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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몬스터만 죽이고 싶음-142화 (142/371)

〈 142화 〉 여신이 노래하는 옛 이야기

* * *

"산 위의 왕King in the Mountain이라는 개념을 알고 있느냐?"

"……산중휴거 말이냐?"

충격! 신과 몬스터 사이의 관계, 신화는 일찍이 역사였다?

죽음을 맞이한 신화 속 몬스터들이 계속해서 나타나는 이유, 게이트 너머 신화 속 이세계!

만약 신문에 기고했다면 연일 저런 기사들이 나올 법한 진상이 우르르 쏟아졌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당사자인 티아마트는 여전히 단조로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덕분에 연신 흘러넘치는 정보를 보고 어질어질하던 나 또한 덩달아 침착해질 수밖에 없었다.

허면, 방금 전 티아마트가 입에 올린 산중휴거라는 개념은 무엇인가.

한 마디로 말하자면 구세주 설화 비스므리한 무언가라고 할 수 있겠다.

민족이나 국가를 구제할 영웅,소위 말하는 백마 탄 초인들이 있었다.

하지만.

배신자나 아군의 실수 등으로 치명상을 입은 구세주.

이윽고 그들은 자신이 입은 상처를 돌보기 위해 속세를 떠난다.

언젠가 다시금 도래할 휴거의 때, 모든 부상을 회복한 뒤 이번에야말로 조국을 구하겠단 약속을 남기고.

우리 나라로 따지자면 아기장수 우투리 설화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너희들이 대침공이라 부르고 있는 사건의 본질 또한 그렇게 다르진 않지."

"뭐?"

티아마트는 그렇게 평했다.

"알고 있지 않느냐? 산 위의 왕들 중에선 사뭇 다른 부류도 있다는 사실을."

말 그대로였다.

요컨대, 산중휴거 전설의 근간은 보다 좋은 세상이 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천국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더욱 사람들은 구원을 바란다.

언젠가 백마 탄 초인이 도래하는 날.

자신들 또한 구원을 얻고 천국에 발을 들일 수 있길 소망했던 민중들의 바람이 투영된 전설.

산중휴거란 바로 그런 마음의 체현이다.

그러므로.

세간에는 경고의 의미를 담은 산중휴거 전설 또한 적잖이 존재한다.

좋은 세상, 언젠가 다시금 도래할 구세주를 받아들이기 위한 세상을 만들자.

만약 이번에도 구세주께서 지상을 떠나신다면, 세상은 악의 손아귀에 떨어지고 말리라…….

그런 식으로.

방금 전 언급된 티폰.

제 1차 대침공의 시발점이 되었다는 규격 외 등급의 몬스터 또한 마찬가지였다.

언젠가 지옥의 뚜껑을 벗어던지고 지상에 강림할 괴물의 왕, 티폰.

놈을 견제하기 위해 올림포스의 신들은 지옥의 입구에 에트나 화산을 덮었다.

거기에 추가로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을 차리기까지.

모든 건 언젠가 부활할 티폰을 억누르기 위하여.

신들의 왕 제우스의 비호를 받는 자들이여, 에트나 화산의 덮개를 벗기지 마오.

티폰이 풀려났다간 지상은 다시 한 번 지옥이 되고 말 터이니!

말하자면 유럽식 망태 할아범 설화라고 할 수 있겠지.

그러나.

"흐음? 그게 인간들의 관점이로구나. 꽤나 흥미롭군."

"뭐?"

"다만, 반대로 생각해 보거라. 네 녀석은 이제 세계의 진실을 알고 있지 않더냐?"

세계의 진실이라는 어마어마한 표현까지 써야 할 물건인지는 사실 잘 모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또한 그녀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말마따나, 저건 어디까지나 현대 인류의 관점.

다시 말해, 신화학적인 관점이다.

허면.

신화가 실존하던 세상에 있어, 티폰의 산중휴거 전설은 무엇을 의미할까?

"예언이군."

"정답이다."

언젠가 먼 미래, 티폰이 지상에 풀려난다.

그 때가 오면 에트나 화산도,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도 제 역할을 할 수 없겠지.

그리고 그 티폰이 지상에 강림하려 했다는 건, 다시 말해 올림포스 신들의 패배를 뜻한다.

"현재 성좌들이 대대적인 도움을 줄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

수많은 헌터들의 예상과는 달리, 성좌들이 직접 강림해 몬스터들을 쓸어버리지 않는 건 바로 그런 이유가 있었다.

인류의 자율성을 존중한다거나, 인류를 동정했을 뿐 직접 나서주고 싶지는 않다거나.

그런 이유가 아니라, 단순히 전원 티폰에게 쳐발려 뒈졌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인류에게 계시를 내린 성좌들이 하나같이 유명한 신격인 이유 또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

막말로 네레이드 58석 라오메디아 따위가 티폰을 상대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유명한 신격들이 주로 연락을 취하는 게 아니라, 그만한 신격들을 제하면 전부 뒈진 거다.

티아마트가 맨몸으로 쫓겨난 걸 보면 그리스 신화 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 또한 마찬가지일 테고.

'이거 순 사기꾼 새끼들 아니야?'

온갖 점잔이란 점잔은 다 빼더니, 사실 진즉에 쳐발려서 종족 대리전이나 뛰고 있었던 거일 줄이야.

역시 성좌 새끼들은 전부 죽여야 한다.

"덕분에, 티폰의 부활에 맞서 가장 먼저 강림한 건 정의의 신."

"아스트라이아로군."

그리스 로마 신화에 전해지는 별과 정의의 신.

신들의 왕 제우스의 딸이며, 인류의 타락에 질린 신들이 지상을 떠날 적 마지막까지 남아 인류를 수호한 여신이다.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타락을 버티지 못해 다른 신들처럼 별자리 너머를 향해 떠난 존재.

그리고.

다시금 정의를 되찾은 인류가 그녀를 필요로 할 때 돌아오겠다 약속한 별의 처녀.

그렇기에, 마침내 시작된 대침공 앞에서 가장 먼저 모습을 드러낸 그녀를 보고 인류는 이렇게 말했다.

별과 같은 여신.

망망대해와 같은 어둠 속에서, 인류를 이끌기 위해 강림한 신.

즉, 성좌Constellation라고.

인류가 신들을 성좌라 부르는 데에는 바로 그런 이유가 있었다.

"게이트의 정체, 대침공의 진상……. 네 녀석이라면 그 다음엔 이리 물을 거라 생각했지."

확실히 도움은 되었다.

동시에, 깨달았다.

어째서 이런 사실을 티아마트는 지금까지 함구하고 있었던 것인가?

비단 내게 한정된 이야기는 아니다.

대한민국 헌터 협회장이나 대통령 등 수많은 이들이 요구했을 게이트와 대침공에 얽힌 진실.

하지만 나는 여태까지 몬스터와 얽힌 신화 속 가장 은밀한 지식들이 빛을 보았단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그리고.

모든 사실을 들은 지금, 나는 한 가지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예언이라.'

이거, 손쉽게 떠들고 다닐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사실 성좌와 몬스터는 동일한 존재라는, 사정을 설명하기 위해 필요한 제반 지식.

거기에, 대침공이 일어난 이유까지.

어느 쪽이든, 밝혀지는 순간 사회의 혼란을 가속시킬 뿐이다.

지상에 강림한 여신, 티아마트의 존재와 같이.

과연 각국의 수뇌부들 또한 당혹을 금할 길이 없겠지.

설마 대침공이 발생한 이유가 원래부터 일어날 일이라서 그랬을 뿐이라니.

누구도 납득하지 못할 거다.

사람은 자신에게 닥친 비극의 이유를 찾으려 드는 생물이니까.

아무리 그래도 대한민국 국민의 3할이 가족을 잃은 비극이 그냥 일어났다, 예언이었다 말하라고?

비선실세 소리 듣고 실각하기 딱 좋다.

'대침공이라.'

……규격 외 등급 몬스터.

언젠가 다시금 돌아와, 지상을 일소하리라 일컬어진 괴물들.

몬스터들의 아비이며 종주.

이 지상을 파멸로 물들일 짐승들인가.

과연, 이래서야 몬스터들이 따를 법도 하겠지.

놈들에게 있어, 규격 외 등급 몬스터란 단순한 강자 따위가 아니다.

지상을 침공하기 쉽도록 대침공을 일으킬, 거대한 힘 덩어리.

말 그대로, 먼 옛날부터 그들을 이끌고 인류를 벼랑 끝으로 내몰 거라 예언된 괴물들의 왕.

그게 바로 규격 외 등급 몬스터인가.

그렇다면.

"네가 그토록 애지중지하는 아이 또한 마찬가지겠지."

마치 속내를 읽은 것처럼, 티아마트는 내 마음을 정확히 짚었다.

그래.

당사자인 하연이에게 물어도 모른다 대답한 예의 집단의 목적.

동시에, 예의 집단의 목적인 규격 외 등급 몬스터의 소환에 하연이가 필요한 이유.

이 모든 게 언젠가 예언된 일에 불과했다면, 충분한 시간을 들이면 조사할 수 있다.

산중휴거의 전설 내지 예언이 남은 존재들.

개중에서도, 이 나라에서 소환 의식이 가능할 법한 전설을 중심으로 찾으면…….

"음? 그건 단순히 대한민국에 성좌가 없기 때문이 아니더냐?"

"소환 의식은 그렇게 간단한 물건이 아니다, 이 빡통아."

물론 그것도 없잖아 있겠지.

티아마트의 말에 따르면, 대침공은 머나먼 신화 시절 예언된 사실.

이를 알고 있을 대한민국의 토속 성좌가 있다면 놈들의 계획을 고지하지 않을 리 없을 테니까.

그러니 놈들은 대한민국을 의식장으로 정한 것일 테고.

다만.

소환 마법이라는 건 결국 대상과의 인연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현세의 법칙을 벗어나 대상을 지금 이 자리에 소환하는 마법은, 그런 만큼 안정성이 부족하다.

즉, 술자와 마법진.

그 이상으로 소환 대상을 현세에 묶어둘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소환의 촉매 따위로 소환 대상의 털이나 구문 따위를 준비하는 이유 또한 마찬가지.

대상과 관련이 있는 터. 대상과 관련이 있는 물건.

어느 쪽이든, 대상을 현세에 묶어둘 수 있는 누름돌이 될 수 있다.

그렇다는 건.

'놈들이 소환하고자 하는 규격 외 몬스터는, 이 나라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막말로, 유성신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소환하는 일과 대한민국에서 소환하는 일.

그리고 대한민국만큼은 아니더라도 중국이나 일본에서 소환하는 일의 난이도가 같을 리 없다.

다만, 문제는 당장에 짐작이 가는 대상은 없다는 점인데…….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우리 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산중휴거 전승은 아기장수 우투리니까.

씨발, 콩 갑옷 입고 저승에서 일어나 날개 퍼덕이며 인류를 멸망시키는 아기장수 우투리라니.

확실히 충격적인 비주얼이긴 하겠지만, 아무래도 그건 아니겠지.

아기장수 우투리는 인류를 벌하는 산중휴거 전설이 아니니까.

게다가, 이런 말은 조금 그렇지만 티폰에 비하면 급수도 딸리고.

솔직히 말해서 아기장수 우투리면 내가 이길 수 있을 것 같다.

아니, 애초에 몬스터도 아니지만.

"뭐, 그런 식으로 후보군을 좁혀 보거라. 네 녀석이라면 할 수 있을 게야."

"……응?"

거기까지 생각하던 나는, 문득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런 내 모습을 바라보며, 티아마트는 묘한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무어라 말하기 힘든 위화감.

방금 전, 티아마트가 했던 말에서 느껴지는 어색함을 일체 추궁할 수 없도록 하는 분위기였다.

덕분에, 나 또한 당장엔 묘한 어색함을 느끼면서도 침묵을 고수할 수밖에 없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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