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박우찬의 하루
* * *
"어느 쪽이든, 기본은 되어 있습니다."
수업이 끝난 이후, 박우찬은 체단실로 걸음을 옮겼다.
단, 이번에는 선생이 아닌 학생으로서.
거기엔 이 아카데미의 교생 중 한 명이 서 있었다.
정일현 선생.
박우찬이 가르치고 있는 학생, 정필연의 부친이었다.
……본디 헌터들을 위한 도장을 운영하고 있던 정일현 선생이 아카데미의 부탁을 받아 교생으로 취임한 이후.
도장은 사실상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본래부터 가망이 없었다 말하면 그 뿐이겠지.
대다수 헌터들은 기술의 중요성을 무시하거나, 설령 알고 있다 해도 배울 만한 시간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까.
그렇지만.
거기에 주목한 사람도 있다.
무엇을 숨기랴, 당연히 박우찬이었다.
여하간, 요 최근 실력을 붙여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던 탓이다.
헌터나 몬스터, 어느 쪽이든.
규격 외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한 수렵기???.
혹은, 태시영 등을 상대하기 위한 검술.
평소운 박사의 연구소에서 입수한 마법을 가공하고 있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박우찬은 수업료를 냈다.
사냥 기술이야 어쨌든, 당장 주변에 정일현 선생 이상의 검술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일현 선생 또한 별다른 말 없이 받아주었다.
도장을 닫긴 했지만, 애초부터 오는 사람 거부하지 않는 성격인 덕택도 있었다.
단지, 도장과 아카데미 사이를 왕복하는 건 어느 쪽이든 귀찮은 일.
그렇기에 정식 교사로 임관한 박우찬이 체단실을 빌려 임시 도장으로 삼은 셈이었다.
사실상 분점이라고 해야 할까.
"폐가 되지 않는다면, 부족한 아들내미를 불러도 괜찮겠습니까?"
물론 박우찬으로서도 반대할 이유는 없었다.
그렇게.
체단실 내에서 때 아닌 도장이 열렸다.
"선생님께서 사용하시는 기술은 서양식 대검술이로군요."
"아, 예. 거 포르투갈 쪽 기술인데……."
"기초는 나쁘지 않습니다. 훌륭한 스승을 두었던 모양이에요."
"하하하."
훌륭한 스승이라고 해야 할까, 무어라고 해야 할까.
처음 배울 때는 뭐 이리 시시콜콜하게 간섭하는 건지 모를 지경이었는데.
여하간, 대침공 당시 살아남기 위해 교류하던 헌터들 사이에서 손에 넣은 기술이었으니.
그렇게 말하는 대신, 박우찬은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다행스럽게도, 정일현 선생 또한 그 이상 추궁하지는 않았다.
"체격도 알맞고, 기술을 다루기 위한 조건은 이미 갖추어져 있어요."
"감사합니다."
"다만……."
"다만?"
"기술 사이에 편향성이 심해요."
"아, 역시?"
현재 박우찬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검술은 총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박우찬이 습득한 해체술.
둘째는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한 기술.
셋째는 방금 말한 대검술이다.
몬스터에 대한 지식도 쌓을 겸, 활동 자금도 벌 겸.
그렇게 연마한 기술이 아까워 이렇게 우악스러운 무기까지 만들지 않았나.
현직 헌터 특유의 초인적인 힘과 감각.
전체에 비하면 매우 일부에 지나지 않았지만, 당시 박우찬이 배웠던 기술은 지금도 그의 전법에 기반이 되었다.
기술 또한 마찬가지다.
몬스터를 사냥하기 위해 헌터들이 독자적으로 쌓은 검술.
개중에서도, 박우찬과 같은 거병을 쓰는 파워 파이터들은 없잖아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서 집중적으로 배운 기술을 무기술에 접목한 것이 현재의 박우찬이었다.
저 셋에 비하면, 대검술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낮은 편이었다.
여하간, 기본적으로 인간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술이었으니까.
다만, 앞으로 수많은 헌터들을 상대해야 할 박우찬에게는 그런 기술 또한 필요했다.
모르긴 몰라도, 인간 형태의 몬스터를 상대로 할 땐 도움이 되는 편이고.
거기에 축지를 비롯한 보법 내지 경신술, 추가로 맨손 격투 정도.
도구나 함정 등을 제외한 박우찬의 직접적인 전투 능력은 대강 그 정도다.
그러나.
정일현 선생은 그런 박우찬의 전법이 지니고 있는 구조적인 약점을 지적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용도가 너무 달랐다.
예를 들어, 박우찬이 평소처럼 무기를 들고 서 있다고 해 보자.
만약 그런 상황에서 눈 앞에 적이 나타났다고 한다면?
박우찬에게는 도합 세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무기를 해체용 공구로서 사용해 적의 피륙을 벗겨내는 법.
거병을 휘둘러 인간 이상으로 거대한 몬스터를 짓이기는 법.
대검술을 구사해 얼추 비슷한 크기의 적을 상대하는 법.
이 시점에서, 박우찬에겐 타임 로스가 발생한다.
하물며 상대가 인간 형태로 의태한 몬스터라고 해 보자.
'티아마트가 좋겠군.'
말마따나, 눈 앞에 전력을 발휘하는 티아마트가 있다고 가정할 경우.
상기한 세 가지 수단 전부 나름대로 유효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겠지.
거기까지는 나쁘지 않다.
쓸 수 있는 패가 많으면 일단 손해를 볼 건 없으니까.
막말로, 쓸 수 있는 패가 없는 쪽보단 훨씬 낫고.
다만.
세 가지 수 중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 것인가.
세 가지 수 중 어느 쪽이 가장 유효한 선택일 것인가.
그런 부분에 한해선, 아무래도 지체할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말해, 기술이 삐걱이고 있습니다."
종합적인 기술이라고 말하면 듣기야 좋겠지만,실제로는 적당히 섞여 있을 뿐이다.
농담으로도 한 가지 기술로 승화되었다고는 말할 수 없는 상황.
그게 바로 정일현 선생의 판단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별다른 문제가 없었던 건 틀림없는 사실이겠지.
허나, 박우찬은 그걸 자신의 실력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여태까진 헌터를 상대할 일이 없었을 뿐.
여태까지 상대한 몬스터 중에 우연히 규격 외 등급 몬스터가 없었을 뿐.
박우찬이 보기엔 딱 그 정도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방금 전 이야기한 세 가지 기술을 비교하자면, 첫 번째 기술과 두 번째 기술이 비슷한 수준입니다."
"대신 세 번째 기술이 부족한 편이겠군요."
"네. 그리고 사실 첫 번째 기술과 두 번째 기술에도 차이는 있습니다."
"예?"
"첫 번째 기술은 태생적으로 싸우기 위해 만들어진 물건이 아닐 테니까요."
"아하."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응용으로는 나쁘지 않겠지요."
단지.
기술에 대한 숙련도는 둘째치더라도, 기술의 완성도가 토벌에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완성되어 있는가?
그렇게 물으면 과연 박우찬이라 해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아니, 적당히 궁리한 물건이고.
"허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포기하는 게 좋을까요?"
"아뇨, 그럴 필요까진 없습니다. 사실, 대낫 따위를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무기술도 있으니까요."
"허어."
"문제는 자세입니다."
헌터에게는 초월적인 힘이 있다.
그렇기에, 어중간한 자세로도 상정 이상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겠지.
하지만.
상대하는 건 완전히 인지를 벗어난 괴물들이다.
자그마한 틈.
헌터의 힘이 있다면 별다른 문제도 되지 않을 틈조차, 역으로 찌를 수 있는 짐승들.
말하자면, 지금까지 박우찬이 사용하던 전투용 해체술은 말만 전투용이지 통상적인 해체술 그 자체.
헌터 특유의 힘을 사용해 억지로 구동하고 있던 것에 지나지 않는다.
당연히, 제대로 된 자세를 익힌다면 효율 또한 천차만별로 달라질 수밖에 없겠지.
방금 전 언급된 대낫 무기술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그래도 벼를 베는 농민의 동작과 말의 다리를 자르는 무기술이 동일한 구결을 이루고 있을 리 없잖나.
"다행스럽게도, 몇 번 시연하시는 모습을 보니 조금 감이 잡히는군요. 그 쪽은 제가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선생님!!"
"저는 교생입니다."
처음 만났을 때에 비하면 한층 부드러운 어조로, 정일현 선생은 박우찬의 포옹을 사양했다.
박우찬으로서는 천군만마를 만난 기분이 들었을 뿐이지만.
여하간, 박우찬은 스스로의 한계를 익히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는 몬스터를 앞에 두면 미쳐 날뛰는 감각을 통해 어찌저찌 만회하고 있었을 뿐.
몬스터를 공략하기 위한 기교, 수렵기라면 모를까 순수한 무기술로 대성할 수는 없다.
하물며 무슨 일대종사처럼 새로운 구결을 만들라니.
불가능하진 않겠지만, 사이비 무술 수준이나 되어도 다행일 테지.
그런 상황에서 정일현 선생의 도움은 바야흐로 가뭄의 단비처럼 느껴졌다.
"허면, 선생님께서 하셔야 할 일은 크게 두 가지가 있겠습니다."
"듣겠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이제 와서 검술을 다듬으실 필요는 없겠고……."
조용히 손가락 두 개를 펼치는 정일현 선생.
"첫째는, 나쁜 습관을 빼라는 겁니다."
"오, 오오."
"방금 전 말씀드렸던 기술의 흔적이 몸에 밴 지금 상황에선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질 못해요."
"그렇겠죠?"
"그러니, 새로운 기술을 연습하실 땐 혼절하기 직전까지 스스로를 밀어붙이시기 바랍니다."
"예?"
뭔가 불온한 소리가 들린 듯한데.
박우찬이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대는 사이, 정일현 선생은 다시 한 번 입을 열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다수의 적을 상대로 연습하라는 겁니다."
"다수의 적입니까?"
"예. 지쳐 나가떨어지기 직전에도 위험할 일은 없는 상대가 이상적이겠지요."
"어째서입니까?"
"종합격투기는 알고 계시지요?"
"네."
"그 쪽과 마찬가지입니다."
가볍게 체단실 바닥을 걷어차며 말을 잇는 정일현 선생.
"종합격투기 선수들은 보통 여러 개의 무술을 동시에 익히고, 활용합니다."
"그렇죠."
"허면, 복싱을 기반으로 무에타이를 접목시킨 선수가 있다고 칩시다."
"복서였겠네요."
"네. 그럼, 이 친구가 내리 5년 동안 복싱 한 우물만 팠다고 합시다."
"거 참 대단한 친구네."
"그렇게 5년이 지나고, 예의 대단한 친구가 종합격투기에 입문했습니다."
"추가로 무에타이를 익혔겠군요."
"그렇습니다. 그러면, 이 친구는 새로 배운 무에타이를 몇 년동안 연습했을까요?"
"응?"
거기까지 듣자 박우찬 또한 다소 감을 잡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똑같이 5년 내내 연습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어째서일까요?"
"기반이 되는 무술, 이 경우엔 복싱이 있었기 때문이죠."
기반이 되는 토대가 있다.
말하자면, 방금 전 예시로 든 선수는 복싱이라는 기반을 닦았다.
그리고 복싱과 어울리는 기술을 찾던 끝에 발견한 것이 바로 무에타이.
"허면, 예의 복서에게 있어 무에타이란 무엇일까요?"
"복싱의 연장선이겠군요."
"정답입니다."
무에타이와 복싱 사이의 상호 보완성.
다시 말해, 복싱과 무에타이를 동시에 구사할 수 있는 자세를 찾는다.
거기에서부터, 복싱과 무에타이의 기술을 섞어 각종 상황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한다.
보는 사람에게 있어 그 기술은 종합격투기처럼 보이겠지.
다만, 당사자에겐 복싱의 연장선상처럼 느껴질 것이다.
복싱 5년, 무에타이 5년.
동등한 수준의 기술을 쌓고 이 둘을 배합하는 게 아니다.
한 쪽을 기준으로 잡고 거기에 다른 기술을 섞는다.
복싱 5년에, 추가로 플러스 무에타이 1년.
말 그대로, 추가 해금된 DLC처럼 다루어야 한다는 소리인가.
꽤나 설득력 있는 소리다.
박우찬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터놓고 말해서, 정직하게 수련하는 걸론 어림도 없는 이야기입니다."
"시간이 부족하니까요."
"그 이상으로, 무술에 끝이 없기도 하죠."
"과연."
"때문에, 선생님께서 하셔야 할 일은 바로 배합입니다."
몸에 깃든 나쁜 습관을, 탈진 직전까지 혹사해 억지로 떼어놓는다.
완전히 백지가 된 상황에서, 기반이 된 기술을 중심으로 다른 두 기술을 섞는다.
박우찬의 신장. 체적. 체중. 신체 능력. 무기의 종류. 걸음걸이.
모든 조건을 망라해, 스스로에게 가장 잘 맞는 식으로 개량한다.
그 뒤, 정일현 선생의 채점.
이후 상기한 과정을 처음부터 계속 반복한다.
박우찬 자신의 몸에 맞는 오더 메이드 전법을 만드는 셈이다.
고작해야 몇 년만에 검술 실력을 올릴 수 있는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스스로의 수렵기에 맞추어 기술을 끌어올린다.
지금처럼 복수의 기술을 병행하거나 어색하게 섞는 수준이 아니라, 하나의 기술을 쌓는다는 느낌으로.
"아깝잖습니까."
"네?"
"시간도 그렇지만, 이미 쌓은 토대가 있으니. 최대한 활용해보도록 하죠."
"아, 예.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비하면 별것 아니지요.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할 테니 쉬셔도 좋습니다."
"그럼 애들은 제가 돌려보내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체단실을 등지는 정일현 선생을 향해, 박우찬은 꾸벅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생각했다.
"무, 물……."
"죽갓네, 죽갓어."
지금 바닥에 나동그라진 두 명.
정필연과 자하연처럼 자신 또한 본격적인 연습에 들어가면 저렇게 되는 걸까 하고.
전직 B랭크 헌터, 정일현.
동시에, 기술을 연마하여 마력의 흐름을 깨달았다는 무술 이론가.
대화를 나눌 때부터 언뜻언뜻 드러나던 사실이었지만, 의외로 자신의 주 분야에선 엄격한 면이 있는 사람이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