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0화 〉 여신의 요람
* * *
"……그래서 그냥 돌아왔다고?"
최승준은 그렇게 말했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아니, 뭐 어떡하라고 그럼.
물론 녀석의 말꼬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건 어렵지 않겠지.
트집을 잡는 것도 불가능하진 않으리라.
말 한 마디 없이 떠나려 했다, 이 쪽에도 통보 한 마디 없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결국 단순한 꼬투리 잡기에 지나지 않는다.
말마따나, 녀석이 따로 언질이라도 흘렸다면?
우리야 어쨌든, 협회 사람들은 일단 티아마트를만류하고 볼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여신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설령 당사자인 티아마트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한들 마찬가지다.
그렇다고 해서 이제 막 떠나겠다는 여신을 앞두고 데면데면하게 굴 순 없으니.
한 마디로 말해서, 엎드려 절 받기가 되고 만다.
하물며 우리 아카데미 측 관점에서 보자면 더더욱 그렇고.
녀석의 말대로, 티아마트의 권능이 녀석들의 손에 넘어가기라도 하면 크나큰 차질이 생긴다.
분신이 나포당하는 상황을 넘어, 권능이 분석당하기만 해도 마찬가지다.
실질적으로 전장에 내보낼 수가 없다는 뜻인데…….
그래서야 단순히 폐가 될 뿐이지 않느냐 되묻던 티아마트의 말을 나로서는 부정할 수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도의적인 책임 정도를 들먹일 수는 있겠지.
아무리 그래도 일언반구 없이 떠나는 건 너무하지 않냐는 식으로.
뭐, 어느 쪽도 내가 말하기엔 다소 우스운 면이 있다마는.
그조차 사실 억지에 가까운 형편이니.
애초에 티아마트는 이 나라의 성좌도 아니다.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해야 할 어떠한 의무나 책임도 없다는 뜻이다.
굳이 따지자면 협회와 나눈 계약을 이유로 들 수 있겠지만, 그조차 김민철이 죽은 지금에 있어선 영 마땅치 않은 상황.
하물며 김민철의 목을 친 당사자가 언급할 만한 문제도 아니다.
덕분에 나로서는 터덜터덜 협회를 뒤로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라면 이제 별다른 문제도 없겠다 반쯤 죽여놓겠답시고 칼을 빼들었겠지만, 지금은 그러기도 힘들고.
다름이 아니라, 면담 전 내게 이런저런 부탁을 남긴 양반들 때문이다.
뭐, 말이야 그렇게 했어도 최승준 또한 충분히 납득했다.
협회 또한 마찬가지.
만약 녀석이 중국이나 일본으로 떠난다면 곤란하긴 하겠지.
어느 정도 대책도 필요할 테고.
다만, 어느 쪽이든.
내게 들려줄 일도, 내가 염려해야 할 일도 아니다.
때문에, 나는 그대로 하숙집까지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머잖아 학교 측에서도 발표가 있겠지.
비록 교생 수준이었다고는 하나, 티아마트 또한 아카데미에서 근무했던 건 사실이고.
해외 파견, 혹은 기타 등등.
최승준 쪽에서 적당한 핑계를 준비하지 않을까 싶다.
즉, 당장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영 마뜩찮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므로.
마치 남의 일처럼, 나는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런 고민을 하고 있었나.'
물론 티아마트에 대한 이야기다.
설마 그런 염려를 하고 있었을 줄이야.
내키진 않지만, 마음에 빚이 생기는 기분이었다.
상대는 몬스터.
나로서는 그런 태도를 바꿀 수도 바꿀 생각도 없었지만, 여러모로 멋쩍은 상황인 건 사실이었으니까.
이제 와선 민폐를 끼칠 뿐이라 이건가.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응? 아, 이번에 있었던 일 때문에 조금."
"잘은 모르겠지만, 쉬엄쉬엄하세요."
자세한 속사정을 모르는 하연이는 그렇게 말할 따름이었다.
말마따나 곧 있으면 알게 되겠지만.
만약 그 때가 오면 하연이는 어떻게 반응할까.
당황할지, 그렇지 않으면 슬퍼할지.
아무리 그래도 좋아하진 않겠지만.
티아마트랑 사이도 나쁘지 않았고.
슬쩍, 그 얼굴을 바라본다.
깜빡이는 진주빛 눈동자.
몽롱하기 짝이 없는 그 얼굴을 보고 있자니,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일전, 녀석들의 목적을 들었을 당시.
무작정 모든 정보를 공유하고자 했던 내게 제동을 걸었던 건 바로 녀석이었다.
가라사대, 자신이 제 3차 대침공의 뿌리가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들으면 하연이의 기분이 어떻게 되겠느냐.
어쩌면 한 마디 말도 없이 떠나려 들지도 모른다…….
분명히 그런 식으로 이야기했던가.
확실히 설득력 있는 말이었다.
실제로, 하연이는 내게 폐를 끼치길 병적으로 싫어하는 면모 또한 있었고.
이제 와서 모습을 감춘다 한들 녀석들의 눈은 피할 수 없다던가, 목숨을 끊는다 한들 마찬가지라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내게 누를 끼치기 싫다는 이유만으로 모습을 감추려 드는 미래가 너무나도 선명하게 다가왔다.
덕분에 개인사에 해당하는 부분들은 넌지시 언질만 주는 수준에서 끝내기로 했고.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당사자인 티아마트의 내심이 담긴 조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연아."
"네?"
"만약 네가 소중한 사람한테 폐가 된다고 들으면 어떻게 할 거냐."
"오빠한테요?"
"어어, 누구든지……?"
"그럼 오빠 기준으로 한 번 생각해 볼게요."
그 때문일까?
나로서도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을 입에 담고 말았다.
"떠날 것 같은데요."
"폐가 될 테니까?"
"네."
내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하연이는 그렇게 답했다.
어떤 의미로는 예상했던 대답이었다.
조금 오싹하기도 했지만.
허면.
"만약 그 당사자가 말리러 오면?"
"오빠가요?"
"아니, 나 말고 누구라도 좋으니까."
"저한테 그럴 만한 사람은 오빠밖에 없는데요……."
저걸 고아들 특유의 자격지심이라 해야 할지, 그렇지 않으면 뭐라고 해야 할지.
어느 쪽이든, 그렇게 듣고 보면 안타까운 면도 있었다.
"뭐, 여러모로 생각하겠죠. 상황을 모르니 확답할 수는 없지만."
"그래?"
예상하고 있긴 했지만, 역시 돌아가겠다는 말은 섣불리 내뱉지 않았다.
아무래도 당시 티아마트의 염려는 정확했던 모양이다.
단지.
"그래도, 기쁠 거에요."
마치 꽃이 만발하듯, 하연이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은은한 미소.
고작해야 몇 마디 말에 지나지 않건만, 정말로 즐거운 듯 그렇게 이야기하는 모습에 무심코 넋이 나가기도 잠시.
나도 모르게 마른 세수를 하고 말았다.
"그런가."
"네."
그래, 기쁜 건가.
거 참, 뭐라고 해야 할지.
도통 감은 잡히지 않지만, 난감하기 짝이 없는 기분도 들었다.
……어쩔 수 없지.
슬쩍 몸을 일으켰다.
"하연아."
"먼저 잘까요?"
"그래."
다행스럽게도, 별다른 설명은 필요 없을 듯했다.
천천히 구사한 능력이 점차 범위를 늘린다.
평소엔 억지로 눈을 감고 시선을 돌리고 있던 능력이, 도시를 넘어 녀석의 기척을 추적한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키지 않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아니, 결국 몬스터고 그 새끼.
매일 몬스터를 보고 참아야 하는 노고에 비하면, 조금 찝찝하긴 해도 떠난다는 녀석을 잡아챌 이유는 없었다.
단지.
동시에, 생각하고 만다.
녀석은 그렇게 말했다.
앞으로 이 나라에 민폐를 끼칠 것이 명백하다고.
그렇기에 이 나라를 떠나려 한다고.
틀린 말은 아니다.
거짓말도 아니었겠지.
허나, 온전한 진심 또한 아니다.
모든 일엔 인과가 있는 법.
하나에 둘을 더하면 셋이 되고, 물을 뿌린 자리에 꽃이 피듯이.
그냥 폐가 되니까 나가겠다니.
'씨발, 그럼 메소포타미아 새끼들은?'
애초에 티아마트가 이 나라에 몸을 담은 시점에서,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 괴물들은 대한민국을 노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 예의 괴물들은?
어차피 이슬람이 죽여줄 테니까 괜찮다 이건가?
설마 그럴 리가.
다시 말해, 녀석이 떠나기로 결심한 건 단순히 최근 깨달은 놈들의 목적 때문만은 아닐 거다.
그게 뭐 어쨌냐는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 녀석에게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할 의무가 없다는 것도 사실.
아니, 애시당초 나부터가 이 나라를 위해 헌신하라던가 하는 타입도 아니다.
단지.
애매한 의무감.
혹은, 마음의 빚.
그렇게 불러야 할 무언가가 방금 전부터 내 속내를 간질이고 있었다.
딱히 절실한 건 아니다.
굳이 따지자면 마지막으로 한 번 붙들어보는 느낌.
솔직히 그조차 별로 내키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이대로 두긴 껄쩍지근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지 않은가.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 괴물들이 녀석의 신병을 노리고 있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녀석은 그걸 알면서도 이 나라까지 왔다.
어느 정도 계산 또한 있었겠지.
자신이 가져다줄 수 있는 이익.
지금 이 나라 정도면 예의 괴물들을 퇴치할 수도 있을 거라는 예상.
혹은, 정말로 이슬람 성전사들에게 모든 걸 맡긴다는 도박이든 뭐든.
애시당초 거리도 그럭저럭 있으니까 적당히 생각했을 뿐일지도 모르고.
어느 쪽이든, 녀석은 그렇게 이 나라에서 몇 년을 머물렀다.
적어도 나와 동년배였던 김민철이 그럭저럭 장성할 때까지 줄곧.
그런 녀석이 이제 와서 마음을 바꿔먹을 만한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면…….
'김민철의 죽음, 인가.'
글쎄, 어떨런지.
어쩌면 정답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틀렸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아무래도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어미 앞에서 자식을 죽인 당사자로서는, 아무래도 거기에 대해 양심의 가책.
혹은, 무언가의 의무감을 느끼지 않기도 힘들었다.
벽에 걸어두었던 코트를 걸치며, 나는 방 밖으로 걸음을 딛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