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1화 〉 여신이 노래하는 옛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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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고사가 끝났다.
여태까지 아카데미에서 배운 지식과 현장학습 장소였던 강원도 지부에서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시험 문제.
어느 쪽이든,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헌터 교육 기관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시험이었다고 들었다.
뭐, 나는 못 봤지만!
바빴으니까 어쩔 수 없지.
시험 계획표야 슬쩍 본 적 있긴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해도 이번 일에 머리가 향하고 있었으니 어쩔 수 없다.
다만, 그런 만큼 전과는 확실한 편이었다.
먼저 평소운 박사의 신병.
그리고 평소운 박사가 마저 처분하지 못한 리포트 등이다.
물론 아쉬운 점도 없잖아 있었다.
예를 들면, 마지막에 평소운 박사가 사용한 마법.
용맥을 동력원으로 삼아 게이트를 개방하는 술식 쪽이다.
아무래도 마법 자체가 발전 도상이었던 건지, 그렇지 않으면 뭔지.
풍수도참의 묘리로 건설된 연구동조차 과도한 마력의 흐름을 견디지 못하고 과부하가 온 탓이다.
덕분에 정작 내 꿈과 같은 마법은 영영 우리 손을 떠나고 말았다.
물론 평소운 박사의 신병을 확보한 만큼 탐문할 수는 있겠지.
다만.
우리들은 이미 알고 있다.
신세계 질서Novus Ordo Seclorum.
놈들이 자신들과 관련된 핵심 정보에 모종의 프로텍트를 걸어둔단 사실을.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문영석 박사가 제공한 정보 쪽이 오히려 예외였던 셈이다.
핵심적인 기밀에 가까우면서도, 다른 이들을 조직으로 회유하기 위해선 제공할 필요가 있는 정보.
아웃 아슬아슬한 세이프였다고 말할 수 있겠다.
그리고 평소운의 예의 비술은 세이프 아슬아슬한 아웃이었다.
아니, 평소운 박사가 천재라는 사실은 나도 인정할 수밖에 없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시대에 한 명 있으면 다행일 천재는 아니다.
대한민국에선 한 명 나오면 많을 천재이긴 해도.
그리고 내가 보기에, 평소운 박사가 사용한 마법은 십중팔구 놈들이 제공한 지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을 게 뻔했다.
제대로 된 조교수 한 명 없이 골방에서 연구를 계속하고 있던 평소운 박사가 깨달은 세기의 발견?
글쎄, 그보다는 차라리 규격 외 등급을 소환하기 위해 몬스터들이 갖추고 있던 준비 등을 참조한 결과라는 쪽이 훨씬 더 합리적이겠지.
때문에, 평소운 박사로부터 알아내야 할 사실이 많은 우리로서는 아무래도 손을 털 수밖에 없었다.
"크아아아악!!"
구라고, 사실 뚜껑 딸 생각으로 달려들었다가 제압당했다.
씨발 새끼들.
설마 교대로 시그니처를 꽂아 넣을 줄이야.
아니, 나도 정말 사람을 죽일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 사실을 들은 순간 나도 모르게 정신이 나갔을 뿐.
불가항력이라고 해야 할까.
"세상 천지 어느 누구도 그런 걸 불가항력이라 부르진 않는단다."
"닥쳐."
그렇게.
이준구는 이번 일로 협회장과 협의를 나누기 위해, 최승준은 평소운 박사를 가둘 장소를 찾기 위해.
둘 다 자리를 비운 아카데미 교장실 안에서, 나는 티아마트와 마주하고 있었다.
……본디 이번 사건이 끝나면 티아마트가 이야기하기로 했던 몬스터와 게이트에 대한 비밀.
이걸 미리 들어두기 위해서였다.
뭐, 구태여 다시 한 번 설명하는 수고를 감수하면서 내게 먼저 말해주고자 하는 건 단순히 내 주의를 다른 곳에 돌리기 위함이겠지.
내심 짐작이야 할 수 있었지만, 그래도 거부할 수는 없었다.
응애, 나 애기 헌터 박우찬.
몬스터는 전부 죽여야 해.
그러기 위해선 몬스터에 대한 지식을 하나라도 더 쌓아야 할 판국이었으니.
물론 상대가 일개 S랭크 몬스터 정도였다면 이제 와서 속사정을 알려 들 필요는 없었겠지.
S랭크 몬스터를 상대로 일개 운운하는 표현을 사용하는 건 다소 우습긴 하다만, 어쨌든.
다만.
상대는 규격 외 등급 몬스터.
나로서도 처음 듣는 녀석들이다.
이럴 땐 조금이라도 좋으니 닥치는 대로 정보를 수집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허면, 어디서부터 이야기하는 게 좋을꼬……."
"일단 규격 외 몬스터라는 게 뭔지, 그거부터 설명해 봐."
"흐음?"
"그냥 존나게 센 놈들. 그런 건 아니지?"
이건 내 추측이지만, 거의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몬스터들이 규격 외 몬스터의 소환을 획책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야 대침공이 시작되면 몬스터들도 사냥하기 편하겠지.
허나, 몬스터는 결국 짐승.
제 무리와 함께 몰락하면 몰라도, 자기 위에 새로운 우두머리가 들어서는 걸 반길 리도 없지.
그런 만큼, 단순히 존나게 센 놈들이라 칭하기엔 아무래도 석연찮은 점이 있었다.
내 말에 입술 밑으로 검지를 붙이며 고뇌하던 티아마트가, 이윽고 고개를 끄덕인다.
나의 질문에 대한 대답임과 동시에, 일종의 결심하는 동작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 거기서부터 시작하자꾸나."
"좋아."
"그럼, 내 가장 먼저 묻도록 하마. 네 녀석이 생각하기에, 몬스터란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어이쿠, 이런.
다짜고짜 무거운 주제를 던지고 자빠졌다.
몬스터란 무엇인가, 라.
꽤나 철학적인 주제지만, 사상을 묻는 건 아니겠지.
어디 보자.
"현대엔 크게 두 가지 가설이 대립하고 있지."
"말해보거라."
"첫째로는 옛날 옛적 신화에 기록된 괴물들이 다시금 튀어나오고 있다는 가설."
말할 필요도 없이, 가장 보편적인 가설 중 하나다.
먼 옛날, 과학의 발전과 동시에 단순한 미신이라 치부당해 사라진 마법이나 전설.
어떠한 역사적 사건이나 자연재해, 혹은 강의 흐름 따위를 의미한다 여겨진 신화 속 몬스터.
그리고 무지의 소산이라 단언당해 문화 컨텐츠 따위로 전락한 신화 속 신들.
하지만.
두 번의 대침공 속에서, 인류는 옛 신화 속으로부터 나타난 괴물들과 다시 한 번 맞서 싸우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신화 속에서 등장하던 신들의 도움을 받으며.
심지어 전설 속 영웅들의 괴물 퇴치담이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는 모습까지 목격한 판국이니.
"그야 가장 먼저 들 법한 생각이겠지."
"먼 옛날, 인류는 지금처럼 신들의 가호를 받으며 괴물들과 맞서 싸우고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이야기로구나."
"그래."
"허면, 두 번째는?"
"두 번째는, 게이트 너머에서 나타난 몬스터들이 신화 속 괴물들로 의태하고 있다는 가설이군."
두 번째 가설 또한 나름 있을 법한 이야기였다.
모종의 목적을 가지고 이 세계를 침공한 외계인.
그러나, 무엇이 문제였던 걸까.
단순히 대기 중의 산소 농도가 맞지 않았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다른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이 세계에 적합한 모습을 갖추기 위해 정보를 취합하던 도중 지금과 같은 형태가 되었다는 가설이다.
"그럼 네 녀석은 어느 쪽이 정답이라 생각하느냐?"
"……흐음."
그 말에 잠시 턱밑을 쓰다듬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겐 아무래도 좋은 일이었다만.
"반반이겠지? 굳이 따지자면."
"호오."
두 번째 가설을 신임하기엔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다.
제 1차 대침공 때야 상관 없었겠지.
그렇지만, 첫 번째 대침공으로부터 어언 20년.
어째서 몬스터들은 전설 속 괴물들의 거죽을 벗어던지지 않는 걸까?
모르긴 몰라도, 정공법으로 살해당한 몬스터보다 전설 속 약점을 공략당해 죽은 몬스터 쪽이 훨씬 많을 거다.
네메아의 사자라 불리던 몬스터만 해도 그렇고.
벌써 20년. 족히 20년.
대기 중의 성분이 문제였든 뭐가 문제였든, 신화 속 정보를 구현할 능력이 있다면 진즉에 극복하고도 남을 시간이다.
때문에 두 번째 안건은 폐기.
허면, 첫 번째 가설이 정답일 확률이 높다.
이 경우, 성좌들의 정체 또한 설명할 수 있고.
누차 말했듯이, 각종 신화에서 신들과 괴물들이 같은 혈통에 속하는 건 상당히 보편적인 이야기고.
신들의 정체가 몬스터인 게 아니다.
신이라 해도 그 본질은 몬스터와 다를 바 없으며, 괴물이라 해도 그 혈통은 신과 다를 바 없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몬스터가 신들의 거죽을 쓰고 성좌라 자칭하고 있다는 내 비난은 틀린 말이 되겠다만.
몬스터가 신 행세를 하고 있는 게 아니다.
태생적으로 신이나 몬스터나 그 놈이 그 놈이라 하는 편이 정확하겠지.
어라, 딱히 틀리지도 않은 것 같은데?
역시 성좌들도 다 쳐죽여야 하는 게 아닐까?
"어쩐지 불온한 시선이다만, 그래서야 반반이 아니지 않느냐?"
"엉? 이제 와서 무슨 소리를 하고 있어, 너."
티아마트는 새침한 얼굴로 그리 잡아뗐지만, 나로서는 당연한 이야기였다.
아니, 까놓고 말해서.
"너 뒤졌잖아."
"으응, 배려라고는 한 조각도 느껴지지 않는 발언."
메소포타미아 창세기, 마지막 장.
신들의 어머니 티아마트는 신들의 대표 된 영웅신에게 배가 찢겨 죽는다.
티아마트를 살해한 건 신들의 왕인 아누이거나 그 후계자인 엔릴, 혹은 후대의 주신 마르두크.
까놓고 말해서 당대에 가장 잘 나가던 신이다.
어쨌든, 그렇게 죽인 티아마트의 시체를 사용해 세계를 빚었다는 게 골자인데…….
보시다시피, 티아마트는 살아있다.
방금 전 언급한 네메아의 사자 또한 헤라클레스에게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히 돌아다니고 있었고.
즉.
각종 신화나 전설이 사실일 수는 있다.
허나, 그렇게 말하기 위해선 신화 속에서 사망한 몬스터와 현실 사이의 간극을 이어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결국, 모든 의문이 귀결하는 건 단 하나였다.
"넌 뭐냐?"
여신 티아마트.
메소포타미아 창세기 당시, 죽음을 맞이한 여신의 이름을 자칭하고 있는 성좌.
단순한 자칭인가?
그렇지 않으면?
내가 풀어야 할 의문은 모조리 거기에 집약되어 있었다.
그리고.
"네 녀석의 말이 틀린 건 아니지."
의외로 선선하게, 티아마트는 그리 답했다.
톡, 톡.
마치 메트로놈처럼, 일정한 박자로 교장실 테이블을 두드리던 녀석이 문득 한숨을 내쉬었다.
"뭐, 그래. 정답이구나. 본인은 창세기 속에 등장하는 여신 티아마트 본신이 아니니까."
"그럼?"
"그 후계자라고 해야 하겠지."
후계자.
묘한 발언이었다.
본질적으로 짐승에 지나지 않는 몬스터가 꺼낼 만한 단어는 아니었으니까.
"부정할 수 없는 말이로구나. 그렇지만, 신화는 신이 아닌 인간이 기록하는 법이지."
"뭐?"
"간단한 이야기이니라. 네가 생각하는 말 그대로라는 뜻인즉."
마치 노래하는 듯한 어조였다.
조용히, 그러나 선명하게.
여신의 목소리가 옛 신화를 자아낸다.
"애초에, 네 녀석 또한 듣지 않았더냐? 제 1차 대침공 발생 당시, 티폰은 어디에서 눈을 떴지?"
"에트나 화산?"
"그래. 그리고 그 밑에 있는 지옥Tartaros이지."
문득, 그 말에 떠오르는 바가 있었다.
고대 로마의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저작.
서사시 아이네이아드에 의하면, 타르타로스에는 헤라클레스를 비롯한 영웅들이 쓰러뜨린 괴물들의 영혼이 도사리고 있다.
그리고 방금 전, 티아마트는 그렇게 말했다.
내 말이 틀리진 않다고.
……옛날 옛적, 정말로 이 세상에 신화가 펼쳐지고 있었다 가정해보도록 하자.
그렇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문이 있다.
방금 전 이야기한 그리스 로마 신화를 예시로 들 때.
먼 옛날, 이 지상을 주유하고 있던 괴물들은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그리고 일찍이 영웅들에게 살해당했던 괴물들은 어디서 다시금 나타난 걸까.
거기에 대한 해답이 바로 눈 앞에 있었다.
즉,게이트.
몬스터들을 잉태하는 구멍.
세계에 뚫린 관문Gate.
"씨발."
간단한 이야기였다.
도대체 누가 명명한 건진 모르겠지만, 참으로 적절한 작명이라 하지 아니할 수 없겠지.
게이트란, 말 그대로 관문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 명계Tartaros.
북구 신화의 아홉 세계.
혹은, 수많은 신화와 전설 속 몬스터들의 요람과 현세를 잇는 문.
그게 바로 게이트였고, 게이트 너머 세계의 정체였다.
허면.
세계 각지에 전해지는 신화가 정녕 사실이었다고 한다면.
지금 내 눈 앞에 있는 이 여신의 정체란 무엇인가.
……공교롭게도, 그 쪽 또한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여신 티아마트라는 이름에는 쓸모가 많지."
말 그대로였다.
수많은 신들을 낳은 신들의 어머니.
동시에, 신들의 적을 스스로 잉태한 괴물들의 대모.
세계를 빚는 토대이며, 신들의 왕을 임명하는 운명의 서판을 증여하는 자.
즉, 만일 이 세상에 신화가 실존했었다고 한다면.
"그렇지 않느냐?"
"허."
"신들을 잉태할 수 있고, 괴물들을 양성할 수 있는 여신."
모르긴 몰라도, 신화가 끝난 지금.
다시 한 번 메소포타미아 신화의 창세기를 시작할 수 있는 여신.
"글쎄, 격세 유전이라도 되었던 건지 아니면 지독한 우연의 산물인지."
여신 티아마트의 죽음이 기록되길 짧게 잡아도 3000년.
게이트 너머에서 여신 티아마트와 비슷한 형질을 지닌 몬스터가 태어났다.
"그게 본인이니라."
두 번째 티아마트.
지상에 다시금 재현된 신화 속 지모신은, 현대의 연구자라면 누구나 알고 싶을 사실과 함께 스스로의 정체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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