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 마법전
* * *
말이야 그렇게 하긴 했지만, 정말로 내가 마법전을 벌이겠다는 뜻은 아니었다.
것보다, 제대로 된 공격 마법 따위 배운 적도 없고.
예전에 몇 번 지분거린 적도 있긴 했는데, 마법이라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던 탓이다.
니미, 대충 마력만 조작할 줄 알면 될 줄 알았는데 설마 사상이나 철학까지 배워야 할 줄이야.
뭐, 어쨌든.
평소운 박사가 그토록 좋아하는 카탈로그 스펙으로 따지면, 지금 내게 유리한 점은 단 하나도 없다.
내 마력 조작 능력은 동 랭크 마력 조작 특화 헌터에 비하면 절반 이하.
그에 비해, 평소운 박사는 풍수도참을 이용해 증축한 자신의 영역 내에 있다.
이 시점에서, 나와 평소운 박사 사이의 능력 차이는 거의 사라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지.
게다가, 평소운 박사는 전문 마법사.
반대로 나는 여태까지 싸우면서 마법을 사용한 적이 없다.
못 쓰니까!
평소운 박사가 나름대로 가능성을 발견한 부분이 있다면 바로 거기에 있을 터.
전문 마법사와 마력 조작 능력자 사이의 마법전이라면, 당연히 내가 이길 수 있다.
그런 자신감이었을 테지.
"이익!!"
그러므로.
현실적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주제에 내가 아는 누구보다도 충동적인 꼬마.
속만 늙은 노괴는, 지금도 제 뜻대로 풀리지 않는 현실에 악다구니를 지르고 있었다.
거리는 여전히 10m.
끊임없이 거리를 벌리며 마법을 주창하는 평소운 박사와 천천히 걸음을 옮기는 나.
둘 사이의 거리는 좀처럼 쉽게 좁힐 수 없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머리 위로 전개된 마법진이, 주변 일대의 중력을 배가한다.
슬쩍, 마법진 쪽으로 시선을 흘린다.
보랏빛 마력을 화려하게 흩뿌리는 마법진.
그리고 그 너머의 술식을 향해, 까딱 하고 간섭.
휘두른 능력이, 마법진 위에 균열을 일으킨다.
동시에.
기묘한 소음을 흩뿌리며, 주변에 두루 널린 사물들이 남김없이 폭발했다.
나를 향해 작렬하던 중력을 주변으로 흩뿌린 탓이다.
"뭐야, 뭐냐고!!"
머리칼을 쥐어뜯으며 분통한 외침을 터트리는 평소운 박사.
그야 그럴 만도 했다.
이걸로 벌써 몇 번째 파훼였으니까.
마법 하나 쓰지 않는 마법전.
단어의 정의가 뒤틀릴 법한 전개였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들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틀림없이 마법전이었다.
……애초에, 평소운 박사는 상황을 잘못 읽었다.
나와 평소운 박사 사이에 존재하는 능력적 차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보완할 수 있을 만한 시설.
수많은 마법 중에서도 마법사의 영역을 증축하는 데에 특화되어 있는 풍수도참.
평소운 박사 스스로의 마법적 지식.
나의 불확실한 마법적 능력.
이러한 사실들을 모두 고려해, 박사는 나름대로 할 만한 싸움이라는 결론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건 평소운 박사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야기.
당장 내 관점에서 보자면, 지금 이 상황은 내게 압도적으로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상대는 연구직.
단순한 무력으로 보았을 때, 이 쪽의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점은 스스로도 인식하고 있겠지.
그런 상황에서 내가 마법전을 신청한 건 호재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경계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행동이었을 테고.
덕분에 평소운 박사는 갑자기 내가 검을 들고 달려들진 않을까 경계하며 가용할 수 있는 리소스의 일부를 방어에 돌리고 있었다.
까놓고 말해, 완전히 쓸모 없는 행동이었다.
아니, 고작해야 그 정도 마력으로 내 공격을 막을 수 있겠냐.
때문에, 단순한 능력으로만 따져도 열세.
상황을 고려해도 다소의 우위 정도밖에 안 되는 이점을 평소운 박사는 스스로 포기하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장난질에도 대응할 여유가 없는 거고.
다음으로는, 마법 구성의 문제다.
평소운 박사의 마법은 화려했다.
주변으로 마력을 흩뿌리며 반짝이는 색채를 내거나, 술식의 구동에 어마어마한 공정을 필요로 하는 등.
한 마디로 말해서, 싸움엔 필요 없는 군더더기가 많았다.
당연한 이야기지.
평소운 박사는 어디까지나 연구자.
사냥꾼이 아니다.
그녀가 마법을 사용할 때라고 해 봐야 자신의 스폰서들에게 연구 결과를 어필할 때 정도였겠지.
그런 의미에서 말하자면, 술식 구성에 틀린 점은 없다.
동일한 마력량을 사용한다고 가정했을 때, 가장 효율적으로 화력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
방금 전 중력 마법을 예시로 삼자면, 부하를 가할 수 있는 범위와 마력 소모를 절묘하게 양립한 예술품이다.
그리고.
전쟁터에서 예술품 따위는 하등 쓸모없는 골동품에 지나지 않는 법이다.
몬스터를 상대할 때에도 마찬가지.
위력 100의 화염구를 5번 쓰는 것보단, 위력 50의 화염탄을 50번 쓸 수 있는 게 낫겠지.
하지만.
몬스터는 조리를 벗어난 생물들이다.
고대의 전승에 불을 뿜는 용과 함께 살았다는 이유로 화염 내성을 갖춘 도마뱀 따위가 태연하게 돌아다니곤 하니까.
이런 화염 내성 100 몬스터를 돌파하기 위해 필요한 건, 위력 50의 화염탄 50회가 아니다.
위력 100의 화염구조차 능가하는, 최고 화력의 불꽃이다.
사람을 숫자로 파악하고 있다면 그야 비효율적으로 보이겠지.
허나, 전장의 합리란 바로 그런 부분에 있다.
비합리적인 행동. 두 번은 못 쓸 기책.
무엇이든 좋다.
한 번 빈틈을 찌를 수 있다면 그대로 죽여버릴 뿐.
어차피 다음에 승부를 볼 필요도 없는 생사결에선, 먼저 쳐죽일 수 있는 쪽이 정의다.
때문에, 평소운 박사와는 달리 내가 보고 있는 전장의 풍경은 사뭇 달랐다.
영거리에 밀착하고 있는 밀리터리 오타쿠와 경험 풍부한 특수부대원.
둘이 맞붙은 상황.
총기는 밀리터리 오타쿠 쪽에게만 주어진 상황이나, 잠금장치는 해제되지 않았다.
심지어 밀리터리 오타쿠 쪽은 실제로 총을 만져보는 건 이번이 처음.
아니, 질 요인이 없지 이거?
'진짜배기 싸움꾼이었다면 또 모르겠지만.'
만약 평소운 박사가 어딘가에서 전투를 경험한 적 있었다면 이렇게 되진 않았겠지.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
그런 만큼, 전사의 간격에서는 불리하다.
그러나.
그런 만큼, 진짜배기 전투 마법사들은 온갖 기책을 동원한다.
칭찬하고 싶진 않지만, 김민철 등이 좋은 예시다.
화려한 술리. 최고 효율의 마법.
그런 건 전부 집어치우고,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전사를 견제한다.
화살이 날아든다면 불사르고, 불꽃으로 장벽을 친다.
물론 서로 가시 거리 내에서라면 여기는 전사의 간격.
어떻게든 거리를 좁혀 달려든 전사에게, 카운터로 일격.
철저하게 갈고닦은 초격은 전사에게도 뒤지지 않으며, 의식의 사각에서 닥친다는 점을 고려하면 그 이상.
거리를 좁히고 안심한 전사를 때려눕힐 수 있는, 김민철 회심의 무기다.
그에 비해, 평소운 박사는 달랐다.
전선에 서기 위해 술식을 깎아낸 부분도 없다.
효율을 포기하고 어떤 목적에 특화한 식으로 개량한 부분도 없다.
소리는 화려하다만, 딱 거기까지인 축포.
내가 느낀 감상을 말하자면, 평소운 박사의 마법은 그런 느낌이었다.
물론, 얼마나 빠른 마법을 구사한다 해도 어지간한 실력 차이가 없다면 대다수 마법사들이 칼침을 맞는 게 더 빠르다.
그렇지만, 적어도 이렇게 간섭할 틈은 없었겠지.
마법적인 프로텍트도 없다.
간섭을 저해하는 술식도 없다.
이래서야, 조준하고 쏘는 데에 10초나 걸리는 권총이라 해도 다를 바 없을 지경이니 원.
설령 총이 없다 해도, 영거리에 밀착한 특수부대원이라면 진즉에 빼앗아 겨눌 수 있을 만한 시간이다.
마찬가지였다.
총기에 대한 지식이야 밀리터리 오타쿠 쪽이 해박할 수 있겠지.
그렇지만, 특전사 쪽이 지식에서 밀린다 할지언정 총구로 겨누는 곳으로 탄환이 날아간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다.
허면, 총구의 방향을 틀어버리면 그만.
내가 하고 있는 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화려한 마법.
마력 감응 능력이 있으니 어떤 성질을 가지고 있는 건진 대략 알겠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딱 거기까지.
마법의 상세한 사양 따위, 나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가가가강!!
내 머리를 노리고 날아든 얼음 송곳들이, 사방 팔방으로 쳐박힌다.
"도, 도대체 뭐야 넌!!"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구를 다른 방향으로 돌릴 뿐이라면 내게도 간단한 일이었다.
마법을 사용할 순 없지만, 마법을 본 적 없는 건 아니니까.
총구의 역할을 하는 트리거가 어디인진 알고 있고, 평소운 박사는 이를 숨길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수준의 노력으로도 얼마든지 마법을 무효화할 수 있었다.
뭐, 당연한 이야기지.
마법사는 준비하는 자.
E랭크 마법사라 해도, 용맥을 점거하고 시설의 백업을 받아 마법을 구사하면 A랭크 전사 이상의 화력을 낼 수 있다.
A랭크 마법사라 해도, 영거리에 전사의 접근을 허용한 순간 칼침을 맞을 건 각오해야 하듯이.
반대로, 평소운과 같은 연구직 타입의 마법사라면…….
'용맥 뒤에 쳐박혀서 대마법이나 연사하게 두는 쪽이 최선이겠지.'
만약 그런 상황이었다면 나도 상당히 난감했을 거다.
애초에 마법전 따위는 시도하지도 않았을 테고.
평소운 박사가 전투 경험 풍부한 마법사라 해도 마찬가지.
아무리 그래도, 진짜배기 전투 마법사들에게 이런 잔수작은 통하지 않는다.
뭐, 그랬으면 곧바로 칼침 꽂았겠지만.
턱.
마침내 평소운 박사의 등이 벽면에 닿았다.
삽시간에 사색이 되는 평소운 박사.
우리들 사이의 거리는, 이 시점에서도 여전히 10m.
"우, 우와아아악!!"
마구잡이로 난사한 마법이 내 주변을 포위한다.
굳이 걸음을 재촉할 필요는 없었다.
이글거리는 불꽃.
지옥의 화마라 해도 과언이 아닐 불길이, 내 몸을 불사르려다 흩어져 조용히 방 안의 기온을 올렸다.
남은 거리, 9m.
"뭐야, 뭐냐고 씨발!!"
다시 한 번 작렬한 기체 조작과 불씨의 조합.
요컨대 폭발.
연구소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식조차 사라진 듯, 굉음이 작렬한다.
물론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방금 전, 평소운 박사가 날려버린 얼음 송곳을 풀어헤쳐 방벽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폭발의 기점이 장벽에 갇혀 이를 산산조각낸다.
사방 팔방으로 비산하는 얼음 조각.
그 중 한 조각이 내 뺨을 스쳤다.
평소운 박사가 이번 전투에서 내게 입힌 유일한 상처였다.
남은 거리, 8m.
"니미, 씨발!! 애미, 애미뒤진!!"
시골에 계신 어머니가 들으면 슬퍼하셨겠다는 감상과 함께, 발 밑이 나락으로 빠진다.
끝이 없는 어둠.
사람의 정신을 부식시키는 그림자의 독이 범람한다.
수많은 절규.
물론, 그 실체는 단순한 환각이다.
마법의 스위치에 해당하는 부분을 반대로 누른다.
툭 하고 사라지는 신기루.
화장실 전등의 버튼을 누른 듯한 감각이었다.
남은 거리, 7m.
"멈춰, 멈추라고 이 새끼야!!"
이번에는 조금 신선한 방법이었다.
연구소의 바닥을 이루던 골재가 융기하며 거인의 형체를 이룬다.
크기는 대략 5m.
재료는 연구실 주변의 잡동사니, 라고 말할 순 없겠지.
아마도 이 연구실부터 마력적인 소재로 이루어져 있을 테니까.
연금술에 의한 형태 변형.
카발라에 의한 골렘 제작.
양 쪽을 동시에 전개한 술식인가.
골렘이 형성되는 사이, 걸음을 옮긴다.
남은 거리, 6m.
그리고 마침내 형성된 골렘이 주먹을 들어올리기 전.
툭, 가볍게 그 표면을 어루만진다.
그 정도면 충분했기 때문이다.
카발리스트에게 있어, 골렘은 단순한 경비원 따위가 아닌 생명을 창조하는 과정의 모방.
즉, 진리에 도달하기 위한 수양이다.
그러므로.
골렘을 이루는 구성식에는 진리Emeth라는 구문이 들어간다.
여기에서 앞글자인 E를 지우는 것으로, 진리는 죽음Meth이 되고.
그렇게.
카발리스트는 자신이 부여한 골렘의 생명을 다시금 정지시킬 수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화려하긴 했지만, 오로지 그 뿐.
마법을 구성하는 글자 중 하나를 지워 골렘을 붕괴시킨다.
붕괴하는 골렘의 옆을 걸어서 통과.
남은 거리, 앞으로 5m.
"미친, 뭐야. 마법, 마법에서도 날 앞선다 이거냐!! 그걸 보여주고 싶었던 거야?!"
분노와 억울함.
온갖 감정이 휘몰아치는 얼굴로 포효를 터트린다.
어리석은 짓이었다.
대책을 준비하는 대신 억장 무너지는 소리나 내고 있다니.
하긴,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애초에, 지금 상황은 그녀가 전적으로 유리한 상황에서 내가 모든 걸 뒤엎고 있는 게 아니다.
풍수도참의 힘을 빌려 능력적 격차를 보충했다?
마법적 지식은 그녀가 앞선다?
바보인가.
능력적 격차를 보충한 게 아니다. 마법적 지식은 그녀가 앞서는 게 아니다.
지금 이 상황 속에서, 대등한 건 고작해야 능력적 격차 하나.
앞서는 건 고작해야 마법적 지식 하나.
나머지 전부에서 뒤쳐지고 있는 거다.
남은 거리, 4m.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없다고!! 내가, 내가 이 학문에 투자한 시간이 얼마인데. 이럴 수는 없어!!"
내게 대답할 생각이 없다는 걸 깨달은 양, 발작적으로 마력의 폭풍을 휘두른다.
어떠한 술리조차 담기지 않은, 단순한 마력의 발산.
그야 뭐 이런 쪽이라면 간섭하고 어쩌고 할 여지도 없겠지.
제어하기엔 담긴 에너지가 있고.
다만.
손을 휘둘러, 쳐낸다.
애초에, 시설의 힘을 빌리지 않으면 그녀와 나 사이에는 다소의 능력적 격차가 있다.
마법적 지식이 없다면 더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고작해야 마력의 파동.
쳐내지 못할 이유도 없다.
남은 거리, 3m.
"재능, 재능이냐!! 그게 재능이라고 말하는 거냐!!"
아니, 그런 적 없는뎁쇼.
그렇게 말할 상황은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식으로 생각해 주면 나야 편할 일이고.
동시에, 건물이 준동한다.
풍수도참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 준공된 건물 위로 달리는 마법진.
미리 세팅되어 있었던 마법진 위로, 원소가 들끓는다.
엠페도클레스의 원소설, 혹은 공손신 따위가 정립한 오행설에 의한 원소 장악.
물론 내게는 전혀 위협이 되지 못했다.
상극이 되는 힘을 섞고, 반발하는 힘을 뒤흔들어 역류시킨다.
원소 사이의 균형을 중시하는 원소 조작에 있어, 이런 마력 간섭은 치명적이겠지.
그렇기에 마법사들은 자신의 술식에 쉬이 간섭할 수 없도록 조작을 가해두곤 한다만…….
'기대하긴 힘든가.'
이 여자, 다른 건 몰라도 전투 센스가 치명적으로 부족하다.
어지간히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면 내가 마법에 대응하고 있을 뿐 마법을 사용하진 않는다는 사실도 눈치챌 수 있을 텐데.
뭐, 사람에게는 각기 다른 적성이 있는 법.
거기까지 기대한들 과연 곤란하겠지.
원소 조작의 마법이 스스로 붕괴한다.
남은 거리, 2m.
"아아아아악!!"
다만.
한 가지 정정해야 할 점이 있다면, 평소운 박사는 정말로 천재였다는 것이다.
붕괴하는 마법식.
그 원리나 방법 따위는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평소운 박사는 내가 일으키고 있는 현상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붕괴하는 마법식을 이용해, 또 하나의 마법식을 짜낸다.
붕괴한 마법식을 억지로 복원하고 있는 게 아니다.
붕괴한 마법식이 절묘하게 또 하나의 마법진을 이루고 있었다.
……의식 마법Ritual Craft이라기보단 차라리 룬에 가까운 기예.
엠페도클레스가 정립한 네 개의 원소가, 아리스토텔레스가 노래한 다섯 번째 개념을 더해 원소들의 합창을 연주한다.
문제는.
"바보냐."
남은 거리, 1m.
이만한 대마법, 용맥을 점거했다 한들 단번에 발동하긴 어렵다.
하물며 용맥의 찌꺼기만 먹고 살던 이 비밀 연구소라면 더더욱.
심지어 저장하고 있던 마력까지 이제 막 방류한 참 아니던가.
당연히 내가 평소운 박사에게 도착하는 편이 더 빨랐다.
"어, 응?"
"자, 준비 되셨죠 아주머니?"
"아니, 잠깐. 뭐, 뭐냐. 갑자기 왜 주먹을 쥐는 거지? 마법전이라고 하지 않았나?!"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발광하던 건 도대체 어디로 간 건지, 바락바락 소래기를 지르는 평소운 박사.
하연이와 얼추 비슷한 나이대의 외모로 저러고 있는 꼴을 보고 있자니 나도 조금은 마음이 아팠다.
물론 평소운 박사는 지금부터 마음이 아닌 코뼈가 아파야 할 시간이었다.
"매직 미사일!!"
"갸아아아악!!"
그리고.
내 혼신의 라이트 스트레이트가 평소운 박사의 코뼈를 내려앉혔다.
우두둑, 하는 소리와 함께 휘날리는 핏방울.
어금니인지 앞니인지 모를 물건이 바닥에 후두둑 떨어진다.
의식을 확인할 필요도 없었다.
방금 전까지 뒤에서 웅성이던 마력의 흐름이 잠잠해지는 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씨발, 몬스터 아니라 봐줬다."
훅, 주먹을 분다.
나 참, 정말이지.
"별 개좆밥 새끼가."
제 분야인 마법에서조차 이렇게 빈틈 많은 주제에, 현실은 무슨 현실.
처음부터 그러긴 했지만, 평소운 박사 이 년은 제대로 아는 거라곤 하나도 없는 주제에 허영심만 가득한 놀부 새끼였다.
* * *