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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56화 (156/371)

〈 156화 〉 구울 사냥

* * *

다시금 거리를 벌리는 구울들의 무리를 보며, 신서아는 내심 한숨을 돌렸다.

도대체 아침 댓바람부터 이게 뭐 하는 짓인지.

그렇게 투덜거리고 싶었지만, 그러기도 힘들었다.

옆구리에서 욱씬거리는 통증이 올라온 탓이다.

"아, 씁. 개쪽이네 진짜."

방금 전, 달려들던 구울 중 한 마리가 입힌 상처였다.

물론 서아 또한 알고 있었다.

사부인 박우찬이 억지로 때려 넣은 지식 때문이다.

구울은 단순한 좀비 따위가 아니다.

흡혈귀나 늑대인간에 필적하는 다양성을 장기로 삼는 몬스터.

시체 먹는 귀신이다.

그리고 그런 구울 중에서는 간혹 변신 능력을 가지고 있는 녀석들도 있었다.

이번에 서아를 공격한 구울 또한 마찬가지였다.

박우찬이 들었다면 황당하기 그지없을 이야기다.

여하간, 구울의 변장은 어설픈 편이니까.

마법의 힘을 빌려 위장한다 한들 짐승의 발굽만큼은 숨길 수 없는 게 바로 구울의 변신술.

박우찬으로서는 그토록 눈에 띄는 거짓말에 속는다는 걸 도저히 이해할 수 없겠지.

다만, 이번엔 서아로서도 할 말이 있었다.

상황이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건물 하나를 거점으로 삼아, 사방에서 몰려드는 구울들을 요격하던 지금.

신서아로서는 뒷문을 두들기며 구명을 청하던 여인의 다리가 사람 다리인지 염소 다리인지 구분할 겨를이 없었다.

덕분에 꽤나 값비싼 대가를 치렀다.

사부를 따라 구비해두었던 약초를 닥치는 대로 조합한 덕분일까.

다행스럽게도, 활을 쥘 수는 있었다.

문제는 쉴 시간이 없었다는 점이다.

구울의 손톱에 깃든 독 때문에 일어나는 오한.

흔들리는 시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침부터 지금까지 줄곧 끊임없이 몰려드는 구울들.

정신이 바득바득 깎여나가는 듯한 기분이었다.

과연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까.

슬슬 회의적인 기분이 들었다.

물론 당장 눈에 밟힐 만큼 손이 무뎌진 건 아니다.

허나, 이 업계에서 헌터들의 사망 요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건 강력하기 짝이 없는 용의 숨결 따위가 아니다.

방심한 상태에서 소형종의 함정에 빠진다던가, 지형을 활용한 기습에 당한다거나.

간계. 술책.

헌터들의 목숨을 노리는 건 언제나 대책할 수 없는 예상 밖의 일격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 번의 실수가 언제 죽음으로 이어질지 모를 상황.

사선 위에 서 있는 감각이 목덜미 근처까지 다가왔다.

피식, 웃음을 터트린다.

새삼스러운 이야기였다.

대침공 이후, 헌터들은 언제나 사선 위에 서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탄환으로 삼아 몬스터와 격돌하는 자폭병.

그게 헌터들의 실체다.

서아 또한 알고 있었다.

그런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조사와 대책을 주로 삼는 문화가 정착했고, 개중에서도 박우찬은 더한 편이니.

자연스레 서아 또한 그런 사부를 따라 철저한 대응 위주로 능력을 개발했다.

그렇지만.

'싸우다 보면 이런 상황도 오는 법, 인가.'

신서아는 자신이 약하다곤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로 약했다면 A+랭크란 직함은 손에 넣을 수도 없었을 테니까.

다만.

결국 일정한 상황 내에서 특정 몬스터를 반복해 수렵할 뿐.

제 2차 대침공이 종식된 이후, 그렇게 말하던 사부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어렴풋하게 짐작이 갔다.

설마 집 앞에서 죽음을 각오하게 될 줄이야.

자신도 모르게 피식 하는 웃음이 나왔다.

"어이구, 우리 서아 여유 넘치네. 웃기도 하고."

"어?!"

그러나.

아무래도 이번엔 죽음을 각오하길 조금 빨랐던 모양이다.

창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누구 하나 없었던 장소에, 방독면을 쓴 괴한이 덜컥 앉아있었다.

*

다시 한 번 하숙집을 향해 몰려들던 구울들의 머릿속에 의문이 꽃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선봉 부대가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날아들던 마력 화살이 유독 이번엔 조용했던 탓이다.

드디어 독이 퍼진 걸까?

구울들 또한 알고 있었다.

무리의 우두머리 중 한 명이 죽음을 각오하고 문을 지키던 헌터에게 접근해 그 손톱을 꽂아 넣었다는 사실을.

어쩌면 지금이 되어서야 그 효력이 도는 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구울들이 전진한다.

하달 받은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이 자그마한 건물 하나를 점거하고자 여태까지 몇이나 되는 동포들이 죽음을 맞이했던가.

이번에야말로 임무를 완수할 때였다.

문제는, 놈들의 예상과 달리 이번엔 별다른 대비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티딕.

가벼운 소리와 함께, 앞서 나아가던 구울 선봉대가 바닥으로 나동그라졌다.

정확한 표현은 아니었다.

나뒹굴게 된 건 구울 선봉대가 아니라 구울 선봉대의 다리 쪽이었으니까.

"캬아아아악!!"

조밀한 강사.

방금 전까지만 해도 거기에 없었던 와이어가 구울 선봉대의 다리를 도려낸 것이다.

갑작스러운 이변에 소란이 퍼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비록 물러서긴 했지만, 구울들은 바보가 아니다.

어설프다고는 하나, 헌터들을 역으로 속이려 드는 지성도 있다.

당연히 후퇴하는 와중에도 감시를 위해 무리 중 일부를 대기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감시병들이 말하건대, 예의 사수가 저기까지 나와 함정을 설치하는 모습은 본 적 없다고 했다.

허면, 당장 눈 앞에 있는 함정은 무엇이란 말인가?

다리가 잘려 넘어진 구울들은 고작해야 3기.

그렇지만, 구울들은 걸음을 멈추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여유롭던 행진이 사실은 사지를 향한 발걸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 탓이다.

정답이었다.

놈들의 반응을 살피며, 나는 살짝 휘파람을 불었다.

"성능 괜찮네."

그런 내 모습을 서아는 슬쩍 곁눈질로 살폈다.

쉬고 있으라 말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이런 상황에서 눈을 붙이긴 버거운 모양이었다.

덕분에 나도 손이 남긴 했지만.

"저건 뭐야, 사부?!"

"뭐긴 뭐야, 마법이지."

쯧쯧, 혀를 차며 관자놀이를 두드린다.

서아의 표정이 썩어들어가는 게 보일 지경이었다.

"마법?"

"그래. 서아야, 미안하지만 이 사부는 오늘부터 인텔리란다. 똑똑해서 미안해?"

"사부, 날 구하려고 마법사까지 고용하다니……."

"개년아."

물론 서아가 믿지 못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여하간, 여태까지 내가 사용한 마법이라고는 신체 강화 정도.

그조차 신체에 마력을 두르는 지극히 단순한 방식이었으니.

문자 그대로 마력을 다루는 방법이라 해서 마법이지, 서아가 생각할 만한 마법은 아니었으니까.

다만.

지금 내가 사용한 건 진짜배기 마법이었다.

물론 출처는 평소운 박사고.

즉.

"연금술이랑 금융 마법Trinka이야."

"뭐라고?"

평소운 박사가 조합한 마법 중 하나.

그건 바로 서양식 연금술과 집시들의 마법인 금융 마법의 조합이었다.

현자의 돌이라는 목표를 위해 각종 소재를 조합하는 연금술.

거기에, 자본을 불리기 위해 사용되는 집시들의 금융 마법.

양쪽을 조합해, 평소운 박사는 획기적인 발상을 더했다.

먼저 마법 도구 제작에 필요한 소재와 마력을 준비한다.

거기에 연금술적인 작용을 더해, 금융 마법으로 보강한다.

그 외의 제작에 필요한 노동력 등을 산출해 금융 마법으로 대체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금융 마법은 돈을 벌기 위한 마법.

하지만 필요한 자금을 제물로 바쳐 자금에 비례하는 결과를 부르는 기도술로서의 측면 또한 지닌다.

즉, 노동력과 비례하는 마력을 소비해 노동 과정을 생략하는 셈이다.

이를 통해, 사용자는 즉각 결과물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예를 들면, 종이비행기를 만들기 위해 A4 용지 하나를 앞에 두고 술식을 발동한다.

준비해야 할 건 자신이 만들고 싶은 종이비행기의 완성도와 거기에 필요한 실력.

나아가서는, 실력과 비례하는 마력이다.

이렇게 마력을 소비할 경우, 사용자는 순식간에 종이비행기를 접을 수 있다.

명명하자면, 즉석 연금술.

말 그대로 그렇게 칭해야 할 마법이었다.

방금 전 내가 별다른 문제 없이 서아와 합류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바로 이 마법 덕분이다.

주변에 굴러다니던 건축물의 파편에 즉석 연금술을 발동했기 때문이다.

윤하한테는 따로 설명한 적 있지만, 요 근래 건설 업계에서 특히나 각광받는 소재는 가고일.

특정 작용을 통해 생체와 석재를 오가는 몬스터의 소체다.

이를 이용해 건물의 파편을 곧바로 가공, 다른 건물에서 로프를 걸어 잠입할 수 있었다.

물론 단점도 있다.

예를 들면 마력 소모.

두 개나 되는 마법을 병행하는 탓에 소비도 만만찮다.

무엇보다, 노동력을 자원으로 환산한다는 특성 상 스케일이 커질수록 소비되는 마력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사람 수백 명 분이 수 일에 걸쳐 해야 할 노동력을 개인의 마력으로 지불한다는 뜻이니까.

필연적으로 구조가 단순한 도구밖에 만들 수 없다.

하물며, 아직은 마법 자체의 완성도도 부족한 상황.

사용자가 제대로 된 지식을 갖추지 않은 한, 만들 수 있는 도구도 영 변변찮다.

방금 전에도 간략하게 말하긴 했지만, 가고일 소재를 로프로 가공할 때까지 몇 번이나 걸렸고.

시험할 시간은 많았지만, 당장에 활용하긴 역시 힘들다.

그렇게 완성한 도구의 성능 또한 그냥저냥이고.

결과물을 마력으로 끌어낸다는 그 특성 상, 억지로 재료를 마력으로 두들겨 형태를 만드는 느낌에 가깝다.

별다른 제작 기술이 없는 내게는 그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이긴 했지만.

때문에, 마법이 성공하더라도 도구는 얼마 가지 않아 붕괴하고 만다.

그리고 그렇게 붕괴한 소재는 두 번 다시 사용하기 힘들다.

가고일 피부로 만든 밧줄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밧줄 모양으로 눌러 편 바위를 다시 사용할 수 있다면 그것도 놀랄 노자겠다만.

그러나.

활용성은 충분했다.

방금 전, 서아가 견제 삼아 발사한 화살.

거기에 새긴 마법을 뒤늦게 작동시키는 것만으로도, 우리들은 별다른 준비 없이 함정을 깔 수 있었으니까.

화살을 구성하는 몸체를 펴고, 화살촉을 녹여 그 위를 덮어 보강한다.

그것만으로도 화살은 순식간에 와이어가 되었다.

그렇게 준비한 함정을 주변에 흩뿌린 지금.

이 정도면 하숙집을 방위하는 데에도 문제는 없다.

오히려, 놈들의 기습을 서아가 성공적으로 막아내고 함정이 깔린 이 상황.

구울들을 사냥하기 위한 사냥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습격. 방위.

그런 게 아닌, 사냥.

사냥이라면, 상대는 고작해야 C+랭크 몬스터 몇.

이제 와서 당황할 이유도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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