌하지 않도록 세심한 준비를 곁들였고, 내게도 주력을 내보내진 않았다.

그런데, 마지막의 마지막에 와서 힘으로 버틸 생각이라고?

나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 없었다.

물론 현실적인 이유 또한 있었다.

예로부터 마법 의식엔 마력의 흐름이 잔잔한 장소가 필요한 법.

수많은 서브컬처에서 마법사들이 하나같이 맞춘 듯 두터운 로브를 걸치고 있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마법사들이 공유하는 공통된 취향 따위가 아니라, 지하실 따위에서 의식을 벌이느라 그럴 수밖에 없었던 셈이다.

하물며, 탁 트인 옥상에서 마법 의식을 거행한다니.

실패하라고 곡을 해도 그 정도는 아닐 거다.

즉.

당장에 의심할 수 있는 건, 역으로 지하.

개중에서도 용맥이 가장 밀집된 장소인 지하 게이트다.

그리고.

"반갑다, 얘들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방금 전 추측이 옳았음을 확신할 수 있었다.

정문 앞에서 마주쳤던 구울들 때문에 내가 오고 있단 사실 정도는 어영부영 들었겠지.

그렇지만 놈들은 마지막까지 나를 직접 요격하는 대신 옥상으로 유도하는 쪽을 택했다.

그 결과가 눈 앞에 있었다.

촤아악!!

선수를 취한 내 일격에, 상위종 두 마리의 모가지가 하늘을 날았다.

동시에, 위층으로부터 허겁지겁 내려오는 발소리.

정말로 옥상에서 의식을 벌이고 있다면 굳이 지하로 향한 나를 막으려 들 필요는 없다.

반사적으로 아군을 호출한 구울들의 행동 덕분에 한층 더 확신을 품을 수 있었다.

뭐, 여기까지 연기라면 과연 나라 해도 어쩔 수 없겠지만…….

엄격하게 훈련받은 군대도 아니고, 고작해야 짐승들의 무리.

그 정도로 철저하다고는 역시 생각할 수 없었다.

"어이쿠."

도리어 놀란 건 놈들의 대응 쪽이다.

피피핑!!

지하로 향하는 복도.

그 그늘에 몸을 숨긴 채, 내 쪽을 향해 마법을 난사하는 구울들.

놈들로서는 난생 처음 보는 지형일 텐데, 나름 훌륭하게 이용하고 있는 모습들이 눈에 밟혔다.

'아카데미 내부 지도를 입수한 건가?'

어떻게?

당장엔 짐작이 가질 않았다.

물론 지금은 별로 문제 될 일도 아니었다.

한 손으로 쥔 코트를 망토처럼 휘두른다.

그러자 코트에 각인된 항마의 주술이 날아드는 마력광을 흩어놓았다.

"궤엑?!"

당황한 듯한 기성이 퍼진다.

아니, 그렇게 놀라지 마라.

애초에 구울들이 마력을 사용해 공격한다는 이야기 따위도 없고.

급조한 공격 수단 따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

그 뒤로 이어진 습격 또한 마찬가지였다.

마력에 의한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 눈치챈 구울들이 복도를 채울 듯 밀려들었다.

앞에는 지하로 가는 길을 지키는 구울들. 뒤로는 위층에서 몰려든 구울들.

끈질기게 복도를 메꾸는 모습이 썩 보기 역겨웠다.

무작정 복도를 들이쳐도 결국 싸울 수 있는 건 얼마 안 될 텐데.

뭐, 구울 측에서 인간들의 전술 전략에 눈을 뜬 개체가 없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나로서는 오히려 반길 일이었다.

북적이는 전방을 향해, 나는 몸을 날렸다.

동시에.

"퀴아악?!"

선두에 서 있던 놈들로부터 괴성이 나왔다.

방금 전까지 내가 손에 들고 있던 코트를 던진 탓이었다.

물론 그 정도 속임수엔 구울들도 당황하지 않는다.

평소라면 별다른 문제 없이 손톱을 휘둘러 코트를 찢었겠지.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코트를 찢어발길 생각으로 휘두른 손톱이, 오히려 옷자락에 얽힌다.

구울들의 맹공에도 불구하고, 코트는 별다른 지장 없이 날아가 놈들의 안면을 덮어 시야를 차단했다.

그럴 수밖에.

저 코트를 구성하고 있는 건 현철 등을 비롯한 세계 각지 전설 속 광물들.

바야흐로 아틀란티스의 산물마저 섞인, 내 방어구들 중에서도 가장 비싼 물건이다.

고작해야 B+랭크 몬스터가 찢어발갤 수 있다 생각해도 곤란하단 말이지.

"캬아아아악!"

한 순간 일어난 혼란.

다만, 상대는 구울 중에서도 상위종이다.

무리 속에서 일어난 소요를 진정시키는 데에 걸린 시간은 실로 찰나에 불과했다.

물론 내게는 그 정도로도 충분했지만.

발작하듯 휘두른 발톱이 허공을 가른다.

고작해야 눈 먼 발톱에 맞을 정도로 어리석지도 않거니와…….

"흡!!"

애초에 정면으로 달려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복도를 박차며 질주하는 대신, 수직으로 벽을 내달린다.

동시에, 다시금 양 손으로 대검을 파지.

도약과 동시에 전신으로 검을 휘두른다.

좁은 복도는 대검을 휘두르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다.

그렇지만.

반대로, 내가 배운 대검술에는 이런 식으로 공간을 차출하는 방법 또한 적혀 있었다.

아니, 나도 얼마 전 배운 거지만.

공중으로 몸을 날린 채, 양 옆의 좁은 복도 대신 천장과 바닥을 두고 회전한다.

조악한 공포 영화에서 나오는 회전 톱날.

비유하자면 그랬다.

나 자신이 호러 영화의 도구가 된 듯한 기분과 함께, 지상으로 회전을 응축한 칼날이 작렬한다.

쩌어어어억!!

생물의 몸을 가른다기보단, 곧바로 바닥을 베어 가른 듯한 소음이 울려퍼졌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방금 전 휘두른 칼끝에 걸린 구울들은 자그마한 저항 하나 없이 그대로 두동강나고 말았으니까.

동시에.

바닥에 칼끝이 박힌 나를 향해 구울들이 발톱을 휘두른다.

멍청한 놈들이었다.

대검이 꽂힌 반동을 살려, 등 근육에 힘을 넣는다.

이후, 발도.

바닥을 검집으로 삼아, 남은 반동과 함께 검을 내려찍는다.

쿠우웅!!

내 앞에 서 있던 구울이 그 예기에 베여 좌우로 쩍 쪼개진다.

마치 내려베기라도 한 듯한 동작과 함께, 착지.

스스로의 근력을 이기지 못하고 온 몸이 저릿저릿하게 울린다.

그렇지만.

힘껏 내려친 덕분에 주변에 있던 구울들도 거리를 벌린 지금.

다행스럽게도 반동을 수습할 틈은 있었다.

그리고.

회전이 시작된 대검은, 고작해야 맨몸뚱이론 막을 수 없다.

통, 가벼운 소리와 함께 발끝이 대검을 찬다.

동시에 전방의 구울들을 향해 등을 보인다.

물론 죽어주겠다는 건 아니고.

오히려 반대.

내가 전방을 향해 달려든 즉시 후방에서 돌진한 구울들.

그 숫자를 가늠하며 대검을 휘두른다.

전신을 사용한 횡베기.

아슬아슬하게 회전을 시작한 내 옆으로, 구울들의 피륙이 튄다.

지금 내게 주어진 첫 번째 목적은 아카데미에서 일어나고 있는 마법 의식의 파괴.

다음으로는 구울들의 몰살이다.

그리고 지금 내게 있어, 두 목적은 다르지 않았다.

구울들은 전부 죽이고, 의식은 파괴한다.

의식을 파괴하기 위해선 가로막는 구울들을 전부 죽일 필요가 있다.

즉.

"너흰 다 뒈졌어, 새끼들아."

구울들을 죽이고 의식장으로 내려갈 필요는 없다.

의식장으로 내려가면서, 구울들을 죽인다.

구동하는 대검과 함께, 나는 다시 한 번 구울들 사이에 구멍을 뚫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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