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4화 〉 하늘에 뚫린 구멍
* * *
결론만 말하자면, 티아마트의 설득엔 성공했다.
솔직히 힘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지.
못 먹는 감 찔러나 보는 기분으로 시작한 이야기가 어쩌다 결실을 맺은 건진 나도 잘 모르겠다.
아니, 무슨 가출한 중학생도 아니고.
고작해야 이 정도로 설득될 문제였다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말로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여하간 당사자가 듣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후, 후후후~"
뭐가 그리도 좋은지,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티아마트.
마냥 해맑은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한테 부탁한 협회 사람들이 생각나서 조금 아니꼽게 느껴지긴 했다.
어쩔 수 없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하도록 하자.
그렇게 생각하며 사고를 억지로 전환한다.
일단 티아마트가 마음을 바꿔 먹은 덕분에 우리 손에는 여신의 힘이 남게 되었다.
결국 티아마트에 대한 대우는 어떻게 할 건지, 전선에 내보내도 될는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긍정적인 점도 있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쪽엔 평소운 박사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은 단순한 포로 신세.
그렇지만, 만약 그 두뇌를 빌릴 수 있다면?
놈들이 아니라 우리 쪽이 티아마트의 힘을 손에 넣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즉.
'몬스터를 양산할 수 있다.'
다만, 제어할 수는 없겠지.
애초에 티아마트 직속이었던 열 한 마리 괴물 중에서도 신들 편으로 넘어간 배신자가 있었던 판국이니.
그렇지만.
나로서는 오히려 그게 더 좋다.
아니, 도리어 제어하고 싶지 않다.
씨발, 몬스터 새끼들이랑 같이 싸우라고?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다시 말해, 내가 바라는 건 단 하나.
인공 게이트 기술과 권능의 조합.
몬스터의 무한한 양산이다.
심지어 상대는 여신 티아마트.
어지간한 고랭크 몬스터라 해도 문제는 없겠지.
몇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면, 녀석에겐 그런 몬스터도 자식이라 취급되지 않을까 하는 생물학적인 걱정.
그리고 몬스터로 변화시키기 위한 대상을 확보하는 방법 등이다.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쓸 수는 없을 테고.
'동식물도 변화시킬 수 있겠지?'
음, 꿈이 부푸는 기분이다.
뭐, 어느 쪽이든 당사자에게 물어야 할 일이다만.
"그러고 보면, 본인을 지키겠다고 했지?"
"중간에 뭐가 많이 생략된 기분인데."
"후후, 쑥쓰러워하긴. 허면, 알고 있느냐? 여신 티아마트의 수호자를 신화 속에선 무어라 부르는지?"
"아니, 모르는데."
정작 당사자는 이렇게 알 듯 모를 듯한 말만을 반복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일단 기분은 나쁘지 않은 모양이었지만.
실제로, 지금 이렇게 도보로 걸어 귀환하고 있는 이유 또한 녀석의 요청 때문이었고.
까놓고 말해, 녀석이 탈출할 때 사용한 방법을 고려하면 이렇게 걸어야 할 필요는 어디에도 없다.
먼저 녀석의 의식을 협회 최상층의 분신에 옮긴 뒤, 나는 그대로 느긋하게 돌아가면 그만이었을 테지.
택시라도 잡았으면 좋았을까?
나보다 느리긴 해도 눈을 붙일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었을 텐데.
그렇게 생각한 귀환길.
허나, 새옹지마라고 해야 할까?
새벽을 밟으며 돌아가던 길의 끝에서, 나는 그런 사실을 깨달았다.
"뭐여 씨벌."
내 명예를 위해 말해두겠지만, 이번엔 내가 한 말이 아니었다.
내 옆에 있는 자칭 여신이 내뱉은 말이었다.
그러나 당장엔 녀석의 그런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질 여유도 없었다.
항구 어귀에 있어 몰랐지만, 지금 도시는 아무리 봐도 범상치 않았다.
이상할 정도로 부산스러운 소음.
도시 곳곳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매연.
비명과 통곡.
넘실대는 불길.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짐작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애석하게도.
왜냐하면.
"애미."
신도심 위, 상공 너머.
도시 전역을 감추고도 남을 거대한 구멍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
제 2차 대침공이 공식적으로 종료된 이래 처음으로, 대한민국 수도권에 초대형 게이트가 발생했다.
이런 미증유의 사태가 우연히 자리를 비운 사이 일어났다고 생각할 만큼 나나 티아마트는 바보가 아니었다.
때문에.
"연락은?!"
"먹통이다!!"
"빌어먹을 몬스터 새끼들. 하여튼 되는 일이 없어."
"어떻게 하겠느냐?"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막아야지!"
"허면 본인은 먼저 협회 쪽을 확인하마!"
"알릴 거 있으면 하숙집으로 보내!"
의사 교환은 빨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헤실헤실 늘어진 분위기는 온데간데 없이.
나와 티아마트는 상황을 확인했다.
일단 연락은 불통이다.
도시를 덮치고 있는 몬스터 새끼들이 그런 능력을 갖추고 있는 건지, 아니면 시설이 당한 건지.
거기까지는 모르겠다.
다만, 이 핸드폰이라는 새끼가 중요할 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건 확실했다.
정보는 없다.
그렇다면 당장 도시 안에서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을 집단은?
역시 헌터 협회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 티아마트라면 1초도 걸리지 않아 협회로 귀환할 수 있다.
지금 여기에 있는 몸체를 소멸시키면 되니까.
상황을 확인한 이후, 공유해야 할 정보가 있다면 하숙집으로.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티아마트의 몸이 기화되어 사라진다.
참으로 편리한 기능이라면 편리한 기능이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하숙집.
내가 목표로 정한 건 당장 그 쪽이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너무나도 작위적인 타이밍.
나나 티아마트로서는 당장 이번 일 또한 녀석들의 소행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신세계 질서Novus Ordo Seclorum.
혹시나 했지만, 역시 녀석들 또한 평소운 박사의 인공 게이트 발생 기술을 미리 확보해두었던 것이다.
문제는 저 말도 안 되는 규모의 게이트다.
'최소 A랭크군.'
게이트에 랭크를 매기는 기준은 해당 게이트가 생산할 수 있는 최고 랭크의 몬스터를 기준으로 한다.
그리고 A랭크라 하면, 확실한 토벌에 핵병기가 필요할 정도.
다시 말해, 국가급 폭력을 지칭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A랭크 몬스터가 일개 국가 규모의 크기를 자랑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런 몬스터를 잉태하는 게이트 또한 마찬가지고.
허면.
말 그대로 도시 하나를 통째로 감쌀 수 있는 크기의 게이트는, 도대체 무엇을 잉태하려 한다는 뜻인가.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지금 이 상황은 맛이 가도 단단히 맛이 갔다 말할 수 있었다.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는다.
시그니처를 쓸까?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확실히, 그 경우 당장 도심에 있는 몬스터들을 일거에 쓸어버릴 수 있겠지.
하지만 지금은 안 된다.
상황이 좋지 않다.
올해 들어 내가 시그니처를 사용한 건 몇 번.
서아네 길드가 얽힌 게이트 내 몬스터 부락 청소.
폐공장에서 김민철과 벌인 결투.
마지막으로 남해 지부에서 요호들의 둥지를 날려버리기 위해서였다.
뭐? 태시영과의 싸움?
실패했으니까 그건 우리 집 시그니처가 아니에요.
어쨌든.
이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내가 시그니처를 사용한 건 기본적으로 주변에 영향이 없을 때였다.
한 마디로, 실수해도 괜찮은 상황.
그렇지만 지금은 다르다.
예를 들어, 내가 지금 시그니처를 사용한다고 하자.
몬스터들은 일소할 수 있을 거다.
다만.
빌딩 위에 몸을 얹고 있는 몬스터.
하늘을 날고 있던 몬스터.
이런 놈들이 추락한다면, 오히려 피해는 가속될지도 모른다.
것보다, 이 정도로 범위를 넓히면 세밀한 컨트롤도 힘들다.
예쁘게 베기는 기본적으로 대인 기술.
범위를 넓혀 다수를 상대할 수도 있지만, 당연히 그 경우 몬스터 전원의 파장과 동조해야 한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세세한 조정도 힘들어진다.
물론 대충 날려도 몬스터를 죽이는 건 쉽다.
그렇지만, 만약 그렇게 건성으로 조준한 시그니처가 사람이나 건물까지 대상으로 넣어버린다면?
방금 전 말했다시피, 건물을 휘감고 있는 지네형 몬스터 따위가 있다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내 마력 감응 능력은 몬스터가 대상이 아니면 무뎌지니까.
애초에 난전을 전제로 만든 기술도 아니고.
당연한 이야기지.
난 솔로 헌터였으니까!!
난전을 전제로 짠 기술일 리 없잖아!!
'하물며 연습도 해본 적 없고…….'
씨발, 언젠가 필요할 때가 올지도 모른다고 이런 기술로 난전 상황에서 실험해보는 건 미친 짓이다.
어설프게 반쯤 잘린 시체라도 나오면 어쩌려고.
때문에, 나로서도 당장 확신은 가질 수 없었다.
아마 사용해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기분은 있다.
그런 마력 컨트롤, 지금이라면 해낼 수 있을 듯한 기분도 든다.
그렇지만.
신도심에 사는 인구 전원의 목숨을 그런 도박에 내걸 수도 없었다.
만약 그러는 게 쉬웠다면 처음부터 강원도 지부의 스탬피드에 당황하며 대처할 필요도 없었겠지.
하다못해 지금은 더더욱 그렇고.
일단 한 가지.
지금 이 상황은 명백하게 놈들의 소행이다.
어떻게 저런 규모의 게이트를 만들 수 있었던 건가.
고작해야 하루만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것도 짐작하기는 쉽다.
'염병.'
애초에 문영석 또한 말하지 않았던가.
당시 문영석이 우리에게 밀고한 시설들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의 이야기.
일개 끄나풀인 문영석으로는 아무래도 알 수 없는 시설 또한 여러 군데 있을 거라고.
물론 우리들 또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후로도 계속해서 주변 시설을 순찰하고 있었던 거고.
……그래서인가?
고작해야 며칠만에 녀석들이 시설을 가동한 건?
흘끔, 상공을 살핀다.
당시 평소운 박사가 만들어낸 인공 게이트에 비하면 지나칠 정도로 거대한 규모.
저걸 보고 있자니 어쩌면 평소운 박사의 연구 또한 실제로는 조금 달랐던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산발적으로 게이트를 만드는 게 아니라, 복수의 연구동을 연계해 하나의 초거대 게이트를 만드는 식으로.
하긴, 그 쪽이 훨씬 더 합리적이지.
제어할 수도 없이 양산한 게이트 따위 무슨 소용이 있다고.
그렇다면 녀석들의 목적 또한 짐작이 간다.
우리에게 발각될 바에야 어차피 한 번 지르는 게 낫다 이거겠지.
당장 평소운 박사의 시설만 해도 그렇다.
비밀 연구동 제압 당시, 평소운 박사의 연구동과 연동하고 있던 연구소는 대략 10개 이상.
만약 평소운 박사의 연구가 이런 복수의 연구동을 연계해 하나의 게이트를 만드는 일이었다면?
이런 연계에 족히 10개 이상의 시설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한 번 발각되면 쉽게 수복하거나 재현할 수 있을 리도 없고.
까짓것 한 번 질러보자는 속셈일지도 모르지.
물론 당하는 입장에선 농담이 아니었다.
하물며, 정말로 생각 한 번 없이 터트렸다고는 생각하기 힘들고.
나랑 티아마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벌인 일.
어느 쪽이든, 우리 쪽 전력에 구멍이 생겼다는 걸 알고 벌인 걸테니까.
어떻게 눈치챈 건가 하는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뤄두자.
그렇다면, 녀석들이 여기서 취할 행동은 하나.
'하연이를 탈환할 생각인 거겠지.'
뚜둑, 목덜미를 주무른다.
그렇기에 합류 위치는 하숙집이다.
티아마트도 나도 잘 알고 있거니와, 가장 중요한 포인트니까.
티아마트 또한 그 정도는 알고 있겠지.
문제는.
'도대체 언제부터 시작된 거지?'
설마 벌써부터 하연이가 탈환당하고 전부 끝났습니다, 같은 결말은 아닐 거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생각하기엔 작금의 풍경이 너무 지독했다.
빌어먹을 정도로 유효한 수라는 건 인정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사고는 거기까지.
찰나에 사고를 정리한 나는, 그대로 하숙집을 향해 달렸다.
어느 쪽이든, 일단은 하숙집부터 확인해야 할 상황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