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5화 〉 하늘에 뚫린 구멍
* * *
다행스럽게도, 타협을 할 필요는 없었다.
당장 도심을 쏘다니는 몬스터에게 달려들고 싶어 발작하는 감각.
놈을 어떻게 달래며 하숙집까지 향해야 할까.
그렇게 고민하던 내겐 희소식 아닌 희소식이었다.
왜냐하면, 지금 도시 내에서 몬스터들이 가장 밀집된 장소가 바로 하숙집이었던 탓이다.
"염병."
아주머니 기절하시겠네.
아니, 진짜 기절하셨을 거다.
남편을 잃은 트라우마 때문에 몬스터만 보면 눈을 까뒤집는 분이시니까.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상황은 다행이라 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하숙집에 몬스터들이 밀집되어 있다는 사실은, 놈들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뜻.
그리고 놈들이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다는 건, 서아가 방위에 성공했다는 뜻이니.
'적어도 지금까진.'
설마 했던 타임 어택이라니.
느긋하고도 확실한 공략을 선호하는 나로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상황이었다.
축지를 사용한 난입 또한 염두에 두긴 했다.
그렇지만, 그 쪽은 정말로 최종 수단이다.
축지는 결국 마력의 운용.
거기에, 고농도의 마력을 타고 움직이는 기술이다.
어떻게 해도 티가 날 수밖에 없다.
놈들 또한 하연이의 위치를 확신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생활부에 기록된 주소는 가짜다.
거기에, 만약 녀석들이 하연이의 위치를 특정했다면 도시 전역의 몬스터들이 하숙집을 덮쳤을 거다.
즉.
'아하.'
하숙집을 향해 달리는 내 머릿속으로 오늘 아침 있었을 일이 뚜렷하게 형체를 그렸다.
아마도 게이트가 열린 건 새벽 끝물.
하연이의 생활 패턴을 고려할 때, 아마도 새벽 6시 즈음이었을 거다.
평소처럼 학생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빠른 시간에 등교를 준비하던 하연이.
그러던 와중, 돌연히 하늘 너머로 게이트가 열렸다.
만약 내가 학생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선택지는 대충 셋 정도다.
하나, 하숙집으로 돌아가 서아 등과 합류한다.
둘, 신도심 내 쉘터로 피신한다.
셋, 학교에 머무르던 선생님들과 합류한다.
하연이가 어떤 선택지를 골랐을진 모르겠다.
그러나 대충 어림짐작하자면, 아마도 첫 번째겠지.
일단 우리 하숙집은 도심에서 조금 거리가 있다.
두 번째 선택지는 제외.
하연이가 등교하는 시간은 새벽 6시.
내가 있을 땐 내가 먼저 등교하는 편이지만, 지금은 내가 없는 상황.
굳이 하숙집 안에서 기다리다 출발해야 할 필요가 없다.
그리고 당연히 새벽 6시에 학교를 지키는 건 수위 아저씨 정도.
다시 말해, 우리 쪽으로 따지자면 남상원을 비롯한 혼인회 뿐이다.
거기에 하연이는 생각보다 낯가림이 심한 편이니.
별다른 인연도 없는 혼인회와 서아 쪽이라면 후자를 택했겠지.
추측일 뿐이지만, 만약 저렇게 행동했다면 나로서도 안심할 수 있다.
여하간, 일찍이 혼인회는 놈들 편이었던 전력이 있다.
배신할 기미 따위가 있었던 건 아니지만, 반대로 놈들이 눈 앞에 나타난다면?
혼인회로서는 하연이를 팔아안전을 도모할 가능성도 있다.
좋든 싫든 가족같은 집단이니까.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족을 위해서.
그런 명분이 있다면 사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생물이니.
하연이를 넘길 수만 있다면 배신 따위는 얼마든지 만회할 수 있을 테고.
허면?
방금 전 내가 예상한 상황 그대로라면,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물론, 답은 하나다.
"캬아아아악!!"
시야의 사각.
뒤늦게 터진 비명과 함께, 발톱이 날아든다.
기습 직전 괴성을 질러 자신의 위치를 공표하는 얼간이들…….
만약 그랬다면 이 쪽도 편했을 테지만 말이지.
대검을 크게 횡으로 휘두른다.
그러자, 방금 전까지만 해도 날아들던 발톱이 대검에 찢겨 두 동강 났다.
하지만.
피를 토하는 대신 허공으로 녹아드는 잔상.
말 그대로, 마력으로 이루어진 환영이었다.
그리고.
바로 옆, 그림자에 모습을 숨기고 있던 몬스터의 머리통을 일격에 분쇄한다.
"가아악!!"
그제서야 진실된 비명을 지르며 숨지는 몬스터 새끼.
단순한 힘으로 따지면 C랭크 가량.
다만, 건방지게도 잔머리를 굴리는 면모가 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실제로는 이 쪽이 어지간한 고랭크 몬스터보다 성질 나쁘다.
모르긴 몰라도, 민간인 피해야 어쨌든 헌터 측 사상자는 오히려 이 쪽이 더 심각할 테지.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몬스터의 유해를 살핀다.
형태는 인간형에 가까운 무언가가 거기에 널브러져 있었다.
다만, 어느 누구도 놈들을 인간이라 착각하진 않겠지.
산발이라 말하기도 힘들 만큼 추잡하게 기른 털.
짐승의 발굽에 맹수와 같은 손톱.
심지어 그 끝에서는 독기가 배어 나오고 있을 정도였으니.
'구울인가.'
시체 먹는 귀신???.
현대 서브컬처에 있어선 좀비의 일환으로 여겨지기도 하는 몬스터다.
다만, 그 본질은 어디까지나 타락한 정령Jinn.
움직이는 시체나 강시 따위가 아니다.
방금 전 사용한 환각 또한 마찬가지.
사막의 방랑자들을 꼬드겨 잡아먹을 때 사용한다는 구울의 도깨비불이겠지.
단순한 힘은 C랭크 수준에 지나지 않지만, 타락한 정령이라는 출신에서 오는 다종다양한 능력이 골칫거리인 녀석이니까.
발톱에 깃든 독도 마찬가지다.
말하자면 흡혈귀나 늑대인간 부류라고 해야 할까.
국제 헌터 협회 기준에 따르면, C+랭크.
힘과는 별개로 사용하는 술수가 다채롭다.
거기에, 늑대인간의 외피와 생명력.
혹은 흡혈귀의 재생력에 대응하는 방어 능력 쪽도 문제다.
가라사대, 일격 신앙.
중동에 전해지는 몬스터 퇴치의 비의.
용과 구울을 죽이기 위한 일격필살의 기술이다.
왜냐하면 중동의 용과 구울은첫 번째 공격이 아니면 죽일 수 없다는 습성이 있기 때문이다.
애미 뒤진.
문자 그대로, 중동의 용과 구울은 일격에 죽이지 않으면 죽일 수 없다.
두 번째 공격부터는 아무리 강한 힘을 담아도 역으로 놈들의 원기를 북돋게 된다던가.
말하자면, 초격을 제외한 모든 데미지를 회복으로 변환하는 힘이다.
당장 내가 투척 무기를 사용하지 않는 이유 또한 바로 그 때문이었다.
막말로, 팔 하나 내주고 견디면 그 시점에서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니까.
서아가 버텨주고 있어서 다행이란 말은 진심이었다.
지금은 조금이라도 정보가 필요할 때니까.
일단 몇 가지는 시험해 봤다.
전승에 따르면, 놈들의 방어 능력은 개인 단위가 아닌 무기 단위로 적용된다.
즉, 첫 번째 무기로 일격에 죽이지 못했다 한들 다른 칼을 뽑아들고 죽이면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도 그랬다.
일부러 팔을 노리고 던진 투사 무기는 동일한 구울에게 효력을 발휘하지 못했으나, 대검 쪽은 효과가 있었다.
그리고 내 대검의 경우, 각 무장마다 다른 무기로 취급된다는 점 또한 확인했다.
전문 대장장이의 솜씨가 여기서 저력을 발휘할 줄이야.
나중에 밥이라도 한 번 사야겠다.
즉, 다른 헌터들이야 어쨌든 내겐 별다른 지장이 없다는 셈인데…….
'좆됐군.'
문제는 지금 내가 시그니처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점이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끼고 있다 해야 하겠지만.
그런 상황에서 이만한 숫자를 하나하나 때려죽일 수도 없고.
하여튼, 처음엔 다수도 겸사겸사 쓸어버릴 겸 만든 시그니처였는데.
이런 상황에선 영 불편하기 그지없었다.
일단 하숙집까진 합류해야 한다.
그건 변함 없다.
다른 게 문제가 아니라, 티아마트를 통해 협회 쪽 헌터들에게도 구울의 정보를 넘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미 누군가 눈치라도 챘다면 좋겠지만, 아무래도 기대하긴 힘들겠지.
언젠가 말했듯, 몬스터의 생태 또한 전설에 귀속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발생한 가고일이 대한민국까지 올 수는 있다.
대한민국에서 발생한 구미호가 로마까지 갈 수는 있다.
그렇지만, 북구 출신 거인이 대뜸 인도에서 발생하긴 어렵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티아마트의 말마따나 신화가 사실이었던 시대의 흔적일지도 모르겠다.
삼족오가 유럽 전설에서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찍이 신화가 역사였던 시절, 삼족오가 유럽에선 살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당연히 아서 왕 신화 속 괴물이라면 현대 웨일즈나 잉글랜드에서 모습을 드러낼 확률이 높다.
먼 옛날 자신이 살던 장소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다.
대한민국의 헌터들이 상대하는 건 주로 이 나라의 설화 속에 등장하는 괴물들.
구울이라면 모를까, 중동의 일격 신앙 따위 알고 있는 헌터가 있겠는가.
만약 있다면 나도 깜짝 놀라겠다만.
문제는, 어떻게 하숙집 포위를 돌파할까 하는 점인데.
"니기미!!"
"캬아아아악!!"
이 놈의 새끼들은 사람이 생각할 시간을 주질 않네!!
저 멀리 하숙집의 모습이 어렴풋하게 보이기 시작할 시점.
점차 마주치는 구울들의 머릿수도 늘었다.
구울의 밀도가 높아지고 있다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을 형편이었다.
한 마리는 정면. 두 마리는 배후.
거기에 각기 환각까지.
몬스터가 사용하는 환각이야 내겐 별다른 효과가 없었지만, 단순하게 기분이 나빴다.
하는 김에 겸사겸사 환상까지 여섯.
대검의 범위에 놈들을 넣는다.
동시에, 연계.
한 놈은 팔을 쭉 내밀며 앞으로.
다른 두 놈은 각기 내 어깨와 종아리를 노린다.
앞 놈이 시선을 끌고, 둘이 상하를 동시에 노려 퇴로를 차단한다.
내민 팔은 내주더라도 일격에 죽지만 않으면 괜찮다는 판단인가.
합리적이다.
그러므로.
합리적으로 대응했다.
마치 허리춤에 검을 납도하듯, 대검을 크게 젖힌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도저히 납도 따위가 가능할 만한 크기는 아니다.
때문에, 대검은 지나칠 정도로 높이 솟구쳤다.
내 어깨를 노리고 있는 두 번째 구울의 머리보다 더 높게.
"퀘엑?"
단말마.
그게 놈의 유언이었다.
그대로 다시 검을 앞으로 당긴다.
방금 전이 납도술에 가까운 동작이었다면, 이번엔 발도술에 가까운 동작.
그러자.
크게 휜 칼끝.
사실상 끌이라고 불러야 할 부분이 어깨를 노리던 구울의 머리를 수직으로 관통했다.
하나.
이어, 구울 한 마리를 매단 상태로 마저 발검을 수행한다.
휘두르는 검의 궤적에 맞추어, 칼끝에 걸린 구울 시체가 부웅 하는 소리를 냈다.
동시에.
퍼적!!
칼끝에 걸어 휘두른 구울 시체가, 내 다리를 노리던 구울의 머리와 격돌해 박살났다.
둘.
이윽고, 출수.
올려베기.
쩌억!!
고간부터 정수리까지, 앞에서 달려들던 구울을 팔 채로 양단한다.
공교롭게도, 내민 팔 따위에 시선이 쏠릴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라서 말이지.
셋.
후두두두둑, 그제서야 구울들의 시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내가 취한 동작이래봐야 결국 칼 한 번 휘두른 게 전부니 당연한 이야기였다.
칼끝. 끌에 걸린 구울 대가리. 대검의 날.
각기 다른 무기를 사용한 일격필살.
내가 생각해도 깔끔하기 그지없는 공격이었다.
……아니, 물론 정일현 선생님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긴 했다.
저랭크 몬스터 다수를 상대로 품새를 연습하라고.
확실히, 그렇게 보면 지금 이 상황은 실력을 쌓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기회가 찾아오길 바란 건 아니었지만!!
한 번의 동작으로 마무리한 싸움.
소재를 갈무리할 틈도 없이, 다시 한 번 달음박질친다.
동시에, 계산기가 돌아간다.
방금 전 구울들과 나눈 합도 나쁘진 않았다.
다만.
나쁘지 않은 수준의 일격으로, 구울 세 마리를 베는 데에 한 호흡.
허면?
만약 구울 300마리가 대상이라면, 자그마치 백 번은 칼을 휘둘러야 한다.
물론 일개 구울 따위가 상대라면 별다른 문제는 없겠지.
문제는 구울들에게 상위종이 있다는 점이다.
이런 부분까지 흡혈귀나 늑대인간 따위랑 비슷할 필요는 없는데.
어디 보자.
통상적인 구울들이 C+랭크.
전설에 이름이 남은Named 구울들이 B+랭크라고 치면?
개중에서도, 구울의 왕이라 불리는 개체는 A+랭크에 준할까?
'돌겠네.'
미친, 이게 말이 되나?
아니, 직접 상대하니 알겠다.
일격에 A+랭크를 죽일 수 있을 만한 화력이 없다면 퇴치할 수 없는 몬스터?
씨발, 이딴 생태계 교란종이 돌아다녀도 되나?
심지어 상위종은 마법까지 쓰고 지랄.
"어쩔 수 없군."
아무리 그래도 이 이상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시그니처 금지. 일격 신앙에 의한 방호. 상대는 다수. 심지어 게이트까지 열린 지금.
수단을 가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일전, 평소운 박사의 연구소에서 채집한 마법.
아직 완성 단계는 아니지만, 해금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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