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52화 (152/371)

〈 152화 〉 그녀가 여신이라 불리기까지

* * *

도시 밖.

티아마트가 걸음을 멈춘 건 항구 바로 앞, 엎어지면 곧바로 코 닿을 장소였다.

내부에서 분열된 중국. 사실상 신정국가가 되어버린 일본.

어느 쪽이든, 앞으로 티아마트가 거처를 두기엔 나쁘지 않다.

반대로 티아마트 또한 자신의 뒤를 밟은 박우찬의 모습을 찬찬히 훑었다.

어느덧 밤바람이 싸늘하게 느껴질 날씨였다.

바로 그 때문일까?

당장 눈 앞에 있는 박우찬의 차림새도 옷깃을 단단히 여민 게 느껴질 정도였다.

평소와 같은 장속. 그 위에 걸친 코트.

그리고 얼굴을 남김없이 감추는 방독면까지.

때 아닌 방독면의 존재에, 티아마트는 무심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변함없는 녀석이로고."

물론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할 일이었다.

여하간, 박우찬의 그 곤란하기 짝이 없는 성정을 생각하면 더더욱.

안 그래도 몬스터만 눈 앞에 두면 발작을 일으키는 녀석이다.

하물며 분신을 앞두고도 그런 지랄 발광을 떠는데, 본체인 자신이 상대라면 오죽하랴.

애시당초 익숙한 모습이기도 했으니 말이다.

문제, 혹은 의외인 점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협회의 체면, 혹은 현실적인 이유.

어느 쪽이든, 녀석이 티아마트 자신을 적대하지 않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은 그녀 또한 알고 있었다.

방독면 또한 그런 노력의 일환이었고.

즉, 박우찬이 방독면을 쓰고 있는 지금.

녀석은 티아마트와 대화를 하고자 여기에 온 셈이었다.

그리고 그건 티아마트로서도 상당히 예상 밖인 상황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싸우러 왔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박우찬이 평소 그녀에게 내비치는 반응을 고려할 경우, 지극히 합당한 판단이었다.

물론 티아마트가 박우찬에 대해 다소 웃을 수 없는 오해를 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티아마트는 알고 있었다.

자신은 예쁘다는 걸!!

때문에, 정녕 박우찬이 자신에게 반했다 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외모 때문.

한 마디로 말해서, 단순한 육욕이리라.

충분한 시간이 있었다면 또 모를까.

당장 티아마트로서는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단순한 살의, 혹은 지상에 강림한 성좌라는 전략 물자가 타국으로 향하는 일을 피하기 위해.

정말로 믿고 싶진 않지만, 어쩌면 협회 측의 부탁을 받아.

박우찬이 자신의 목을 베러 왔다고 생각한 탓이다.

까놓고 말해, 조금 당황스럽기도 했다.

대화?

왜?

아니, 이제 와서?

"우스운 몰골이긴 하지."

당사자인 박우찬 또한 조용히 어깨를 늘어뜨렸다.

작금의 상황에 대해 성토하는 건지, 그렇지 않으면 스스로의 패션에 대해 이야기하는 건지 영 모를 일이었다.

다만.

"그래서? 떠날 거냐?"

"흠. 네 녀석도 동의한 이야기라고 생각했다만."

다소 어물거리는 어투로 그렇게 입을 떼는 모습은 무어라 말하기 힘들 정도로 우스꽝스러웠다.

비웃는다기엔 지나칠 정도로 쾌활한 웃음.

티아마트의 반응에 맞추어 잠깐 시선을 늘어뜨린 박우찬은, 이윽고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어째서?"

"네 녀석 또한 듣지 않았더냐?"

"아니, 정말로 그리 생각하기엔 아무래도 타이밍이 미심쩍지."

말했듯이, 두 세력 사이의 싸움에 짐이 되리라 생각했다기엔 다소 미심쩍은 부분이 더러 있었다.

자세히 설명한 적은 없지만, 티아마트 본인의 과거사를 고려해도 마찬가지였다.

정녕 그리 생각했다면 애시당초 대한민국 사회에 발을 들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생존을 위해서?

자신을 노리는 성좌와 몬스터, 양 쪽의 추적을 피하려다 정이 들어서?

물론 그렇게 말할 수는 있겠지.

그렇지만.

정이 든 탓에 더 이상 이 나라에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기엔, 말마따나 지나칠 정도로 뒤늦은 이야기였다.

때문에.

"까놓고, 나 때문이냐?"

"……어째서 그런 말을 하느냐?"

"아니면 짐작 가는 게 없거든."

슬픈 듯 안타까운 듯, 그리 말하는 티아마트를 향해 박우찬은 쐐기를 박았다.

"내가 김민철 그 친구를 죽였으니까."

잠깐.

아주 잠깐, 티아마트의 입술이 슬며시 열렸다.

그러나 그렇게 열린 입은 어떠한 말도 자아낼 수 없었다.

달싹이며 몇 번이나 개폐를 반복하는 입.

결국, 티아마트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그런 말은 하고 싶지 않았는데."

"미안하게 됐수다."

"어찌 네 녀석은 그런 말을 하느냐. 어찌 네 녀석은 그리도 나를 비참하게 하느냐?"

여신은 조용히 마른 세수를 거듭했다.

다만, 그런 그녀의 손끝을 적시는 물기 덕분에 생각처럼 메마른 감상은 들지 않았다.

결국 여신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동시에, 생각했다.

하필이면 어째서 이런 상황에 그런 질문을 던지는지.

조촐하게 훌쩍이는 자신의 목소리가 영 듣기 비참했다.

"부정하긴, 힘들구나."

머리로는 알고 있었다.

예의 사태 당시, 죄를 지은 건 틀림없이 김민철 쪽이다.

오히려 박우찬은 당사자인 김민철에게 지나칠 정도로 관용을 베풀기까지 했으니.

티아마트로서도 시인할 수밖에 없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감정이라는 게 그토록 딱딱 떨어지는 물건은 아니지 않은가.

직접 김민철의 목을 쳤던 박우찬에 대한 미움, 은 없다고 생각한다.

아무리 그래도 거기까지 가면 너무 염치가 없으니까.

다만.

아쉬움. 슬픔. 통곡. 안타까움.

그런 감정들은 티아마트의 속내에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리고.

이번엔 그런 감정들이 폭발한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

놈들의 계획에 앞으로 대한민국 사회가 휩쓸릴 수밖에 없다면, 여신에게는 총 두 가지 선택지가 있다.

하나는 지금처럼 대한민국 사회가 입을 피해를 배려하여 먼저 떠나는 것.

다른 하나는 역으로 대한민국 사회의 전력을 여신의 힘으로 보강하는 것이다.

헌터를 만들고 그들에게 축복을 내려 협회의 힘을 북돋는다.

티아마트에게는 그럴 힘이 있었으니까.

요컨대, 두 가지 방법이 완전한 평형을 이루고 있는 지금.

전자에 무게가 기운다면 천칭을 기울일 무게추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번 선택의 경우, 티아마트의 마음을 기울인 최후의 물방울은 단 하나.

방금 전 이야기한 감정이었다.

즉.

"……후후, 여신이라는 자가 실로 꼴사납기 그지없구나."

티아마트는 두려워했다.

상실의 아픔을.

잃어버리는 슬픔을.

자신이 그토록 아끼던 아이들의 죽음을.

합당한 이유가 있었던 김민철이 맞이한 결말마저 이토록 고통스럽다.

그렇다면.

사실상 단념할 수밖에 없었던 김민철과 달리, 별다른 이유 하나 없이 죽음을 맞이할 그들의 생명.

사람의 삶과 그 무게는, 도대체 얼마나 무거운 짐으로 작용할 것인가.

위대한 지모신의 이름을 쓴 후계자는 바로 그 점을 두려워했다.

……물론, 실상은 단순한 외면에 지나지 않는다.

당장 티아마트가 이 나라를 떠난다 해서 놈들이 계획을 포기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풍문으로라도 아이들의 죽음을 접하게 될 가능성이 컸다.

허나, 티아마트는 차라리 그게 낫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손으로 김민철을 몬스터로 뒤바꾸어, 죽음을 맞이하게 두어야 했던 그 날.

바로 그 날과 같이, 자신으로부터 난 힘과 권능으로 자신이 보듬던 아이들의 목을 씹는 동포들의 모습을.

아니, 아이들의 죽음을 직접 눈 앞에서 목격해야 하는 작금의 상황에 비하면.

그래서 도망치려 했다.

만일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주민들이 들었다면 탄식을 금할 길이 없는 이야기겠지.

종족의 명운을 건 싸움 끝에, 스스로의 생살을 뜯어 바치던 신과 괴물.

성좌와 몬스터 사이의 전쟁에 지쳐, 인간계로 몸을 날렸던 티아마트.

그런 그녀가 이제 와서 인간이라는 종족의 안위에 눈이 멀어 저런 행동을 보이고 있다니.

아이러니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었다.

"그러니, 내 부탁하마."

"아니, 잠깐."

"이대로 눈을 감아다오."

무릎이라도 꿇을 기세로 말하는 티아마트의 모습에, 도리어 박우찬 쪽이 당황할 정도였다.

"본인은, 본인은 어쩌면 이 세상에 내려와선 안 되었을지도 모른다."

"무슨 말을 그렇게……."

"어쩌면 지금과 같은 힘을 손에 넣지 못하는 쪽이 나았을지도 모르지."

아니면 태어나지 않는 편이 나았을지도.

티아마트는 진심으로 그리 생각했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던 짐승일 적으로 돌아가고 싶을 정도였다.

그 때까지만 해도, 아직 이름 하나 없던 여신의 말예에겐 생존이 가장 큰 문제였으니까.

어째서 신과 괴물들이 지상으로 돌아가려 했었던 것인가.

어째서 몬스터들은 자신들을 괴물로 전락시킨 성좌에게 그토록 분노했던 것인가.

이를 실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지상에서 얻은 과실은 실로 달콤하고 그 이상으로 지독했다.

생존을 위해 살아가던 어린 여신에게, 두 종족의 내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기에 뛰쳐나왔다.

그리고.

이 땅에서 수많은 만남을 가졌다.

순수한 신앙을 만났다. 이토록 감미로운 환희가 있다는 사실을 그 때 처음 알았다.

자애로운 애정을 만났다. 이토록 다른 존재를 배려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날 처음 알았다.

추적추적한 욕망도 만났다. 이토록 추잡한 마음을 품고서도 올바른 말을 하려 드는 그 마음씨에 사랑을 알았다.

그렇지만.

이 이상은 힘들다.

그렇지 않은가.

고작해야 한 번의 이별. 고작해야 한 번의 작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신의 마음은 벌써부터 너덜너덜했다.

애써 상처를 치료하고 있던 순간에도, 앞으로 있을 상실을 그리는 순간 마음이 쩌적 하고 얼어붙을 만큼.

때문에.

"그렇지 않으면, 네 손으로 나를 죽여다오."

여신은 그렇게 말했다.

일찍이 생존을 위해 버지럭대고 있던 괴물에게도, 이 이상의 아픔은 버거웠기에.

차라리 죽어 끝낼 수 있다면 그조차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박우찬에게도 괜찮은 제안일 테지.

평소부터 여러 사정으로 살심을 억누르고 있어야 했던 녀석이니.

마지막 가는 길 선물로는 나쁘지 않으리라.

실제로도 그러했다.

덜컥, 그 말을 들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움찔한 몸을 억지로 억누르는 박우찬.

그런 박우찬을 바라보는 티아마트의 시선은 여전히 지독할 정도로 평온했다.

진심이다.

그리 확신할 수밖에 없었다.

동시에.

지금 박우찬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중압감 또한 바로 그 눈빛이었다.

만약 자그마한 거짓이라도 있었다면 박우찬은 그 즉시 좋답시고 검을 휘둘렀겠지.

이런 상황에서도 거짓말을 토하려 드는 괘씸한 여신의 모가지를 해골이 될 때까지 효수했으리라.

그렇지만, 저렇게 나오니 역으로 칼을 꺼내기 힘든 부분이 있었다…….

'……아니.'

박우찬은 그런 스스로의 감상에 고개를 가로저어 부정했다.

만약 그 뿐이었더라면, 자신은 망설임 없이 공격을 감행했겠지.

솔직히 말하자면, 몬스터를 상대로 할 땐 그런 걸 신경 쓰는 타입도 아니잖은가.

때문에, 지금 박우찬의 어깨를 붙들고 있는 감정에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그렇게 말할 수 있으리라.

양심.

'좆도 몰랐네.'

티아마트가 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이야.

당연한 이야기였다.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막말로, 결국 몬스터 따위의 사정.

박우찬이 알 바는 아니지 않은가.

문제는, 작금의 사정에 있어선 박우찬 또한 남이 아니라는 점이다.

까놓고 말해, 김민철을 죽인 건 자신이었으니까.

김민철의 죽음 자체에 책임감이나 후회를 느끼진 않는다.

그 새끼는 뒈질만해서 뒈진 거다.

다만.

박우찬이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김민철이 몬스터로서 죽었기 때문.

다시 말해, 티아마트가 손을 썼기 때문이었다.

박우찬이 사람을 죽였다는 알량한 죄책감에 시달리지 않도록.

당시 박우찬이 망설이고 있던 이유를 그렇게 착각한 티아마트는, 자폭을 앞두고 놈을 몬스터로 승화시켰다.

요컨대, 지금처럼 박우찬이 사람을 죽였다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는 건 전적으로 티아마트 덕분이었다.

여신에게 제 자식을 죽이도록 손을 거들게 해서.

박우찬이 감당했어야 할 마음의 짐을, 티아마트에게 옮긴 셈이다.

효과는 확실했다.

여태까지 박우찬은 티아마트가 그런 부담을 느끼고 있었으리라곤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그리고.

그런 티아마트의 소리 없는 헌신이, 박우찬으로 하여금 지금과 같은 말을 입 밖에 내도록 만들었다.

"야."

"결정을 내렸느냐?"

"어."

"그래. 허면, 아프지 않게 부탁하마."

"헛소리 말고."

"응?"

쓰읍, 방독면 너머로 혀를 차는 소리가 들린다.

역시 익숙치 않다는 거겠지, 이런 상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제 자식을 죽이는 일이 익숙한 어미는 세상 천지 어디 있겠나.

이번에는 자신이 부담을 감수해야 할 때였다.

즉.

"만약, 누구 하나 죽지 않을 수 있다면 어떻게 할래."

"어?"

"내가 지켜주마."

네가 그토록 아끼고 보살피는 협회 사람들.

혹은, 대한민국 협회 그 자체.

어차피 놈들에게 선전포고를 한 이상, 시시콜콜한 수작을 부릴 생각도 없었다.

놈들의 계획은 처음부터 대놓고 훼방을 놓을 생각이었으니까.

그러므로.

"네가 그리 부탁한다면."

"아니, 갑자기 무슨."

"그러면 이 나라에 남아 있을 거냐."

박우찬.

헌터가 되어, 도축업자라는 새된 이름으로 불리게 되길 어언 몇 년.

이 날, 사내는 처음으로 몬스터에 대한배려라는 걸 시도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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