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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59화 (159/371)

〈 159화 〉 평소운이 남긴 유산

* * *

"니기미."

짤막한 욕지거리와 함께, 나는 아침을 달리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독한 위화감.

그리고 위화감과 함께 시작된 의심.

때문에, 나로서는 지금 이 상황 자체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놈들은 하연이를 노리고 있는 게 아니야.'

나로서는 그리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일단 하연이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 탈환당했다거나, 바꿔치기당했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다.

서아의 능력은 천리안.

아무리 그래도 천리안을 피해 술수를 부린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이야기니까.

하물며 서아 또한 이젠 어느 정도 사정을 알고 있었다.

신세계 질서Novus Ordo Seclorum.

놈들이 가장 먼저 노릴 대상은 어디까지나 하연이 쪽.

당연히 서아도 그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던 만큼, 하연이의 안위에는 노골적으로 신경을 썼기 때문이다.

게다가 서아네 어머님까지 곁에 있었고.

덕분에 하연이의 안전은 확신할 수 있었다.

"박우찬 게 있느냐?!"

그리고.

티아마트가 나타난 건 바로 그 때였다.

"어씨, 뭐야?! 언제 왔어요?!"

"방금!"

"아니, 뭐지? 그렇게 정신 놓고 있진 않았는데……."

물론 서아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저 녀석, 여기에 직접 분신을 투사했으니까.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텔레포트처럼 보이지 않을까?

"나 지금 바빠!"

"안 그래도 그 쪽 얘기를 가져왔느니라!"

"뭬야?!"

그렇기에.

지금 나는 아카데미를 향해 달리고 있었다.

하숙집에는 하연이에 서아, 추가로 티아마트의 분신까지 남겨둔 채로.

……구울들에 대한 정보는 대략적으로 공유했다.

이후 티아마트를 경유해 협회 쪽도 구울에 대한 정보를 취득할 수 있겠지.

그럼 도시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소요도 어느 정도 잦아들 거다.

허면.

'문제는 역시 이 쪽인가.'

티아마트가 알린 정보는 심상치 않았다.

무언가 있다면 저기다.

십중팔구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첫째, 게이트가 열린 건 역시 새벽녘이었다.

그러나.

마력 감지 기구를 갖추고 있는 협회에서도 게이트 발생 전조를 눈치채지는 못했다.

물론 게이트라는 게 응당 그런 법이다만, 아무리 그래도 이건 심하다 할 정도로.

말 그대로, 게이트가 열릴 만한 마력이 순식간에 밀집하더니 저런 게이트가 열렸다던가.

둘째, 현재 열린 게이트에서 우후죽순 솟아오르고 있는 건 대개 구울이다.

이 쪽은 나 또한 확인했으니 패스.

마지막으로 셋째, 그러는 와중에도 유달리 이상한 마력 운용을 보이는 장소가 있다.

그게 바로 지금 내가 향하고 있는 장소.

아카데미였다.

거기까지 결합되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난 건지 나 또한 능히 재구성할 수 있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걸 눈치챈 신세계 질서.

놈들은 그 틈을 타 평소운과 별개로 지어진 비밀 연구소를 가동했다.

거기에 평소운 박사의 시스템을 더해 인공 게이트를 발생.

난잡한 게이트 다수를 발생시키는 대신, 하나의 게이트를 형성했다.

그 결과 나타난 게 바로 지금 저 게이트.

도시 상공에서 지상을 굽어보고 있는 거대한 구멍이다.

저기서부터 쏟아지기 시작한 구울들.

당연한 이야기지만, 협회의 반응을 고려해도 시선을 끌기엔 충분했을 거다.

아니, 시선을 끈다 뿐이랴.

이만한 다수가 상대라면 결국 이 쪽도 다수로 맞부딪힐 수밖에 없다.

단순한 패싸움이라면 고랭크 헌터 한 명이 다수를 담당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시가전.

수많은 민가와 사람들이 섞인 도심지 내에서, 고랭크 헌터의 화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는 없다.

당연히 단박에 구울들을 쓸어버릴 수단도 마뜩치 않고.

거기에, 일격 신앙에 의한 방어 능력까지.

당장엔 구울들에게 대처하기도 손이 버거울 지경이겠지.

군 쪽도 마찬가지다.

이런 시가전에서 도움이 되는 건 군 쪽이다만, 공교롭게도 지금은 달랐다.

군이 몬스터를 상대하는 방법을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결국 화력이다.

그리고 이런 시가전에서 구울이 가진 방어 능력은 군에게 있어선 절대적인 절망으로 다가온다.

총알 한 대 맞고 나머지 분량만큼 회복하는 몬스터?

이런 놈을 군이 어떻게 상대해?

권총으로 헤드샷?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다.

때문에, 시간 끌기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효과적으로 구울 부대는 도심지를 압박하고 있었다.

당연히 아카데미 측에도 시선이 쏠리지 않을 수밖에 없다.

티아마트 가라사대, 지금도 아카데미는 이상할 정도로 잠잠하다.

그래, 이상할 정도로.

그걸 의아하게 여긴 티아마트가 아카데미 측에 마력 측정 기구를 집중하기도 잠시.

그제서야 협회는 아카데미 위에 덮인 결계의 존재를 확인했다.

물론 확인만 했을 뿐, 손을 댈 수는 없었다.

아니, 그야 그렇겠지.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사건이 발생한 건 대략 새벽 6시 가량.

당직 서고 있는 혼인회 경비원을 제외하면 누구 하나 없을 시기다.

누군가 이 틈을 타 아카데미에서 무언가를 하려 했을지도 모른다?

말이야 쉽지, 결국 증거 하나 없는 음모론이다.

당장 눈 앞에서 죽어나는 사람들이 있고, 거기에 응하기도 바쁜 지금.

남는 손을 아카데미 측에 돌린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관료 조직으로서는 당연한 판단이다.

그리고 놈들 또한 거기를 노렸겠지.

우리가 없는 틈을 타 도시에 게이트를 연 놈들이, 아카데미에서 수작을 부리고 있다.

거기까지 판단한 나는, 그대로 아카데미를 향해 몸을 날렸다.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건지, 무슨 계획이 있는 건지.

거기까지는 역시 모르겠다.

다만.

지금 놈들을 내버려두어서는 아니 된다.

조직인 협회가 할 수 없는 일이라면, 개인인 나는 할 수 있다.

그렇게 판단한 덕분이었다.

그리고.

"이런 예감은 꼭 틀리질 않아."

역시나라고 해야 할까.

아카데미로 향하는 나를 가로막는 구울들의 기세가 범상치 않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카데미 근처는 여전히 조용했다.

단지.

결계 너머.

밖에서 보기엔 멀쩡하기 그지없는 아카데미 안쪽에서, 구울들의 몸이 스르륵 하고 나타나는 게 보였다.

결계 안쪽에서 바깥으로 나오고 있는 거겠지.

방금 전, 하숙집 방어전에서도 볼 수 없었던 구울 상위종이 2체.

아니, 사실은 3체다.

앞에서 달려드는 둘.

그리고 그 모습을 보고 겁에 질린 척 풀썩 쓰러지는 연기까지 완벽한, 인간으로 변장한 년이 추가로 하나.

"도, 도와주세요!!"

"뒈져!!"

"크아아아악!!"

물론 서아와 다르게 나는 그런 술수에 속아넘어가지 않았다.

발을 확인하고 말고 이전에, 마력부터 뭔가 낌새가 나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려친 내 검을 피해 구르듯 넘어진 구울.

덕분에 내 칼 또한 구울의 팔 한 쪽을 앗아갔을 뿐, 제대로 된 결과를 내지는 못했다.

그런 공격에 잠시 황망한 표정을 짓던 구울이, 곧 의기양양한 얼굴로 외쳤다.

"어떻게, 눈치챘는진 모르겠지만. 이걸로, 끝이다……!!"

"신은 위대하시다 !!"

"갸아아아악!!"

물론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지금은 검이나 마법을 하나하나 연습하고 있을 시간 따위는 없었으니까.

일격 신앙에 의한 방어 능력.

이를 타도하는 방법엔 대충 세 가지가 있다.

하나는 정말로 일격에 쳐죽여버리는 것.

두 번째는 다른 무기를 꺼내들어 베는 것.

마지막으로 세 번째는 알라의 이름을 외치며 다시 패는 것이다.

알라의 이름과 함께 휘두른 검에는 일격 신앙에 의한 방어가 작용하지 않는다.

결국, 의기양양하게 달려들었던 상위 구울은 그대로 두쪽이 나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색하게 놀리던 성대 채로 두동강나는 구울.

그 모습을 본 구울들이 정색하더니, 곧이어 결계 저편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씨발, 거기 안 서?!"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말로 서지는 않았다.

나 또한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여기서 축지를 쓰며 난입했다가 구울의 왕에게 기습당하는 건 내키는 일도 아니고.

그렇기에, 나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주변을 확인하며 다시금 달음박질치기 시작했다.

……도대체 놈들이 무슨 계획을 꾸미고 있는 건진 여전히 모르겠다.

단지.

한 가지 짐작은 갔다.

놈들은 하연이를 노리지 않았다.

그렇지만, 아카데미는 점거했다.

그게 과연 무슨 뜻일까.

나는 알고 있었다.

용맥.

그리고 용맥이 지나치는 도시에도, 용맥의 중심이라 불릴 만한 장소는 있다.

배산임수 등에 따르면, 말 그대로 그 지역의 기가 한 장소로 밀집되는 장소.

해당 지역의 마력적인 핵심이다.

그리고.

게이트는 밀집된 마력이 폭발하며 발생하는 현상.

즉.

'아카데미는 이 신도시의 마법적인 중심이다.'

이번 사태 이전부터 게이트가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당연하지만 이런 마력적인 중심지는 마법사들에게 있어선 아주 중요한 장소다.

점거해 대규모 마법 의식을 벌이는 것으로 자신의 실력 이상의 마법을 행사할 수 있는 장소.

말 그대로, 거대한 마력 덩어리니까.

요컨대, 놈들은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하는 용맥의 중심지를 점거해…….

'뭔진 모르겠지만 대충 의식을 벌이려 한다!!'

과연 협회로서도 이건 예상 외였겠지.

마법을 부릴 줄은 안다지만, 구울이 마법 의식 따위를 주관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테니까.

그러니 아카데미 측에서 손을 뗀 걸테고.

당연한 이야기지.

지금 의식을 주관하고 있는 건 구울이 아니다.

그 뒤에 있는 놈들이다.

그렇기에.

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변변찮은 일이 일어날 거다.

하물며 아카데미는 그런 용맥의 중심 위에 건설된 건물.

나야 잘 모르겠지만, 마법적인 구조가 개입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허면?

'모종의 의식장으로 작동할 수도 있다.'

아카데미가 역으로 놈들의 마법을 보조하게 되는 셈이다.

물론 최승준도 마법적인 방어 정도는 준비했겠지만.

물리적인 잠금도 마법적인 잠금도, 결국 언젠가는 뚫리기 마련.

그것만 믿고 마냥 안심할 수는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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