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 그녀가 여신이라 불리기까지
* * *
"어째서?"
가장 먼저,티아마트는 그런 의문을 입에 담았다.
다름이 아니라, 방금 전 박우찬이 건넨 제안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내용 자체는 이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네 녀석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더냐?"
진심이었다.
박우찬의 말을 못 믿어서 하는 소리도 아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좋기야 하겠지.
허나, 상대는 박우찬이다.
지금만 해도 자신을 향해 칼부림을 벌이고 싶은 걸 억누르고 싶은 모습이 눈에 보이건만.
어째서 박우찬은 스스로의 불편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저런 제안을 하는 걸까?
그녀로서는 이를 도통 알 수 없었다.
몬스터를 만나면 칼침을 꽂는다.
몬스터를 살려둔다는 사실을 일종의 타협이나 굴욕처럼 생각하는 게 바로 박우찬이다.
헌데, 굳이 그런 말을?
그래서야 자신을 위해 부담을 감수하겠다는 뜻이 아닌가?
이유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서 그런 부담을 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티아마트가 그렇게 말하는 모습이야말로 박우찬에게 양심의 가책을 이끌어내고 있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티아마트로서는 모를 일이었다.
당장 눈 앞에서 네 그런 점 때문에 하는 말이라고 설명하기엔 아무래도 쪽팔렸기 때문이다.
"되도 않는 헛소리나 지껄이니 그렇지."
그렇다 한들, 저리 부루퉁하게 대답해서야.
"무, 무에야?! 네, 네 이 녀석. 당장 취소하지 못할까?!"
"어어, 뭐야 갑자기."
"네 녀석이 알기는 하느냐?! 본인이 요 문제로 얼마나 되는 고민을 했는지?!"
"아니, 말한 적도 없는데 알긴 뭘 어떻게 아냐?"
과연 여기까지 들으면 티아마트라 해도 무어라 화를 낼 수밖에 없다.
거기에 박우찬이라고 성격이 좋은 건 또 아니다.
그렇게 화를 내니 박우찬 또한 자연스레 언성을 높이기 마련.
결국 두 명의 대화는 이윽고 서로를 향해 울분을 토해내는 듯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애초에, 도의적으로 봐도 당연한 거 아니냐? 적어도 무슨 생각인지 앞으론 뭘 할 건지, 인수인계라도 끝내던가!"
"그, 그랬다간 보나 마나 본인을 말리려 들 게 아니냐!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오~ 쓸데없는 자신감 쩌는데? 진심? 그렇게 생각해?"
"어, 어찌 그런 못된 말을 하느냐……."
물론 그런 깐족거림에서 티아마트는 도저히 박우찬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머잖아 티아마트의 목소리는 그대로 박우찬의 비아냥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후, 이런 이런.
그런 티아마트의 모습을 확인한 박우찬이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상처뿐인 승리였다.
"도대체 왜 그러느냐."
"뭐가."
"본인은 그저 본인 나름대로 최선의 길을 고르려 했을 뿐이니라."
"알아."
"헌데, 너는 어찌하여 그러는 것이냐. 도대체 네가 본인의 무엇이기에?"
아니, 그렇게 말하며 여신은 한 호흡을 두고 다시금 되물었다.
"네 녀석에게 있어, 본인이란 도대체 무엇이냐?"
설령 박우찬이라 해도 단박엔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그런 사내의 모습을 보며, 티아마트는 술렁이는 마음을 억지로 잠재웠다.
확실히, 자신의 눈 앞의 남자에게 온갖 편애를 퍼부었던 건 사실이다.
마음으로 낳아 키운 첫 번째 대전사 이후.
만약 다시 한 번 대전사를 둔다면 이런 녀석이 좋겠지 싶어 여러모로 안배한 적도 있었다.
요컨대, 티아마트에게 있어 박우찬은 타협의 상징이었다.
잊기 힘든 첫 번째 실패 이후.
자신의 잘못인지, 그렇지 않으면 잘못 키웠던 건지.
도저히 해답을 알 수 없는 자문 끝에 내린 대답.
말하자면, 그녀에게 있어 박우찬이란 바로 그런 존재였다.
모닥불의 온기를 알아버린 짐승은, 두 번 다시 불을 모르던 때로 돌아갈 수 없는 법.
설령 불에 데었다 해도 마찬가지다.
어느 정도 거리를 둘 순 있겠지만, 온기를 잊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박우찬이라는 단열재가 필요했다.
사회를 잊지 못한 여신이, 다시 한 번 인간의 사회로 돌아가기 위하여.
스스로의 기대치를 낮추기 위한 촉매.
성큼 걸음을 딛었다가 잔뜩 화상을 입은 여신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과거를 그리워하는 자신에게 부여한 안전장치.
다시 말해, 절대로 기대를 품을 리 없는 무언가.
티아마트가 박우찬을 우대한 건 전적으로 그 때문이었다.
당연한 이야기.
그렇지 않고서야, 도대체 누가 저런 놈을 선호한단 말인가.
한없이 무례하다. 여신 앞에서도 비속어를 삼가지 않는다.
건방지고, 거기에 그 이상으로 오만한 성품.
묘한 부분에서 상식이 있지만, 상대를 배려할 필요가 없다 결론지으면 끝없이 방자하다.
여신이라는 이유로 숭배하던 녀석들은 있었지만, 여신이라는 이유로 욕을 퍼부은 건 바야흐로 이 놈 정도겠지.
하물며 처음 보는 여신의 뿔을 자르다니.
아니, 여신이고 뭐고 이전에 보통 처음 보는 사람에게도 그러진 않잖는가.
도대체 뭐 하는 녀석인지.
만약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면, 두 번 다시 그 모습을 뵈는 일 없었을 텐데.
건방진 놈. 뻔뻔한 놈. 여신을 상대로 끝까지 이기려 드는 놈.
한가한 놈. 수치스러운 놈.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은 수치라는 걸 모르는 놈.
건방진 만큼 능력 있는 놈. 뻔뻔한 만큼 어떠한 심려도 내색하지 않는 놈. 누가 상대라도 물러서지 않는 놈.
끝없는 싸움을 거듭한 끝에 더 이상 싸움 외에는 무엇 하나 할 줄 모르는 놈.
누구에게 인정받는 일 없이 수치를 덮어써도 끝없이 다음 싸움을 준비하는 놈.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본인은 그런 삶이 당연한 줄 아는 놈.
"도대체, 뭐냔 말이다……."
도대체 뭐냐.
정말로 곤란하다.
이래서야 자신은 여신이라고 자칭할 수도 없지 않느냐.
여신이니까. 지모신이니까. 아름다운 창세신이니까.
그러니 네 녀석이 반해버려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몇 번이나 그리 말했건만.
이래서는 이 쪽이 먼저 반해버리지 않느냐.
티아마트는 목구멍 근처에서 근질거리던 말을 억지로 억눌렀다.
바야흐로 여신의 마음이었다.
실제로, 티아마트 또한 자신의 이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었다.
지모신의 후계자로서 지니는 자애인가, 그렇지 않으면 연심인가.
어느 쪽이든, 그녀는저런모습을 좋아했다.
전장에서 도망치던 트라우마 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신으로서 갖춘 소양의 일종인가.
자신에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고 행동하는 그 모습이, 그녀에게는 아름답게 보였다.
자신을 섬기며 바치는 신앙은 달콤하지만, 난롯가에서 바라보는 그림 또한 나름의 멋이 있다.
그녀에게 있어, 박우찬은 후자에 속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안타까움은 있었다.
아쉬움도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런 녀석이니만큼 더더욱.
앞으로는 필시 만나는 일 또한 없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억지로 단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신의 진의를 들은 아이들이 감히 그 뒤를 밟지 못하고, 누구 하나 무어라 하지 않는 밤.
항구에서 불어드는 밤바람이 조금은 쌀쌀하게 느껴지는 이 밤에, 티아마트의 뒤를 쫓은 건 오로지 박우찬 뿐이었다.
아이러니하다고 해야 할까.
잡지 말라고, 놓아달라고.
방금 전부터 그렇게 말하고 있건만.
그런데도 속으론 살짝 기쁘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있다.
도대체 무어라 말해야 할 것인가.
티아마트는 알 수 없었다.
"나라도 염치가 없지는 않아."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박우찬 쪽은 차라리 시원스러웠다.
저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뭐?"
"말했잖아. 나라도 책임감 정도는 느낀다고."
정말로 티아마트가 이 나라를 떠나기로 한 게 그런 이유 때문이라면.
이 나라에 정이 떨어져서, 달리 뜻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더 이상 다른 선택지가 없었기 때문이라면.
"뭐, 말마따나 나한테 그렇게까지 할 의리는 없지. 딱히 협회랑 친한 것도 아니고."
"그래, 그렇지. 헌데, 어째서?"
"아니, 그것도 말했잖냐."
말마따나, 박우찬에게 헌터 협회를 지켜야 할 이유 따위는 없다.
그렇지만.
티아마트가 부탁한다면, 노력이야 할 수 있겠지.
"김민철을 죽인 건 나니까."
왜냐하면, 녀석에게서 선택지를 빼앗은 건 박우찬 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티아마트가 상실의 괴로움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면.
아픔. 고통.
녀석이 느끼는 이별의 슬픔만큼은, 자신이 부담해야 한다.
박우찬은 그렇게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티아마트를 죽이고 싶은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뭐라고 말한다 한들 몬스터라는 사실에 변함은 없으니까.
단지.
그 날 병원에서도 그랬듯이, 박우찬은 티아마트를 싫어하지는 않았다.
싫어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죽이고 싶을 뿐.
반대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밉지는 않다.
뭐, 그러니.
"그 정도는 상관 없다."
정말로.
다짐하듯, 박우찬은 그렇게 덧붙였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티아마트에겐 황당할 뿐이었다.
'세상에.'
저런 얼간이가 다 있나.
책임?
책임이라니, 어째서?
가장 먼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렇지 않은가.
물론 그녀가 김민철의 죽음에 슬퍼했던 건 사실이다.
다만.
그런 이야기와는 별개로,나쁜 건 김민철이라는 점 또한 명백했다.
납치범이자 테러리스트.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박우찬과 그 주변에 손을 뻗은 건 역시 김민철 쪽이었으니까.
헌데도 그렇게 말하는 건가.
하물며, 피해자였던 당사자가?
그렇게 반문하려던 티아마트가 자신도 모르게 멈칫했다.
문득, 언젠가 나누었던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애초에 그 때도 그랬다.
병원 밖.
김민철에게 납치당한 여아의 병문안을 앞둔 채.
박우찬은 티아마트에게 서투르나마 틀림없는 위로를 건넸다.
사과는 할 수 없지만, 유감이라고.
테러리스트의 가족을 향해, 박우찬은 분명히 그렇게 말한 적 있었다.
그러므로.
"후후."
무심코 티아마트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동시에, 생각했다.
방금 전,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자신이 느끼고 있는 이 감정이 무엇인지 정확히 정의할 수는 없다고.
지모신의 후계자로서 품은 자애인지, 그렇지 않으면 연심인지.
그리고 지금도 대답은 변하지 않는다.
여전히 답은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렴 어때?'
비교적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왜냐하면, 티아마트는 확신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과거의 감정 따위와는 별개.
자신은 지금, 어쩌면 그 날.
눈 앞의 사내에게 반해버린 것이 틀림없다고.
알 듯 모를 듯, 눈치채기 힘든 자상함.
여신 티아마트라는 이름이 아닌, 그녀를 향한 염려.
그제서야 그녀는 그것이 무정함이라는 이름 뒤에 숨은 배려였음을 깨달았다.
"……뭐, 내키지 않을 순 있겠지만. 별로 믿을 만한 이야기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지 말거라."
"응?"
"너는 충분히 훌륭한 사람이니까."
"어, 뭐야 갑자기. 징그럽게."
비교적 진심으로 박우찬은 정색했다.
그렇지만, 진심이었다.
으레 입버릇처럼 말하듯이, 박우찬은 영웅이라 부르기엔 부족한 인물일지도 모른다.
것보다, 저렇게 우스꽝스러운 태도를 취하는 영웅이 있을까.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우찬은 충분히 견실한 사람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의 3할이 가족을 잃었다 일컬어지는 이 시대.
목숨을 뺏는 측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작별을 잊지 못하고 도망치려 들었던 그녀보다는 훨씬.
……지금도 여전히 위험하다고는 생각한다.
지킨다느니 뭐라느니 말해도, 결국 결과는 확실하지 않다.
타인의 목숨을 저울에 올리는 미친 짓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대를 받은 적이야 있다. 기도를 들은 적도 있다.
여신에게 바치는 공물 또한 있었고, 그 외모에서 나오는 뒤틀린 바람도 없다곤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일까?
단순한 책임감.
혹은 별다른 기대 하나 없이 누군가 역으로 무엇이든 해주려 드는 경우는 아무래도 처음이라.
어쩌다 보니 여신 티아마트의 이름을 계승한 그녀로서도 지금은 냉정하게 판단을 내릴 수가 없었다.
마치 머리가 꿀에 젖은 듯한 기분.
"내게는 과분해."
때문에.
위대한 지모신.
메소포타미아 창세기 속 여신.
신들의 어머니이며 괴물들의 어머니.
티아마트의 이름을 계승한 후계자조차, 처음으로 선물을 받아 들뜬 계집애처럼 기쁜 듯 수줍은 듯 웃을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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