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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47화 (147/371)

〈 147화 〉 여신의 요람

* * *

"여신 티아마트가 휴가를 냈다."

헌터 아카데미, 교장실.

학생들 가르치랴 마법도 다듬으랴 검술도 연습하랴 한창 바쁘던 나를 향해, 최승준은 그리 말했다.

아니, 존나 뜬금없네.

"그러냐?"

"그래. 그러니 네 쪽이 상황을 확인해 주면 고맙겠군."

"엉?"

무슨 소리야 그건 또.

오늘따라 최승준의 태도가 이상했다.

난데없이 티아마트의 휴가 사정을 나한테 설명하는 것만 해도 그렇고.

"……너야말로 무슨 소리냐?"

"응?"

"상대는 여신이잖나. 아니면, 다른 일정이라도 있나?"

뭐라는 거야, 이 새끼.

혹시 최승준네 기업에선 사원 개개인이 휴가를 어떻게 쓰는지 감찰하기라도 하는 건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 정도였다.

만약 그렇다면 완전히 정신 나간 기업인데.

다만, 짐작이 없지는 않았다.

내게 성좌란 어디까지나 몬스터의 일종.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몬스터 주제에 거드름이나 피우고 자빠진 호로 새끼들이다.

그렇지만.

내가 아닌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떨까?

'십중팔구 진짜배기 신이라고 대답하겠지.'

인류가 게이트라는 미증유의 위협에 직면했을 때.

머나먼 별빛 하늘 너머에서 내려와 인류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존재들.

그게 바로 대중적인 성좌에 대한 인식이다.

하물며, 대침공의 진상에 대한 설명을 들은 이준구나 최승준이라면 더더욱.

일찍이 이 별을 지배했던 초상적 신격.

그리 생각할 수밖에 없겠지.

뭐, 성좌의 정체가 몬스터라는 말도 정확한 표현은 아니고.

몬스터가 성좌라는 이름으로 둔갑한 게 아니라, 대다수 설화에 있어 신과 괴물의 혈통이 같은 혈통에 속할 뿐.

내 주장을 한 마디로 말하자면 제우스도 티탄의 혈통이니 몬스터라는 소리인데…….

나와 같은 감각이 없다면 이해할 수도 없는 소리다.

티아마트 쪽도 구태여 설명했을 리 없겠지.

요컨대, 최승준의 시점에서 보자면 티아마트는 정말로 지상에 다시금 강림한 여신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그야 단순히 휴가를 낸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겠지.

'그럼 이 놈은 여신을 교직원으로 써먹고 있는 건가?'

새삼 생각하면 미친 새끼였다.

단지.

"그걸 내가 왜?"

"너 말고 누가 있어."

어처구니없다는 듯, 최승준은 그렇게 반문했다.

응? 그런가?

조용히 생각해 봤다.

평소 티아마트가 머무르는 장소.

협회 최상층, 비밀의 방이다.

거기에 들어갈 수 있는 건?

티아마트의 허가를 받은 극히 일부 뿐.

때문에, 여신과 얼굴을 마주할 수 있는 건 실질적으로 협회와 연줄이 있는 사회 최상층에 한한다.

최승준이 티아마트의 존재를 몰랐던 이유 또한 후자 때문일 테고.

실제로, 우리들 중에서 티아마트의 존재를 미리 알고 있던 건 나와 이준구 단 둘.

개중에서도, 이준구는 국회의원 일로 바쁘니.

나밖에 없었다.

"애초에 네가 데려왔잖나."

"하긴, 그렇게 들으니 어쩔 수 없구만."

내키진 않지만, 나를 부른 이유도 이해가 갔다.

하여튼, 오라질 년.

이럴 때에 별다른 말도 없이 휴가를 내?

최소한 뭐라고 한 마디 말은 남겼어야 할 거 아니야.

지긋지긋한 기분에 무심코 이마를 짚고 말았다.

그런 나를 향해 첨언하는 최승준의 한 마디.

"뭐, 소위 말하는 여신의 변덕이라는 거겠지."

"변덕은, 지랄."

"……가끔씩 보면, 여신이 어째서 네게 유달리 마음을 열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든다."

"엉?"

마음을 열어?

뭔 소리래.

뜬금없는 최승준의 발언에 미간을 찌푸린다.

그런 내 시선을 받고 어깨를 좁히는 최승준.

"나도 풍문으로 들었을 뿐이다만, 너와 이준구 중 노골적으로 네 쪽을 편애한다던데."

"아아."

아니, 그건 단순히 그 자식이 자기를 경애하지 않는 쪽의 손을 들어주었을 뿐인데.

트라우마라고 해야 할까.

거기까지 설명하려면 또 김민철에 대한 이야기를 주절거려야 할 테니, 나로서도 당장은 침묵을 택한다.

"어느 쪽이든 상관없어. 아무튼, 협회를 통해 면담을 신청해두는 쪽이 좋겠지."

정말로 적당히 말해봤을 뿐이라는 듯, 최승준은 그렇게 말을 마무리했다.

일단 녀석의 서류상 거주지는 최승준이 제공한 별장 중 하나.

다만, 분신으로 출퇴근하고 있다는 특성 탓에 실제로는 빈 방이다.

김민철 때와 같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면, 매일같이 지상에 분신을 만들고 회수하는 식이겠지.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최고신이 분신을 유지하기 위해 하루 세 끼 요리를 만드는 수고 따위를 감수할까?

글쎄, 내 생각엔 절대 아니라고 본다.

즉, 녀석을 만나기 위해선 협회로 직접 출두해야 한다는 건데.

'니미.'

박우찬, 성격 많이 죽었다!!

미친, 살다살다 몬스터를 만나러 시간을 내야 할 줄이야.

물론 그토록 참렬한 행동을 자처할 수 있을 만큼 마음에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만.

정일현 선생의 조언에 따라 솎아내기를 핑계로 아카데미 지하 게이트를 들쑤시고 다니거나.

혹은, 놈들이 주기적으로 공급하는 고랭크 몬스터를 도살하거나.

어느 쪽이든, 실로 풍족한 환경이라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까놓고 대침공 당시보다 더 여유로운 기분인데.

"뭐, 알겠다. 시간 나면 가 볼 테니 그렇게 알아둬."

"음."

마음 같아서는 저런 핑계로 수업도 빠지고 싶었지만, 지금 진도 나가는 범위를 고려하면 그럴 수도 없었다.

결국 나는 이번에도 서아에게 부탁하고자 천천히 교장실을 뒤로했다.

*

"뭐?! 또?!"

그리고.

다시 한 번 빈 시간동안 하연이를 맡기기 위해 찾아간 서아는, 비명같은 소리를 내고 말았다.

물론 서아 또한 사정이야 이해하고 있겠지.

예전이었다면 나도 이 정도는 별다른 문제조차 되지 않는다며 멋대로 자리를 비웠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김민철에 의한 납치 사건.

거기에 연일 거세지고 있는 예의 집단의 공세.

이런 상황에서 하연이의 옆자리를 비우기엔 아무래도 부담이 있었다.

덕분에 서아를 혹사하다시피 하고 있었지만.

벌써 몇 번째더라?

현장학습이 끝나고 거의 한 달.

이번으로 대략 세 번째니까, 10일에 한 번 꼴로 자리를 비우고 있는 셈인가.

클럽 참가. 비밀 연구소 제압.

그리고 지금.

내가 봐도 조금 심하긴 했다.

말이 중대 사안이지, 결국 개인 사정으로 아르바이트를 펑크 내고 있는 상황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거기에 대해서 내가 할 말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진짜 미안. 나중에 주말 잡아서 한 번 놀러 가자."

"진짜지?!"

쉬, 쉬워…….

부탁하는 입장에서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내 제자가 너무 쉬운 성격이라 조금 걱정되기도 했다.

"아, 아니 잠깐!!"

그러나.

오늘은 조금 달랐다.

서아가 자그마치 항변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세상에, 우리 서아가 드디어 저항을?!

사부로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그 시선은."

"그야 우리 제자님한테 미안해서 그러는 거지."

"아, 그래? 헤헤헤."

헤실헤실 느슨한 웃음을 짓는 서아.

하지만 불현듯 정신을 차리기라도 한 양 표정을 다잡는다.

어라, 오늘은 조금 저항이 드센데.

"대신 조건이 있어."

"으음, 하긴. 너도 이제 나이가 나이고, 나랑 노닥거릴 처지는 아니긴 하지."

"그거 말고! 주말엔 약속 잡지 마. 따로 나갈 데 있으니까."

요컨대, 주말엔 주말대로 부려먹고 조건은 조건대로 잡겠다는 뜻이었다.

이런 돼지 같은 년.

물론 면전에 대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 쪽이 부탁하는 입장이었으니까.

거기에 이번 달 내에만 벌써 세 번째고.

'삼연벙은 에바지, 삼연벙은.'

허면, 서아가 무슨 요구를 할지 그게 문제인데.

정말로 심각한 부탁을 하진 않겠지만, 적어도 이렇게 운을 뗀 만큼 심상찮은 이야기겠지.

실제로도 그랬다.

엄청나게 심각한 사안은 아니었지만, 반대로 시덥잖은 주제도 아니었으니까.

"티아 씨, 그 사람 도대체 정체가 뭐야?"

어이쿠, 이런.

그렇게 왔나.

"정말로 단순한 중동 외노자는 아니지?"

여신인데.

그렇게 말할 수도 없었다.

확실히, 서아를 비롯한 학생들에게도 놈들에 대한 정보는 공유했다.

그렇지만.

당장에 티아마트가 지상에 강림한 성좌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건 나와 이준구, 그리고 최승준 뿐이었다.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건 아니고, 프라이버시잖아.

애초에 놈들과 관련된 정보를 공유할 필요가 있었던 거지, 시시콜콜한 개인 정보까지 털어놓겠다는 뜻은 아니었으니까.

단지.

덕분에 서아는 티아마트의 정체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던 모양이다.

"사부, 알고 있어? 이번 달에만 벌써 세 번째 부탁인 거?"

"응, 알고 있지."

"그럼 이건? 이번에 사부가 자리를 비운 거, 전부 그 사람 때문이잖아."

"응?"

뭐라고?

나도 모르게 솟구친 의문이 무심결에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아는 멈추지 않았다.

도리어 한 걸음 내딛으며 반복해 묻는 서아의 눈가엔 자그마한 이슬이 반짝이고 있을 정도였다.

"사부는 모르지? 아마 사부만 모를 거야. 사부, 매일같이 그 사람만 찾고 있잖아."

"으, 으음."

"도대체 그 사람이 사부한테 뭐길래?"

어, 죽이고 싶은데 참고 있는 무언가?

도저히 그렇게 대답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만.

'깜짝이야.'

솔직히 말해서 엄청 놀랐다.

설마 이런 질문이 날아들 줄이야.

아니, 정말로.

단 한 번도 상상한 적 없는 이야기라 잠시 넋이 나갔을 정도다.

매일 눈으로 쫓고 있다니, 그야 당연하겠지.

'죽이고 싶으니까…….'

이번에 자리를 비운 게 전부 티아마트 때문이라니.

하긴, 뒤늦게 생각해 보면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그럴 수도 있겠지 싶었다.

실제로는 달랐지만!

티아마트를 파트너로 삼아 파티에 출석한 건 달리 적당한 사람이 없었을 뿐이고.

그 다음 연구소를 제압할 때 자리를 비운 건 파티에서 생긴 인연 덕분이지 티아마트와는 별로 상관 없는 이유였다.

그나마 지금 정도?

그렇지만.

"서아야, 울지 말고."

"안 울거든?!"

안 울긴 뭘 안 울어, 목소리가 아주 물기에 젖었구만.

그렇게 말하는 대신, 나는 잠깐 마른 세수를 했다.

아니, 사정은 이해했다.

이해했지만, 이렇게 반응할 줄은 몰랐는데.

'이게 울 정도나 되는 일인가?'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서아가 보기에도 이번 사건은 단순히 내게 여자가 생겼을 뿐.

이제 와서 호들갑을 떨 주제는 아닐 텐데.

그래서야 마치…….

'주접을 떠는군.'

흐르던 사고를 차단했다.

나 참, 정도가 있지.

서아에게 있어, 나는 어디까지나 가족의 원수.

지금은 희석된 감이 있지만, 내가 조금만 더 빨리 왔었더라면 아버지를 구할 수 있었을 당사자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 내가 서아의 감정을 지레짐작하거나, 하물며 내게 호의적인 방향으로 해석한다는 건…….

'염치가 없는 일이지.'

슬며시 손을 뻗었다.

호박색으로 반짝이는 눈동자.

거기에 맺힌 이슬을 닦으며,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아직 서아가 정식으로 헌터가 되기 전.

도축업자의 제자였을 때에도 몇 번 이랬던 적이 있다고.

그 때랑 비교하면 완연하게 볼살이 빠져 어엿한 성인 여성다운 얼굴선을 쓸어내리며, 나는 천천히 손을 내렸다.

뭐, 그래. 무슨 일이었더라?

다른 사람 관점에서 보는 나와 티아마트의 관계였던가.

마침 설명하기에 적절한 방법이 떠올랐다.

"가족의 원수."

"응?"

"내가 그 녀석의 가족을 죽인 적 있거든."

아, 하고 서아가 탄성을 내질렀다.

일전, 티아마트가 잠깐동안 하숙집에 신세를 졌을 당시.

김민철과 티아마트 사이의 관계를 적당히 편집해서 설명한 적이 있었으니까.

모르긴 몰라도, 녀석의 가정사가 정상적이진 않을 거라 짐작할 수는 있겠지.

허면, 적당히 양념을 쳐 이야기하면 그만이다.

애초에 거짓말도 아니고.

죽여야 할 이유는 있었다.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조차 티아마트의 권능 덕에 희미했다.

고랭크 몬스터를 죽인 듯한 기분밖에 들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녀석에게 있어 제 가족을 죽인 살인마에 지나지 않는다는 건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러니 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내 취향 이전의 문제다.

가족을 죽인 당사자에게 그런 마음을 품을 수 있겠나.

그렇게 말하자, 서아의 얼굴이 묘하게 안도감을 띄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안심하는 기색이었던 서아의 얼굴이 곤혹으로 젖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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