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9화 〉 여신의 요람
* * *
"……뭐, 그래. 여기까지 온 이상 부정할 수도 없을 테지."
그리 말하며, 티아마트의 분신체는 얇은 홑옷 위로 조심스레 외투를 걸쳤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태연자약하게 드러누운 몰골이었던 주제에, 이제 와서 부끄럽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물론 지금 중요한 부분은 거기가 아니었다.
"이 나라를 떠나려 한다."
"그러냐."
여신 티아마트.
바야흐로 몇 년만에 대한민국을 떠날 예정이라 시인하다.
"놀라진 않는구나?"
"아니, 뭐……."
그러기엔 당장 눈 앞에 있는 분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명백했다.
다른 녀석들이라면 또 모를까, 본체를 구분할 수 있는 내겐 지나칠 정도로 눈에 띄는 사실.
방금 전과 같은 폭탄 발언을 듣고도 오히려 마음이 다 놓일 지경이었다.
차라리 납득할 수 있었다고나 할까.
한 눈에 봐도 이상한 상황이었으니까.
도리어 별다른 이유는 없지만 일단 한 번 휴가라도 내 봤다 말하는 쪽이 훨씬 더 당황스러웠겠지.
"틀린 말은 아니로구나.허면, 본인이 어째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인지 그 이유도 짐작이 가느냐?"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로서는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다만.
모든 사물에는 인과가 있다.
하나와 둘을 더하면 셋이 되고, 물을 뿌린 자리에 꽃이 피듯이.
말인즉슨 티아마트가 대한민국을 떠나려 하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리라는 소리다.
그리고 요 최근 티아마트가 마음을 바꿔 먹을 만한 사건은 단 하나.
놈들의 진정한 목적이다.
'배신하려는 건가?'
솔직히 말하자면,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역시 그 쪽이었다.
다만, 섣불리 입 밖에 낼 수 있는 의혹도 아니다.
나름대로 합당한 판단이라고는 생각하고 있지만.
티아마트는 몬스터.
거기에, 본인도 시인했다시피 규격 외 등급 몬스터의 힘 또한 아주 잘 알고 있다.
지레 겁을 먹어 배신하고자 생각할 동기는 충분하다.
그러나, 이건 결국 내 사견 섞인 판단.
만약 아니라고 한다면?
아무리 그래도 여태까지 별다른 문제 하나 없던 협력자를 제대로 된 근거도 없이 배신자로 몰다니.
내 캐릭터를 고려해도 허락될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평소처럼 투닥대는 수준이라면 또 모를까.
결국 내가 택할 수 있는 대답은 오로지 침묵 뿐이었다.
"귀여운 녀석."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티아마트는 피식 하고 웃더니 그렇게 말했다.
평소와 달리 잔뜩 진이 빠진 모습이었다.
"어느 정도 짐작이야 하고 있겠다마는, 놈들의 목적 때문이니라."
나 또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신세계 질서Novus Ordo Seclorum.
문자 그대로, 제 3차 대침공 이후 찾아들 신세계.
새로운 질서를 바란다는 명목 하에 인류를 배신하기로 서원한 매종노들이다.
다만.
내가 예상할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
정작 어째서 티아마트가 그런 말을 한 건지는 나로서도 역시 짐작이 가질 않았다.
여태까지 티아마트는 별다른 문제 없이 지상에 강림한 성좌로서의 책무를 수행했다.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내 개인적인 선호와는 별개로.
말이야 저렇게 하긴 했지만, 그런 티아마트가 이제 와서 규격 외 등급 몬스터가 두려워 도망치는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었다.
애초에 정말로 제 3차 대침공 내지 규격 외 등급 몬스터가두려워 떠나려는 거였다면, 보다 적합한 순간도 여럿 있었을 테고.
"굳이 꼽자면, 평소운 박사 때문이라고 해야 하겠지."
"엥?"
그러므로.
티아마트가 입 밖에 대고 거론한 직접적인 원인은 따로 있었다.
응?
여기서 왜 평소운 박사의 이름이?
갑자기 분위기 평소운.
"알고 있겠지만, 그 여자는 바야흐로 세기의 천재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당장 내가 새로 익힌 마법들만 해도 그렇고.
거기에, 인공 게이트 개발의 첫걸음을 뗀 솜씨까지.
비록 그 이상으로 전투에 대한 재능이 없었을 뿐, 마력 공학에 있어 평소운만한 인재는 향후 100년 가까이 나오지 않겠지.
당사자를 직접 보기 전까진 고작해야 대한민국이라는 우물 안 개구리라 평했던 나조차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허면, 어찌 되겠느냐?"
"뭐가 말이지?"
"네 녀석도 여신 티아마트라는 이름이 어떤 가치를 지니고 있는진 익히 알고 있을 테지."
"어어."
"그렇다면, 만에 하나 놈들이 본인의 분신을 손에 넣으면 어떻게 되겠느냐?"
물론 티아마트의 말과는 다르게, 일반적으로 분신을 손에 넣는다는 건 불가능했다.
씨발, 만약 그런 일이 가능했으면 김민철부터 티아마트의 분신으로 이루어진 재료를 사용해 장비를 갖췄겠지.
분신은 결국 자신의 단면을 마력으로 투영하는 권능.
만에 하나 분신이 죽음을 맞이한다고 쳐도, 머잖아 마력으로 되돌아갈 뿐이다.
문자 그대로 기화되는 셈.
문제는, 그러니 괜찮다고 말하기엔 어디 인공 게이트 개발은 현실적인 이야기냐는 반문이다.
막말로, 보좌 한 명 없이 인공 게이트 개발을 성사시킨 평소운 박사다.
거기에는 틀림없이 예의 조직의 끄나풀 된 몬스터들이 불어넣은 지식이 아낌없이 사용되었겠지.
허면, 저들에게 분신을 잡아둘 만한 기술이 없다고는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나.
애초에 당사자인 티아마트의 말에 따르면 분신은 성좌들 사이에서 다소 흔한 기능.
정말로 몬스터들이 신화 속 패배를 설욕해 이 지상으로 강림한 거라면?
당연히 신들의 분신 능력Avatar에 대처하는 방안 또한 준비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것보다, 100% 되어 있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신들을 타도할 수 없었을 테고.
예를 들어, 그리스 로마 신화의 디오니소스는 자신의 단면이 족히 100체 이상이라 일컬어지는 신이다.
즉, 분신 능력에 대한 대처가 존재하지 않을 경우.
단순 계산으로 올림포스 12신이 아니라 올림포스 1200신을 상대해야 할 가능성도 있다.
이미 한 번 패배한 괴물들이 결과를 뒤집을 정도라면, 당연히 그에 대한 대처 또한 존재한다 판단하는 편이 합리적이다.
그리고.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그 시점에서 여신 티아마트라는 이름은 지나칠 정도로 위험하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이렇다.
여태까지 신세계 질서가 동원한 고랭크 몬스터의 숫자도 만만치 않은 편.
하나하나 따져보자면, 먼저 하연이와 만났을 당시 조우한 드래곤 세 마리.
아카데미 지하 게이트에 풀어놓은 악마가 하나.
몽마의 여왕에 귀수산, 심지어 구미호까지.
현장학습 당시 만파식적 따위를 통해 동원한 두두리까지 포함하면 도합 8마리다.
거의 한 달에 한 마리 페이스로 고랭크 몬스터를 보내고 있다는 뜻인데…….
티아마트는 최소 열 마리 이상의 고랭크 몬스터를 홀로 양산할 수 있다.
심지어 이조차 최소치고, 본격적으로 셈하기 시작하면 가뿐히 20마리 이상.
혼인회의 습격이나 파견한 헌터 출신 살수들까지 포함해도 숫자가 부족할 정도다.
게다가, 그렇게 잉태한 몬스터들이 후일 메소포타미아 신화 모든 괴물들의 어버이가 되었다는 전설까지.
죽여야 할 몬스터가 늘어난다는 건 나로서도 반길 일이다.
그렇지만, 적들의 병력이 끝없이 충원된다는 건 조금 의미가 다르다.
하물며, 가장 큰 문제는 거기가 아니었다.
'티아마트의 축복.'
김민철의 최후를 장식했던 권능.
즉, 인간을 몬스터로 승화시키는 힘이다.
아마도 티아마트가 잉태한 괴물의 피로부터 인간을 빚었다는 일화에서 기인하는 능력인 듯한데…….
만약 놈들이 그런 기능을 손에 넣는다면?
정말로 인간이라는 종을 포기하는 녀석들 또한 분명히 나올 거다.
신세계 질서.
개중에서도, 몬스터에게 협력하는 권력자들의 경거망동을 막고 있는 건 다름 아닌 종족적 한계다.
설마 진심으로 나라를 팔면 대침공을 주도한 몬스터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다 착각하는 놈들이 있을까.
우리 나라 권력자들이 바보도 아니고.
현실적으로, 놈들의 계획 하에 제 3차 대침공이 발발한다면 우리 나라는 인간 목장이 되는 게 한계겠지.
나라를 팔아먹은 놈들은 만일 그들의 협력 없이 규격 외 몬스터가 강림한다면그조차 힘들 거라 생각하고 있는 거고.
하지만.
만에 하나, 몬스터가 될 수 있다고 들으면?
이미 한 번 인류를 팔아먹은 녀석들이다.
완전한 몬스터로 거듭난 끝에 규격 외 등급 몬스터의 심복 자리를 노리는 녀석들 또한 분명히 나올 거다.
것보다, 예의 권능을 개량한 끝에 테러에 사용하기만 해도…….
'뭐 이렇게 종합 선물 세트야.'
몬스터 양산.
고랭크 몬스터 병력 보충.
거기에 인간을 몬스터로 승화시키는 능력까지.
메소포타미아 신화 속 신들과 괴물들이 티아마트의 신병을 확보하려 들었다는 이유도 짐작이 갔다.
아니, 전략 물자 아니냐 이거.
"해서?"
"으응?"
"본인은 그런 이유로 이 나라를 떠나려 하느니라. 이 이상 머무르다간 도리어 이 나라에 화를 가져오게 될 테니까."
"……으음."
"여태까지 본인에게 신앙을 바쳤던 아이들한테도 미안할 일이니."
때문에 떠나려 한다.
티아마트의 의견은 확고했고, 반박할 말도 마땅치 않았다.
"도대체 누가 네 녀석에게 헛바람을 불어넣은 건진 내 묻지 않으마."
다만.
담담하게, 티아마트는 물었다.
지친 듯, 기대하는 듯.
방금 전, 내가 협회 최상층에 발을 들였을 때와는 정 반대되는 모습으로.
"지금 네 녀석에게 본인을 붙잡아야 할 이유가 하나라도 있더냐?"
……그리고.
안타깝게도, 내게는 당장 녀석의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말이 부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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