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 그녀가 여신이라 불리기까지
* * *
문득 티아마트는 예전 일을 떠올렸다.
여기서 예전이라 함은 당연히 그녀에게 있어서도 옛날.
다시 말해, 아직 지상에 강림하기도 전.
그녀가 여신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이전의 이야기였다.
그녀의 가장 오랜 기억 속에서, 그녀는 B랭크 몬스터였다.
날 때부터 B랭크였던 건지, 그렇지 않으면 E랭크에서 차근차근 성장했던 건지.
거기까진 역시 기억할 수 없었다.
애초부터 제대로 된 지능이라는 게 존재하질 않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비로소 본격적인 자아라 할 만한 물건이 싹튼 게 바로 B랭크 후반.
게다가 그조차 지금 생각하면 그리 오랜 시간은 아니었다.
'당시에는 태산을 오르는 일보다 힘겨웠건만.'
A랭크가 된 이후 벌어진 일들이 너무나도 부산스러웠기 때문이다.
사냥.
생존 경쟁 끝에 동족을 포식하고 그 마력을 흡수한 티아마트는, 어느 날 처음으로 권능에 눈떴다.
당시에는 한층 더 강력한 힘을 손에 넣었을 뿐이라 생각했지만, 그 날을 기점으로 티아마트의 삶은 180˚ 뒤바뀌고 말았다.
왜냐하면 그녀가 각성한 능력이 먼 옛날 소실된 여신의 권능었던던 탓이다.
원숭이 타자기 이론.
수많은 원숭이가 무한한 시간 동안 타자기를 두드린다면,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집필할 수도 있다.
그토록 천문학적인 우연 끝에 일어난 일인지, 그렇지 않으면 모종의 요인이 있었던 건지.
당장 그녀로서도 알 수 없었다.
하물며 아직 여신의 이름조차 습명하지 못했던 당시엔 더더욱.
모든 괴물은 티아마트로부터 났다.
역설적으로, 메소포타미아 신화 출신 몬스터에겐 많든 적든 티아마트의 피가 흐른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짐작하기만 할 뿐.
애초에 메소포타미아 신화라는 명칭도 모르던 그녀가 해답을 알 리도 없지.
때문에.
잠깐의 평화가 지속되었다.
폭풍전야라고 해야 할까.
신들도, 괴물들도 모조리 숨을 죽이고 그녀에게 집중했다.
공물이라는 이름 하에 마력을 바쳤다.
여신의 이름을 계승하지 못한 미물에게 있어, 가장 아늑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그러한 헌신 끝에 그녀는 다시 한 번 성장의 기회를 맞이했다.
현세의 기준으로 S랭크에 달하는 힘을 손에 넣은 것이다.
환호. 감탄. 숭배.
어렵사리 나타난 여신의 후예가 마침내 여신과 동등한 힘을 손에 넣은 그 날.
수많은 신들과 몬스터들이 후예의 능력을 검증했다.
어쩌다 보니 마침 여신의 능력 중 하나를 계승한 건지, 그렇지 않으면 여신의 재현에 성공한 건지.
대답은 후자였다.
그렇게.
전쟁이 시작되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모신의 재현을 지상 명제로 여기던 양 진영은,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당연한 이야기였다.
여신 티아마트의 이름을 계승한 적법한 후계자.
다시 말해, 그녀가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나 되는 피해가 나와도 상관 없다.
목숨을 걸고 맞서 싸워라.
무리를 위해 목숨을 바쳐라.
승리할 수만 있다면, 여신 티아마트의 이름 하에 다시금 종족을 재건할 수 있다.
바야흐로 창세기의 재현이었다.
사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종족의 99%가 소멸해도 다시금 종족을 부흥시킬 수 있는 존재.
여신 티아마트의 권능이란 그토록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동포의 미래를 위해 자신들의 생명을 뿌리까지 뽑아 바치는 우행.
종의 명운을 건 전쟁의 불씨가 된 당사자는, 아직까지도 그 날의 풍경을 이해하지 못했다.
물론 그녀 또한 몬스터였다.
삶을 위해, 생존을 위해 동포의 목숨과 마력을 취하는 건 실로 당연한 이야기라 생각한 적도 있었다.
허나, 아무리 그래도 눈 앞에서 벌어지는 살육극은 도를 넘었다.
윤리나 도덕적인 면에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신과 마. 성좌와 몬스터.
두 종족이 벌이는 싸움은, 어딜 어떻게 보아도 생존을 위함이 아니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전쟁이 끝난 직후.
양 진영의 감시가 희미해지는 틈을 타 바깥 세상으로 몸을 던진 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생존을 위한 행동이라면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종족 사이의 전쟁은 그녀에게 있어선 단순한 낭비에 지나지 않았다.
비교적 최근까진 일개 몬스터에 지나지 않았던 그녀가 다툼을 미워하는 성격으로 자란 건 바로 그 탓이었다.
현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일찍이 그녀를 비롯한 만신들을 섬겼다 하는 만신전.
위대한 고대 문명의 흔적 따위는 더 이상 남아있지 않았다.
덕분에 그녀는 졸지에 때 아닌 누명을 쓰고 중동 지역을 벗어나야 할 수밖에 없었다.
염병할 일이었다.
'설마 히잡인지 뭔지 하는 물건이 그토록 큰 문제가 될 줄이야.'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녀는 이슬람 문화에 무지했다.
히잡인지 뭔지 하는 물건에 대해선 알지도 못했고, 애초에 그런 물건을 써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문제는 당시 중동 지역이 대침공의 영향으로 내전을 벌이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저 아라비아 반도에 있어, 그녀의 외모는 지나칠 정도로 눈에 띄었다.
미색도 미색이지만, 그 이상의 이유가 있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중동 사람들이 보기에 그녀는 지나칠 정도로 서방 측 인물처럼 보였다.
중동 풍습에 무지한 적발의 미녀가 서방 세계에서 보낸 스파이라는 오명을 쓰게 되는 데에는 실로 얼마 걸리지 않았다.
티아마트의 이름을 습명한 그녀로서도 당황스러운 사태였다.
분명히 현세로 나갈 수만 있다면 그녀를 섬기는 이들이 구름처럼 몰려들 것이라 들었거늘…….
성장하며 인간과 같이 변한 모습 또한 그렇게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여신과 같이 변했다고 해야 할까.
머리에 난 용의 뿔.
등허리에서 돋은 꼬리.
하늘을 가릴 듯 솟구친 날개.
어느 쪽이든, 인간이라고 판단하기엔 무리가 있는 외모다.
물론 그녀의 미모는 이교도에게 매서운 무슬림조차 눈독을 들일 법도 했다.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면, 이슬람의 광전사들은 여인의 의사를 묻지 않는 데에 아주 독이 텄다는 점.
그녀는 아직도 자신이 아라비아 반도에 머무르고 있었다면 필시 누군가의노리개가 되었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렇게.
현세에 강림한 여신은 꼴사나운 몰골로 대한민국까지 도망쳤다.
자신들이 머무르던 세계에서 직접 문Gate을 여는 건 힘들었지만, 현세에 강림한 이후 걸음을 옮기는 건 어렵지 않았다.
마침내 대한민국 땅에 도착한 이후로도 그녀의 방침은 변하지 않았다.
싸움에 신물이 난 몬스터.
거기까지 가면서 현세의 풍속에 대해 다소 배움을 익힌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공표해도 좋을 게 하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때문에, 이후의 행동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습을 낮추고, 경거망동하지 않는다.
자신을 여신이라 섬기며 기도를 바치는 부류.
자신을 괴물이라 말하며 다른 기대를 품는 부류.
어느 쪽이든 그녀로서는 신물이 날 정도였으니까.
때문에, 그녀가 다시금 모습을 드러낸 건 다름이 아니었다.
동포들의 발길질에 무너져내리던 마을.
거기에서 그녀는 처음으로 순수한 신앙을 맞닥뜨렸다.
죽어가던 부모들은 갑자기 자신들 앞에 나타난 그녀를 헌터 비슷한 누군가라고 생각했다.
실상은 정 반대였건만.
그렇게 착각한 탓일까?
부부는 그녀에게 자신들의 아이를 맡겼고,자신들이 알고 있는 모든 신들에게 아이를 위한 기도를 바쳤다.
그리고 그제서야 그녀는 깨달을 수 있었다.
어째서 수많은 신들이 그녀를 향해 목숨을 바쳤던 건지.
몬스터들을 제압한 이후, 그들이 무엇을 바라고 있었는지.
여신의 이름을 계승한 이래 처음으로 들은 기도 앞에서, 그녀는 깨달음을 얻었다.
필시 그들 또한 이를 바랐음이라.
신앙.
절박한 자들의 바람.
자신을 향한 숭배는, 확실히 한 번 맛보고 나선 도저히 잊어버릴 수 있을 만한 물건이 아니었다.
종족의 미래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제 몸을 떼어 파는 우행에 비하면, 이처럼 순수한 기도는 어찌나 아름다운가.
처음으로 신과 같은 입장에 서서 기도를 받은 그녀는, 그들의 기도에 응하기 위해 아이를 받아 키웠다.
동시에 생각했다.
이 아이에게는 이토록 험난한 세상에서도 남부럽지 않게 살아갈 수 있을 힘을 내려주자고.
여신 티아마트.
성좌의 이름을 계승한 그녀는, 그것이 자신의 첫 번째 신도들에게 내릴 보수가 되리라 의심치 않았다.
여신의 이름을 계승한 이래, 그녀가 처음으로 싸움을 피하는 대신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낸 건 바로 그런 이유가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녀석의 마음을 거절한 일 또한 바로 그 일환이었을지도 모른다.
처음 맛보는 신앙. 처음 맛보았던 기도.
어쩌면 녀석에게도 제 부모와 같은 마음을 기대했던 걸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바라보던 시선이 점차 변질되는 와중에도 무엇 하나 눈치채지 못했던 건 그런 무의식의 발로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지금 와서 상상해 보면 그렇다는 이야기지만.
그렇게.
그녀 또한아주 잘 알고 있는 예의 사건이 일어났다.
여신은 자숙의 의미로 칩거를 시작했고, 바깥과의 접촉을 극단적으로 줄였다.
속세에 대한 실망.
양아들의 범죄에 대한 자책.
과연 어느 쪽이 더 크게 영향을 미쳤을진 당사자인 그녀 또한 알 수 없었다.
단지, 시간만이 약이 되었다.
헌터 협회의 헌신.
협회장을 필두로 그녀와 접촉한 사람들이 바치던 기도.
덕분에 점차 안정을 찾던 그녀가 어느 날 마주한 게 바로 박우찬이었다.
'이 녀석이라면 괜찮겠지.'
정말로 오랜만에 협회장을 비롯한 이들이 그녀에게 은총을 청했을 때.
어느덧 여신의 이름도 익숙해진 티아마트는 그리 생각하며 후보를 선정했다.
도축업자.
당시까지만 해도 그렇게 불리고 있던 박우찬이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다소 자포자기한 면도 있었다.
이 녀석이라면 괜찮으리라 생각한 점도 없잖아 있었지만, 그건 단순히 기대치가 낮았기 때문.
적당히 덕담 몇 마디 보태 돌려보내자.
당시 그녀는 진지하게 그리 생각했고,그렇기에 면담 자리에서 다짜고짜 칼을 맞을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물론 머리 끝까지 화가 났다.
하지만 머리를 식히고 나니 조금은 흥미가 앞섰다.
왜냐하면 당시 박우찬이 외쳤던 말 때문이었다.
아니, 몬스터라고 소리를 질렀을 뿐이었지만.
당시 그 자리에 동석하고 있던 이들 중 어느 누구도 그 진의를 알지 못했다.
도축업자가 갑자기 미쳐버린 모양이로구나 생각할 뿐.
어쩌면 뿔이 돋아난여신의 모습을 보고 그렇게 판단했다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쪽이든, 놈과의 만남은 이처럼 다소 신선한 면이 있었다.
신들의 어머니이자 괴물들의 어머니로서 종족의 부흥을 떠맡은 적은 있었다.
여인의 모습을 취한 이후, 추악한 정욕을 품은 채 바라보는 시선 또한 있었다.
순수한 신앙 또한 달콤하기 그지없었지.
그렇지만.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단박에 몬스터라 파악한 뒤 칼을 휘두르던 살의.
한 조각의 빈틈도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농밀한 살의의 대상이 되었던 적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동시에, 안심할 수 있었다.
당시 자신을 향해 휘두른 칼날은 틀림없는 확신에 차 있었다.
요컨대, 도축업자는 단순한 분노에 몸을 맡겨 칼을 휘두른 게 아니었다.
협회의 주선 덕에 마주한 성좌.
스스로를 여신이라 자칭하는 존재를 보고, 사냥꾼은 순식간에 판단을 내렸다.
몬스터다.
뿔 때문일까? 그렇지 않으면 꼬리 때문일까?
어쩌면 날개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느 쪽이든, 남자는 그런 확신을 얻었다.
성좌가 몬스터일 리 없다?
무언가 착각했을 것이다?
아니, 옳은 건 나고 틀린 건 저 쪽이다.
정녕 눈 앞의 여자가 성좌라 한다면, 성좌들의 정체가 사실은 몬스터였을 뿐이겠지.
때문에, 사내는 망설임 없이 칼을 휘둘렀다.
덕분에 여신 또한 확신을 얻을 수 있었고.
이 녀석이다.
이 녀석이라면 괜찮다.
이 녀석이라면, 나를 보고 어떠한 기대도 품지 않는다.
수많은 신도들의 기도를 들었던 이래, 자신의 첫 번째 대전사에게 배신당한 여신 티아마트.
이후로도 협회의 부탁을 받아 그럭저럭 많은 이들에게 축복을 내렸던 건 사실이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신의 대전사.
여신에게 직접 계시를 받아, 여신을 위해 멸사봉공하는 존재.
신의 병사를 선정한 적은 없었다.
첫 번째 대전사가 있었을 땐,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까.
첫 번째 대전사와 갈라선 이후론,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칩거한 여신의 마음에 걸린 빗장을 풀 수 있었던 건, 다름 아닌 박우찬의 무정함 때문이었다.
정작 당사자는 싫어했지만, 그런 반응이 오히려 그녀의 마음에 불을 지폈다.
철없는 어린애와 같은 반응이었다.
손에 넣고 싶은 걸 보았을 때 도리어 반대로 행동하는 습성.
한 마디로 말해, 유치한 짓이라고 할 수 있겠다.
……별로 좋지 않은 결말을 맞이했던 대전사와의 인연 때문일까.
여신은 다른 무엇보다 자신에게 육욕을 품지 못할 대상을 우선했다.
동시에 생각했다.
저토록 농밀한 살의를 자신에 대한 선망으로 돌릴 수 있다면.
어쩌면 자신 또한 다시 한 번 온전히 마음을 열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빗장은 풀렸으되, 열리지 않은 문 앞에서 여신은 내심 그리 바랐다.
말하자면, 여신은 자신의 두 번째 대전사로 박우찬을 내정한 셈이었다.
자신을 향해 사감이 아닌 신앙만을 품은 존재.
작금의 박우찬은 도저히 그렇게 말할 수 없었으나, 여신으로서는 두 번 다시 '가족'을 만들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인연은 정말로 많은일들을 불렀다.
특히나 최근엔 더더욱.
여태까지 보냈던 시간들이 흐릿해질 법한 나날들이었다.
그 끝에서.
"이런 이런, 인기인은 힘들구나. 아니, 네 녀석이 본인에게 품은 마음이야 알겠다마는……."
"알긴 뭘 알아, 시발."
"으응? 수줍은 녀석 같으니라고."
……정말로.
정말로 좋은 꿈을 꾸었다.
다만.
꿈이라는 건 무릇 깨어 흩어지는 게 도리.
마침내 이 길고도 긴 꿈에도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핑그르 하고 몸을 돌려, 여신 티아마트는 자신을 향해 뚜벅뚜벅 다가오는 꿈의 끝을 마주 보았다.
실로 공교롭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언젠가 보았던 꿈의 시작과 같이, 마침내 다가온 꿈의 끝은 박우찬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