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화 〉 박우찬의 하루
* * *
자하연이 체단실에 남아있던 건 다름이 아니었다.
박우찬이 정일현 선생의 도장에 등록하면서 자하연 분량의 등록비도 대납했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예를 들어, 박우찬이 도장에 등록한 이상 자하연 또한 동행할 수밖에 없다는 점.
거기에 매일같이 자신을 위해 시간을 때우며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있기도 머쓱한 일이라는 점.
마지막으로 박우찬 본인에게 쿼터스태프를 다루기 위한 조예가 부족하다는 점 때문이었다.
뭐, 예의 보호 감찰 제도 때문이라 해도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뭐라도 배울 수 있으면 좋지 않겠는가.
게다가 현실적인 문제도 있었다.
여름방학 이후, 자신에게도 제대로 된 전법을 가르쳐 달라 요구한 자하연.
그 말을 듣고, 박우찬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한도 내에서 자하연에게 가장 어울리는 전법을 사사했다.
즉, 김민철의 전술이다.
비록 자신을 납치한 납치범의 기술이라는 말에 난색을 표하긴 했으나, 자하연 또한 이를 수긍.
하루라도 빨리 실력을 쌓아 은혜를 갚기 위해 지팡이를 무기처럼 다루는 방법을 익혔다.
문제는 본질적으로 박우찬이 알고 있는 무기술 따위 어디까지나 야매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
아예 소양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기왕이면 제대로 가르쳐주고 싶은 게 또 후견인의 마음이다.
정작 당사자인 자하연은 부담스럽다며 사양하려 했지만, 이번엔 박우찬이 강권했다.
물론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는 있겠지.
하지만 매일같이 멀뚱멀뚱 서있는 자하연을 보고 있어야 하는 자신 쪽이 훨씬 더 부담스러울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렇게, 자하연 또한 방과 후 체단실 연습생 트리오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리고.
"하연아, 그렇게 힘드냐?"
"저리 가요, 오빠. 냄새 나니까."
"어? 어어, 그래. 미, 미안하다."
"앗, 오빠 얘기 아니에요! 제 얘기, 제 얘기!"
추욱 늘어진 채 적당히 응대하던 자하연이 황급하게 양 손을 젓는다.
본인으로서는 땀에 젖은 자신의 체취 때문에 박우찬을 배려할 생각이었으나, 아무래도 그렇게 들리진 않은 모양이었다.
일단 괜찮다는 말에 적당히 주변으로 착석하는 박우찬.
동시에, 은근슬쩍 자신의 체취를 맡는다.
'홀아비 냄새라도 나나?'
방금 그렇게 듣긴 했지만, 혹시나 자하연이 자신을 배려한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박우찬을 보며 조용히 울상 짓는 자하연의 모습에 그 이상 살필 수는 없었지만.
'향수라도 바꿀까.'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갈 수밖에.
물론 졸지에 눈 앞에서 너 냄새난다고 선언한 꼴이 된 자하연 쪽은 허둥거릴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제 얘기였는데……."
"됐어, 인마. 냄새는 무슨, 그런 거 안 나."
정말로 없지는 않겠지만, 의식하기도 힘들 지경이다.
오히려 건강한 느낌이 들면 들었지.
평소부터 같은 단칸방에 살고 있는 처지.
이제 와서 체취가 어쩌고저쩌고 할 여건도 아니었고.
아니, 역으로 체취라 하면 오늘 아침의…….
'이런.'
자신도 모르게 상기한 기억 위.
박우찬이 억지로 딱지를 붙였다.
이런 상상을 할 상황도 처지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흐응?"
그런 박우찬의 반응을 보며, 자하연은 자신도 모르게 콧소리를 흘렸다.
움찔, 박우찬 또한 무심코 어깨를 좁히기도 잠시.
샐쭉 하고 선분홍색 눈동자가 초승달마양 휘었다.
마치 고양이처럼 웃음을 짓는 자하연.
"아하, 그렇구나."
"……뭐가 말이니?"
"아뇨, 오빠가 지금 무슨 생각 하시는지 대충 짐작이 가서요."
"그, 그러니?"
나는 전혀 짐작도 안 가는데.
그렇게 말하고 싶은 기분을 억누르며, 박우찬은 떨떠름한 태도를 견지했다.
그런 박우찬의 모습에, 쿡쿡 하고 장난스레 웃음을 터트리는 자하연.
말마따나, 방금 전까지 지팡이를 휘두른 탓에 온 몸이 땀에 젖은 그 모습은 나이에 맞지 않을 정도로 요염하게 보이기도 했다.
"잠깐 씻고 올게요."
"어, 그래."
도리어 박우찬으로서는 자리를 비우겠다는 하연이의 말에 안심이 될 정도였으니.
결국 자하연이 정말로 체단실을 나간 뒤에야, 박우찬은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사이 좋아 보여서 다행이네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냐?"
"죄송합니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그제서야 간신히 숨을 고른 정필연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래도 사이 좋아 보인다는 건 진심인데요."
"아, 뭐. 처음에 비하면 꽤나 괜찮은 형편이지."
"처음이라고 하면, 쟤를 막 맡으셨을 때 말씀이시죠?"
"맞아."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렇게 된 이상 박우찬 또한 정필연에게 어느 정도 사정을 털어놓을 필요가 있었다.
같은 반 학생. 담당하고 있는 동아리 소속.
어느 정도 친하거나 장난을 치는 건 괜찮지만, 아무리 그래도 오빠라 부르거나 도장 등록비를 대납하는 건 말이 안 된다.
그렇기에, 어느 정도 사연을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대충 이야기해줬다.
아는 사람네 아이인데, 어쩌다 보니 후견인이 되었다는 식으로.
덕분에 정필연은 박우찬을 보고 학생에게 스스로를 오빠라 부르게 하는 변질자가 아니라 고생하고 있는 홀애비로 생각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과 별개로 자하연이 박우찬을 바라보는 시선이 심상치 않다는 건 느끼고 있었다.
박우찬은 모르고 있다고나 할지,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나 해야 할지.
그렇다기보다, 자기보다 열 살은 어린 여자애가 장난 좀 친다고 자기를 좋아하는 건가 생각하는 남자가 있다면 그건 단순한 정신병자다.
동년배인 정필연이나 눈치챌 수 있는 사실일 뿐.
"저는 사귈 거라면 조금 얌전한 성격인 애가 좋겠네요."
"어? 뭐냐, 갑자기. 연애 이야기?"
"아, 예. 뭐, 그런 거 관심 많을 나이고 저도."
"스스로 말하는 건 조금 웃긴데. 그런데, 뭐야. 얌전한 성격?"
"네."
"거 참, 취향 한 번 평범하네. 혹시 우리 하연이라도 노리고 있는 거 아니야?"
"예?"
제정신인가?
정필연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분명히 얌전한 성격이라고 했을 텐데.
물론, 겉으로만 보기엔 얌전한 성격처럼 보일지도 모르지.
평소 태도로 미루어 볼 때, 고양이처럼 보일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정필연이 보기에, 자하연은 조용한 성격인 게 아니다.
인내심이 강하고 고집이 셀 뿐.
다시 말해, 자신이 원하는 먹이를 노릴 수 있을 때까지 조용히 침묵을 관철하는 사냥꾼.
비유하자면 거미와 같다고나 해야 할까.
물론 외모만 보자면 나쁘진 않다.
취향과는 멀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상당히 예쁘장한 편이고.
다만.
애초에 얌전한 성격을 바라는 게 자하연을 보고 깨달은 결과인 시점에서, 박우찬의 저 말은 때 아닌 헛소리에 불과했다.
까놓고 말해, 정필연이 얌전한 성격을 좋아하게 된 건 자하연의 모습이 생각 이상으로 깼기 때문이다.
"아니, 왜 정색을 하고 그러냐……."
하연이 외모가 취향이 아닌가?
박우찬으로서는 떨떠름하게 그런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지만.
그렇게.
하루 분량의 훈련이 끝나면, 그제서야 박우찬은 하숙집으로 돌아간다.
그를 보며 애닳는 마음에 끙끙 앓는 제자가 있고, 그를 보고 여러모로 생각하는 바가 있는 학생이 있는.
일찍이 그녀 또한 머무른 적 있는 하숙집에.
……그리고.
이 모든 광경을 협회 최상층에서 목도하고 있던 여신, 티아마트는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
"거 참, 열심이기도 하지."
거의 하루의 대부분을 예의 집단과 맞서 싸우는 데에 할애하고 있는 박우찬을 보고 있자면, 그런 감상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마법을 연습하고, 학생들을 훈련시킨다.
자신 또한 검술을 갈고닦아, 거기에 추가적인 궁리를 더한다.
그렇게 간신히 돌아오고 나면, 곧바로 수면.
취미라고 할만한 건 무엇 하나 보이지 않는, 금욕적인 삶이다.
물론 박우찬 본인이 들었다면 몬스터를 죽이는 게 취미라고 내심 반박했겠지만.
어쨌든, 그녀에게는 그렇게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녀는 다시 한 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애시당초, 그녀가 이 땅에 찾아든 이유부터 그러했다.
신화적으로 보았을 때, 여신 티아마트라는 이름은 정말로 쓸모가 많다.
수많은 신들을 낳고, 수많은 괴물들을 낳은 양 쪽의 어머니.
메소포타미아 신화, 창세기 속 여신.
그런 그녀에게 있어, 아직 그녀가 이 땅에 강림하기 이전.
다시 말해, 게이트 너머의 생활은 정말로 아비규환이었다.
어느 날, 여신 티아마트의 이름을 계승한 후계자.
그런 그녀의 존재에 신화 속 신과 괴물 양 쪽이 환호를 올렸다.
신들은 다시 한 번 신들을 낳아 괴물들에게 밀리고 있는 전황을 뒤집고자 그녀를 원했다.
신들의 병사를 낳을 존재로서 그녀를 찬미한 것이다.
그리고 괴물들은 지금 이 상황에서 쐐기를 박기 위해 그녀를 원했다.
신들을 죽일 괴물들을 만들어 그 세력을 불리고자, 모태로서 그녀를 원했다.
그녀가 지상에 강림할 수 있었던 건 바로 그런 특성 때문이었다.
신들의 어머니이면서도 괴물들의 어머니.
동시에, 성좌이면서도 몬스터.
그렇기에, 수많은 신들이 마침내 찾아온 궐기의 때를 맞아 괴물들에게 살해당하던 당시.
그녀는 몬스터에게 살해당하지 않고, 마치 몬스터처럼 게이트를 통해 이 세상에 내려왔다.
자신을 두고 다투는 두 진영의 싸움이 지긋지긋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렇게 몇 년인가.'
강림한 땅에서 도망치고, 밀입국해.
아이를 거두고 길러, 그 끝에 갈라섰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태까진 나름 잘 해 왔다고 생각했건만.
"세 번째 대침공이라."
예의 집단의 목적을 들었을 때부터, 어느 정도는 예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대침공을 일으키기 위해 이용하고자 하는 수단을 들은 시점에서, 예상은 확신으로 변했다.
자신은 이 이상 이 땅에 있어서는 아니 된다.
도대체 무슨 인과인지, 그렇지 않으면 자신처럼 성좌가 없는 땅을 향해 찾아온 건지.
예의 집단은 규격 외 등급의 몬스터를 소환해 이 세계를 다시 한 번 갈아엎으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야망을 저지하고자 박우찬을 위시로 한 아카데미가 그들과 대립하고 있는 지금.
신이나 몬스터, 어느 쪽이든 자유자재로 양산할 수 있는 자신의 존재는 지나칠 정도로 위급했다.
막말로, 자신의 분신 중 한 마리가 저들의 손에 들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모르긴 몰라도, 저들의 병력을 증강시키는 데에 이만한 도움도 또 없을 것이다.
반대로, 이 헌터 협회의 사람들이 자신을 지킬 수 있을까 물으면 여전히 답이 궁할 지경이고.
협회의 총 전력이라면 모를까, 여러 지부로 분산된 협회의 전력을 고려할 때.
예의 집단이 몬스터를 충원하고자 남해 지부나 강원도 지부처럼 협회 본부를 습격했을 때.
그녀를 여신이라 부르던 아이들은 과연 목숨을 부지할 수 있을까?
'어렵겠지.'
결국, 그런 이야기다.
마침내 이 오랜 향유에도, 아무래도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